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산11에 자리하고 있는 청계사. 2012년 첫 답사를 청계사로 정하고, 오후에 길을 나섰다. 청계사에는 조선조 때의 유명한 종장인 사인비구가 주조한 사인비구 동종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인비구의 종은 보물 제11호로 지정이 되어있으며, 청계사 동종은 보물 제11-7호로 지정이 되었다.

 

경기도 문화재재료 제6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청계사는, 신라시대에 처음으로 창건이 되어 고려 충렬왕 10년인 1284년에 크게 중창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조 연산군이 도성 안에 절을 폐쇄하였을 때는 봉은사를 대신하여 선종의 본산으로도 정해졌던 절이다. 청계사에 소재하고 있는 동종에 보면, 현재의 청계산은 숙종조 당시에는 ‘청룡산’으로 불렀다고 적고있다.

 

 

주종장 사인비구의 독특한 동종

 

사인비구는 18세기의 뛰어난 승려이자 종을 만드는 장인이다. 사인비구는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자신만의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보물 제11호로 지정된 8구의 사인비구의 범종은, 각기 독특한 형태로 제작이 되어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청계사 동종도 그 중의 하나이다.

 

사인비구의 동동 중에서 초기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것은, 보물 제11-1호인 포항 보경사 서운암의 동종이다. 서운암 동종은 종신에 보살상이나 명문이 아닌, 불경의 내용을 새긴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보물 제11-2호 문경 김룡사 동종과 제11-3호 홍천 수타사 동종은,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딴 종과는 다르게 독특하게 표현했다.

 

 

전통적인 신라 범종 형태로는, 보물 제11-4호인 안성 청룡사동종과, 제11-8호로 지정된 강화 동종이 있다. 보물 제11-6호로 지정이 된 양산 통도사 동종은 팔괘를 문양으로 새겨 넣어 딴 사인비구의 종과는 다른 모습이다. 용뉴 부분에 두 마리 용을 조각한 보물 제11-5호인 서울 화계사 동종과, 보물 제11-7호인 의왕 청계사 동종이 있다.

 

사당패의 내력을 적은 시인비구 동종

 

사인비구 동종의 면문에는 사당패가 언급되어 있다. 이는 조선조 후기에 사찰의 경제적인 면에 유랑집단인 사당패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랑집단은 조선조 말에는 ‘절걸립’이라고 하여, 절에서 발행한 신표를 갖고 걸립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청계사의 동종을 주조할 당시에도 이러한 사당패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청계사 동종은 청계사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한 때 서울 봉은사로 이전되었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 청계사 동종은 사인비구가 명간, 계일, 여석, 수강, 귀선, 임선 등과 함께 60세 이후에 제작한 종이라고 명문에 기록하고 있다. 전통적인 특징을 벗어난 이 종은 사인비구의 또 다른 주종의 형태를 볼 수 있다.

 

쌍룡으로 조성한 용뉴

 

청계사 동종의 특징은 종을 매단 용뉴를 쌍룡으로 조성을 하였다는 점이다. 이런 쌍룡으로 용뉴를 조성하는 것은 중국 종의 특징이기도 하다. 대개는 용뉴에 음통을 만들어 함께 붙이지만, 청계사 동종은 음통을 두지 않고 공기구멍을 뚫어 소리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종신에는 상대와 하대에 굵게 두 줄로 띠 장식을 둘렀는데, 상대에는 당초문으로 하였으며 하대에는 보상화문을 둘렀다. 상대 밑으로는 유곽을 내었으며 9개의 꽃에는 중앙에 유두가 돌출되어 있다. 그리고 그 유곽의 사이에는 보살상을 새겨 넣었다. 유곽의 아래에는 시주자들의 이름 등을 명문으로 적어 넣었다.

 

사인비구의 다양한 주종형태를 볼 수 있는 동종. 그 중에서도 청계사 동종은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동종이다. 그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들을 수 없음이 아쉽기도 하지만, 종의 아랫부분에 깨진 듯한 흔적이 보인다. 오랜 세월 인간의 억압된 영혼을 번뇌에서 구하기 위해 울렸을 청계사 동종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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