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수원은 어디를 가나 마을만들기 사업이 한참이다. 그런 마을 르네상스사업은 허름했던 주거환경을 바꾸면서, 사람들의 삶의 질까지 바꾸어놓는 대단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재미를 들인 주민들은 점차 마을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재미를 들였고, 그런 재미는 마을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 있다.

 

저희 연립은 참 낙후가 된 곳이죠, 아마도 지은 지가 30년은 되었을 거예요. 지난 해 마을만들기 사업을 하면서 시에서 지원을 받아 그림을 그리고 텃밭을 조성했어요. 사람들은 저마다 시간이 날 때 직접 참여를 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요. 이제 지난해에 이어 2년차인데 이렇게 변했어요.”

 

 

만석거와 영화정을 뒤로 두다

 

수원시 장안구 정조로 1051번 길 4에 해당하는 송도빌라. 몇 개동의 높지 않은 오래 묵은 다세대 주택이 자리하고 있다. 뒤편으로는 만석공원이 있고, 그 옆으로는 수원시 배드민턴 전용경기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소나무 숲 가까이에는 옛날 교귀정이었던 복원된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만석거(萬石渠)’, 정조대왕이 수원 화성을 쌓으면서 정조19년인 1795년에 인공으로 축조한 저수지이다. 이 만석거로 인해 쌀 생산량이 1만석이나 늘어나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니, 정조대왕의 위민정책을 알만하다. 이 만석거는 일왕저수지, 교귀정방죽, 북지 등 많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만석거 한편에는 1996년에 복원한 영화정이 있다. 영화정을 교귀정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곳에서 화성유수 등이 서로 거북모양의 관인을 주고받던 데서 유래한다. 영화정을 지나면서 소나무의 멋진 늘어짐에 김탄을 하고 있는데, 다세대 주택 담장에 붙어 무엇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는 여인들이 몇 사람 보인다.

 

우리 손으로 그리고, 우리 손으로 만들었어요.”

 

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날이다. 시간이 오후 2시가 넘었으니 제일 더운 시간인데, 이 더위에 저 벽에 붙어서 무엇을 저리 그리고 있을까? 도로 한 편에 보니 물감 통들이 놓여있다.

 

 

이곳에 사시는 분들이세요?”

지금 무엇들을 그리고 계세요?”

벽화 그리고 있어요.”

덮지 않으세요?”

더워요 많이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 선 듯 벽에서 떨어지지를 않는다. 이 더위에 돈을 준다고 해도 그리기 쉽지 않을 텐데,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 낡은 건물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저 해바라기와 벽에 그림 보셨어요? 앞으로 돌아가면 더 좋은 그림들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앞쪽으로 돌아가 보았다. 다세대주택의 측변 벽면 가득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남녀노소가 손을 잡고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글씨를 써 놓았다. 보는 사람이 절로 행복해진다.

 

 

이 연립주택이 너무 오래되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이곳에 사시는 주부들이 시간이 날 때마다 벽에 그림을 그리고 텃밭도 조성했어요. 정말 예쁘죠?”

무엇이라고 대답을 할 것인가? 당연히 예쁘다고 대답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는 이분들.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들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는 것일까?

 

집이 넓고 좋은 아파트나, 넓은 전원주택에서 호화롭게 좋은 차타고, 좋은 옷 입고, 비싼 음식을 먹어야 잘 사는 것일까? 이분들을 보니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겠다. 오늘 무더위에 길을 걷다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을 만났다.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에 소재한 수원갤럭시 웨딩홀 3층. 6월 22일(토) 오후 7시 이곳에서는 색다른 행사가 열렸다. 시인인 선생님을 둔 제자들이 시인이 되어, 선생님에게 시집을 헌정하는 행사가 열린 것이다. 이날 주인공인 수성고등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운암 유선 시인이었으며, 시인인 제자 8명이 선생님께 시조선집을 헌정한 것이다.

 

팔달산 저 산자락을 온종일 날고 있어

제 산은 온통 청정 심연처럼 고요한데,

이제 막 고목 위에서 할딱이는 새 한 마리

속리산 깊은 숲속 마냥 놀다 올 것이지

그 옛날 맑은 공기 실켯 마셔 둘 일이지

네 목젖 매연에 감겨 욱신대고 있고나.

널 닮은 사람 하나 행궁동에 사는 환자

기침이 도지는 소리 엊저녁을 넘겼을까

반도가 앓고 있구나 수원 새도 앓는구나

 

유선 시인의 ‘수원의 새‘이다. 이 헌정 시집은 수성고등학교를 졸업한 시인인 윤승기, 이경렬, 김우영, 최영선, 홍승갑, 김준기, 이강석, 이달영 등 8명의 제자가 스승을 위해 발간한 헌정시집이다. 시집에는 1부는 스승인 운암 유선의 시조선집으로 묶여있고, 2부는 제자 8명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8권의 시집을 출간한 유선시인

 

유선 시인은 충북 보은 출생으로 국제대와 경기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그동안 8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세월의 강을 건너며(‘86), 메아리치고픈 내 목소리(’92), 겨울 나무로 서서(‘98), 꽃 피고 지는 사이(2000), 신귀거래사(’04), 전원일기(‘08), 간이역 풍광(’10), 남한강 유역의 창(‘12)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이 날 ‘수원의 새’ 출판기념회는 윤수천, 임병호 등 문인들과 가족 등 100여명이 참석하여 노 시인의 출판기념을 축하해 주었다. 내빈소개에 이어 제자인 김우영 시인이 스승의 약력소개를 하였으며, 시집헌정과 헌정사와 답사, 꽃다발과 기념패 증정 및 축사, 시낭송 등으로 이어졌다.

 

 

시인 최영선(수성고등학교 19회 졸업)은 권두시에서

‘(전략)용서하소서

저희들의 늦은 귀향을

선생님께도 몇 번

가슴 찢어지는 아픔이 있으셨지요.

땅이 무너지고 하늘이 내려앉는

고통의 시간도 있으셨지요.

그럼에도 묵묵히

그저 묵묵히 그 고통을

詩作으로 감내하시며 한결같이

초연한 미소로 우리들을 맞아주시던 당신은

푸른 소나무 위의 고고한 백학이십니다(하략)‘이라고 했다.

 

 

답사에 나선 유선 시인은

“올해가 77세라는 나이를 먹었다. 그동안 8권의 시집에 수록된 1304편의 시작과 100여편의 시를 함께 묶어 출판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자랑스런 수성고등학교의 사랑하는 제자 8명이 이렇게 압축된 시집을 출판하였다. 이 시집에는 내 시와 함께 8명의 제자들이 쓴 시도 함께 수록되어 있어 더욱 뜻이 깊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스승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헌정 시조선집 ‘수원의 새’는. 제자들의 시와 함께 스승의 시를 묶어 세상을 빛을 보게 된 의미 있는 시집이다. 이 출판기념회가 더욱 뜻이 깊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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