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84에 소재한 대한불교 조계종 인취사. 인취사 극락전에는 조선시대의 아미타삼존불상이 모셔져 있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95호 아산 인취사 석조 아미타삼존불상은 중앙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에는 관음보살이 우에는 지장보살이 자리하고 있는 삼존불이다.

 

중앙의 아미타불좌상은 선정인으로서 결가부좌하였으며, 육계가 크고 나발이 선명하고 오른팔에 편삼을 걸친 변형 통견식 법의로서, 아미타불의 전형적인 수인과는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좌측의 관음보살상은 본존과 같은 착의법을 하였으며, 보관정면에 아미타불좌상의 화불을 조각하여 관세음보살임을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우측의 지장보살상은 고려후기에 유행했던 피건을 두른 모습으로서 무릎위에 올린 두 손에 보주를 잡고 있는 형태이다. 삼존불 모두 둥글고 작은 얼굴로서 형태가 비슷한 데 눈, , 입이 작으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의 모습으로 지방적인 요소가 강한 표정을 보이고 있으며,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조선전기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법흥왕 때에 창건했다는 인취사

 

인취사는 신라 법흥왕 때에 창건했다고 전하고 있으나 자세한 연대는 알 수가 없다. 눈이 쌓여 있는 날 찾아갔던 인취사. 그리 크지 않은 인취사 경내는 온통 흰 눈이 여기저기 쌓여있었다. 겨울에 사찰답사를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 절을 올라갈 때 한참을 걸어야한다면 바람과 미끄러운 길로 인해 애를 먹기도 한다.

 

인취사 경내에 들어서면 앞으로 탁 트인 전망에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극락전에 들려 참배를 한다. 고려 말부터 몽고와 왜구의 침입으로 고통을 겪은 민초들은 이승에서의 어려움을 해결해 준다는 관세음보살과 저승의 지옥에서 건져준다는 지장보살을 좌우협시불로 하는 아미타삼존불상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조선 초기 삼존불의 형태를 알 수 있어

 

이 인취사 석조아미타삼존불상은 조선시대 아미타삼존불의 시원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금으로 채색을 하여 석조불의 느낌은 제대로 느낄 수 없지만, 그래도 조선 초기의 아미타삼존불상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편이 뿌듯하다. 오랜 시간 전국을 돌면서 수없이 만난 석불이지만, 볼 때마다 그 느낌은 전혀 다르다.

 

인취사는 절에 내력에 대해서 전하는 바가 없어 일설에는 고려 때 창건한 절로도 알려져 있다. 수많은 절들이 임진왜란 등 전화로 소실이 되면서 기록이나 문화재들이 소실이 되었다. 거기다가 수탈까지 해간 것들이 상당히 많은 양이기 때문에,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재는 양으로는 많다고 하지만 질로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까지 한다.

 

 

문화재란 단순히 가치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재는 그 시대의 사람들의 생활과 습속, 그리고 환경까지도 알아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전화로 인해 수많은 문화재들이 훼파를 당한 것도 마음이 아픈데, 거기다가 종교적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금까지도 문화재 훼손을 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문화국민이 절대로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눈길을 걸어 올라간 아산 인취사. 절 경내는 눈이 치워졌지만, 산으로 오르는 길에는 하얀 눈이 쌓여있었다. 그저 한가롭게 널찍한 경내를 돌아보면서 극락전에서 만난 강한 인상의 삼존불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그만이라도 만날 수 있었다는 안도감이 들면서.

  1. 온누리 온누리49 2014.03.18 05:54 신고

    일찍 글을 예약해 놓고
    오늘은 의정부와 남양주를 돌아 올 계획입니다
    겨우내 현자답사를 많이 나가지 못해 엉덩이가 무거어진 듯해서요^^
    좋은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2. 공룡우표매니아 2014.03.18 07:25

    인취사 아미타삼존불상 잘 보았습니다.
    즐겁고 보람있는 화요일 되세요~~

  3. The 노라 2014.03.18 07:35 신고

    3분의 불상들이 서로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이 부드러우면서도 온화한 느낌입니다. 약간의 해학도 느껴지는 듯. 그런데 석조라고 하셨으면 돌로 만든 불상인 건가요? 금칠 때문인지 전혀 못 느꼈어요.
    어느 나라는 없는 것도 열심히 만들어 내기도 하던데 어떤 곳은 있는 것도 뺏기고 도난당하고 종교적인 이유로 훼손까지 하는군요. 종교가 그런 이유로 있는 건 아닌 듯 한데... ㅠㅠ

    어제 돌아오셨는데 또 답사 나가시는 거예요? 선배님, 날도 좋은데 혹시 독자들 부럽게 하실려고 그러시는 지... 부럽당~! ^^*

  4. pennpenn 2014.03.18 08:38 신고

    삼존불상이 황금빛으로 빛나는군요~
    화요일은 화사하게 보내셔요~

  5. 행복한요리사 2014.03.18 08:41

    아비타삼존불상을 만나고 갑니다.
    조심해서 잘 다녀 오세요.
    온누리님!

  6. 신기한별 2014.03.18 08:45 신고

    정말 많이 닮았네용

  7. 朱雀 2014.03.18 08:53 신고

    사진만 봐도 눈이 시원할 지경이네요.
    늘 우리 문화재가 소실되었거나 원형을 제대로 알길이 없다는 사실은 그저 안타깝네요. --;;;

  8. 자칼타 2014.03.18 09:24 신고

    종교적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문화재를 훼손하는 그런 행위들 정말 사라져야 할 것 같네요..
    문화재에 낚서 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고 하더라고요.. 애궁...

  9. +요롱이+ 2014.03.18 10:08 신고

    너무 잘 보고 갑니다.
    아무쪼록 남은 하루도 평안한 시간이시길 바랍니다.

  10. 다소미아 2014.03.18 10:14 신고

    이 곳은 저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사진으로보니, 느낌이 또 틀리군요..
    오늘도 즐겁게 읽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11. Hansik's Drink 2014.03.18 10:25 신고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
    행복 가득한 오늘을 보내세요~

  12. 알숑규 2014.03.18 10:30 신고

    거 참 무슨 문제인지 크롬으로 접속하면 악성코드로 접속이 차단되는 문제가 발생하는군요.

  13. 천추 2014.03.18 17:30 신고

    사진으로 보기엔 보존상태가 양호해 보이는군요.
    하지만 왜인지 인취사는 다른 절들에 비해 좀 썰렁해 보이는군요.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14. 놀다가쿵해쪄 2014.03.18 22:32 신고

    문화재의 소중함을 알고 보존해야겠습니다...
    답사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즐거운 밤 되세요~!!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88번지 외암 민속마을 안에 자리한, 중요민속문화재 제195호 참판댁. 이 집의 건축연대는 19세기 말로 추정되며, 구한말 규장각 직학사와 참판을 지낸 퇴호 이정렬 공이 고종황제로부터 하사 받은 집이라고 전하고 있다. 현재 이 집에서는 충남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아산 연엽주를 전통방식에 의해 제조하고 있다.

 

연엽주는 연잎을 곁들어 쌀과 찹쌀 누룩을 이용해 빚는 술로, 연꽃잎을 넣어 독특한 향기를 내므로 연엽주라고 한다. 연엽주는 외암리 마을에 살고 있는 예안 이씨 가문에서 익혀 내려온 양조기술에 의해서 제조된 술이다. 외암리마을 참판 이정렬의 4대조인 이원집(1829∼1879)이 쓴『치농(治農)』이라는 필사본에, 연엽주의 제조방법이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은 이 방법에 따라 술을 제조하고 있다.

 

 

큰집과 작은집으로 배치된 참판댁

 

이 집을 '참판댁'으로 부르는 이유는 집을 지은 이정렬이 참판을 지냈기 때문이다. 이 집은 큰집과 작은집으로 구분하여 배치되어 있다. 큰 집은 열 칸의 ㄱ자형 안채와, -자형으로 이뤄진 다섯 칸의 사랑채가 있다. 그리고 -자형 여덟 칸의 문간채가 사랑채 앞에 마주하고 자리를 하고 있다.

 

작은집은 여섯 칸으로 된 ㄱ자형 안채와, 일곱 칸으로 된 ㄱ자형 사랑채로 구성이 되어 있다. 큰집의 평면 구성은 대체적으로 중부방식을 따랐지만, 작은집 사랑채는 대청이 한쪽으로 배치되는 남도풍이 가미되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다섯 칸의 사랑채를 마주하고 있는 큰 집 대청 툇마루 위에 걸려있는 <퇴호거사>란 편액을 볼 수 있다. 퇴호 이정렬은 이사종의 11세손으로 그의 할머니가 명성황후의 이모인 관계로 명성황후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명성황후가 시해를 당하자 이정렬은 벼슬을 버리고 외암리로 낙향했고, 그 때 고종황제가 현재의 집을 하사하였다고 전해진다. '퇴호(退湖)'란 호도 고종황제가 내린 아호임을 편액에는 적고 있다.

 

 

대문의 진입로에 돌담을 쌓은 참판댁

 

큰집 솟을대문의 대문간 앞으로는 양편에 돌담을 둘러쌓았다. 이 돌담이 솟을대문의 앙편 날개와 같이 비스듬히 펼쳐져 있으며, 이 돌담은 문간채의 끝을 향해 타원형으로 쌓여져 있다. 그리고 그 돌담 안에는 돌로 아래를 쌓고, 위를 옹기로 마감을 한 멋진 굴뚝이 서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돌담과 옹기굴뚝, 그리고 솟을대문이 어우러지면서 하나의 멋진 공간을 연출한다.

 

사랑채를 보면서 우측 끝을 돌면 일각문으로 만든 중문이 있다. 중문에 붙여 낸 광채와 사랑채는 역 ㄴ자 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안채는 ㄱ자형으로 자리를 잡아 튼 ㅁ자 형의 구성을 이룬다. 막돌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지은 안채는 두 칸의 부엌과 안방이 있고, 윗방에서 꺾어 두 칸 대청이 있다. 그리고 건넌방을 두었는데, 앞으로는 툇마루를 꺾어놓아 연결을 하였다. 중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만들고 작은 화단을 꾸며 놓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탈하게 꾸며져 있어 편안한 느낌을 주는 집이다.

 

 

종부에게만 전해지는 연엽주 제조법

 

참판댁의 종부로만 제조방법이 전해진다는 연엽주는 원래는 집안의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가양주다. 이 술을 퇴호 이정렬이 고종황제에게 진상을 하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연엽주는 퇴호의 4대조인 이원집이 처음으로 재조를 한 이후, 종부에게로만 전승이 되어왔다고 한다. 가양주로 빚는 술이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금기사항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술을 빚을 때는 목욕재계 후, 의복을 단정히 하고 수건으로 입과 머리를 감싸야 한다. 술독을 옮길 때도 손이 없는 방위를 택하는 등, 마을에서 제를 지낼 때 제관이 지켜야하는 금기사항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

 

연엽주를 가양주로 제조하는 외암마을 참판댁. 술이 익는 냄새라도 맡을까하여 부엌 앞까지 서성거렸지만, 굳게 닫힌 집안의 문은 열릴 기미가 없다. 집안을 한 바퀴 돌아 밖으로 나오면서 보는 솟을대문 앙 옆 돌담이, 이번 나들이 길에서는 더욱 정겨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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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늘마법사 2013.12.11 08:03 신고

    연엽주는 종부에게만 전해지고있군요
    잘 알고 갑니다

  3. 예또보 2013.12.11 08:06 신고

    그렇군요
    덕분에 너무 잘알고 갑니다

  4. 참교육 2013.12.11 08:08

    연엽주가 어떤 맛일지 궁그해 집니다.
    지금도 전수되고 있는지도요.

  5. pennpenn 2013.12.11 08:16 신고

    연엽주는 어떤 맛일까 무척 궁금해요~
    눈이 그치는군요~

  6. +요롱이+ 2013.12.11 08:27 신고

    덕분에 오늘도 너무 잘 보고 갑니다^^

  7. 행복한요리사 2013.12.11 08:38

    저도 무늬만 종부인데요~ㅎㅎ
    연엽주는 어떻게 만들까 궁굼하네요.
    추운날씨에 오늘 하루도 파이팅하세요. ^^

  8. landbank 2013.12.11 08:39 신고

    아 그렇군요
    덕분에 내용 잘배우고갑니다

  9. Hansik's Drink 2013.12.11 08:57 신고

    잘 보고 간답니다 ^^
    의미있는 하루를 보내세요~

  10. 솔향기 2013.12.11 08:58

    종부에게만 전해지는 연엽주 어떤 맛일까요
    참판댁 모습이 정겹게 다가오네요
    기분좋은 수요일 되세요~~

  11. 테리우스원 2013.12.11 09:46

    우리나라의, 전통가옥은 언제 보아도
    평화로운 안식을 안겨주는 모습입니다.
    좋은 자료들 잘 감상하고 갑니다
    차가운 겨울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12. 주리니 2013.12.11 09:47

    옛날엔 술을 빚을때도 정성을 다했더라구요. 그래서 깊은 맛이 정성껏 베이지 않았나 싶어요.
    요즘은 기계화된 느낌입니다.
    계절이 이래선가 왜... 더 고풍스런 느낌이죠? 무게감 있는 고택이네요.

  13. happy송 2013.12.11 10:29 신고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14. 죽풍 2013.12.11 10:38 신고

    연엽주가 어떤 맛을 내는지 궁금합니다.
    눈 오는 날 기와집 마루에 앉아 한잔 들이키고 싶네요.
    잘 보고 갑니다.

  15. Boramirang 2013.12.11 10:41 신고

    역시 술이 최곤가 봅니다.
    여러분들이 코를 들이미는 모습이 재밌군요.^^

    오가시는 길 늘 무탈하시기 바랍니다.()

  16. 천추 2013.12.11 11:02 신고

    연엽주는 무슨 맛일지 궁금하군요
    하지만 종부에게만 제조법이 전해지고 규칙도 까다로운걸 보니
    쉽게 맛볼수 있는 술은 아닌것 같군요...
    잘 보고 갑니다

  17. 옥건헤어라인 2013.12.11 11:10 신고

    말 그대로 참판댁이군요ㅋㅋ
    연엽주를 맛보긴 커녕 냄세맡기도 힘들다니...
    연엽주 맛이 더욱 궁금해 지는군요

  18. 에스델 ♥ 2013.12.11 11:37 신고

    종부에게만 전해지는 연엽주의 향이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참판댁의 모습 잘 보았습니다.^^
    눈이 내린 날이어서 길이 미끄럽습니다.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19. 초희 2013.12.11 11:56

    저도 자주 가는 곳인데.. 연엽주는 잘 몰랐습니다.
    좋은 정보네요... 저도 그 향이 궁금해지네요.. ㅎㅎ

    온누리님... 여행 잘 다녀오시고.. 안전 운행 하시어요..
    길이 미끄러울것 같아요.. 눈이 와서요.....^^

  20. Healing_life 2013.12.11 12:02 신고

    사진에서 느껴지는 풍경만으로는 술 익는 냄새를 느낄수도 있을 법 한데
    연엽주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술이였군요. 더더욱 그 맛이 궁금해집니다. 글 잘 보고 갑니다.

  21. 놀다가쿵해쪄 2013.12.11 19:06 신고

    어떤맛일까.. 직접 경험해보고 싶네요...

    추운날씨에 감기조심~ 빙판길 조심~ 하세요~

'감찰'이란 조선조 사헌부에 속해있던 정6품의 관리를 말한다. 감찰은 관리들의 비위를 규찰하는 일을 담당했으며, 정원은 24명으로 지방관의 비위를 규찰하기 위한 파견도 나갔으며, 각 관서에서 회계감사 등을 위해 사헌부의 검찰을 요청하는 청대에도 파견되었다. 감찰은 원래 고려시대 어사대의 감찰어사직을 계승한 직책이다.

 

집을 돌아다니다가 보면 그저 평범한 듯 하지만, 어느 한 곳은 딴 집과는 다른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는 집들이 있다. 감찰댁이 바로 그런 집 중 하나이다.

 



 

아산시에 있는 외암민속마을에 가면 이러한 '감찰댁'이란 택호가 붙은 집이 있다. 외암민속마을이 동씨족의 마을이기 때문에 택호를 붙일 때 평소의 직책이나, 그 집의 동족 내에서의 위치 등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감찰댁을 찾아갔을 때는 한창 보수공사를 하느라, 한편이 부산하다. 눈이 온 뒤에 질척거리는 땅을 피해 안으로 들어가 본 감찰댁, 정리를 다 마치고 나면 나름 아름다운 고택일 것이란 생각이다.

 

일각문과 어우러진 돌담

 


관리들을 규찰하는 업무를 보았던 감찰댁은 의외로 조촐하게 꾸며져 있다.


일각문 옆에는 돌담 앞에 작은 연못이 하나 마련되어 있다.

 

감찰이란 직책은 비록 높지 않으나 나름대로 보호를 받고 있었다. 관리들의 비위를 규찰하는 직분으로 만일 이들이 비리를 저지른다고 생각을 하면, 얼마든지 많은 재물을 축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감찰을 선정할 때는 명망이 있는 자들로 선정을 했으며,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지위를 보장 받기도 했다.

 

이러한 감찰이 살던 집이었던 감찰댁은 한 마디로 크지는 않으나,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서는 문도 솟을대문이 아닌 일각문이다. 일각문 우측에는 연못을 파고, 돌담을 둘렀다. 일각문이 닫혀있어 공사를 하는 곳으로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우측으로는  작은 못이 있고 정자가 하나 서 있다. 이 정자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오래된 정자로 보이지는 않는다.

 


안채를 바라보고 우측에도 연못과 정자가 서 있다. 소탈하지만 멋을 낼 줄아는 집이다.

 

일각문과 어우러진 돌담이 참으로 정겹다고 느껴지는 집이다. 외암민속마을의 대개의 집들이 이렇게 돌담으로 꾸며져서, 돌담길의 운치가 좋은 곳이기도 하다.

 

한편에 누정을 올린 안채

 


감찰댁에는 안채와 사당만이 남아있다. 안채 앞에 작은 정원 등과 주변의 숲이 잘 어울린다.


안채 한편에 자리잡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사당. 뒤로는 대숲이 우거져 있다.

 

현재 외암리 민속마을 안에 자리한 감찰댁은 안채와 사당만이 남아있다. 처음부터 이렇게 지어진 것인가는 확실치 않으나, 너른 앞의 정원 등으로 보아 행랑채 정도는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안채는 ㄱ 자 집으로 지어졌으며, 일각문을 들어서면 작은 동산으로 조성한 정원의 뒤편에 자리한다.

 

안채의 중앙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방을 서쪽으로는 마루방을 들였다. 아래쪽으로는 안방이 있고 이어서 부엌과 작은방을 꾸몄다. 집은 크지 않지만 단아한 품위를 지키고 있어, 이 집 주인의 심성을 한 눈에 알아볼 수가 있다.

 


안채의 한편 끝에 마련된 누마루방. 아래로는 아궁이를 내고 담벽을 까치구멍으로 둘렀다. 위로는 누마루방을 내어 누정과 같이 꾸몄다.
 
 
이 감찰댁의 안채의 특징은 대문을 들어서면서 바라볼 때 오른쪽 끝에 낸 마루방이다. 아래로는 아궁이를 두어 벽을 까치구멍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 위에 누정과 같은 효과를 낸 방을 꾸몄다. 기단을 장대석이 아닌 네모난 돌을 이용해 쌓은 것도 이 집이 주는 느낌이 검소하다는 것이다. 안채와 사당만이 남아있는 감찰댁. 그저 마음 편하게 둘러볼 수 있는 정겨운 집이다.

 

굴뚝과 우물의 여유로움

 


납작한 돌로 쌓아올린 굴뚝. 네모난 곳에는 그림을 그린 도판이 있던 자리로 보인다.


막돌로 쌓은 우물이 정겹다. 감찰댁은 화려하지도 크지도 않았다. 관리를 규찰하는 업무를 보는이답게 검소하게 지어진 집이다.
 
 
안채 뒤로 돌아가면 납작한 돌로 쌓아올린 높은 굴뚝이 하나 서 있다. 이 굴뚝의 가슴 높이정도에는 사방에 네모난 공간이 보인다. 무엇을 떼어낸 듯하다. 아마 이곳에 도판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 도판에 무슨 그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사방에 있는 떼어낸 자국으로 보아 멋스러웠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비어진 부분을 할 빨리 채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뒤편으로 돌아보니 안방의 뒤편에 우물이 보인다. 막돌로 쌓은 우물은 덮개가 다 부수어졌다. 집을 한 바퀴 돌아보니 정원과 정자 연못 등이 아우러져 있다. 간결하면서도 깨끗한 집이다. 집 주인은 감찰이란 직책에 알맞게 살아온 듯하다. 집은 비록 크지 않지만, 나름대로 주변에 대밭과 정원 등과 어우러지는 외암민속마을 감찰댁. 이런 여유로움에 파묻혀 지내는 시간이 정말 즐겁다.

  1. 참교육 2012.08.29 07:08 신고

    옛날에는 외제 특히 미제를 좋아했죠.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국산을 찾기 시작하더군요. 가장한국적인게 가장 세계적이다라면서요. 선조들의 지혜와 예술적감각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하게지요. 세월이 지날수록 우리 것, 우리선조들의 삶이 더더욱 진가가 나타날 것입니다. 선생님 같은 분들의 수고가 있기에... 태풍피해는 없으셨는지요? 거강 잘 챙기십시오.

  2. 공감공유 2012.08.29 07:45 신고

    정말 굴뚝 부터가 모습이 다르네요~ 쌓아올린 모습 부터가 다른게 조금 색다르게 느껴집니다 ㅎㅎ

충남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에는 윤씨 일가가 집단으로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 살던 마을이다. 이곳에는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를 비롯하여 윤일선 가옥, 윤승구 가옥, 윤제형 가옥 등이 남아 있다.

 

이중 윤일선, 윤승구, 윤제형 가옥은 하나의 커다란 솟을대문을 통해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공동으로 이용하는 솟을대문을 통해, 마을로 출입을 하게 꾸며진 곳은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살아야 집도 살아'

 


이 중에서 공동 솟을대문을 통해 들어가면 제일 끝에 있는 집이 윤제형 가옥이며, 네 채의 윤씨 고택 중 유일하게 사람이 생활을 하고 있는 집이다. 윤제형 고택은 1900년경 윤제선이 건립한 한옥으로, 현재 충남 민속문화재 제13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이 집은  ㄱ자 형의안채와 ㄴ자 형의 사랑채가 어우러져, 튼 ㅁ자 형의 평면구조로 중부지방 주택의 특징을잘 보여준다.

 

집을 촬영하고 있는데 마을 분인 듯 어르신 한 분이, 무엇을 그리 열심히 찍느냐고 물어 보신다. 신문에 소개를 하려고 한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집은 사람이 살아야 집도 사는 법이여. 이렇게 좋은 집들이 많은데 그 집만 사람이 살아. 여기저기 물건을 늘어놓아도, 사람이 살면 집도 숨을 쉬지. 저렇게 좋은 집들도 비워 놓으면 온기를 잃어서 결국엔 폐허가 되는 법인데..."

 

혀를 차시고 가시는 어르신의 말씀대로 사람이 살고 있는 윤제형 가옥은 온기가 느껴지지만, 굳게 문이 닫힌 딴 가옥들은 무엇인가 찬바람이 이는 듯하다.

 


잡석 기단 위에 올린 사랑채. 사랑채의 창호가 재미있다.

잡석 기단위에 세운 사랑채, 소재도 빈약해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랑채는 대문을 사이로 문간채와 구분하고 있다. 사랑채는 막돌로 기단을 쌓고, 전면 왼쪽 세 칸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툇마루가 끝나는 담장과 이어지는 곳에는 일각문을 두어 안으로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안에는 또 하나의 안담을 치고 그곳에도 일각문을 두어, 안채의 출입을 제한했다.

 

사랑채는 네모난 기둥을 썼는데, 소재가 모두 가늘고 사이가 넓어, 전체적으로 사랑채의 구성이 빈약해 보인다. 사랑채의 앞으로는 지금도 밭이 있어 전면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구성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에서 재미있는 것은 대문과 잇닿은 방서부터 방문을 낸 것이 칸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창호를 하나를 내고, 가운데는 두 개, 그리고 세 칸 째는 네 개의 창호를 사용했다.     

 


사랑채와 대문을 사이에 두고 꾸민 행랑채. 사랑채의 뒷벽이 돌출이 되아 ㄱ 자형으로 구성하였다.


대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 헛간과 광, 그리고 방을 들인 행랑채가 있다. 행랑방은 한 칸으로 되어 있으며 헛간과 광보다 측면이 반 칸이 좁다. 안으로 들어가면 사랑채가 정면 세 칸에 측면이 두 칸이나 되는 ㅁ자로 꾸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랑채와 행랑채를 합해 ㄴ자 형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안채의 끝을 활용한 가옥

 

윤제형가옥의 안채는 ㄱ자 집이다. 사랑채와 튼 ㅁ자로 마주하고 있는 안채는 ㄱ자로 꺾어지는 넓은 툇마루를 두어 방을 연결하고 있다. 안채를 바라보면서 맨 우측 끝에 있는 방을 높임 툇마루를 놓고 그 아래 한데 아궁이를 두었다. 툇마루의 끝에는 난간을 둘렀다. 이 방은 난간을 두른 것으로 보아 별당이나 누정의 용도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안채의 끝에 높임마루를 놓고 , 측면 앞으로는 넓은 툇마루를 놓았다. 높임마루 앞에는 난간을 둘러 누정으로 삼았다.

측면으로 돌아가면 방문 앞에 넓은 툇마루를 놓았는데, 양 벽을 바람벽과 벽장으로 막아 아늑하게 만들었다. 측면 방문의 위에는 '송죽헌(松竹軒)'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안채의 뒤로 돌아가니 재미있는 것이 있다. 안방 뒤편에 있는 굴뚝이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고, 그대로 벽을 타고 올라, 기와를 올린 추녀 안으로 솟았다는 점이다. 고택 답사를 하면서도 쉽게 보지 못한 굴뚝의 처리다.

 


안채 끝방의 측먄 방문 위에 걸린 송죽헌이라고 쓴 현판



안채 뒤편의 굴뚝은 지붕 끝 밖으로 나가지 않고 벽을 타고 올라 처마 안으로 솟아있다
 
.


헛간채와 별채

 

헛간채는 사랑채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일각문을 지나 서 있다. 나무 판자문을 달은 헛간채는 네 칸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헛간채는 사랑채와 안채와 이루는 ㅁ자형 구획 바깥에 서 있다. 안채와 행랑채의 사이로 보이는 또 하나의 건물은 별채로 보인다. 가운데 두 칸으로 된 방을 드리고, 앞에는 툇마루를 놓았다. 이 별채는 바깥 담장 모서리에 붙여지었다.

 

사람이 살고 있어 조심스럽게 집안을 다니면서 촬영을 해야만 했던 아산 윤제형 가옥. 마을 어르신의 말씀처럼 사람이 살고 있어야 집이 함께 산다는 이야기가 공감이 간다. 많은 고택을 보고 다니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집들이 난해하기는 해도, 그 안에 따스함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안채와 행랑채 뒤로는 담방 모서리에 붙인 건물이 있다. 별채인 듯 하다.


외곽 담장 모서리에 놓인 집. 윤제형 가옥의 별채인 듯하다.
  1. 참교육 2012.08.22 06:51 신고

    가옥 한가지만 공부해도 끝이 없네요.
    공동대문이라는 게 있었다니...역사공부 다시해야겠습니다.

  2. 출가녀 2012.08.22 07:57 신고

    정말 살마이 살고있는집에서는 온기가 느껴지네요~
    양파도 걸려있고 나무도 쌓여있고 왠지 따뜻해지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3. pennpenn 2012.08.22 07:59 신고

    송숙한 현판이 참으로 오래되었군요
    수요일을 수수하게 보내세요~

  4. 아이엠피터 2012.08.22 08:00 신고

    한옥을 그대로 방치하기 보다는 귀촌하는 사람에게 서약서를 받고 관리하는 조건으로
    임대를 해서 보존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 같은 사람에게 저런 집 주면 좋을텐데 ㅎㅎㅎ

  5. 공감공유 2012.08.22 08:05 신고

    집성촌을 보면 대표적인 예로 안동이 생각나더라구요...ㅎㅎ

    여기도 관광객들이 찾게하면 좋을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ㅎㅎ

  6. landbank 2012.08.22 08:20 신고

    아 정말 오래된 집이네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7. 예또보 2012.08.22 09:00 신고

    우리나라의 고택들도 이제 보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8. 김천령 2012.08.22 09:25 신고

    높임마루와 툇마루가 같은 방에 면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9. 가을사나이 2012.08.22 09:47 신고

    한옥인데도 가옥구조를 처음 보네요.

  10. 머니트리(money tree) 2012.08.22 09:55 신고

    비가 너무 많이 오네요..오늘 아침은 제법 쌀쌀 하던걸요.. 항상 건강 조심 하세요~

  11. 어신려울 2012.08.22 10:07

    우리 어릴적만 해도 안채. 사랑채. 헛간 . ㄷ 자로 살던집은 다 대감들이 살던집였어요.
    그집에 사는 사람들은 영원한 부러움의 대상이였고..

  12. 워크뷰 2012.08.22 11:19 신고

    사람이 살아야 집도살지
    이 말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13. 행복한다니엘 2012.08.22 11:29 신고

    이제는 제법 쌀쌀 하기 까지 하네요..사람 사는 세상이 계절 변화하는것 하고 비슷해 보여요..^^;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굴뚝 하나가 다락 밑에 숨어 있다. 꼭 그렇게 조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집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다락 밑에 굴뚝을 숨겨 놓았을까? 충남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 124-1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15호인 윤승구 가옥. 이 일대는 해평 윤씨 일가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 일대 가옥 중 윤승구 가옥은 상류층 가옥중의 하나로 ‘종가댁’이라고 한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솟을대문에 들어서면 작은 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는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중요민속문화재 제196호)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윤일선 가옥(도 지정 민속문화재 제12호)이 있으며, 이 가옥과 인접해서 윤승구 가옥이 있다. 위에도 충남 도지정 민속문화재 제13호인 윤제형 가옥이 자리하고 있어 집단으로 지정이 되어 있는 곳이다.


조선 헌종 10년에 지어진 ‘종가 댁’

윤승구 가옥은 상량문에 '승정 기원후 4갑진 12월 1일'이라고 적혀 있다. 조선조 헌종 10년인 1844년에 지어진 집이다. 윤승구 가옥의 특징은 대체로 잘 손질한 장대석을 이용하여 기단을 쌓고, 네모기둥을 사용했으나 기둥 위에 공포를 모두 생략해 간결한 구조를 하고 있다. 또한 집의 담장을 모두 붉은 벽돌로 쌓아올려 고풍스런 느낌을 주고 있다.

윤승구 가옥의 사랑채는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그 옆으로는 중문이 달린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의 문간채가 달려 있다. 중문을 열고 안채로 들어서려면, 안채가 마주 보이지 않도록 문간채의 끝에 맞추어 바람벽을 쌓았다.


윤승구 가옥의 사랑채(위)와 안채. 종가집인데도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딴 집에 비해 소박하게 지어졌다.

안채는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의 ㄱ자형 평면이다. 안채의 중앙부분에는 두 칸통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한 칸의 건넌방을 두고, 왼쪽으로는 두 칸의 안방을 들였다. 집의 전체적인 꾸밈에 비해 안채는 간소한 편이다. 종가 댁이라고 하면서도 결코 자랑삼지 않는 겸손이 배어있는 집 구조이다. 안방 앞으로는 한 칸의 부엌을 들였으며, 안채의 왼쪽 담장 너머에는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의 별채를 마련하였다.

낮은 굴뚝과 숨은 굴뚝에 사연이 있다

윤승구 가옥을 돌아보면 특이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굴뚝은 낮다. 윤승구 가옥을 답사하면서 마을 어르신 한 분을 뵈었다. 왜 이렇게 딴 집에 비해 굴뚝을 낮게 했느냐고 말씀을 드렸다.

“이렇게 굴뚝을 낮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자신을 낮추라는 교훈이여. 낮은 굴뚝이라고 해도 굴뚝의 용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 종가 집은 그래도 가문의 어른 역할을 하는 것인데, 종가 사람들이 먼저 낮아지지 않으면 가문을 욕을 먹어. 그저 낮은 듯 살고, 나서지 말라고 이렇게 굴뚝을 낮게 한 것이여. 우리 조상님들의 덕목이지”


낮은 굴뚝과 숨은 굴뚝의 의미는 종가집 사람으로 덕목을 가꾸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 굴뚝을 보면서 자신이 스스로 낮아지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고 하니, 선조들의 지혜에 감복을 할 뿐이다. 안채 뒤편으로 돌아가면 돌출된 다락 아래 숨어 있는 굴뚝이 보인다. 그저 높아지려는 마음을 억누르고, 그런 마음이 생길 때마다 굴뚝을 닮으라는 것이다.

종가 집으로의 품위를 지키는 윤승구 가옥

종가 집임에도 불구하고 윤승구 가옥은 딴 집보다 화려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종가 집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있다. 밖으로 향한 사랑채의 끝은 마루방으로 꾸몄는데, 창호를 색다르게 내었다. 집안의 방들은 모두 이중 창호로 하였으며, 안에는 범살창으로 하고 밖으로는 판자문으로 마감을 하였다.



대문채와(위) 중문 안의 바람벽, 그리고 별채로 출입하는 일각문(아래)

사랑채 곁에 난 중문을 들어서면 바람벽을 막아 놓았다. 이 바람벽도 담장 위에 기와를 얹어 멋을 더했으며, 좌측으로는 헛간을 우측으로는 방을 들였다. 사랑채를 보고 우측으로도 붉은 담장을 치고 일각문을 냈는데, 일각문 안으로 들어서면 안채와 담으로 사이를 막아 놓았다. 집 뒤로 돌아가니 대밭이 보인다. 이렇게 대를 심어 놓은 것도 늘 대처럼 뜻을 굽히지 말고, 곧게 살라는 뜻으로 가꾼 것이라고 한다. 그냥 집이 아니다. 모든 것 하나하나가 다 교훈을 담고 있는 집이다.

요즈음 조금 가졌다, 남들보다 더 배웠다라고 하면 그저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오르려고만 하는 사람들. 윤승구 가옥은 이런 사람들에게 일침을 놓는 집이다.

  1. 온누리 온누리49 2011.11.25 06:10 신고

    이사짐 정리를 하다가
    아우네 집으로 와서 글 하나를 올리고 갑니다
    인터넷 연결을 하려면 며칠 걸린다네요
    그동안은 천상 아우네 집 신세를^^
    오늘도 날이 차네요. 건강들 하세요^^

  2. 유키No 2011.11.25 06:30 신고

    굴뚝은 낮은 거에도 의미가 있군요 흠 ^^

    잘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3. 해바라기 2011.11.25 06:30

    빨간 바람막이 벽돌이 돋보이네요.
    자신이 스스로 낮아 지라는 교훈의 굴뚝
    의미를 새겨봅니다.^^*

  4. 주리니 2011.11.25 06:43

    집을 지을때도 이런 숨은 뜻이
    곳곳에 베여 있군요.
    요즘은 내 편리를 위해 집을 짓는 듯 하던데...

  5. garden0817 2011.11.25 06:50 신고

    이런곳에도 의미를 넣은 선조들의 지혜는 대단한것같습니다
    잘보고갑니다

  6. 참교육 2011.11.25 06:52 신고

    자신을 낮추라는 교훈.... 요즈음 기득권자들이 새겨 들어야할 말인 것 같습니다.

  7. 굴뚝 토끼 2011.11.25 07:21 신고

    추운 날씨에 이사는 잘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굴뚝 하나에도 담겨있는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 문화를 더 풍요롭게 해주는 느낌입니다.

  8. ♡ 아로마 ♡ 2011.11.25 07:50 신고

    낮은 굴뚝에도 이런 의미가 있네요 ㅎㅎ
    현대인들이 좀 새겨 들어야 할 것 같아요 ㅎ

  9. 안달레 2011.11.25 08:06 신고

    같은 공간을 보아도 아는 만큼 보이는게 다르다는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오늘도 가르침 감사하게 받습니다.!!!

  10. 귀여운걸 2011.11.25 08:23 신고

    아하.. 이런 깊은 뜻이..^^
    집 다락 밑에 숨겨진 낮은 굴뚝의 의미 잘 새기고 갑니다ㅎㅎ

  11. 샘이깊은물 2011.11.25 09:24

    멋진글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12. 아이엠피터 2011.11.25 09:42 신고

    저 사진을 보면서 제가 무엇을 자랑하고 사는지
    내가 무엇을 가졌다고 교만하고 있는지 생각해봤습니다.

  13. 클라우드 2011.11.25 11:08

    어릴적에 따땃한 구들장 아랫목이 그리운 시간이예요~
    감기조심 하세요!~^

  14. 2011.11.25 11:08

    비밀댓글입니다

  15. 사자비 2011.11.25 12:20 신고

    낮은자세로 살아라라는 의미로군욧.

  16. 아빠소 2011.11.25 12:59 신고

    굴뚝의 과학~ 조만간 책 제목을 뭘로 정할지 고심하셔야 겠는데요? ^^

  17. 행복한다니엘 2011.11.25 20:13 신고

    행복한다니엘 다녀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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