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수원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앞에는 9개의 인정시장이 모여 있다. ‘인정시장이란 점포수가 50개 이상이 모인 상인회를 구성하고 있으면 등록시장이 된다. 현재 수원에는 22개의 인정시장이 있으며, 그 중 절반 가까운 시장들이 팔달문 앞쪽에 모여 있는 셈이다.

 

사실 인정시장이 모두 전통시장은 아니다. 정조대왕은 행정, 군사, 상업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갖춘 수원을 건설하기 위해, 국비 65천 냥이라는 내탕금을 수원 백성들에게 내주었다. 이 내탕금으로 공업과 상업을 촉진하였으며, 18세기 말 대도회, 상업 도시 수원의 번영을 가져오게 하는 기초를 마련했다.

 

 

당시 시장은 팔달문 밖의 남시장(일명 성밖시장, 현 영동시장 일원)과 북수동의 북시장(일명 성안시장)으로 구분이 되었다. 정조대왕은 해남에 거주하고 있던 고산 윤선도의 후손들을 불러들여, 화성 팔달문 앞의 장이 선비장으로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한 수원의 제지 수공업 발전을 위해 4천 냥의 금융지원을 통해 북부면 지소동(현재 장안구 연무동)에 제지공장을 차렸으며, 팔달구 우만동에 소재한 비구니 가람인 봉녕사는 두부제조를 전담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형 쇼핑몰 개관에 근심하고 있는 전통시장

 

얼마 전에도 수원역에 A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수원의 상권은 폭풍을 만났다고 했다. 당시의 후유증이 아직도 채 가시자가 않았는데, 이번에는 수원역 뒤편에 7만여 평이나 되는 매장을 갖게 되는 메머드급 쇼핑몰이 올 추석을 전후 해 문을 연다는 소식에 상인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번에는 지난번의 몇 배가 더 큰 폭풍을 맞을 것이라고 한다.

 

수원의 전통시장들은 이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시장별로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각 시장에 맞는 볼거리와 즐길거리 등으로 고객층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노력은 이전부터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사람들은 점차 그렇게 변해가는 전통시장의 모습에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거대한 거리 갤러리로 변한 로데오거리

 

전통시장들은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으로 변화를 시작했다. 문화교실 운영, 시장 방송국 개설, 상인대학 개설, 노래교실 운영 등 나름 많은 사람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변화를 가져 온 것은 남문로데오거리가 아닐까 생각을 한다.

 

한 때 젊음으로 넘쳐나던 남문 로데오거리는, 수원역에 A백화점이 문을 열고난 뒤 직격탄을 맞은 시장 중 한 곳이다. 젊은이들은 역전으로 옮겨갔으며 거리는 동공화 현상이 일어났다. 젊은이들이 떠난 거리에는 6개소나 있던 극장들이 모두 문을 닫아버렸다. 젊은이들이 떠난 버린 상가거리는 황폐한 모습으로 빈 점포와 건물들이 늘어났다.

 

 

그런 모습을 변화시키려고 애를 쓴 남문로데오상인회 김한중 회장의 노력이 컸다. 그동안 침울하던 로데오 거리가 밝아진 것이다. 지난 해 123남문 로데오 갤러리가 사람들에게 선을 보였다. 남문 로데오 갤러리 개관초대전인 아름다운 수원전이 열린 것이다. 22명의 지역에 연고를 둔 작가들이 작품을 내놓았다. 그리고 주차장 외벽은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거대한 거리 갤러리로 탈바꿈을 했다.

 

두 명의 작가들 눈길을 끌다

 

개관초대전에 이어 이번에는 두 명의 작가들이 펼치는 기획전이 23일부터 로데오갤러리에 걸렸다. 중앙대 출신의 이정용 작가와 단국대 출신의 이승용 작가의 기획전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32일까지 한 달간 전시를 하는 이번 기획전은, 지나가는 젊은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주차장 외벽에 마련한 거대한 거리갤러리가 점차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는 것이다.

 

이정용 화백의 그림은 인물을 묘사하고 있다. 눈을 감은 모습들이 사람의 가장 솔직한 모습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인물의 사실적인 표현이 대상의 주체를 소멸시키고 표현을 확대하여 회화에서 가질 수 있는 본질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하였다고 한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인물을 통해 독자적 표현 양식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승용 작가의 그림은 주변의 인물들에게서 느끼는 모델이 가지는 본래의 형상이 아닌, 그 대상에게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을 통해 재구상하여 반추상화 하였다. 이러한 것은 내면의 시각으로 보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으며, 보통 조각난 기억이 모여 형상을 만들어내듯 파편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옛 영화를 되찾고 젊음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한 무단한 노력. 그러한 마음들이 모여 이루어낸 극장의 개관과 청소년 문화공간, 그리고 거대한 길거리 갤러리와 작은 갤러리 공간. 많은 노력들의 산물이 과연 이 거리를 얼마나 바꾸어 놓을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수원시에서 주관하는 수원의 전통시장 이야기라는 책을 집필하기 위해, 수원의 22개 전통시장을 필진들이 찾아 나섰다. 넘어오는 원고를 보면서 수원의 전통시장들이 안녕한가에 대해 묻고 싶은 생각이다. 한 마디로 수원의 일부 전통시장들은 초비상이 걸린 상태라고 해야 할까? 전혀 안녕하지 못한 전통시장들이다.

 

그 안녕치 못한 이유는 바로 수원역 뒤편에 7만여 평이나 되는 대형매장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L그룹에서 쇼핑몰이 들어온다고 하는데 올 추석을 전후해 개장을 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몇 년 전인가 수원역에 A백화점이 문을 열었을 때도, 수원의 전통시장들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했다.

 

 

일부 전통시장은 초비상사태

 

아무래도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 그곳과 경쟁을 해야 하는 전통시장들로서는 안녕할 수가 없다. 넓은 주차장에 좋은 환경을 갖고 있고, 거기다가 개점 특별할인 행사 등을 하면서 손님들을 끌어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차례 쇼핑몰 측과 수원시 상인연합회 측이 회동을 가졌지만, 아직 이렇다 할 답은 없는 상태인 듯하다.

 

한 대학에 연구조사를 의뢰했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전통시장이 닥칠 위기가 살아지지는 않는다. 어차피 대기업에 맞서서 싸움을 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일부 전통시장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한다. 쇼핑몰과는 취급하는 물품이 다르다는 이유란다. 또는 거리가 멀어 직접적인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어느 시장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은 쇼핑몰이라는 곳이 어차피 모든 상품들을 골고루 판매를 할 것이다. 농축산품은 물론, 의류, 전자기기, 문구, 화장품 등에서부터 사람들이 생활에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취급을 할 것이다. 그래야 쇼핑몰로서의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거리가 조금 떨어졌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요즈음은 장을 보러갈 때도 한꺼번에 많은 양을 구입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차를 이용하는데, 전통시장들은 주차장을 확보하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다. 자연 주차시설이 좋은 곳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상생의 해결방법 찾아야

 

전통시장의 상인회를 이끌고 있는 상인회장들은 잠이 오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한다. 한 상인회는 A백화점이 개관을 한 후 200여개에 가까운 점포 중에 40개 정도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백화점 입점업체와 동일한 메이커를 파는 점포들이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백화점 입점 업체들이 메이커 본사 측에 주문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동네 구멍가게를 노리고 빵집이며 심지어는 순대까지 손을 댔다가 여론의 질타에 슬그머니 뒤로 물러난 적이 있다. 그런 양상으로 볼 때 상도덕은 이미 물 건너 간 것이 아닐까도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은 수원의 22개 전통시장은 어려운 가운데도 살아남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전통시장은 민초들의 삶의 근원이다. 이러한 전통시장이 또 다시 피해를 본다면, 그러한 아픔은 그대로 민초들에게 전해지게 된다.

 

 

해결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서로가 타협점을 찾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녹녹치가 않은 모양이다. 풍문에는 자신들의 상가가 더 많은 피해를 입기 때문에 보상을 더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상태로 과연 온전한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기는 한 것일까? 이제는 머리를 맞대고 상생의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정조대왕의 정신 잊지 말아야

 

수원은 딴 지역과는 다르다. 수원의 상권은 화성을 축성한 후 정조대왕이 직접 내탕금을 주어 마련한 장시이다. 하기에 이 전통시장들은 정조대왕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장시이다. 일찍 정조는 팔달산 아래로 읍치를 이전하였고, 이에 따라 수원장도 함께 이전되어 왔다. 정조는 화성을 축성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 새로운 개혁도시 수원을 꿈꾸었다.

 

 

정조는 서울 도성의 육의전을 본떠 화성 안에 시전을 열도록 하였다. 수원의 경우 포목전과 미곡전, 어물전 등 시전을 화성행궁 십자대로 주변에 개설되었다. 그리고 성 밖에 또 다른 장시를 개설했는데, 북문 밖 영화동과 남문 밖 구천동이었다. 북문 밖 장시는 오래지 않아 소멸하여 남문 밖 구천동의 성밖 장이 수원을 대표하는 장시가 되었다. 바로 지금의 팔달문 밖 전통시장들이다.

 

한 마디로 이 전통시장들은 정조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장시이다. 장사는 상도덕이 있어야 한다. 상도덕이란 상부상조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이런 상도덕을 무시한다면 정조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 된다. 수원의 전통시장. “오늘은 안녕하십니까?”라는 물음에 라는 대답을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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