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늘 쓰고 싶었던 글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굴뚝’에 대한 글이다. 남들이 들으면 ‘문화재 답사가 맞아? 무슨 굴뚝을’이라고 핀잔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굴뚝은 단순히 연기를 내는 곳이 아니다. 물론 그 용도야 연기를 내보내 불이 잘 들게 하기 위한 용도지만 말이다.

굴뚝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참 그 종류가 어지간히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궁이나 반가의 집, 또한 민초들의 집을 다닐 때마다 난 굴뚝을 눈여겨보는 버릇이 생겼다. 굴뚝 하나에도 조형의 미가 있는 우리의 집들.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가 않는다. 그 첫 번째로 경복궁의 굴뚝을 둘러본다.


왜 하필이면 굴뚝이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그런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하나뿐이다. ‘굴뚝이 없는 집은 존재할 수 없다. 필요 없는 것 같지만, 굴뚝은 그 어느 것보다도 필요한 구조물이다. 그러면서도 굴뚝은 나름의 철학을 지니고 있다’

두 개의 보물을 지닌 경복궁의 굴뚝

사적 제117호인 경복궁은 현재 서울에 있는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정궁(正宮)에 해당하는 것으로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북궐’로도 불린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고 가장 먼저 한 일 중의 하나가, 바로 경복궁을 건립하는 일이었다. 태조 3년인 1394년 12월 4일 시작된 이 공사는, 이듬해 9월 중요한 전각이 대부분 완공되었다.

경복궁에는 두 개의 유명한 굴뚝이 있다. 바로 자경전 뒷담에 붙어있는 <보물 제810호인 십장생 굴뚝>과 <보물 제811호인 교태전 뒤 인공동산인 아미산의 굴뚝>이 그것이다. 이 두 개의 굴뚝만 갖고도, 경복궁의 굴뚝이 얼마나 딴 곳에 비해 아름답게 꾸며졌는지를 알 수가 있다.


십장생 굴뚝의 안담과 바깥담(아래)

목조건물을 본 단 자경전 십장생 굴뚝

자경전은 현재 그 전각 자체만으로도 보물 제809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자경전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교태전 뒤쪽 자미당 터에 조대비를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자경전 뒷담에 조형한 십장생 굴뚝은 궁궐의 굴뚝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것으로 꼽힌다.

십장생 굴뚝은 담의 한 면을 앞으로 한 단 돌출을 시켜 전벽돌로 굴뚝을 만들었다. 굴뚝의 전면 중앙에는 십장생 무늬를 조형전으로 만들어 배치하였으며,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벽면을 구성하였다. 벽면의 십장생 도판에는 해, 산, 물, 구름, 소나무, 사슴, 거북, 바위, 학, 불로초, 포도, 새, 국화, 대나무, 연꽃 등이다.


이 가운데 해와 거북 등은 장수를 뜻하고, 알이 많이 달린 포도는 자손의 번성을, 박쥐는 부귀를, 나티 불가사리는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기운을 뜻한다. 담장의 윗부분에 마련한 굴뚝의 덮개는 목조 건물의 지붕을 모방하였으며, 꼭대기는 집 모양을 본떠 만든 ‘연가(煙家)’를 10개 올려놓았다.

경복궁 아미산 동산의 굴뚝

보물 제811호인 아미산 동산의 굴뚝은, 굴뚝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독립적인 조형물이다. 아미산은 교태전 뒤에 조성한 인공동산이다. 교태전은 왕비의 침실이 있는 중궁전이다. 이 인공동산에 서 있는 굴뚝은 교태전의 온돌방과 연도를 연결이 되어있다. 이 굴뚝은 처음 경복궁을 지을 때 조성한 것이 아니라, 고종 2년인 1865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 조성한 것이다.

교태전 후원 인공동산인 아미산의 굴뚝 

현재 4개가 남아있는 아미산의 굴뚝은 육각형으로 굴뚝의 기둥을 마련하였다. 굴뚝 벽에는 덩굴, 학, 박쥐, 소나무, 매화, 봉황, 국화, 불로초, 바위, 사슴 등을 벽돌로 구워 만든 도판으로 장식을 하였으며, 벽돌 사이에는 회를 발라 면을 구성하였다.

하나의 후원을 아름답게 꾸미는 조형물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는 아미산 동산 굴뚝은 십장생과 사군자, 장수와 길상을 상징하는 무늬 및 악귀를 쫓는다는 상서로운 짐승들을 함께 표현하였다.

아미산 동산의 굴뚝은 우리나라 궁에서 만나는 굴뚝 중 가장 뛰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창경궁이나 창덕궁의 굴뚝들이 흙과 백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면, 경복궁의 굴뚝은 채색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

그 외에 경복궁에서 만나는 굴뚝들

경복궁의 연희장소인 경회루 옆에는 수정전이 있다. 현재 수정전이 있는 자리는 세종 때 한글창제의 산실인 집현전이 있던 장소이다. 이 수정궁 벽에는 연가를 세 개씩 올린 담에 붙은 굴뚝이 있다. 이러한 담에 붙은 굴뚝은 경복궁 어디서나 만날 수가 있다. 이러한 굴뚝의 특징은 모두 전벽돌을 이용하였다는 것이다.



교태전에서 조금 비켜난 곳에 난 일각문인 선장문 앞에도 아미산 동산의 굴뚝과 외형이 비슷한 사각형의 굴뚝들이 서 있다. 이곳에는 각종 십장생의 문양은 보이지 않고, 평범하게 조성을 하였으나 우직한 것이 장부를 상징하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교태전 주변의 굴뚝들은 문 옆이나, 혹은 벽과 벽이 마주하는 곳에도 굴뚝이 자리한다.


왜 이렇게 아름다운 굴뚝을 조형한 것일까? 그것은 굴뚝을 단순히 연기를 배출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한 것이 아니고, 하나의 완전한 독립된 조형물로 인정을 한 것으로 생각이 든다. 하기에 경복궁 안에는 숨은 굴뚝 찾기를 해도 좋을만한 많은 굴뚝들이 각양각색으로 숨어있다. 아이들과 함께 그것을 찾아내는 재미역시 쏠쏠할 것이란 생각이다.

단순한 굴뚝 하나에도 미학을 담아낸 선조들의 놀라운 예술세계. 지금 우리가 가장 눈여겨보며 기억을 해야 할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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