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남문 로데오거리. 한 때는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찾아드는 젊음의 거리였다. 이곳에는 극장이 6곳이나 자리하고 있어, 주말이 되면 이 거리를 찾아드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이러한 젊음의 거리라는 남문 로데오거리가 수원역에 AK백화점이 입점을 하면서,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어져 모든 극장이 문을 닫았다.

 

그동안 남문지역의 상인들과 로데오거리 상인회(회장 김한중) 등의 노력으로 인해 10여년 만에 상권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으며, 올 초 주식회사 중앙시네마(메기박스)가 문을 열었다.

 

수원에 영화관이 6개 극장에 44개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들 영화관들은 직원들 월급조차 제대로 주지 못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운영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롯데쇼핑몰에 8개관, 광교에 7개관 등 15개소의 영화관이 문을 열게 되면 구도심에서 60여 년 동안 지역을 지켜 온 영화관들은 모두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60년 전통의 남문영화관 지켜내야

 

주식회사 중앙시네마 최기호 대표는 그동안 지역경제에 많은 도움을 준 남문의 뿌리경제를 말살시키려는 롯데쇼핑몰 영화관의 입점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3일 오전 10시 경부터 수원시청 건너편 올림픽 공원에 모인 100여명의 사람들은, ‘수원전통 영화관 고사시키는 롯데 시네마를 강력히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집회를 가졌다.

 

그동안 어려운 가운데서도 지난 9월까지 저희 남문에 소재한 메가박스를 찾아 영화를 관람한 인원이 20만 명을 넘었습니다. 이들이 이곳에서 영화 관람을 마친 후 인근 남문 일대의 전통시장을 찾아들어 지역경제에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2004AK백화점이 들어섰을 때와는 달리 롯데쇼핑몰은 더 큰 타격을 줄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렇게 거리로 나선 것이죠.”

 

2004년 수원 민자역사에 AK백화점이 들어선 후 남문일대의 시장인 남문로데오거리, 팔달문시장, 지동시장, 영동시장, 시민상가시장, 패션 1번가 등의 시장은 많은 고통을 감내했다. 수원시에서는 이러한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10년 동안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이제 겨우 전통시장이 다시 살아가고 있는데, 롯데쇼핑몰이 입점을 하면 상권은 물론 극장들까지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하다는 것.

 

 

허가증 반납으로 맞설 것

 

저희 남문 메가박스는 옛 중앙극장의 후신입니다. 그동안 저희 극장을 찾아주신 시민들 중에는 옛 정취를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오신 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이제 44개의 상영관도 인구 120만의 수원시에서는 포화상태인데, 거기다가 다시 15개 상영관이 입점을 하게 되면 59개관으로 늘어나 남문 메가박스는 또 다시 옛 아픔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날 집회에는 수원남문의 극장 관계자만이 아니라 지역의 상인들도 함께 참여했다. 그동안 침체되어 있던 로데오거리가 메가박스를 찾아오는 관람객들로 인해 다시 살아나고 있는데, 또 다시 젊은이들이 떠난다면 이제는 회생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란다.

 

 

이제 겨우 상권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데, 롯데쇼핑몰과 롯데시네마가 문을 열면 아무래도 젊은이들이 어디로 찾아가겠습니까? 주차시설이나 모든 것에서 전통시장보다 편한 롯데쇼핑몰을 찾아가겠죠. 저희가 허가증을 반납하면서라도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1952년 처음으로 극장이 문을 연 수원의 로데오거리.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 한 때 황폐화가 되었었다. 이제 겨우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거리인데, 과거의 고통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날이 쌀쌀한데도 불구하고 집회에 나선 당사자들은 절박하다고 한다.

 

수원 종군위안부 평화의 소녀상제막식

 

예전 우리는 숨도 쉬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자그마치 그 기간이 46년이란 세월입니다. 그런데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과 협상을 하면서 우리를 또 한 번 죽였습니다. 이제 그 딸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여자니까 우리의 아픔을 잘 알 것입니다. 이제는 그 딸이 우리 종군위안부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결을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우리의 명예를 찾아주어야 합니다.”

 

3일 오후 3시 수원시청 맞은편 올림픽공원 한편에 작은 소녀상이 하나 조성됐다. 그 앞에서 김복동(, 89) 할머니의 함성없는 절규이다. 그 뒤편에 의자에 앉은 소녀상은 바로 수원 평화비인 평화의 소녀상이다. 이 소녀상은 종군위안부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한복을 입은 이 소녀상은 13~15세의 어린나이로 일본군에 끌려갔을 당시의 종군위안부를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종군위안부의 아픔 달래줄 수원평화비

 

수원평화비(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는 201434일 단체설립을 했다. 수원에는 위안부 할머니 4명이 있었다. 평생을 위안부라는 딱지를 떼지 못하고 숨죽여 살아오던 이분들 중에서 이미 3명은 고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안점순 할머니 한 분만이 이날 행사에 참석을 하셨다. 그 외에 김복동, 길원옥 두 분이 함께 했다.

 

이날 행사는 제막식에 모인 200여명의 건립추진위원 및 성금기탁자, 그리고 수원시민이 함께 참여를 했다. 행사는 오후 3시부터 시작해 수원평화비 제막식, 7000명의 성금을 낸 시민들의 명단을 적은 타임캡슐 봉안, 경과보고, 기념사, 작품설명 및 헌시낭독, 수원청소년 평화나비 발대식 순으로 이어졌다.

 

 

3개월 만에 빛을 본 평화의 소녀상

 

수원평화비인 평화의 소녀상 제작은 지난 219일 건립추진위 발기인 대회를 시작으로, 31일 시민결의대회와 창립총회, 34일 단체등록, 312일 행궁광장 등 모급함 설치, 325일 수원평화비 건립 장소 선정, 330일 광주 나눔의 집 방문, 45일 평화콘서트 기금전달식 개최, 417일 수원평화비 건립기념 자선바자회(갤러리아 백화점), 430일 수원평화비 설치공사를 거쳐 3일에 제막식을 갖게 되었다.

 

수원평화비인 평화의 소녀상은 김운성과 김서경 부부의 직품이다. 부부는 중앙대 예술대학 조소과를 같은 해에 졸업한 작가들로, 이번 평화의 소녀상 조성을 하면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소녀상은 머리카락이 단발이 아니라 뜯겨진 머리카락입니다. 당시 위안부로 끌려간 어린 소녀들은 모두 댕기머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조각상을 살펴보면 머리카락이 거칠게 뜯겨진 듯 잘려진 모습입니다. 아픔을 상징하는 것이죠. 두 손은 꼭 쥐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 정부는 사과는커녕 소녀상 설치를 반대하였고, 오히려 한국정부를 압박하여 방해를 지속적으로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항변이자 남은 우리들의 다짐이자 약속입니다

 

평화비 제막식에 참석을 한 시민 한 사람은

이렇게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해 그 제막식을 갖게 된 것은 이제부터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동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오신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우리 정부가 이분들을 위해 제대로 할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자 항변이다. 수원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이렇게 평화의 소녀상을 만들어 우리 역사의 아픈 부분을 아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한다. 몇 분 남지 않은 저 분들이 살아생전에 꼭 명예를 되찾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라고 한다.

 

 

이날 제막식에는 수원청소년 평화나비 발대식도 함께했다. 수원 율천고. 권선고, 화홍고, 수원공고, 흥덕고 등의 학생들로 구성된 청소년들의 모임인 평화나비 대원들은 제막식이 끝난 후 단체로 수원시청 앞뜰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분향소를 찾아 머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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