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평소 존경하는 스님과 동석을 한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 중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요즈음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요즘 아이들을 정말 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자, 스님께서는 아이들을 탓하지 말라는 부탁을 하셨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그저 그러려니 하고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잘 키우는 것일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모인 사람들 중에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결국은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정답인 듯하다. 단순히 모인 자리가 법문을 듣는 자리로 변해버렸지만. 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지금 부모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것만 같다. 그 자리에서 나온 아이들을 잘 키우는 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부모를 따라 운조루에 들린 아이들.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꼭 필요하다.
 

1. 내 아이를 믿어라.

내 아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가 소중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부모들의 행동을 보면, 그 아이가 소중하다는 것이 허구임을 볼 수 있다. 내 아이가 소중하다면 내 아이를 믿어라. 부모도 믿지 못하는 아이를 누가 믿어줄 것인가? “난 너를 믿는다. 네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난 너를 믿는다. 네가 그런 행동을 했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라는 믿음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부모가 그런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아이들이 조심을 하게 되고 그 믿음대로 행동을 한다는 것. 결국 부모의 믿음 속에서 자란 아이는 자신을 갖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2. 잘못을 하였으면 깨우쳐 주어라.

아이들은 늘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누구나 실수를 하지 않고 자라는 아이들은 없다. 만일 아이가 잘못을 했다고 하면, 혼을 내기 전에 왜 그것이 잘못인가를 깨우쳐 주어야만 한다. 무조건 적인 혼냄은 아이에게 반감만 일으킬 뿐이다. 아이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그리고 왜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가를 알려주지도 않고, 혼을 먼저 낸다는 것은 부모로써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행동이다.

3. ‘네가 최고’라는 말은 절대 금지하라.

내 아이라고 해서 무조건 네가 최고라는 말은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세상에 최고란 있을 수가 없다. 최고란 자리는 항상 불안하고, 그 자리는 인간이 있어서는 안 될 자리이기 때문이다. 최고라고 추켜세우기 보다는 ‘너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라는 말로 아이에게 용기를 주어라. 최고는 떨어질 수가 있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등급이 아니기 때문이다.

4. 예의를 모르는 아이는 사회성이 없다.

기본적인 예의범절은 부모에게서 나온다. 부모가 예의를 차릴 줄 모른다면, 그 아이들은 절대로 예의를 알 수가 없다. 예의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집안에서 부모들이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모들의 행동을 그대로 본받게 된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예의를 모르는 아이들은 사회성이 없다. 예의를 차릴 줄 모르는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 곳이 바로 사회이다. 예의를 알지 못한다면 사회에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를 않는다. 집안에서 부모들의 예의범절을 그대로 따라하는 아이들. 그 아이가 잘못 되는 것은 결국 부모의 책임이다. 모든 것을 사회가 잘못 되었다고 핑계를 대지마라.

5. 함께 여행을 떠나라.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대단히 중요하다. 아이들은 평소에 집안에서는 하지 못하는 말들도, 여행길에서는 다 할 수 있다. 그런 여행에서 마음을 열수가 있다면,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아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아이들은 함께 길을 걸으면서 동등한 동반자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고, 그 인지는 곧 믿음이 된다. 하기에 아이들과의 여행은 중요하다.

이렇게 아이들을 키우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고, 그렇게 하고 싶다. 하지만 여건이 되질 않는다.”라고. 하지만 세상에 나에게서 태어난 아이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여건은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만드는 것이다. 내 아이를 위해 내가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 아이 소중한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부모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다음 뷰에 글을 송고하면서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내가 흡사 추천에 목말라 하는 저질 블로거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일 이런 일이 일어나다시피 비일비재하니, 이젠 글조차 쓰기가 싫어진다. 내가 언제 추천 눌러달라고 부탁을 한 적도 없다. 추천에 급급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저 답사를 다니면서 좋은 우리 문화재가 있으면 그것을 소개하고, 단 몇 사람의 이웃블로거나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이 들어와 읽어주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을 한다. 댓글을 달아주는 분들이 있어 힘이 되는 것도, 글을 다 읽지는 않는다고 해도 사진 한 장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조회수보다 많은 추천수. 사양합니다

조회 수보다 높은 추천 수, 이건 도대체 머람?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보면 매번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한 마디로 글을 열어보지도 않고, 다음 뷰에 등록된 글에 무작위로 추천을 눌렀다는 이야기다. 그런 것이 나를 슬프게 만든다. 답사를 다니면서 정말 소중한 우리 문화재 하나하나를 조사하고, 그것을 들고 와 정리를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으로 그치는 것도 아니다. 정리가 된 것 중에서 사진을 고르고, 글을 쓰다가 보면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런 글을 읽지도 않고 추천만 누르고 가버린 사람들. 글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추천을 눌러대는 것일까? 물론 나도 그와 비슷한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아침마다 많은 글에 댓글을 달고 추천을 누르다가 보면, 미쳐 다 읽어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글은 열어보고 추천을 누른다. 대충이라도 훑어보고 나서 추천을 하기 때문에 100여명에게 댓글을 달고 추천을 하다가 보면, 적어도 두 시간 이상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댓글을 달지 못한다고 해도 글 제목이라도 보고, 다만 몇 줄이라도 읽어보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비단 이런 현상이 나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베스트를 달지 못한 많은 글들 중에는 이런 현상이 수도 없이 많다. 아니 베스트를 갓 단 글 중에도 이런 현상이 보인다. 한 마디로 추천을 위한 추천이라는 것이다. 이런 추천 정말 이젠 반갑지가 않다. 추천에 목을 매는 사람이 아니다. 글을 다 보지 못하면 제목이나 사진만이라도 보아주면 고맙겠다.

힘들게 답사를 해야 하고 그것을 정리해 올리는 글이다. 내 글만이 아니라 블로거 누구나 다 그렇게 힘들게 글을 적는다. 그런 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분 좋은 추천은, 추천수보다 조회 수가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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