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에 자리한 소석고택은 중요민속문화재 제132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부농의 상징으로 멋을 자랑하는 소석고택은, 기와에 새겨진 명문을 확인한 결과 조선조 고종 22년인 1885년에 지어졌다. 소석고택의 건물은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안채에 수직축을 맞추어 사랑채를 놓았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곳간채를 배정해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었다. 행랑채와 광채는 1920년경에 없어졌다고 한다.

 

안채의 뒤편으로는 넓은 과수원이 자리하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의 사이에는 너른 안마당이 있어, 전체적으로 집안이 시원한 느낌을 준다. 소석고택을 찾은 날은 쌀쌀한 날씨였다. 옷깃을 여미고 찾아간 소석고택은, 초강천을 옆에 두고 너른 평지에 자리한다. 주변에는 초강초등학교가 있어 찾기에도 수월하다.

 

 

안채 다락방을 아궁이 위에 둔 까닭은?

 

소석고택의 안채는 'ㅡ' 자형으로 되어있다. 안채는 경기도 이남의 남부가옥에서 보이는 평면구성으로 안방, 윗방, 2칸 대청, 건넌방의 차례로 배열되었다. 그런데 이 안채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2칸 대청을 지난 건넌방의 다락이다. 이 다락은 밑에 불을 때는 아궁이를 두고 있다. 아궁이 위에 다락을 만들었다. 다락은 큰 창을 내었다.

 

이렇게 아궁이 위에 다락을 내는 까닭은 바로 습기를 제거하는 목적이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 그 온기가 올라 다락을 건조시키는 것이다. 창이 큰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안채는 대개 부녀자들이 기거를 하는 곳으로, 이 아궁이 위의 다락에 옷가지 등을 보관하면 늘 뽀송뽀송하다는 것.

 

 

 

 

 

집 하나를 지으면서도 세심한 곳까지 배려를 한 것이 바로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이자 실효성이다. 이러한 것을 점차 생활이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버리고 있는 우리들의 주거문화가 참담하기까지 하다.

 

H자형의 사랑채의 멋스러움

 

우리 고택 중 와가의 멋은 바로 지붕이다. 버선코로 비유되는 처마 끝은, 그야말로 멋스러움이다. 내림마루와 추녀마루가 위로 치켜 올려진 것은 무한한 발전을 이끌어 낸다. 모든 일에 대한 희망에 견주기도 하는 이 처마 끝의 멋이야말로 한옥의 특징이다. 소석고택의 사랑채는 H자 형으로 구성이 되었다.

 

 

 

 

 

남편에는 돌출된 누마루를 놓았다. 삼면을 기둥만 세워 시원하게 조망을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누마루에 앉아 시를 짓기도 하고, 벗들과 어울려 술 한 잔에 시름을 덜어내기도 했을 것이다. 간단한 난간으로만 치장을 한 누마루는, 그대로 선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누마루와 반대편에 있는 서편의 방 옆에는 커다란 문을 달았다. 이 문의 용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여름철에는 문을 열어 초강천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고, 겨울이면 문을 닫아 찬바람을 막아내는 구실을 했다. 기단으로 쌓은 돌 하나하나에서 소석고택이 부농의 상징임을 알 수 있도록 꾸몄다. 어느 곳 하나 빠짐이 없는 소석고택의 사랑채는 한옥의 멋을 그대로 살린 아름다움이다.

 

 

 

 

 

곳간은 둘, 지붕은 하나의 색다른 건축

 

소석고택에서 돋보이는 또 하나의 건축물은 바로 곳간채다. 안채와 사랑채가 와가로 지어진데 비해, 곳간채는 초가로 꾸며졌다. 그것이 소석고택의 전체적인 조화를 이끌어낸다. 그런데 이 곳간채는 지붕이 하나인데 곳간부분은 둘로 나뉘어져 있다. 무슨 이유에서 이렇게 했을까?

 

서향으로 지어진 소석고택의 곳간채는 뒤주처럼 가로로 널판을 끼워 맞추고 있다. 이 곳간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규모이다. 각 칸마다 세로로 중인방을 넣고, 널판을 가로로 끼워 벽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20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곳간채는 바닥은 널마루로 깔고 천정 또한 널판자로 마감을 하였다. 이렇게 분리를 해 놓은 것은 한 곳은 곡간으로, 한 곳은 뒤주로 사용한 것은 아닌가 한다.

 

 

 

 

 

안채와 사랑채를 가르는 돌담과 측간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건물만큼 돌담을 쌓았다. 그것은 부녀자들이 기거하는 안채와 남정네들이 드나드는 사랑채를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서편 'ㄱ' 자로 꺾인 부분에 측간을 지었다. 측간은 초가로 지어졌으며 널판자로 벽을 만들었다. 1칸으로 지어진 이 측간을 사랑채 뒤에 두고, 담장을 막은 것도 소석고택이 그저 건축물을 놓은 것이 아니라, 세세한 것까지도 신경을 썼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뒤쪽에 측간을 내어 냄새를 방비하기도 했지만, 담을 두어 자칫 불편한 모습과 소리를 안채에서 듣지 못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우리 고택을 둘러보면 하나하나가 철학이다. 그리고 자연과 동화를 하면서 그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 그러한 자연과 동화되는 심성이 아름다운 집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집을 짓는 마음이 그립다.

속이 비어버린 서낭나무 아래 부부가 나란히 섰다. 합장을 하고 난 뒤 남편은 무릎을 꿇고 부인은 잔에 술을 따른다. 그리고 맨 땅에서 삼배를 한다. 서낭할머니에게 드리는 마지막 예를 올리는 것이다.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335번지에는 화가 부부가 산다. 남편도 부인도 모두 화가이다. 하지만 생활을 하기 위해 남편이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장작가마에 구워내는 도자기의 색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품위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도자기를 구워 팔아도 생활이 되지 않는다. 주변에서는 생활자기를 만들라고 조언을 해보지만, 굳건히 자신의 길을 지켜간다.

 

단종이 울며 지나던 길 가에 선 서낭나무

 

이 부부가 사는 집은 상교리 중에서는 맨 끝 집이다. 이 집을 해우재라고 부른다. 해우재는 남편인 김원주(54)의 호이다. 아래채는 도자기 전시관과 손님맞이 방으로 사용을 한다. 20여 년 전 부부는 어린아이 하나를 데리고 이곳에 정착을 했다. 그리고 이곳에 터전을 내리면서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삶이 이 부부가 우리 것들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갖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집에서 흙길을 따라 뒤편으로 돌아가면 여주 고달사지로 나가는 길이다.

 

그 길가 구부러진 곳에 6.25 한국동란 때 폭탄이 떨어져 한 편이 잘려나간 고목이 한 그루 서 있다. 속은 텅 비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늘 잎을 달고 있다. 이 나무가 바로 서낭할머니로 불리는 나무이다. 나무의 밑동으로 보아 수령이 수백 년은 족히 되었을 것 같다. 이 나무가 서 있는 길은, 예전 단종임금이 노산군으로 강등이 되어 울면서 영월로 향하던 소로 길이라고 한다.

 

 

이포에서 배를 내린 단종임금은 지금 여주시 대신면 상구리에 소재한 블로헤런 CC 안에 자리한 어수정에서 목을 축인 후, 북내면 소재 고달사지 곁을 지나 이 좁고 낮은 고개를 넘어 서원리로 행했다는 것이다. 그 때도 이 서낭나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고속도로 공사로 나무를 자른다고

 

이곳이 제2영동고속도로 부지로 들어갔단다. 13일 이른 시간부터 굉음을 내는 중장비들이 일대를 시끄럽게 만든다. 전날 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들을 하느라 늦잠이 들었다. 하지만 이른 시간부터 중장비 소음이 잠을 깨운다.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집이 울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밖으로 나가보니 7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주변에 중장비들이 여기저기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서낭할머니 나무는 상교리 주민들이 위하는 나무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김원주 부부가 사는 집에 사시던 할머니 한 분이 이 서낭나무를 지극히 위했다고. 하지만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반이 잘려나간 후 마을의 섬김이 끊어진 듯하다. 서낭나무 뒤편에는 옛날 제를 올리던 제단 터의 흔적이 보인다.

 

우여~ 서낭할머니 이제 떠나신다.

 

이제 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이 서낭할머니 나무가 잘려나간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제를 올렸다고 하지만, 이 부부의 마음은 아직도 편치 않은 듯하다. 그 서낭할머니 나무에 대해 늘 마음속으로 정성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은 후 빗방울이 떨어진다. 막걸리 한 통과 북어 한 마리를 들고 서낭나무를 찾아갔다.

 

 

마침 이 집에 모임 때문에 들린 스님 한 분이, 서낭할머니께 마지막 축원을 해준다고 자청을 한다. 막걸리를 따르고 삼배를 한 후, 스님의 독경이 시작되었다. 서낭할머니를 마음속으로 떠나보내는 절차이다. 폭탄을 맞고도 살아남은 서낭할머니는 고속도로로 인해 댕강 잘리게 되었다.

 

스님의 독경이 끝 난 후 막걸리 잔을 손에 든 김원주의 피 토하는 소리가 즘골을 울린다. 통곡의 소리이다. 일제 때는 문화말살 정책으로, 그리고 그 뒤에는 우상이라고 떠들어 대는 광신도들에 의해, 그리고 새마을운동 때 무수히 잘려나간 서낭나무들이다. 이제 고속도로 공사 때문에 잘려나갈 상교리 즘골 서낭할머니. 마지막으로 막걸리를 늙은 나뭇가지 위로 냅다 쏟아낸다.

 

서낭 할머니 편히 가시오. 아무쪼록 무지한 것들이 할머니의 몸을 잘라도, 사고나 없게 해주시오.”

  1. 해바라기 2014.04.15 06:29

    서낭나무는 함께한 세월만큼 그래도 마지막 예우는 받고 갔군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겁니다. 좋은 날 되세요.^^

  2. 워크뷰 2014.04.15 06:48 신고

    전쟁도 피해갔는데 고속도로는 피하지 못하는군요!

  3. 참교육 2014.04.15 06:49 신고

    서민들과 애환을 함께 해온 나무네요.
    동네주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노인과 늙은 서낭당 나무.... 참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4. The 노라 2014.04.15 07:13 신고

    이런 소식 들을면 참 짠해요. 고속도로의 경우는 공공시설이고 공공의 편의를 위해 필요하지만, 전쟁에서 살아남은 서낭할머니가 가셔야 한다니...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ㅠㅠ

  5. 행복끼니 2014.04.15 07:18

    에구~~ 옮기면 좋을텐데요.. 쩝..

  6. Boramirang 2014.04.15 07:38 신고

    아 저 나무를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원주 아우님의 모습을 보니 짠해 옵니다.
    상교리의 전설이 통째로 뜯겨나가는 듯한 아픔입니다. ㅜ

  7. 2014.04.15 07:43

    비밀댓글입니다

  8. pennpenn 2014.04.15 08:03 신고

    허~
    사람보다 좋은 대접을 받은 나무네요~

  9. 굄돌* 2014.04.15 08:16 신고

    그깟 나무가 뭐라고...
    이렇게 말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마을 주민들과 고락을 함께 해온 나무인지라
    그렇게 떠나보내기가 아쉽고 안타깝겠어요.

  10. 朱雀 2014.04.15 08:41 신고

    참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네요...ㅠㅠ

  11. 에스델 ♥ 2014.04.15 09:25 신고

    고속도로 공사때문에 나무가 잘리는군요ㅠㅠ
    자르지 말고, 다른 곳에 옮겨져 심겨졌으면 좋겠습니다.

  12. +요롱이+ 2014.04.15 09:35 신고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로군요..
    소식 접하구 갑니다.

  13. 다소미아 2014.04.15 09:46 신고

    정말 안타까운 일이네요.. 이목을 할 수는 없나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지나간 길이라하니, 더욱 감회가 새로운 곳이네요..
    숙부인 수양대군에 대한 회한으로 목을 축이지 않았을까요??
    오늘도 들러서,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수원시 팔달구 영동 43-2 번지에 소재한 영동 거북산당. 이 도당은 18세기 말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그 역사가 200여 년이 지난 것으로 추정한다. 영동 거북산당은 화성을 축성을 하기 이전부터 이미 그곳에 서 있었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이 거북산당이 자리한 앞쪽으로는 낮으막한 ‘거북산’이라는 산이 있어, 그 명칭을 거북산당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거북산당은 처음에는 현 구천동의 마을 제당으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던 곳이었을 것으로 보이나, 후에는 영동시장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도당으로 기능이 바뀌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거북산당은 주변 상권과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화성 축성을 위해 팔도에서 모여 든 수많은 노역자들로 인해 장시가 개설이 되고 난 후. 그때부터 팔달문 앞에 형성된 장시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재인청의 마지막 화랭이 이용우 일가가 지켜 온 거북산당

 

영동 거북산당은 옛날에는 세습무인 화랭이에 의해 굿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재인청 도대방을 역임했던 이종하의 삼남인 이용우 선생이, 생존 시 거북산당 도당굿을 주관하였다. 이용우 선생 일가는 현 오산시 부산동(당시 수원 오산리)에 거주하였으며, 경기도 지역의 많은 도당굿을 주관해 오기도 했다.

 

현재 정면 두 칸, 측면 한 칸의 기와로 조성된 겨북산당은 수원시 향토유적 제2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거북산당은 과거에는 짚으로 이엉을 엮어 만든 ‘터주가리당’이었다고 한다. 1935년(乙亥年)에는 터주가리 당 앞에 작은 연못이 있었으며, 당 옆에는 3층으로 된 탑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 거북산당 주변에는 기와집과 판잣집들이 있었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이곳이 팔달문 앞 장시의 외곽에 있던 당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터주가리 당을 당시 인계동에 거주하던 이씨 만신이 관청의 도움을 받고, 개인이 사비를 들여서 거북산당을 축조하고 그 안에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 그리고 대왕님의 탱화를 모셨다고 한다.

 

그 탱화는 현재 거북산당 안에 모셔진 그림과 동일한 형태이다. 그 뒤 1994년 10월 24일(음력 9월 10일) 수원시청의 지원을 받아 당을 수리하고 단청을 새로 입혀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당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당 앞에 있었다는 연못이 메어지고, 그 자리에는 앞 건물에서 가건물을 내 짓는 바람에 옛 형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당의 형태가 변한 거북산당은 세습무인 화랭이들이 주관하던 것을, 이용우 선생의 제자인 강신무로 전 경기도당굿 기, 예능보유자였던 고 오수복으로 전해졌다. 보유자 오수복의 별세 이후 지금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당굿의 회원들이 도당굿을 맡아서 하고 있다.

 

 

영동시장 내에 거북산당이 건립된 이유는?

 

영동 시장 내에 거북산당이 축조된 이유를 보면 화성의 축성과 무관하지 않다. 화성 축성을 위해 전국에서 많은 노역자들이 몰려들었고 자연히 팔달문밖에 장시가 서게 되면서, 상인들 을 주축으로 상가의 번영과 안녕을 위한 도당을 필요로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도 시장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당고사를 지내지 않으면 시장에 불이 잘 나기 때문에, 예전부터 이 시장에서 터를 잡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세상없어도 당제는 올려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의 명칭이 거북산당으로 불리는 것은 원래 이곳에 거북이 모양의 돌이 있었다고도 하고, 또 인근의 구천동과 가까우며 주위에 물이 많은 곳이라서 풍수적으로 불을 제압 할 수 있는 힘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근처에 ‘거북산’이라고 부르는 작은 언덕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산 이름을 따 거북산당이라고 부른 것으로 보인다.

 

 

도당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신 당

 

경기도의 도당은 당집을 마련하고 그 안에 도당신을 섬기는데, 신위는 위패를 모시거나 무신도를 모셔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동 거북산당 안에는 도당할아버지, 도당할머니, 대왕님(염라대왕)을 모시고, 매년 음력 10월 7일에 영동시장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서 지내오던 것이다.

 

이 도당굿은 시장의 번영과 상인의 대동단결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공동체적인 삶의 필요로 창출된 굿이다. 그러나 1990년 초에 이르러서는 영동시장 번영회에서 별도로 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고, 현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당굿 보존회원들에 의해서 굿이 진행되지만 옛 형태는 찾아보기 힘들다.

  1. 온누리 온누리49 2013.07.22 04:09 신고

    이제 취재를 마치고 돌아왔네요
    새벽 4시입니다^^
    잠 좀 잘께요^^

  2. 펨께 2013.07.22 07:38

    옛 형태를 못 찾는다니 안타깝군요.
    지금 네덜란드는 밤 12시 40분입니다.
    푹 쉬세요.

  3. 해바라기 2013.07.22 07:45

    거북산당이 뭐하는 곳인지 알았네요.
    좋은 한주 되세요.^^

  4. 예또보 2013.07.22 08:12 신고

    아 그렇군요
    덕분에 잘보고갑니다

  5. landbank 2013.07.22 08:17 신고

    아 정말 거북산당 첨보는곳 입니다
    잘보고갑니다

  6. Boramirang 2013.07.22 08:45 신고

    이런 풍경이나 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온누리님 블로그 뿐이라는 것도 기막힙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군요.
    오가시는 길 늘 무탈하시를...()

  7. 행복끼니 2013.07.22 09:19

    거북산당이야기~~
    잘보고갑니다~
    행복한 일주일 시작하세요~^^

  8. 가을사나이 2013.07.22 09:50 신고

    영동시장에 거북산당이 있었군요.
    좋은 구경하고갑니다

  9. 참교육 2013.07.22 11:19 신고

    이런 곳도 문화재로 지정해야 합니다.

  10. The 노라 2013.07.23 03:45 신고

    영동시장이 화성축성 때까지 올라가니 꽤 역사가 있는 곳이네요. 저는 종교를 떠나서 현대적인 가치와 역행하지 않는 전통적인 삶의 방식들은 잘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상들이 살았던 그리고 믿었던 삶의 방식이였기에...
    지금 꿈나라에 계시겠네요. 푹 주무시고 내일 아침 즐거운 하루 시작하세요. ^^

영동 아트포라 큐레이터 홍재주씨는 재주꾼

 

큐레이터(curator)란 창고지기를 말한다. 18세기 말에 탄생한 유럽의 공공미술관 큐레이터란, 각 지역에서 진귀한 유물이나 작품들을 창고와 모아 그것을 관리하고 보관하는 창고관리자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공공의 목적을 갖고 운영하는 박물관 등에 근무를 하는 사람들은 학예연구사라고 하고, 개인의 미술전시관(갤러리) 등에서 전시기획 등을 맡아하는 사람들을 일러 큐레이터라고 한다.

 

 

큐레이터들이 하는 일은 상당히 다양하다. 소장품 정리에서부터 목록작성, 전시계약서작성은 물론, 작가미팅과 섭외. 작품받기, 카탈로그 가제본 및 편집, 홍보수단으로 뿌리는 전단지의 작성, 고객 상대 카탈로그 발송, 보도자료 배포와 전시작품 디스플레이, 현수막 등 제작, 오프닝과 전시, 판매와 평가보고서 작성 등, 1인이 소화하기에는 많은 물량이다.

 

이름때문에 재주가 많은가?

 

아마도 이름에서 이미 그녀가 얼마나 많은 재능을 갖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홍재주(, 54) 작가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학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좀 더 나은 큐레이터가 되고자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이 길을 들어섰으면 남들보다 열심을 내야죠. 그래서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미술관박물관학과에 입학을 했어요. 뒤늦은 나이에 하는 공부이긴 하지만 재미있어요.”

 

 

현재 그녀는 탄탄아트 미술교재출판사 연구원이면서, 창작연구소 B-UM (비움)의 연구원이다. 또한 문화예술 복합 공간인 영동 아트포라(Art Fora)(수원 영동시장 2층에 소재한 문화복합 공간)의 큐레이터 일을 맡고 있다. 항상 바쁜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늘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많은 생각을 한단다.

 

3년 전부터 기획에 몰두 해

 

초등학생 때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재미도 있고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많은 일을 했죠. 2011년부터 큐레이터 일을 맡아하고 있어요. 그동안 2011년 국제레지던시 프로그램 골목길GMD-행궁동을 걷다코디네이터를 비롯해, 2011년 수원화성문화제 특별기획전 그림책 행궁나들이총괄기획도 하고요

 

 

홍재주씨는 지난해에는 <비영리 전시공간, 창작스튜디오 컨텐츠 부스전시 ‘AR FESTIVAL’ 참가와, 49회 수원화성문화제 특별기획전인 목판화-그 영원한 새김의 미학총괄기획, ‘수원화성&수원 스토리텔링 공모전순회전을 기획했다. 그리고 금년 들어 영동 아트포라 큐레이터 일을 맡아본다고 한다.

 

큐레이터는 또 하나의 창작을 하는 작가

 

작가는 작품을 만들죠. 그런데 큐레이터는 그 작품을 갖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접근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작가의 작품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죠. 그렇게 본다면 큐레이터는 또 하나의 공간을 이용한 거대한 작품을 만드는 작가라고 보아야죠.”

 

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에 큐레이터를 하는데도 남다른 감을 갖고 있을 것 같은 홍재주씨. 아마도 자신이 그린 그림도 중요하지만, 작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전시를 하고, 그것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려주는가를 고민하는 직업인 큐레이터도 적성에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다 보니,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이다.

 

저는 사랑방 같은 작은 갤러리가 하나 있었으면 해요. 거기서 전시도 하고, 작은 음악회 같은 음악회도 열 수 있는 공간요. 물론 그런 것을 갖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해요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있고 또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갖고 공간 배치를 하는 큐레이터이기 때문에, 그런 공간이 필요한 듯하다. 처음 만났는데도 마치 오래된 지기처럼 느껴지는 큐레이터 홍재주씨. 아마도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 친근감을 주는 것은 아닐까? 올 한 해 그녀의 활동이 기다려진다.

  1. Hansik's Drink 2013.04.11 11:50 신고

    좋은글 잘 보고 간답니다~ ^^
    행복하게 하루를 보내세요~

  2. 크리스탈 2013.04.11 12:01

    컴이 오류가 생겨서 선생님의 댓글이 날라 갔습니다 ,, ㅜㅜ..
    오늘은 뷰 버튼이 약간 .. 맛이 갔네요 ~!~
    강건한 한주의 여정 되시길 빌면서 .. 크리스탈 다녀갑니다 ^^
    기쁨되시는 한날 되시길요 ...

  3. 날으는 캡틴 2013.04.11 12:20 신고

    큐레이터가 창고지기란 뜻이었군요..
    아이가 그림에 관심이 있어서 그림에 관련된 직업에 저두 관심이 가네요

  4. 대한모황효순 2013.04.11 14:21

    오~~아름다다.ㅎㅎ
    작가님 완전 미인이시당.

  5. 에딘's 2013.04.11 14:50 신고

    포스팅 잘보고 가요 ^^ 오늘도 좋은하루보내세요 ^^ 히히 ~

  6. 테리우스원 2013.04.11 15:06

    아주 잘 어울리는 군요
    즐거우시고 행복하세요!

  7. 정암 2013.04.11 16:22 신고

    이름과 얼굴도 매우 낯익은 분이네요^^

  8. 에스델 ♥ 2013.04.11 16:37 신고

    작품이 참 멋집니다.^^
    즐거운 오후시간 보내세요!

  9. +요롱이+ 2013.04.11 21:08 신고

    좋은 글 너무 잘 보 고 갑니다.
    평안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10. Zoom-in 2013.04.12 00:17 신고

    잘 보고 갑니다.
    오늘 하루 행복하셨죠.^^

  11. 하늘마법사 2013.04.12 01:21 신고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즐거운 화요일 되세요~

충북 영동군 양강면 괴목리에 소재한 중요민속문화재 제142호인 김선조 가옥. 아마도 이 집을 돌아보면 옛 선인들의 집을 짓는 방법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전형적인 양반가의 구조를 갖춘 이 가옥은, 안채는 17세기에 안사랑채는 그보다 조금 늦은 17세기 말쯤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곳간채와 대문채는 20세기에 들어서 지었다고 한다.

김선조 가옥은 전국을 다니면서 만날 수 있는 고택 중 하나이다. 그저 평범한 집 같지만, 찬찬히 돌아보면 뛰어난 건축기법이 보인다. 물론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이 될 때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 이겠지만, 그냥 돌아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자연을 배경을 한 안채

김선조 가옥은 ‘배산(背山)’의 특징을 갖는다. 집 뒤에 있는 낮은 구릉은 여름철이면 녹음으로 뒤덮히고, 겨울이 되면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자연을 이용해 집을 지은 건축의 교과서 같은 집이다. 집 뒤편으로는 고목들이 서 있는 구릉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흡사 산속에 지은 집을 연상케 한다.

예전에는 안채 앞에 사랑채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랑채가 없어지고 기단만 남아있다. 대문채에서 안채까지 휑하게 빈 공간은, 사랑채가 없어 외부공간이 전체적인 균형을 잃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허전함을 안채 뒤에 있는 녹음이 진 구릉이 막아주고 있다.



김선조 가옥의 안채는 ㄷ자형의 구성으로 건조되었다. 부엌, 안방, 대청, 윗방 등이 일렬로 배열이 되어있다. 안채의 앞쪽에만 마루를 놓은 것이 아니고, 뒤편에도 툇마루를 길게 늘였다. 이 뒷마루는 사람이 편히 앉아 구릉의 녹음을 바라다보기도 좋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용도로 사용이 된다. 멀리 돌지 않고 가까이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안사랑채가 되돌아 앉은 사연

김선조 가옥을 돌아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건물이 한 동 있다. 바로 안사랑채이다. 안사랑채는 부엌, 안방, 윗방, 대청을 일렬로 배열한 전형적인 별당 형식이다. 안채 앞에 있던 사랑채는 없어졌다는데, 이 안사랑채는 대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있다. 그런데 안사랑채의 전면이 아니고 돌아 앉아있다. 왜 그렇게 했을까?

안사랑채는 여자들의 공간이다. 사대부가의 집들은 사랑채에서 바깥주인이 기거를 하면서 외부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로 이용을 한다. 그리고 안채는 대개 사랑채에서 담을 쌓고 그 안에 일각문을 두어 바깥주인이 출입을 한다. 그리고 그 안채 후원에 별당채가 두어, 집안의 과년한 딸들이 기거를 한다.


그런데 김선조 가옥에는 별당채가 없는 대신, 안사랑채를 대문 안에 마련을 했다. 그러다보면 외부인들이 집안을 들어섰을 때, 안사랑채를 사용하는 여자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집을 돌려놓은 것이다. 사람들은 여자들이 기거를 하는 방이면 괜히 눈길을 주게 된다. 그러한 외부인의 눈길을 피하기 위한 방법인 듯하다. 생각만 해도 재미있는 집의 구조다.

문은 있는데 벽은 왜 없지?

이 안사랑채를 돌아보면 참으로 재미있다. 대문을 들어서 보이는 안사랑채의 끝에는 불을 떼는 아궁이가 있다. 그런데 이 아궁이는 부엌의 용도는 아니고, 불을 지피고 물을 데우게 되어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이 아궁이가 있는 불을 떼는 곳에 안채의 방향으로는 담도 없는데, 마당 쪽으로는 문을 내달았다.



불을 때는 곳인데 구태여 문을 해 달아야할 필요가 있었을까? 벽도 없이 노출이 되어있는 곳인데 문을 단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우리는 집 주인의 세심한 배려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 바로 안사랑채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부녀자라는 점이다. 집의 안식구뿐만 아니라, 집에서 일을 하는 여자들까지도 가려주는 마음. 이 아궁이가 그런 것을 알려준다. 집안을 드나드는 외부의 남정네들이, 부녀자들을 함부로 볼 수 없도록 마음을 쓴 것이다. 김선조 가옥에는 숨어있는 비밀이 많아, 둘러보는 재미에 푹 빠진다.

측간도 곳간채 한편에 숨어있어

안사랑채의 뒤편 건너편에는 곳간채가 있다. 곳간채는 ㅡ 자형으로 지어졌는데 모두 5칸으로 나뉘어졌다. 좌측 두 칸은 곡물을 쌓아두는 창고로 사용하고, 중간은 뒤주로 사용을 했다. 그런데 맨 우측의 한 칸은 문이 없다. 문이 어디로 갔을까? 창고를 돌아 뒤로 가보니. 세상에 여기 측간이 숨어 있다.



'처갓집과 측간은 멀수록 좋다'고 했던가. 그런데 멀리 둘 수가 없는 집안의 구조 때문에 측간을 광의 뒤편에 두었다. 집안에서는 보이지 않으니, 용변을 보는 사람들도 편했을 것이다. 측간은 안쪽으로 들어가게 내었다. 세세한 부분까지도 신경을 써서 구성을 하였다. 고택에서 찾아보는 숨은 멋. 김선조 가옥은 그런 재미가 쏠쏠한 집이다.

  1. 이전 댓글 더보기
  2. may 2011.11.04 09:25

    고택을 들러보면 선조들이 지혜와 배려가 돋보입니다
    잘 관리되어 온기를 느낄 수 있군요
    빨리 나으시길 바랍니다..

  3. ♣에버그린♣ 2011.11.04 09:35 신고

    어! 어디 아프셨어요?
    제가 올만에 들어 와서
    빨리 완쾌 되시길 바랍니다.

  4. 하늘나리 2011.11.04 09:40 신고

    신경 안쓰셔도 됩니다.
    병원 신세 진 김에 푹 쉬시다 오세요.

  5. 2011.11.04 09:44

    비밀댓글입니다

  6. 이츠하크 2011.11.04 09:45 신고

    적당히 감출것은 감추어야 보는 매력이 있는것 같습니다. 한옥의 특성은 이런 한 신비로움 때문에 여성에 대한 매력을 더욱 업(UP)시켜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에고, 또 헛소리...병원에 가셨다고 하던데. 괜찮으신거죠?

  7. landbank 2011.11.04 09:47 신고

    아 요즘 병원신세를 지고 계신가 보네요
    부디 몸조심 하시면서 다니시길 바랍니다

  8. 수정 2011.11.04 09:49

    치료 잘 받으시고 빨리 쾌차 하시기 바랍니다 ~~

  9. 朱雀 2011.11.04 10:00 신고

    에고. 빨리 쾌차하셔서 더 많은 문화유산을 답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10. 카라의 꽃말 2011.11.04 10:01 신고

    병원에 입원하셨나요.. 아공~ 몸은 괜찮으신거에요~
    건강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 하셔야해요~
    즐거운 금요일 되시고요~ 아자아자~ 파이팅~

  11. J.mom 2011.11.04 10:08 신고

    어디가 안 좋으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나요 ㅠ.ㅠ
    너무 몸이 고단하셨나요? ㅠ.ㅠ
    걱정대네요~~~
    이 김에 블로그도 쉬엄쉬엄 하시면서 좀 재충전 기회를 가지세요!!
    건강이 최고랍니다!!
    맘편히 푹 쉬시면서 행복한 금욜 되세요~^^
    -by 아내-

  12. 왕비 2011.11.04 10:17

    건강이 최고입니다..
    몸조리 잘 하세요 ~~~^^!!

  13. 꼴찌PD 2011.11.04 10:41 신고

    고즈넉한 가옥에 여유를 느끼고 갑니다.

  14. 자 운 영 2011.11.04 10:54 신고

    과학적인 면까지 신기할 정도로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한옥이죠^^
    언넝 쾌차 하시구요
    으라챠챠 ㅎㅎ^^

  15. 이그림 2011.11.04 11:10

    온누리님 몸이 안좋으셔요?
    빨리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입원까지 할 정도면 .. 마이 아프신가봐요..

  16. 코기맘 2011.11.04 11:12 신고

    얼른 쾌차하시길 응원하고 돌아섭니다.
    건강한 몸이 최고이니 달콤한 휴식도 꼭 취하세요..
    아프면 안되요~~~~

  17. 오붓한여인 2011.11.04 11:58 신고

    에고,어쩐데요?
    입원할정도시니 많이아프신가?
    우리가 기다리고있어요,얼른 회복하시고 또 많이 깨우침을 주셔야죠~
    제가 쾌차기~ 보내드리니 받으세요.

  18. 비바리 2011.11.04 12:02 신고

    아는만큼 보인다고 하였거늘..
    비바리가 가면 대강 보고 나올듯한데
    또 이렇게 요소요소 귀한 포인트를 짚어주시네요.
    헌데 ...입원중이신가벼요.
    하이고..누구 허락 받고 아프셨누...

  19. 블로그토리 2011.11.04 12:09 신고

    얼릉 쾌차하시기 바랍니다.
    연세도 있으신데 설렁설렁 다니시구요.
    하긴 성격이 급해 보이시긴 합니다만...^^

  20. 사랑해MJ♥ 2011.11.04 13:12 신고

    몸이 계속 안좋으셔서 어쩐데요..
    몸생각하면서 문화재도 둘러보세요~
    건강 되찾길 바래요 ㅠㅠ

    전 자꾸 눈에 피로가 쌓여요 흑..

  21. 굴뚝 토끼 2011.11.04 15:14 신고

    많이 편찮으신게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답사나 블로그 보다 몸부터 먼저 챙기셔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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