저는 제 인생에 반전을 가져 온 것이 바로 우리 춤입니다. 이제 춤을 춘지는 한 2년 반 정도 되었는데, 결혼을 하고 남편 뒷바라지에 아이들을 키우느라고 바깥출입도 잘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우리 춤을 알게 되었고, 그 춤이 제 인생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죠. 제가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남편과 아이들도 적극 후원을 하고 있어요. 춤을 추러 간다고 하면 남편도 아무런 탓도 하지 않아요. 좀 늦어도 무엇이라고 말도 하지 않고요. 이제 제 나이 68세인데, 제 인생에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는 것 같아요.”

 

26일 오전 10시가 조금 지난 시간. 수원시 팔달구 팔달산로 28에 소재한 수원문화원 지하층. 10여명의 사람들이 넓은 치마를 펄럭이며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다. 수원문화원 동아리 모임인 춤사랑의 회원들이다. 음악에 맞추어 입춤을 추고 있는 자태가 아름답다. 팔달산의 꽃소식에 이끌려 올라갔다가 아름다운 춤까지 구경을 하게 생겼다.

 

 

인생에 대 반전을 가져왔다는 김향순씨는 인생이 즐겁다고 한다. 이렇게 즐거운 춤을 출 수가 있어 너무 기쁘다는 것. 수원문화원 민속예술단이기도 한 동아리 춤사랑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27, 이매방류 승무의 이수자인 여지영(43) 선생이 지도를 한다. 40대에서 70대의 회원을 가르치면서도 따끔하게 혼을 내는 것을 보면 영락없이 스승을 닮았다.

 

동아리로 태어난 지 6, 천식도 고쳐 준 우리 춤

 

저희 춤사랑 동아리가 처음으로 시작을 한 것은 6년 정도 되었어요. 현재 수원문화원에는 한국무용 기초반이 있고 동아리인 춤사랑이 있습니다. 현재 회원은 15명 정도가 있는데 딴 곳처럼 이것저것 가르치지는 않아요. 한 가지를 배워도 기본기가 단단하게 제대로 학습을 해야죠.” 춤사랑 지도강사인 여지영 선생의 말이다.

 

춤사랑 동호회 홍의진(56) 회장은 취미로 춤을 시작한지는 20년 정도 되었지만 이제야 좋은 선생님을 만나 제대로 춤을 출 수 있게 되었다면서 즐겁다고 한다.

저는 마사회에서 우리 춤을 추어왔어요. 등산도 다니고 골프도 치고는 했지만, 요즈음은 우리 춤에 푹 빠져 있어요. 저는 춤을 추면서 50견이나 골절 통증 등은 아예 앓아보지도 않았어요. 여기 계신 우리 회원님들이 모두 그렇지만요. 저희가 지금 선생님을 만나 춤을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되어서 정말 너무 감사해요”.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 춤을 추는 시간이면 빠트리지 않고 참석을 한다는 것이다.

 

 

동호회에서 가장 연장자인 서영애(71)씨는 춤을 추기 때문에 늘 행복하고 즐겁다고 하면서, 등산도 하기도 하지만 아직 몸이 건강해 겨울철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춤은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에 호흡기질환도 고칠 수가 있다는 것이다. 회원 권숙경(52)씨는

저는 춤을 춘지가 꽤 되었는데 한 번도 집에 공연 때 구경을 오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난 해 남편과 아이들이 정기공연 때 꽃다발을 사들고 왔더라고요. 그 뒤로 남편과 아이들이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항상 천식이 있어서 걱정을 했는데, 춤을 추고 난 뒤 천식이 없어졌어요.”라고 한다.

 

 

많은 봉사활동도 하는 춤사랑 동호회

 

각 동호회마다 일 년에 한 번은 수원문화원 무대에 올라야 한단다. 그리고 연말에 가족잔치가 열리면 그때도 무대에서 춤을 추어야 한다고.

저희들은 항상 봉사를 하러 다녀요. 문화원 밑에 자리하고 있는 수원향교에서 잔치가 열리면 그곳도 참석하고요. 수원문화원의 행사가 있을 때는 늘 동참을 하죠. 그러다가 보면 꽤 많은 봉사를 하는 것 같아요.” 홍의진 회장의 말이다.

 

잠시 쉬면서 이야기꽃을 피운 회원들. 그런데 한 회원이 갑자기 손을 들면서 이야기를 한다. 모인 동호회 회원 중에 작고 어려보이는 구자애(53)씨이다.

저는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대전예요. 그런데 매주 월요일마다 기차를 타고 문화원에 와서 우리 춤을 배우고 있어요. 대전에도 춤을 가르치는 곳은 많지만, 이렇게 수원문화원 동아리처럼 제대로 배울 곳이 많지 않아요. 공연준비를 할 때는 매일 출근을 하다시피 했어요.”라고 한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는 한 회원의 말에 절로 부끄러워진다.

요즈음 우리 춤을 가르치는 곳이 상당히 많기는 해요.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이 호흡조차 알지 못하면서 춤을 가르친다고 하면 정상적인 춤을 추겠어요. 그런 분들로 인해 우리 춤이 망가지고 있다는 것이 마음이 아파요. 이젠 그런 분들이 춤을 가르치지 못하게 제도적으로 막아주었으면 좋겠어요. 멋을 느끼고 빠져들어야 하는 우리 춤이, 점점 망가져 가고 있는 것만 같아요.”

 

비록 전공자는 아니라고 해도 우리 춤이 좋아서 춤을 추는 수원문화원 우리 춤 동호회 춤사랑’.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팔달산에 활짝 핀 목련만큼이나 그 표정들이 환하다고 느낀다.

 

벌써 20년 세월이 흘렀다. 이 글을 쓴 세월이. 그리고 오늘 20년 만에 우연히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는 글 두편을 찾았다.

 

살풀이

 

덩실덩실 풀어간다

이승에서 맺힌 고를

한 겹 한 겹 풀어간다

 

누구라 맺힌 마음

저리도 슬피 울어

찢어진 가슴 한 귀퉁이

바람에 휘날릴까

 

그저

목 놓아 울어본들

가시는 길이 북망이고

잠든 곳이 산천이라

 

풀어헤친 봉두남발

다소곳 갈기 모아

흰 천 손에 들고

플어내니 겁살(劫煞)이라

 

 

()랄 것도 없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끼적였을 뿐이다. 내가 시인도 아닌데 무슨 시를 쓸 것인가? 우리 춤인 살풀이 사진을 찍어대다가, 옆에 놓인 종이에 적은 글이다. 그리고 당시 플래닛이라는 나만의 공간을 올려놓았었다. 아침에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살풀이라는 글을 찾았다. 1994년인가 적은 글이니 꼭 20년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도 인터넷에 이 글이 남아있다.

 

물론 내 블로그는 아니다. 아마도 누군가 이글을 퍼다 자신의 블로그에 남겨 두었는데, 그 글이 내 눈에 띠였을 뿐이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내친 김에 또 무엇이 있을까 하여 찾아보았다. 또 하나의 살풀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이 보인다. 참 글 같지도 않은 글을 만났으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살풀이 2

 

먼 산 한번 쳐다보고

물동이에 올랐다.

무거운 다리는 천근이고

하늘은 그다지도 높았는지

아무리 올려다보아도

그 끝이 없다.

천겁 세월 찌들어 온 인생

그 안에 먼 살()이 그리도 많았는지

날마다 살을 풀어낸다 야단이다.

어미 아비 세상을 뜨던 날

살 풀어 저승원문 편히 가라고

그렇게 물동이 타고 훨훨 날았다.

 

 

26일 지동 시인의 벽을 취재하고 난 후, 기사를 쓰기 위해 검색을 하다가 발견을 한 두 편의 글. 참 글 같지도 않은 글을 찾아놓고 괜히 부끄러워진다. ? 이런 글을 적었을까? 살풀이는 우리 춤 살풀이를 보고 썼고, 살풀이2는 굿판에서 무당이 물동이에 올라 엉엉 우는 모습을 보고 적었던 기억이 난다.

 

생전 시라는 것은 써보지도 않았고, 시를 쓰는 법을 배운 적도 없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적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두 편의 글이 아직도 인터넷에서 검색되고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참 아무 것도 모르는 인사가 끼적인 글도, 글이라고 나돌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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