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정자. 벼랑 밑 연못에 연꽃이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병풍처럼 깎아내린 암벽 위에는 정자가 서 있다. 병암정, 황진이가 노닐던 곳이다. 드라마 황진이의 촬영장이 될만큼 아름다운 정자다.

 

병암정 앞 연못에 핀 연꽃들

 

병암정은 경북 예천군 용문면 성현리에 소재한 정자이다.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53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병암정은 예천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권원하 선생이 지었다고 한다. 병암정이 유명한 것은 드라마 <황진이> 때문이다.

 

 
 드라마 황진이의 촬영지다

 

병암정에 오르면 앞으로 들판이 시원하게 보인다. 정자는 이외로 단출하다. 가운데는 마루를 놓고 양편으로 방을 만들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전면에 길게 마루를 두었다. 이 정자를 지은 권원하 선생은 이 마루에서, 너른 들판을 내려다 보면서 나라의 안위를 걱정했을 것이다.

 


 경북 문화재자료이다

 병암정에 걸린 현판

경관이 뛰어나 드라마 촬영장이 되기도 했던 병암정. 그러나 정작 이 병암정은 나라의 독립을 걱정하는 곳이었다. 권원하 선생이 이 정자를 짓고 멀리 들판을 바라보며 내 나라를 생각하고, 떠가는 구름을 보고 나라를 위해 불철주야 달렸을 것이다.


 

우리는 가끔 정자를 찾아다니면서 그 경관만을 본다. 하지만 그 정자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왜 정자를 지었을까? 단순히 시를 짓고 경관을 감상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정자는 그 안에 숱한 이야기를 간직한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찾아내기 위해 주변을 다니면서 이야기를 듣는다.    

 


병암정은 단순한 정자가 아닌 나라를 걱정하는 독립운동의 산실이었을 것이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병암정. 세월이 지나면 그 본래의 뜻이 퇴색해 버린다. 병암정은 독립운동의 숭고한 뜻을 가진 정자에서, 명기 황진이가 거닐던 드라마의 촬영지로 바뀌었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사람들의 사고도 바뀌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라도 병암정이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발길이 이어진다면, 권원하 선생의 뜻도 함께 알려질 것이다. 멀리 들판 위를 떠가는 구름 한 점이 숨을 고른다. 

나무가 자기 이름으로 된 땅을 갖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자나무’라고 부른다. 자그마치 2천평이나 되는 땅을 갖고 있는 나무이다. 그리고 옆에는 2세까지 키워가면서 산다.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294호 석송령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땅을 지니고 살고 있는 나무 석송령은 그 자태만으로도 부자스럽다.

 

나무의 생육상태도 좋은 편이다. 그만큼 신경을 쓰고 있다는 소리이다. 가슴 높이의 줄기둘레가 자그마치 4.2m나 된다, 수령 600년에 나무의 높이는 10m정도다. 그러나 이 정도로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 생육면에서는 이 나무가 부러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 나무는 자신의 앞으로 등기가 되어있는 땅이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땅이 있어 안전하다

 

천연기념물이 자신의 땅이 아니라고 해서, 그 땅에서 나가달라고 할 사람은 없다. 천연기념물은 어디에 있던지 당연히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송령은 다르다. 자신의 앞으로 등기가 난 땅에 살고 있으니, 아무도 이유를 달수가 없다.

 

같은 천연기념물이지만 전주 삼천동의 곰솔은, 수령이 약 250살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14m, 가슴높이의 둘레 3.92m의 크기다. 인동 장씨의 묘역을 표시하기 위해 심어졌다고 전해지는 나무다. 그러나 2001년도 독극물 주입에 의해 ⅔ 가량의 가지가 죽어 외과수술을 받았다. 잘라진 가지가 보기에도 안타깝다.

 

 

 

남의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천연기념물들은 이런 피해를 입기도 한다. 그래서 석송령이 더 부러운 것이다. 자신의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보존이 된다. 옆으로 뻗은 가지는 쇠기둥과 돌기둥으로 받쳐놓았다. 보기만 해도 그 위용에 압도당할 만하다. 석송령이 이렇게 자신의 땅을 갖게 된 것은 이유가 있다.

 

마을의 신목인 석송령

 

석송령은 마을의 신목(神木)이다. 마을 사람들이 지극하게 위하는 나무이기 때문에 아무도 건드리지를 않는다. 우리의 습속 중에 하나인 신목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전한다. ‘신목을 건드렸다가 그 해를 넘기지 못한다.’거나 ‘마을에서 위하는 나무를 잘라다가 땔감으로 썼는데, 그 집안에 우환이 그치지를 않았다’라는 이야기는 늘 들어 본 이야기다.

 

 

 

이런 설화 때문이 아니라고 해도 석송령은 끔찍이 위함을 받는 나무다. 석송령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도 이유가 있다. 약 600여 년 전 풍기지방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석관천을 따라 떠내려 오던 것을 지나던 과객이 건져 이곳에 심었다는 것이다.

 

그 후 1930년 경 이 마을에 사는 이수목이란 사람이 영험한 나무라고 하여 ‘석송령(石松靈)’이란 이름을 붙이고,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 6,600㎡(1,996.5평)를 석송령 앞으로 등기를 내주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석송령은 ‘부자나무’로 불리고 있단다.

 

 

 

언제 찾아보던지 푸름을 잊지 않고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석송령. 소나무의 수령이 600년 정도가 한계라고 하지만, 석송령의 모습을 보면 그런 수령의 한계를 넘어설 것 같다. 곁에는 석송령의 2세가 자라나고 있으니, 부자나무는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이다. 볼 때마다 느끼는 위엄이 있어 기분 좋은 나무, 석송령은 그렇게 당당하게 우리를 맞이한다.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갈까? 나는 늘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질문을 해왔다. 그러다가 한낮의 더위를 피해 찾아간 작은 정자에서, 흐르는 땀을 씻어주는 바람을 만났다. 그래서 난 정자를 '바람이 머무는 곳'이라고 표현을 한다. 바람은 정자 곁을 흐르는 물을 따라 불어온다.

 

그 물길을 따라오면서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 주고, 그 바람은 정자를 치받쳐 오른다. 그래서 정자가 더 시원한 것은 아니었을까? 전국을 답사하면서 만난 아름다운 정자들. 그 정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암벽 위에 걸터앉은 정자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350에 소재한 초간정. 내를 끼고 선 암벽 위에 지어진 초간정은 멀리서도 사람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지녔다. 행여 누가 뒷덜미라도 낚아챌 것 같아 한달음에 달려간다. 정자는 아름다운 경관을 필요로 한다. 어디를 가서 보거나 정자들은 주변 경관이 빼어난 곳을 택해 자리를 잡고 있다.

 

정자는 민초들과는 거리가 멀다. 대개 반가의 사람들에 의해서 지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정자를 바라다보는 내 시각은 다르다. 그것을 지은 사람들이 누군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빼어난 경관을 택했느냐는 물음을 항상 하고는 한다. 그래서 이렇게 덥거나 춥거나 쉴 수 없는 여정에 만나는 정자가, 더 반가운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작은 정자의 출입문, 주인의 심성을 닮아

 

정자로 출입하는 문이 작고 좁다. 이 정자를 지은 권문해(1534 ~ 1591) 선생의 마음을 읽어낸다. 작은 문으로 겸손하게 들어오라는 뜻일 것이다. 도포자락을 휘두르며 거만을 떨지 말고, 두 손 공손히 모으고 다소곳하게 문을 통과하라는 뜻일 것이다.

 

 

 

양반가의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거들먹거린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에 금력이 있으면, 겸손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초간 권문해 선생은 그런 것을 싫어했는지. 작은 문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 심신을 수양하기 위해 초간정을 지었다. 1582년인 조선 선조 15년에 처음 지어진 이 초간정은 그런 마음을 담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화려하지 않은 정자다. 정자의 뒷편과 우측은 절벽이다. 그 밑으로 맑은 물이 감돌아 흐른다. 마루 벽 한편에 문을 내어 난간으로 나갈 수 있게 하였다. 난간 밑에는 맑은 물이 고여 작은 소를 이루고 있다. 맑고 찬 물애 발을 담구면, 오장육부가 다 맑아질 것만 같다.

 

 

 

빈 낚싯대 늘이고 바람을 낚아

 

위를 보니 석조헌(夕釣軒)이란 현판에 걸려있다. 저녁에 낙시를 하는 마루란다. 이 현판을 보고 무릎을 친다. 정자 주인의 마음이 거기있기 때문이다. 아마 초간 권문해 선생은 실은 물고기를 잡을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낚시를 드리우고, 눈을 감고 세상 시름을 끊는 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해가 설핏한 저녁에 낚시를 한 것이 아닐까?

 

 

정자를 둘러보고 주인인 초간 권문해 선생의 마음을 느낀다. 참 소탈하다. 참 그 마음에 자연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정자문을 나서 새로 놓은 철다리를 건너려는데, 초간정을 감돌아 흐르는 내에서, 천렵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참으로 한가한 정경이다. 사람이 사는 멋이 바로 저런 것은 아니었을까?

 

바람이 감돌아 쉬어가는 정자. 그 정자에는 사연도 많겠지만, 그 보다는 그 주인의 심성을 엿볼 수 있어 더욱 좋다. 그래서 바람 길을 따라나서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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