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움’, 역사를 이야기 하고 있는 공간이다. 영동시장 2층 영동아트포라 공간 한 벽에 영동히스토리움이 조성됐다. 영동시장은 20121025일 영동시장의 상인들과 작가들이 함께 아트상품을 디자인하고, 지역주민들과 영동시장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예술 창작공간을 조성했다.

 

이 아트포라는 각 분야의 작가들과 함께 아라라는 전시공간이 마련이 되어있으며, 영동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많은 노력을 했다. 특히 아트포라의 작가들은 영동시장에서 벌이고 있는 각종 기회전 등을 주관하고 있으며, 4월부터 11월까지는 매주 토요일 오후 지동교 위에서 작가들이 참여하는 체험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영동시장의 역사 한 눈에

 

영동히스토리움은 벽면에 영동시장의 개장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역대 상인회장부터 영동시장의 발전 등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가 있어, 영동시장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시장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다. 영동시장은 정조대왕이 1974년부터 1975년까지 화성의 축성을 마친 후 상업 진흥책을 펼치면서 시작이 되었다.

 

1800년대 초 당시의 상권은 북수동 일대에 성안시장과 성밖시장으로 구분이 되었으며, 성내시장은 9, 19, 29일에 장이서고, 성외시장은 4, 14, 24일에 장이 서는 10일장의 형태였다. 이 성외시장이 오늘 날의 영동시장, 팔달문시장, 지동시장, 못골종합시장, 미나리광 시장등으로 분화된 것이다.

 

 

축성 때 이미 시장이 있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영동시장은 이미 217년이란 장구한 세월의 시장이 된다. 화성을 축성한 뒤에 그 역사를 적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에 이미 이곳 팔달문 밖에는 시장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성을 축성할 당시부터 이곳에는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동시장 안에 있는 거북산당이라는 당집이 있어 시장 상인들이 일 년에 한 번 도당굿을 열었는데, 전하는 말로는 이미 축성을 시작하면서 굿을 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영동시장도 여타 시장과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의 독무대였다. 그들은 팔달문 앞의 모든 상권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1920년대의 수원 상권의 중심지는 팔달문 인근이었으며, 일본인들이 거의 모든 상권을 장악했다고 한다. 그렇게 어려운 시기인 1919117일 영동시장이 설립이 되었다.

 

 

양키골목으로 불린 영동시장

 

한국전쟁 이후 인근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각종 상품들. 양담배, C레이션, 커피, 초콜릿, 군화, 반합, 옷가지 등이 수원으로 흘러들었고, 그런 상품들을 영동시장의 상점들이 팔기시작하면서 영동시장은 양키골목으로 불렀다. 그리고 1969929일 영동시장 주식회사가 설립이 되었다.

 

1970년대는 팔달문 앞의 상권에 시장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경기남부 상권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은 팔달문 앞의 상가들을 겨냥한 많은 은행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자본금을 유치하기 위헤 노력을 했다. 1978년에는 영동시장이 증축공사를 하여, 시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2001년부터 한복 특화시장으로 자리를 잡은 영동시장은 제1회 한복미인 선발대회를 가졌으며, 2013생태교통 수원2013’에는 이클레이 임원들이 한복경연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한 눈에 시장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히스토리움. 영동시장에서 가장 먼저 시작을 했지만, 이제 수원시의 22개 전통시장도 이러한 히스토리움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저가형 대형 할인점과 경쟁을 할 수 있는 길을, 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찾아들도록 만드는 일이다. 영동시장은 이제 그 경쟁력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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