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처음으로 파워 소셜러 수원 12일 팸투어를 하고 난 후, 상당히 효과를 보았다. 결국 그러한 글들이 모여 KBS-2TV’12까지 수원을 찾은 결과를 나았으니. 12일의 홍보효과는 정말 대단했다. 화성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늘었는가 하면, 화성행궁의 입장객들도 매주 갈아치우니 말이다.

 

거기다가 재래시장까지 더불어 호황을 맞고 있다. 지동 순대타운은 주말은 물론, 일요일까지 사람들도 북적이고 있다. 그런 여세를 더 끌고 가자는 생각이 바로, 이번 316일과 17일 이틀 동안 수원에서 다시 팸투어를 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지난 해 다음에 치우쳐 있던 블로거들을, 네이버 블로거들을 늘려 양쪽에서 모두 검색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팸투어 첫번째 방문지인 팔달산 고인돌군과 화성 축성시 돌을 떼어낸 부석소. 부석소에 모여있는 팸투어 관련자들.(위) 돌을 떼어낸 흔적을 촬영하고 있는 보라미랑님(아래)

 

지난해와는 다른 올해 팸투어

 

이번에 파워소셜러로 초대를 한 블로거들은 참교육님(김용택), 보라미랑님(장유근), 한사님(정덕수), 김천령님(김종길), 지우재님(김원주) 등과 네이버에서 여행블로거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갠디님(최명희), 행복물결님(박금화), 마리안님(안명희), 초희님(조윤희) 등이었다. 12일의 수원 팸투어는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주최하고 수원시가 후원을 한 이번 파워소셜러 팸투어는, 지난해와는 다르게 작은 것 하나라도 더 보여주자고 노력했다. 팔달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고인돌부터, 화성을 쌓을 때 돌을 떼어낸 흔적이 있는 부석소. 그리고 화성의 안이 아닌 소나무가 우거진 성 밖을 돌면서 화성의 이모저모를 볼 수 있도록 하였다.

 

 

 걷고, 찍고, 또 걷고..... 지난해와는 반대로 돌아 본 화성관람 

 

과거 정조시대 쌓은 화성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서삼치 곁에서 성안으로 들어간 일행은, 서남암문과 용도를 거쳐 화양루까지 돌아보았다. 그리고 화성을 신을 모신 성신사를 거쳐 행궁까지 두 시간 정도를 걸어, 행궁 앞에서 오후 3시에 시작하는 무예24기 관람을 시작했다.

 

이번 무에24기 시연을 할 때는 블로거들을 중앙 앞자리에 앉아서 관람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행궁 안으로 들어가 10곳에 있는 스탬프 찍기도 하는 등 재미도 더해주었다. 특히 가장 먼저 다 찍어 온 두 사람에게는 수원문화재단 라수홍 이사장이 직접 기념품을 건네주기도 하였다.

 

행궁 앞에서 펼쳐지는 무예24기를 관람하는 블러거들. 특별히 사진을 찍기위해 앞자리를 마련했다

 

야경에 정신 빼앗긴 블로거들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블로거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40분 정도. 하지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시장 구경에 재미를 붙였단다. 크지 않은 시장인데도 갖가지 물건들이 있어서 좋았다고 다시 시간을 달라고 한다. 그리고 이어진 제일교회 노을빛 전망대에서 바라본 수원. 그저 이렇게 재미있는 팸투어는 처음이라고 한다.

 

저녁을 마친 후 돌아본 방화수류정의 야경. 네이버 여행 블로거들인 4명의 여인들. 바닥에 엎드리다시피 사진을 찍어댄다.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배정된 숙소인 수원유스텔. 라비에 있는 안내판에서는 블러거들을 환영한다고 나온다. 그것을 보고 정말 수원의 팸투어는 딴 곳과는 비교를 할 수 없다고 한 마디씩 한다.

 

 

스탬프 찍기를 마친 종이와(위) 수원문화재단 이사장실에 모인 블로거들과(가운데) 라수홍 수원문화재단 이사장 

 

하루 종일 일정을 모두 마치고 피곤하기도 하겠지만, 밤길을 걸어 서장대로 향했다. 아름다운 수원의 야경을 보기 위함이다. 밤늦은 시간인데도 그 시간까지 화성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12일의 야경을 그대로 따라해 보는 관광객들이다. 그리고 정신없이 야경을 촬영하는 블로거들. 화성을 따라 켜진 조명이 아름답다.

 

그렇게 파워소셜러 팸투어의 첫날이 끝났다. 공식 일정은 마쳤지만, 이 짧은 만남을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다. 통닭거리로 나가, 다시 그곳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그렇게 밤 12시가 디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의 일정이 또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야경.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위), 방화수류정에 오르는 블러거들(두번째), 서장대에서 내려다 본 수원 야경(세번째) 밤늦은 시간에 화성을 돌아보는 관광객들. 1박 2일 후에 나타난 현상이다. 

 

KBS의 '1박 2일'이 예전보다 못하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담당PD가 바뀌고 출연자들이 바뀌면, 처음에는 모두가 낯설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즈음 1박 2일을 보면, 나름대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참에 KBS 1박 2일 제작진에게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한다. 먼 곳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바로 코앞에 아름다운 화성과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복불복게임’을 할 수 있는 수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재미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고 안 오고는 전적으로 방송제작 담당자들의 몫이지만.

 

화성 연무대 앞에 마련된 활쏘기 체험장에서는 저녁 잠자리 복불복을 할 수가 있다. 무예24기 단원 7명과 1박 2일 출연진 7명이


 

왜 수원이 1박 2일에 좋을까?

 

우선은 수원은 거리상으로는 가깝다고 하지만, 정말 좋은 1박 2일의 코스가 있다. 아름다운 수원 화성과(낮과 밤이 전혀 다른) 행궁, 그리고 벽화골목과 수원갈비, 순대타운 등 복불복에 필요한 조건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1박 2일의 진행에 적합하다는 것일까?

 

1박 2일의 멤버로는 김승우, 엄태웅, 이수근, 차태현, 성시경, 김종민, 주원 등 7명이다. 수원에는 무예24기 단원들이 있다.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무예 24기를 연마한, 과거 장용영의 병사들이 하던 무술이다. 이들 중 7명과 함께 1박 2일 동안 시합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한 수는 접고 시합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화성열차를 타고 30분 정도 화성구경을 할 수가 있다. 여기서도 문제를 제출해 14명의 사람들 중 절반은 화성열차를 타고, 남은 사람들은 화성을 걸어서 성신사까지 이동을 하면 된다. 


서장대에 어르면 수원이 내려다 보인다. 이곳에서는 화성에 대한 문제를 제출해 저녁 복불복을 할 수가 있다. 이긴 사람은 수원갈비로 진 사람은 알아서....  


 

제일먼저의 복불복은 연무대 앞에 마련된 활쏘기 체험장에서 시작을 할 수 있다. 각자에게 화살을 쏘게 해 복불복을 하는 것이다. 이긴 편은 행궁의 방에서 취침을 하고, 진편은 당연히 마루에서 한데 잠을 자는 것이다. 1박 2일이 즐겨하는 ‘잠자리 복불복’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화성열차를 타고 성신사로 이동을 하면 된다. 여기서도 문제를 맞춘 사람은 열차를 타고. 못맞춘 절반은 화성을 걸어가면 된다.

 

성신사에서 서장대로 걸어 올라가면 수원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여기서 또 한 번 시합을 할 수가 있다. 바로 화성에 대한 상식을 묻는 게임이다. 이긴 편은 당연히 수원의 자랑인 ‘수원갈비’를 먹을 수가 있고, 진편은 제작진이 알아서 준비를 해주면 된다. 그리고 화성을 걸어본다.

 

 지동 벽화골목은 한창 조성중이다. 이곳에 1박 2일팀의 벽화를 남겨놓으면 보는 사람들에게 홍보만점이다.


 지동교회 종탑인 노을빛 전망대에서 바라본 수원 화성이다. 행궁과 화성박물관 등이 보인다.


 

지동 벽화골목으로 오면 요즈음 자원봉사자들의 그림봉사가 한창이다. 이곳에 1박 2일팀의 벽을 하나 만들어 놓으면 두고두고 기억이 될 만하다. 그리고 나서 지동교회 노을빛 전망대에 올라 수원과 화성의 야경을 관람한 후, 화성의 야경을 돌아보는 시간도 가질 수가 있다. 낮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24기 무예를 배울 수 있는 시간도

 

첫날 일정을 마치고나면 화성 행궁에서 낮에 활쏘기에서 이긴 사람은 방에서, 진 사람은 야외취침을 하게 된다. 또한 행궁의 이모저모를 돌아볼 수가 있어, 다양한 우리 고건축과 정조대왕의 효심 등을 알릴수가 있다. 요즈음 말초신경만 자극하고 있다는 방송사가 제대로 된 효(孝)와 충(忠)이 무엇인가를 시청자들에게 일깨울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군가 이런 표현을 했다. '화성의 야경은 처절하리만큼 아름답다고..' 야경을 돌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물론 그 아름다움은 충분한 영상을 만들어 줄 수도 있고 


 

 이튿날 아침에는 무예24기 단원들에게 장용영의 무사들이 익혔다는 무예도 배워볼 수가 있다 


 

다음날은 아침 일찍 무예24기 단원들을 따라 24기 무예를 배우는 시간도 가질 수가 있다. 그 또한 아직껏 접해보지 못한 1박 2일의 재미를 더할 수 있는 부분이다. 11시부터는 행궁의 신풍루 앞에서 시연하는 24기 무예를 관람한 후, 수원천을 따라 지동 순대타운에 가서 전골 등을 먹을 수가 있다.

 

이렇게 좋은 1박 2일 코스가 있는 수원. 왜 이곳을 선택하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너무 좋은 곳이 많은 우리나라라고 하지만, 역사와 아름다움, 효와 먹거리, 그릴 것과 즐길거리, 이런 것들이 완벽하게 준비기 되어있는 수원이다.

 

1박 2일 팀, 수원으로 오라!, 와서 7명의 멤버들과 장용영의 후예들이 한 판 붙어보자. 물론 ‘복불복’으로.

사람들은 화성을 구경하러 와서 안으로 돌아본다. 물론 시설물 등을 보기 위해서는 안으로 돌아보아야 맞다. 하지만 성이라는 것이, 안보다 밖에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 성은 밖으로 겉돌아보아야 진가를 알 수가 있다. 밤에 만나게 되는 화성, 그것은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10월 6일, 제49회 수원화성문화제 둘째 날 밤 8시부터 연무대 일원에서 열린다는 연무대와 창룡문(화성의 동문) 성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야간군사훈련이 주제인 ‘야조(夜操)’를 취재하기 위해 화성 동문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일몰 후에 조명이 들어오는 화성. 조명으로 인해 더욱 장엄하게 보이는 화성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동일포루에서 봉돈까지

 

동문인 창룡문을 나서서 서쪽으로 조금 가다가 보면 동일포루를 만날 수가 있다. 아경으로 보는 동일포루는 낮과 다른 볼거리를 준다. 아마도 관광객인 듯한 가족들이 그 위에서 소리를 질러댄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 것일까? 돌을 이용해 치성을 쌓고 그 위에 판문이 없는 전각을 지은 동일포루. 군사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동일 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조 20년인 1796년 7월 10일 완공되었다. 동일포루를 지나 남수문 방향으로 가다가보면 동일치를 만나게 된다. 꿩은 제 몸은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 하는 까닭에, 이 모양에서 취한 것이라고 하여 치라고 했다. 치는 성곽을 돌출시켜 성벽으로 달라붙는 적을 공격하는데 유리하게 조성을 하였다.

 

 

 

동일포루에서 동일치로 가다가 보면 성이 심하게 휘어진 곳이 있다. 왜 유난히 이곳만 이렇게 안으로 들어가게 축성을 했을까? 아마도 지금은 평평하게 만들어져 있지만, 예전 이 앞에는 또 다른 무엇이 있지나 않았을까? 아니면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런 궁금증을 만들어 주는 것도 화성 겉돌기가 주는 재미이다.

 

화성에서 치는 16곳이나 된다. 하지만 그 위에 돈이나 포루 등을 설치한 곳이 있어서 순전한 치는 8곳이다. 치는 원래 여장만 두르고 전각을 짓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저 간단한 구조물 같지만, 치의 역할을 나름 중요한 구조물이다.

 

 

치성의 발전된 모습인 포루

 

동일치를 지나면 동이치를 가기 전 동포루가 자리한다. 동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조 20년인 1796년 7월 16일에 완공되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로 치성의 발전된 형태이다. 화성의 포루는 모두 벽돌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공심돈과 같이 안을 비워 적을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공격할 수 있게 하였다.

 

야경으로 보는 동포루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적에게 위엄을 보일 수 있는 구조물이다. 옛 선인들은 도대체 전쟁을 하기 위한 성을, 이렇게 아름답게 조성을 할 수가 있었을까? 새삼 선인들의 지혜에 머리를 숙인다. 동포루를 지나면 동이치를 만난다. 그리고 그 저만큼 앞에 커다란 구조물을 만나게 된다.

 

 

 

봉돈에 봉화라도 보였으면

 

봉돈은 돌로 쌓아올린 성의 몸체 위에다가, 다시 벽돌로 높게 쌓은 구조물이다. 성 밖으로 18척이나 튀어 나온 봉돈은, 마치 치처럼 생겼으면서도 그 보다 크다. 외면의 돌로 쌓은 것이 5층, 벽돌로 쌓은 것이 62층으로 전체 높이 25척, 너비 54척이나 된다. 봉돈은 그 봉화의 숫자로 신호를 하게 된다.

 

봉돈은 안에서는 또 하나의 작은 성처럼 견고하다. 하지만 밖에서 보는 봉돈은 그 자체만으로도 걸작이다. 봉돈을 촬영하고 있는데, 봉돈의 안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난다. 위를 올려다보니 사람들의 발이 보인다. 저 다리가 보이는 곳에서도 장용영의 군사들이 성벽으로 달라붙으려는 적들을 향해 화살과 총을 쏘아대었을 것이다.

 

 

 

여덟 번째 구간인 동일포루에서 봉돈까지. 길지 않은 구간이지만, 그 안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든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야간총체 훈련이라는 ‘화성, 정조의 꿈’이란 군사훈련모습을 보여주는 날인데, 초대되어 온 대사들이나 외지에서 찾아온 많은 관광객들에게, 봉돈이 야간에는 불을 피워 신호를 했음을 보여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행사장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살인의 추억’이란 불명예인 영화제목으로 유명한 수원시 팔달구 지동. 오원춘 살인사건으로 인해 지동은 사람들이 회피하는 마을이 되었다. 하지만 그 지동이 알고 보면, 딴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과 인정이 넘치는 마을이다. 날마다 변하고 있는 지동. 그 지동이 이제 새로운 마을로 탈바꿈을 하고 있다.

 

‘지동’이란 명칭은 정조가 화성을 축성할 때, 이 마을에 커다란 연못을 조성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어르신들은 아직도 지동이란 명칭보다, ‘못골’이라는 순 우리말 이름을 더 정감이 간다고 한다. 이 이름 안에는 지동이 훈훈한 정이 살아있는 마을이라는 것을 일려주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 문을 열어 준 '지동제일교회' 13층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수원과 화성의 야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열린교회’가 주민들에게 준 선물

 

이 지동은 수원의 화성 밖에서 유일하게 성곽을 끼고 길게 늘어선 마을이다. 지동사람들은 날마다 이 화성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다. 그렇기에 지동사람들은 화성이 단순한 성곽이 아닌, 사람의 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개발이 제한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건물들은 낡고 우중충하다. 거기다가 살인사건 이후 사람들이 입주를 회피하다 보니, 마을 안에는 빈 점포들까지 생겨났다.

 

이런 지동의 변화에 가장 먼저 적극적인 호응을 한 것은, 지동에서 가장 높이 솟아있는 교회이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지동제일교회’는 지동의 가장 높은 길인 ‘용마루길’의 입구에 서 있다. 용마루길이란 지동시장을 벗어나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으로 가는 옛 길이다. 이 길은 남수문을 벗어나 위로 오르다가 보면, 지동제일교회에서 시작해 창룡문까지, 길게 외성과 같은 형태로 조성이 된 길이다.

 

 

화성에서 바라본 제일교회. 그 중앙에 솟은 높은 곳이 종루이다. 이곳을 주민들에게 개방해 갤러리와 전망대로 조성하였다.(위) 9월 15일 밤 9시에 찾아간 제일교회(아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이 교회의 종탑은 어디서 보아도 제일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만큼 높이 솟아있기 때문이다. 지표에서 종탑 꼭대기까지의 높이가 47m나 된다. 사람들은 그런 지동제일교회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교회가 가장 먼저 지동의 변화에 문을 열어 젖혔다.

 

사용하지 않고 있던 교회 종루를 개방한 것이다. 그것도 그냥 개방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안을 갤러리와 전망대로 조성해 주민들에게 돌려주었다. 감히 우리가 알고 있던 교회들에게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한 것이다.

 

 

‘노을 길 전망대’, 그 마음이 하늘에 가깝다.

 

전망대의 이름은 ‘노을 빛 전망대’라고 했다. 그리고 8층부터 10층까지는 갤러리로 변했다. 층마다 배색을 맞추어 칠을 하고, 그림도 걸고 사진도 걸었다. 그리고 13층까지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층마다 창밖으로 보이는 주변의 경관이 달라진다. 7층까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천천히 꼭대기를 오르면서 즐기는 재미. 맨 위층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아찔하다.

 

밤 9시에 지동주민센터 기노헌 총괄팀장의 안내를 받으며, 해발 99m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화성. 한 눈에 화성이 들어온다. “저기는 동문, 저곳은 서장대, 저곳은 행궁". 종루 꼭대기에서 약간은 쌀쌀한 밤바람을 맞으며 돌아본 수원시와 화성의 야경은 그야말로 전설이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하늘이 가깝다. 잠시 주춤한다. 순간적으로 등을 쓸어본다. ‘혹 날개라도 하나 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8층에 마련한 위로 오르는 나선형 계단 입구.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안내를 해준 기노헌 총괄팀장이다.(위) 그리고 9층에 마련된 갤러리(아래)


수원제일교회는 종탑의 7층부터 이 13층까지의 공간을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그리고 화성을 찾는 사람들 누구나가 이곳에 와서 화성 인근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다. 지금은 임시로 개관을 했지만, 내년 4월이면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완전 개방을 한단다. 거기다가 전망대와 갤러리를 운영하는 인적자원의 지원까지 약속을 했다. 유지 및 보수관리도 교회에서 전담을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교회가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생각한 것이다. 주민들은 물론 ‘노을 빛 전망대’를 올라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열린교회’에 감사를 한다. 더구나 닫혀있는 문을 연 제일교회는 예배를 보는 신성한 공간까지, 음악회를 할 수 있도록 운영을 하고 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지역을 위해 문을 활짝 연 것이다. 이런 마을이 바로 지동이다.

 

 

끝없는 변화로의 추구, 지동은 날마다 깨어난다.

 

날마다 변해가고 있는 지동. 이 마을은 그저 골목만 들어서도 재미있다. 골목길마다 그려진 벽화를 구경하다가 보면, 그 안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어린꼬마들의 함성도 들린다. 꽃들의 속삭임도 있고, 나무인줄로만 알고 기어오르다, 이마에 혹을 붙인 벌레의 불평도 들을 수가 있다.

 

이런 지동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끄집어내고자 한다. 지동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요즈음 전보다 더 똘똘 뭉쳤다. 그 안에 훈훈한 정이 있다. 골목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내 가족이 된다. 그리고 무엇이나 함께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다. 수원 화성의 성벽을 바라보고 사는 지동사람들은, 모두가 한 가족이었다. 그 안에 수원제일교회도 있었다.

화성에서 가장 견고한 구간은 바로 화서문(서문)과 장안문(북문) 사이일 것이다. 우연히 이곳의 야경을 보게 된 후 화성의 진가를 알았다고 한다면, 그럼 지금까지 자랑 질을 한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 분들도 계실 것. 하지만 화성이야 전 구간이 다 아름답지만, 특히 화성의 견고함을 보려면 서문과 북문 사이를, 그리고 아름다운 야경을 보려면 이곳에서 방화수류정까지 일 것이다.

 

화성을 겉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미할 수도 있다. 성 밖으로 보이는 성벽과 치성 위에 올려 진 구조물들. 그 외에 무엇이 있느냐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성은 단순히 성벽과 치성위에 올린 구조물이 다가 아니다. 화성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몇 곳 안 되는 성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공심돈, 우리나라의 많은 성곽 중 유일하게 화성에만 있는 축조물이다. 1796년 3월 10일 완공한 서북공심돈. 공심돈이 완공을 한 이듬해인 1797년 3월, 서북공심돈을 둘러 본 정조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고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서북공심돈은 그 건축물의 우수성과 역사성을 인정받아, 2011년 3월 3일에 보물 제1710호로 지정이 되었다.

 

원래 화성에는 모두 세 곳의 공심돈이 있었다. 서북공심돈과 동북공심돈, 그리고 남공심돈이다. 하지만 현재 남공심돈은 사라지고, 동, 서북공심돈만이 남아있다. 공심돈은 높은 곳에 올라 적의 동향을 살피고, 공격하기 위한 시설이다. 공심돈의 형태는 특이하게 조성해, 마치 화성 안에 작은 고성(古城) 하나가 자리를 잡은 듯하다.

 

 

높은 성벽과 견고한 전각들

 

이곳의 성벽은 견고하다, 그리고 어느 곳보다 높다. 이곳은 평지에 축성을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게 쌓아올렸다. 그리고 적의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화서문서부터 장안문 사이에 북포루와 북서포루를 마련했다. 북포루(北鋪樓)는 병사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야경으로 보는 북포루는 절로 감탄이 나온다.

 

화성의 구조물인 '포루(鋪樓)'의 설명을 보자. 「성서(城書)에 이르기를, '치성의 위에 지은 집을 포(鋪)라 한다'고 하였다. 치성에 있는 군사들을 가려 보호하려는 것이다. 치성은 성 밖으로 18척 5촌이 튀어 나왔는데, 외면의 너비는 24척이고, 현안 1구멍을 뚫었다. 5량으로 집을 지었는데, 판자를 깔아 누를 만들었다. 7영 3간이고, 높이는 여장 위로 6척 8촌이 솟았는데, 전체 높이는 13척이다.

 

여장의 3면은 모두 벽돌을 사용하였고, 여장 안은 벽 등을 이중으로 쌓았는데, 아래 위에 네모난 총안 구멍 19개(사방 각 9촌), 누혈 11개(사방 각 4촌)를 뚫어 놓았다. 누의 위 4면에는 판문을 설치하고 외면과 좌우에는 사안을 내어 놓았다. 내면에 벽돌 층계를 설치하여 오르내리게 하였다. 단청은 3토를 사용하였고, 들보 위는 회를 발랐다.」고 하였다.

 

 

어찌 화성을 무시할 것인가?

 

화성에서 가장 중요한 공격 시설은 성 5곳에 조성한 '포루(砲樓)'이다. 화성의 포루는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치성과 유사하게 축조하면서, 내부를 공심돈과 같이 비워 놓았다. 이는 그 안에 화포 등을 감춰 뒀다가 위·아래와 삼면에서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시설이다.

 

포루는 3층으로 축조가 되었는데, 지대 위에는 대포를 발사하기 위해 뚫어 놓은 구멍인 '혈석(穴石)' 을 전면에 2개, 좌우에 3개씩 놓았다. 야경으로 보는 북서포루는 근처에 다가서기도 힘들 듯한 위용을 자랑한다. 아마 이런 모습을 달빛에 적이 보았다면, 그 모습만으로도 혼이 백리나 달아났을 듯.

 

 

그렇게 야경에 취해 제대로 걸음조차 옮기지 못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정경을 보면서 걸음을 빨리한다는 것은 화성을 무시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저만큼 장안문이 보인다. 그러나 그곳까지 걸어갈 수가 없다. 이곳에서 좀 더 이 아름다운 밤경치를 보고 싶기 때문이다. 비가 멈춘 밤하늘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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