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4일, 전북 고창군 지역을 답사하는 날은 이상하게 나무만 둘러본 날이었다. 아마도 하루에 수령이 꽤 오랜 나무들을, 10여 그루는 보았을 것이다. 그 중 한 그루가 바로 고창군 대산면 중산리 313-1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제183호인 ‘고창 중산리 이팝나무’이다.

‘이팝나무’란 이름은 ‘이밥’ 즉 ‘쌀밥'과 같은 꽃이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즉 꽃이 필 때 나무 전체가 하얀 꽃으로 뒤덮이는 것이, 마치 쌀밥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설에는 여름이 시작될 때인 입하에,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목(立夏木)’이라 부르다가 이팝나무로 부르게 되었다고도 전한다.


천연기념물 이팝나무 중 작은 중산리 이팝나무

고창 중산리 이팝나무는 마을을 들어서면 마을 입구에 넓은 공원과 같이 곳이 있고, 마을 입구 쪽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는 나무들을 심어놓았는데, 그 가운데는 작은 이팝나무들이 보인다. 중산리 이팝나무는 수령이 약 250살 정도로 보이며, 나무의 높이는 10.5m 정도에, 가슴높이의 둘레는 2.7m 정도이다.

중산리는 마을을 들어서는 도로보다 낮은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그 중산리 마을 앞의 낮은 지대에 단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나무의 모습은 가지가 고루 퍼져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도로를 지나는 차량의 먼지 등으로 나무의 생육상태는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중산리 이팝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들 가운데, 작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저 나무에는 전설이 없어. 우리도 안타까워’

현재 우리나라에는 7그루 정도의 이팝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있으며, 지방 기념물 6그루를 합해, 모두 13그루가 보호를 받고 있다. 이 이팝나무들 중에는 마을에서 전해지는 전설을 지니고 있는 것들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36호인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목으로 섬김을 받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185호인 김해 신천리 이팝나무는 한쪽 가지가 길 건너 우물을 덮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가 우물을 보호한다고 믿는다. 이런 이유로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2월 말에 정성을 다해 제사를 올리는데, 이곳의 말로 ‘용왕(龍王) 먹인다’라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214호인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는 모구 7그루가 지정이 되어있는데, 마령초등학교 담장 곁에 서 있다. 마을사람들은 이팝나무를 ‘이암나무’ 또는 ‘뻣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팝나무가 모여 자라는 곳은, 어린 아이의 시체를 묻었던 곳이라 하여 ‘아기사리’라고도 부른다.

이와 같이 오래된 나무들은 대개 그 마을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그러나 중산리 이팝나무에는 그 어떤 전설도 전하지가 않는다. 마을 앞 정자에서 쉬고 계시는 어르신들께 중산리 이팝나무에 전해지는 어떤 이야기가 없는지, 말씀을 드려보았다.

“저 나무에는 아무런 전설도 없어”
“대개 천연기념물에는 무슨 전설 등이 있는데요.”
“그러니까 말여. 우리도 저 나무에 무슨 이야기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런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는 것이 없어. 우리들도 참 안타깝지”
“저 작은 나무들은 어디서 가져온 것인가요?”
“글쎄, 사람들은 저 큰 나무 자식이라고 하는데, 딴 곳에서 갖다 심은 것 같아”

그 외의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가 없었다. 천연기념물을 만나 무엇인가 잔뜩 기대를 걸었는데, 아무런 이야기 하나 못 건지는 이런 날은 맥이 풀린다.


우리나라의 크고 오래된 이팝나무는 꽃이 많이 피고 적게 피는 것으로, 그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팝나무는 물이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기 때문에, 비의 양이 적당하면 꽃이 활짝 피고 부족하면 잘 피지 못한다. 벼농사를 지을 때는 강수가 필요하므로 이팝나무의 생육에 따라 풍, 흉년을 미리 점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마을 어르신들조차 전설 하나 간직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중산리 이팝나무. 그러나 그 나무의 학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었다면, 그만해도 마을의 자랑이 아닐까? 중산리를 떠나면서 나무가 오래도록 잘 자라기만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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