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들.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지 이상하게 집착을 하고, 무조건 자신이 먼저라야 한다는 사고를 가진 사람들. 한 마디로 피곤한 사람들이죠. 남을 위해 나눌 줄 모르는 이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은, 정말 팍팍한 세상일 듯합니다.

 

서로 마을을 나누고,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 아마도 그런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끔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담소를 하며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란 생각입니다.

 

 

장마가 들기 전 오른 산행(山行)

 

6월 중순부터 장마가 든다고 합니다. 장마가 들기 전 산행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15일(토), 1박 2일로 산행을 하기로 생각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산삼 몇 뿌리라도 건진다면, 꼭 마음을 먹고 주어야할 사람들이 있어서입니다. 가끔은 이렇게 캔 산삼으로 주변에 몸이 편치 않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는 했지만, 정작 마음을 먹고 주어야 할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마음을 전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산행은 마침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에 소재한 정수암 주지이신 진관스님이 함께 동행을 하기위해 밤길을 달려 오셨습니다. 만나자마자 인사를 하고 스님은 가방에서 망에 든 풀 같은 것을 내어주십니다.

 

“이것 금강산에서 채취한 산죽 말린 것입니다. 고혈압과 위장병, 당뇨 등에는 최고로 효능이 좋다고 하네요. 직접 채취해 그늘에서 말린 것입니다. 유리그릇이나 질그릇 등에 넣고 끓여서 냉장고에 넣고 마시세요. 건강에 참 좋다고 하네요.”

 

그것이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이미 감동입니다. 이렇게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서로 나누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 요즈음 사람들이 좋아하는 ‘힐링’이라는 것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이죠.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

 

15일 늦게 도착한 스님과 이야기를 하느라, 16일(일) 아침을 좀 늦게 먹고 난 후, 잠시 산수유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자니, 누군가 ‘형’하고 부릅니다. 여주에서 정원수 등을 가꾸는 동생입니다. 서울서 살다가 여주로 내려 온 이 동생도 남에게 주는 것을 엄청 좋아하는 친구입니다.

 

평소 잘 아는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이 애써 가꾼 나무들을 갖다가 심어주고, 주변을 아름답게 꾸미고는 합니다. 평소 잘 가는 아우네 집에 있는 블루베리 나무와 해당화 등도 모두 이 아우가 갖다 심어 놓은 것입니다.

 

“형, 오늘은 브로콜리 좀 캐 와야겠어요. 아는 동생이 재배를 했는데 제대로 자라지가 않아 상품가치가 안된데요. 밭을 갈아 업는다고 하는데, 몸에 좋은 것이니 가서 좀 캐오려고요.”

 

그렇게 동생들은 브로콜리 밭으로 가고, 스님과 함께 산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30도를 웃도는 날의 숲속으로 들어가니,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산을 오를 뿐입니다. 계속 산을 오르다가 보니, 산삼 몇 뿌리가 보입니다. 조심스레 주변 흙을 파내고 잔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정성스레 채취를 합니다.

 

그렇게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벌써 차에 가득 실어 온 브로콜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정성스럽게 다듬어서 한 봉지를 내어줍니다.

 

“오라버니는 이것 한꺼번에 다 드실 수가 없으니 드실만한 크기로 잘라 끓는 물에 데쳐서 냉동실에 보관하셨다가, 드실 때 꺼내 드세요.”

 

그림을 그리는 장화백도 정성스럽게 손질을 한 브로콜리를 한 봉지 내어줍니다. 이 집은 빈 손으로 오면, 집으로 돌아올 때는 항상 양손에 짐이 하나 가득입니다.

 

“형, 다음에 오실 때에는 오시기 전에 미리 전화를 해주세요. 냇가에 팔뚝만한 고기들이 있는데, 그것을 미리 잡아서 탕 거리를 준비해 놓을게요.”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나누는 마음이 풍족한 곳. 주말이면 세상 모든 일을 다 젖혀놓고 달려갈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는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이런 곳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을 듯합니다. 캐온 산삼 몇 뿌리를 손질을 잘 해 보관을 합니다.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저도 나누려고요.

절집을 가면 가끔 황당할 때가 있다. 이런저런 이유가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속인들 같지 않으신 스님들은 살아가는 방법이 우리하고는 다른 듯하다. 오늘 찾아간 금산사. 죽은 사람들의 천도제를 지내고 나서 제를 지낸 것들을 태우는 '소대' 옆에 불이문이 있다.

이 불이문을 나서면 다리를 건너 선원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그런데 앞장 선 분들이 내가 소대를 찍고 있는 사이 문을 나서 사라지셨다. 불이문 앞으로 가 문을 열라고 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손잡이가 없다. 그리고 밀어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문 틈으로 보니 밖에 잠굼장치가 있는 듯하다. 아니 그런에 어떻게 여길 나가신 것일까? 도를 많이 닦아 그냥 통과를 하신 것일까?

불이문. 그런데 손잡이가 보이질 않는다.


스님 한 수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문은 밖에서 열고 닫게 되어있다. 선원에 계신 분들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선원 쪽에서 문을 열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선원은 한참 먼 거리에 있어, 이곳까지 누가와서 문을 열어 불 수가 없다. 만일 선원을 나와 공양간에서 밥이라도 먹고 가려면 어떻게 문을 열까? 월담이라도 하는 것일까?

그런데 문에 무엇이 하나 달려있다. 흡사 표주박 같은 것이. 가까이 가서보니 위만 고정이 되어있다. 옆으로 밀어보니 밀린다. 구멍 안으로 보니 손을 넣을만 하다. 세상에 이 구멍으로 손을 넣어 빗장을 푸는 것이다. 간단한 장치 하나가 사람을 재미있게 만든다.

 


문 한편에 무엇이 달려있다. 가까이 보니 위쪽만 고정을 시킨 것이다.

이것을 밀어보니 수월하게 밀린다.

아래를 보니 빗장이 보인다. 아하~ 이렇게 문을 열고 닫았구나.

밖으로 나가보니 이 용도를 쉽게 알 수 있다. 간단한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재미있다. 어디다가 서 먹어야겠다.

"스님, 오늘 한 수 배우고 갑니다. 불이문에서. 오늘은 이 장치로 선문답 하나 품고 가렵니다. 아마도 닫아도 열고, 열어도 닫는 마음이나 아닌지 모르겟습니다. 세상에 마음 닫고 사는 저 윗전나리들. 이런 구멍 하나 가슴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열어볼 수 있게. 시장이 되겠다고 하시는 분들, 구청장이 돼야 한다고 고래고래 고함치시는 분들. 이렇게 구멍하나 만들어 가슴을 보이면 좋으련만. 괜한 기대는 하지 않으렵니다. "     

가을, 가을비, 단풍, 낙엽. 이 모든 것은 모두 가을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들이다. 이런 단어들에 익숙한 계절에 길을 나섰다. 오늘 아침 김제 금산사를 향했다. 아침 일찍부터 추적거리고 비가 온다. 이 비가 내리고 나면 날이 추워질 것이라고 한다.  

금산사에 일을 보기 위해 여기저기 다니다가 보니, 모악산에도 가을이 찾아들고 있다. 그 가을 속으로 들어가시는 스님의 뒷모습이 한가하다. 가을 비 속, 그리고 낙엽 속,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다리 위, 이 모든 것이 가을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 스님의 모습. 여유로움에 마음까지 편해진다. 역시 가을은 스님의 뒷모습에서 오는가 보다.


가을 낙엽 속으로 들어가시는 스님의 모습. 가을은 이곳에서 시작한다.




계곡에 노란 낙엽이 떨어졌다. 저 낙엽 하나하나가 다 가을을 이야기 한다. 그래서 가을 이야기는 풍요롭다. 그 한편에 아기 단풍나무 하나가 얼굴을 붉히기 시작한다. 아마 떨어진 노란 낙엽에게 무슨 소리라도 들은 것일까? 가을의 이야기는 점점 깊어만 간다.



절집 안 담장 위에 감이 익었다. 가을비에 젖은 감이 잎을 떨군다. 계곡에 떨어진 낙엽들이 화려하다. 마지막 계곡을 치장하는가 보다. 그리고 장작을 쌓은 뒤로 굴뚝을 따라 얼굴 붉힌 단풍이 따른다.



가을이 깊었다. 가을 낙엽속으로 들어가는 스님의 뒷모습에서 짙은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산1-1, 합천 해인사를 들어서다가 보면 좌측으로 탑과 비 등이 서 있다. 해인사 절 입구의 일주문에서 남쪽으로 약 50m 지점에 서 있는 이 유물 중 유난히 눈에 띠는 탑이 한 기 서 있다. ‘길상탑’이라 하는 탑이다. 이 삼층석탑은 일반적인 절의 건물 배치와는 무관하게 길가에 세워져 있다.

2단의 기단 위로 3층의 탑신을 세운 구조로 짜인 이 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양식을 갖추고 있다. 일반적으로 석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보관하는 것으로, 부처님과 동일시 여겨진다. 그러나 이 길상탑은 그런 용도로 세우진 것이 아니다. 길상탑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곳에 세워진 것일까?


1966년 탑에서 나온 복장물로 밝혀진 탑의 내용

길상탑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아오던 탑과는 다르다. 신라 때의 탑이면서도 크기가 작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현재 보물 제1242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길상탑은, 신라 진성여왕 8년인 895년에 해인사에 거주하던 훈혁스님이 조성을 했다고 한다. 벌써 이 탑을 세운지가 1,120년 가까이 된 고탑이다.

1966년 길상탑에서 나온 유물들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을 하고 있다. 탑에서는 작은 157개의 소탑과 함께 탑에 대한 기록을 적은 ‘탑지(塔誌)’가 발견이 되었는데, 모두 4장으로 된 이 탑지는 당시 신라의 대문호인 최치원이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탑지의 내용을 보면 신라 진성여왕 8년인 895년에, 통일신라 후기의 혼란 속에서 절의 보물을 지키려다 희생된 스님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이 탑을 축조하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탑 옆에 그 내용 중 일부라도 적었으면 좋았을 것을, 문화재를 답사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이렇게 탑의 외형만 소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치원은 어떻게 길상탑의 탑지를 쓸 수 있었을까?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에는 ‘서울(경주) 사량부(沙梁部) 사람이다. 역사 기록에 전하는 것이 없어 그 세계(世系)는 알 수 없다’라고 적고 있다. 가계를 알 수 없다는 것은 그의 가문이 진골이 아닌 육두품임을 뜻한다. 최치원은 육두품 출신으로 당시 신라의 진골제도로 인해 출세를 하지 못하게 되자, 당으로 유학을 떠난다.

12세에 당으로 건너간 최치원은 유학 6년 만인 18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를 하였다. 당에서 관직을 두루 거치던 최치원은 늘 고국인 신라로 돌아오고 싶어 했다. 동문선에 전하는 그의 시를 보면 그가 얼마나 고국을 그리워했는지 가늠이 간다.



가을바람에 오직 괴로이 읊나니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적구나
창밖 삼경에 비가 내리는데
등 앞의 외로운 마음 고향을 달리네.
(秋風惟苦吟/ 世路少知音/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신라로 돌아 온 최치원은 당에서 배운 정치와 행정경험을 토대로 신라를 개혁하려 했다. 그러나 진골세력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은둔의 길을 택했다. 40여 살 장년의 나이로 관직에서 물러난 최치원은, 경주 남산과 청량사, 지리산 쌍계사 등을 두루 돌아다니며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그렇게 방랑을 하던 최치원이 합천 해인사에 들어온 것이 언제인지는 정확치가 않다. 다만 해인사에 최치원이 거닐던 ‘학사대’ 등이 있고, <삼국사기>에는 그가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고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진성여왕 8년인 895년에는 최치원이 합천 해인사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때 마침 도적의 무리가 보물을 갈취하려고 하자, 스님들이 보물을 지키겠다고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다. 해인사에 머물던 최치원은 이를 보고 탑지를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치원이 적은 탑지의 기록은, 당시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단아한 자태를 보이는 길상탑

길상탑은 신라 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꼭대기의 머리 장식은 모두 다 없어진 상태로, 현재는 석재 하나를 올려놓았다. 탑신인 몸돌은 1층의 몸돌이 2, 3층보다 크며, 지붕돌의 층급받침은 모두 5단이다. 지붕돌인 옥개석의 처마는 반듯하다가, 네 귀퉁이에서 위로 치켜 올라 경쾌한 느낌을 준다.



기단은 바닥돌 위에 아래층 기단을 쌓고, 윗면에 얇은 괴임을 새긴 후 위층 기단을 얹은 형식이다. 위층의 기단은 하나의 돌로 조성을 해, 다른 탑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형태로 조성이 되어있다. 몸돌이 기단부보다 갑자기 좁아져 균형이 깨어진 듯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무리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스님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세웠다는 해인사 길상탑. 어쩌면 그 안에서 나온 유물들이 있어 더욱 귀하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길가에 서서 해인사를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 길상탑의 탑지를 적은 최치원은 이 시대를 동경하고 있지나 않을까? 정작 주인인 스님들보다 최치원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은, 학사대에 꽂힌 지팡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불산(四佛山) 대승사. 경상북도 문경시 신북면 전두리에 소재한 고찰이다. 대승사는 신라 진평왕 9년인 587년, 비단보자기에 쌓여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바위가 공덕봉 꼭대기에 내려앉자, 임금이 바위 곁에 절을 세운 것이 창건 기원이다.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로, 병풍처럼 둘러친 사불산의 자락 안에 자리한다.

『삼국유사』 권3 <사불산조>에 기록에 의하면 임금이 이 사면바위에 와서 절을 하고, ‘대승사’라 사액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기록으로 보아 대승사라는 사명으로 전래한 것이, 벌써 1430년 정도나 된 고찰이다. 진평왕은 망명비구에게 사면석불에 공양을 올리게 하였는데, 망명비구가 입적을 한 후 무덤에서 한 쌍의 연꽃이 피어났다고 전한다.

자장으로 점심공양을 마치고 선방으로 돌아가시는 스님들

묵언수행’을 하는 대승사

7월 22일 금요일. 아침 일찍 대승사로 향했다. 3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대승사. 몇 번이고 주변까지 찾아가 보았지만, 정작 대승사 일주문을 들어선 것은 처음이다. 작은 일주문 앞에는 ‘사불산 대승사’라고 적혀있고, 안쪽에는 ‘불이문(不貳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불이문을 지나니 넓은 주차장이 나타난다. 대승사의 살림을 맡아하는 원주스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공양간 한편에서는 아궁이에 커다란 솥을 걸고 불을 끓이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아궁이다. 장작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른다. 이 복중에 아궁이에 불을 때 공양을 지어야 한다니. 그래도 옛 정취가 있어 좋다는 생각이다.



대승사 일주문인 불이문과 주차장 위에 놓인 장독대

대승사에는 보물 제991호인 금동보살좌상과 보물 제575호인 목각탱부관계문서, 경북 유형문화재 제239호인 마애여래좌상과 유형문화재 제300호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이 있다. 이 중 금동보살좌상은 공개를 하지 않고 있으며, 대웅전에 모셔진 후불탱화인 목각탱화는 전국에 있는 목각탱화 중 가장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목각후불탱화는 나무를 깎아 돋을새김을 하고, 중앙에는 광배와 연꽃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별도의 나무로 깎은 아미타불이 안치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라다만 보아도 대단한 작품이라는 느낌이다.




대승사 대웅전과 보물 목각탱화, 그리고 대웅전의 꽃창상과 대웅전 앞에 서 있는 향나무

이 목각탱화는 길이 3.6m, 폭 2.7m이다. 원래는 영주 부석사에 있던 것을 옮겨왓다고 한다. 아미타불을 중앙에 배치한 이 목각탱화는 좌우로 5단에 걸쳐 협시상을 배치하고 있는데, 좌우에 3구씩 4열에 맞추어 좌우대칭으로 배열하였다. 시간이 없어 사면바위와 마애불을 오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다음번에 대승사를 방문했을 때는 그곳부터 들려보아야겠다.




대승사 꽃밭에서 만나 나비와 응진전, 그리고 응진전에 모셔진 나한상과 스님들이 수행을 하는 공간

짜장 한 그릇에 만족하는 스님들

공양간 앞에 놓인 동판을 친다. 나무망치로 치는 동판은 둔탁한 소리를 낸다. 여기저기서 스님들이 공양간으로 모여든다. 그리고 발우에 면과 짜장을 받아 섞는다. 한 그릇을 다 드시고 조금 부족하신 듯하다. 면을 더 넣어 드신 후 선원으로 돌아가는 스님들. 그 뒷모습이 참으로 한가해 보인다.



한 여름에 아궁이에 불을 때서 면을 삶아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수행이란 생각입니다

“잘 먹었습니다. 역시 스님이 만드신 것이라 그런가, 맛이 더 있는 것 같네요”

선원에 계신 스님들은 묵언 수행중이라 ‘맛있다’라는 말씀도 못하신다. 일을 보시는 스님이 오셔서 대신 말씀을 전하신다. 아마도 묵언 중이 아니시라면 꽤 많은 칭찬을 받았을 것을. 그렇게 공양을 하기 위해 찾아간 문경 대승사. 언젠가는 스님들의 생활을 소개할 수 있는 날이 올 수가 있을까? 점점 멀어져 가는 스님들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공양을 준비하는데 곁에서 떠나지를 않는 대승사 견보살 백구. 스님들의 공양시간을 알릴 때 치는 동판. 그리고 스님들의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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