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야채 장사가 왔습니다. 과일 장사가 왔습니다. 빨리들 나오세요. 야채들 사가세요. 과일들 사가세요”

차에 야채와 과일을 싣고 다니면서 파는 야채장수가, 사무실 앞에 차를 대고 스피커의 볼륨을 높인다. 사무실이 있는 곳 주변에 예전에는 상가이고 주변에 식당과 주거지역까지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야 하는 장사꾼들의 소리이다.

“알 타리 무 한 다발에 4,000원, 두 다발에 7,000원입니다. 대파 한 다발에 7,000원입니다. 귤 한 상자에 10,000원, 4kg 1관에는 4,000원입니다. 싸고 맛이 없습니다.”

이건 무슨 소리야. 설마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니겠지. 장사꾼이 장사를 하면서 싸고 맛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다니. 그러나 몇 번을 다시 들어보아도 같은 이야기다. ‘싸고 맛이 없다’는 설명이다.

오늘(11월 18일) 낮 사무실 앞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야채장수

정말 맛이 없는 것일까?

과연 그 장사꾼의 이야기대로 귤이 맛이 없는 것일까? 사람들이 야채를 사러 나왔다가 그 말이 이상한지 물어본다.

“아저씨, 정말 귤이 싸고 맛이 없어요?”
“예”
“그래도 그렇지. 장사하시는 분이 맛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아뇨. 정말로 맛이 없어요.”

도대체 이해가 가질 않는 장사꾼이다. 맛이 없어도 있다고 해야 할 텐데, 맛이 없다고 방송을 하고 다니니 누가 그 물건을 살 것인가? 정말로 양심적인 것인지, 아니면 장삿속으로 그러는 것인지 구별이 가질 않는다. 한참이나 그렇게 방송을 해대더니 몇 사람에게 물건을 판다. 아마 그들도 양심적이란 생각 때문에 물건을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장사꾼의 양심에 한 수 배우다


하도 이상해서 직접 물어보았다. 도대체 물건을 파시는 분이 어째서 ‘맛이 없다’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인지.

“‘맛이 있다’라고 하고 팔았는데 맛이 그렇게 좋지가 않으면, 물건을 사신 분들 기분이 어떻겠어요. 차라리 맛이 조금 덜 하니까 ‘맛이 없다’라고 말씀을 드려야지”
“그렇게 장사를 하셔도 사 가시기는 하시나요?”
“사시고 안 사시고는 사시는 분 마음이죠. 그래도 값이 싸니까 사 가시는 분들이 꽤있어요”
“그분들이 나중에 무엇이라고 안 하시나요?”
“하하... 그 분들이 꽤 드실 만 하다고 하시죠.”

장사를 하는 사람은 그 물건이 어느 정도인지, 맛은 어떤지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굳이 속여가면서 장사를 하고 싶지가 않다는 것. 이렇게 거리를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하는 장사꾼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양심적이다’ 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속이면서까지 팔아버린다면, 스스로 구덩이를 파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장사꾼이 자신을 속이는 것보다 나쁜 것은 없죠.”

뒤통수가 띵하다. 오히려 그런 장사꾼의 진정한 마음을 의심한 내가 부끄럽다. 벌겋게 낯이 달아오른다. 모든 것을 의심부터 하는 이 버릇을 얼른 고쳐야겠단 생각이다. 아직도 세상엔 양심적인 사람들이 더 많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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