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과 12일 이틀 동안, 지인들과 함께 산행을 하고 돌아왔다. 여기저기 들려 집으로 오니, 문 앞에 커다란 박스가 하나 놓여있다. 그 전에 전화로 통화를 했기 때문에, 무엇인지 짐작은 간다.

 

오빠 아직도 혼자 있어?”

달라질 것이 없잖아

그럼 내가 다음 주에 밑반찬 좀 해서 부쳐줄게

바쁜데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고 그러냐. 아무 것이나 먹고살면 되지

 

그런 통화를 하고 난 후에 도착한 소포인지라, 그것이 무엇인지는 풀어보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구나.

 

정말 잊고 살았다.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을 그저 세상에 혼자인 듯 살았다. 이제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내가 혼자인지, 아니면 주변에 누가 있는 것인지조차 구별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사람이 혼자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로 할 짓은 아니란 생각이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주변이 그렇게 되었다.

 

아이들과는 어쩔 수 없이 전화도 하고 가끔은 얼굴을 보기도 하지만, 형제들과는 한참이나 잊고 산듯하다. 부모님들이 돌아가시고 난 뒤 살다가보니 그렇게 되었다. 막내여동생은 가끔 잊을 만하면 전화를 하고는 하지만, 천성이 차가워서 그런지 한 번도 살갑게 대해주지 못했던 것만 같다.

 

 

그런 막내가 전화를 하고 오빠 생각을 해서 반찬을 만들어 보낸 것이다. 상자를 열어본다. 별별 것이 다 들어있다. 어머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난 뒤, 늘 생각만 하고 있던 달래장까지 챙겨 넣었다. 그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오빠의 식성을 기억해내고 있는 막내.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진다.

 

나이가 먹으니 사람들이 그리워져

 

나도 이젠 나이가 들긴 들었나보다. 하긴 20년이란 세월이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그 오랜 세월을 혼자이면서도 그런 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에 감사를 할 수밖에. 아마도 주변에 워낙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늘 혼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듯하다.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나를 지탱한 것도 결국은 일이었다.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답사를 하고, 돌아오면 글을 섰다. 그러면서 혼자라는 생각을 잊은 것만 같다. 또 좋은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외로움 같은 것은 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주변 사람들에게 늘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아직 고맙다라는 표현 한 마디 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제 나이가 먹다가 보니 그래도 생각나는 것이 가족이란 단어인 듯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런 생각을 하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한 세상을 살아가는 수밖에. 그것조차도 나에게는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것저것 꼼꼼하게 챙겨서 보내준 마음

 

늦었다. 한참이나 제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늦었다. 그리고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다. 하지만 잊지 않고 마음까지 담아 보내준 막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막내에게 전화를 걸어 고맙다라는 말을 한 것도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다. 그 한 마디가 어찌 그리도 하기가 어려웠던 것일까?

 

이제는 그동안 외로움을 잊을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었던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해야 할 것만 같다. 지금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고마움이라도 표현을 해야 하지 않을까? 오랜 시간 잃고 살았던 입맛을 되돌릴 수 있도록, 마음까지 담아 보내준 막내의 선물에 오늘 저녁 밥상은 꽤나 푸짐하게 차려졌다.


벌써 40년이 지났다. 1971년 3월 8일 논산에 입대를 하여, 1974년 1월 24일에 제대를 하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꽤 오랜 세월을 군에 머물러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몇 번이고 ‘스님짜장’ 봉사를 한다고 군부대 식당을 들어가 보았지만, 옛 기억을 되살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만 같다.

어제(7월 3일) 이른 새벽 5시부터 준비를 하여 찾아간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부대 군 법당인 ‘호국충성사’. 빗길을 뚫고 달려간 곳에서 만난 군부대의 식당과 주방은, 예전에 보던 모습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군법당에 붙은 주방만 보다가, 처음으로 군 부대가 사용하는 식당의 모습을 본 것이다.


깨끗한 식탁엔 꽃도 있어

우선 주방의 청결상태도 깨끗하다. 많은 인원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식당안의 열기는 참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래도 전우들을 위해 땀을 흘리며 음식준비에 여념이 없는 취사병들의 모습은, 예전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런데 식당 안에 있는 식탁 위에 가지런히 꽃병이 놓여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잔반을 줄이면 지구가 건강해집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군부대에서도 환경을 생각하고, 장병들에게 더 좋은 식단을 제공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다는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식기세척 방법을 보고 나서 ‘ 참 많이 변했다’고

식당 옆 한 쪽에 붙어있는 곳을 들어가니 층이 지게 만들어 놓은 세척대가 보인다. 무엇인가 하여 들어가 보았더니, 그릇을 씻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낮은 순서에서 높은 세척기로 가면서 쓰여 있는 글은, 우선 잔반을 버리고 난 후 세척을 하라는 것이다.

제1단계 ‘흐르는 물 행굼’ - 제2단계 ‘거품 세척’ - 제3단계 ‘거품 행굼’ - 제4단계 ‘식기 세척’이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사진까지 곁들여 설명을 해 놓았다. 우리 때는 어땠을까? 훈련소에서는 자신의 식판을 관물대에 보관을 했다. 밥을 먹고 나면 물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어, 휴지로 대충 닦아놓고는 한 시절도 있었다.







마침 음식을 먹고 식판을 세척하는 병사를 보니, 쓰인 순서대로 잘도 한다. 세상 참 오래살고 보니 별 구경을 다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취사장에서 갓 튀겨낸 음식을 갖다 준다. 무슨 나물과 게맛살을 함께 튀겨 낸 것이다. 먹어보니 바삭한 게 맛이 있다. 이럴 때도 술 한 잔이 생각나는 것은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모처럼 찾아가 본 군부대 식당. 이럴 정도의 환경이라면 가볼만 하단 생각이 든다.

“어이 거기 군대 한 번 가 볼껴? 괜히 이리저리 핑계 대지 말고”

500년이면 강산이 50번이나 변하는 시간이다. 이 긴 시간 동안 한 자리에 뿌리를 박고 사는 나무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 그 나무가 꼭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지 않았다고 해도, 소중한 천연자원임에는 강조할 필요가 없다.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용곡리 407-1에 소재한 수령 520년의 느티나무. 보기에는 그리 오래된 나무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나무를 한 바퀴 돌아보면, 괴이한 모습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이 나무는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있으며, 고유번호는 강원 원주 10호이다. 1984년 6월 13일에 보호수로 지정이 되었다. 나무의 높이는 20m에 이르고, 둘레는 6,2m나 되는 거목이다. 나무 밑동에서 윗부분의 줄기에는 여기저기 외과수술을 한 흔적이 보인다. 나무는 일반적인 느티나무들이 가지를 위로 뻗는데 비해, 마치 춤을 추듯 둥긇게 뻗기도 해 기괴한 느낌마져 준다.



호저면 용운사지 곁에 서식해

호저면은 칠봉과 용운사지가 있어 유명하다. 여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흐르는 물가를 찾아 모여든다. 칠봉은 섬강상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곱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물가에 서 있어 절경이다. 이 칠봉을 지나 들어가면 용곡리가 나오며, 이곳은 예전에 용운사지가 있던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탑과 석불이 나란히 있는데, 이 느티나무는 그 옆에 서식하고 있다.

느티나무의 옆으로는 맑은 하천이 흐르고 있어, 늘 풍부한 수분이 나무를 자라게 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그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줄기에 가득한 이끼들을 보아도 깊은 세월을 느낄 수가 있다. 나무를 올려다보면서 나도 몰래 침을 삼킨다. 그것은 이 나무가 살아온 세월이 인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이기 때문이다. 이 나무가 처음으로 싹을 티었을 당시는 조선조 성종 때였으니, 그 세월이 짐작조차 가질 않는다.




500년 성상을 살아온 나무답게 나무는 기이한 모습으로 서 있다.

나무를 보며 기운을 얻다

나무를 보면 무엇인가 기운을 얻는다고 한다. 무슨 기운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그 오랜 세월을 한 자리에 서서 굳건히 자리를 지킨 용곡리 느티나무. 전국을 다니면서 보면 수 많은 보호수들이 있다. 이 나무도 그 중 한 나무일뿐이다. 그러나 용곡리 느티나무는 조금은 특이해보인다. 밑동서부터 여기저기 혹같은 것이 돌촐이 되어있다. 아마 오랜 역사의 흔적인 것만 같다.

줄기에는 푸른 이끼가 덮고있어, 이 나무가 얼만 오래되었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그 뿐이 아니다. 혹은 또 다른 혹을 만들어내며, 두껍잔등 같은 표피를 보호하는 듯하다. 자연적으로 스스로를 치유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보면 볼 수록 그 경이로움에 감탄을 한다. 수많은 천연기념물을 보아왔지만, 조금도 부족하지가 않다. 그래서 이 느티나무에게서 받는 기운이 남다르다.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느티나무.  그러나 그 나무마다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호저면 용곡리의 느티나무는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보이면서, 50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을 그렇게 서 있다. 이러한 나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연의 위대함을 배운다.

자연은 스스로를 정화하고, 치유하는 힘을 갖고 있다. 하기에 오랜 세월을 한 자리에 서서 나름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이 느티나무는 그 오랜 성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앞으로도 또 얼마나 오랜시간을 우리와 함께할 지 모른다. 그것이 바로 나무에게서 우리가 받아야 할 기운이란 생각이다.

탱자나무의 수령이 550년이라면 ‘엄청 나네.’라고 말할까? 아니면 ‘꽤 오래 되었네’라고 말을 할까? 그러나 탱자나무가 550년이라는 세월을 살았다고 하면, 그것은 대단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천연기념물 제78호인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가 수령이 400년, 제79호인 화도면 사기리의 탱자나무가 400년인 점을 보면, 천안향교 앞의 탱자나무는 그 수령상으로는 으뜸 일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탱자나무가 주로 영, 호남지방에 많이 분포하며 자란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탱자나무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된다. 탱자나무의 줄기에는 무수한 가시가 돋아 있어, 과수원의 울타리용 등으로 적합하다.


탱자나무 하나로 글을...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딴 분들은 여러 가지를 엮어 한 개의 글을 올리는데, 왜 꼭 하나만을 갖고 글을 쓰느냐’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웃고 말았다. 내 딴에는 꼼수일 수도 있다. 물론 주변에 많은 것을 엮어 글을 쓰면, 나도 편해서 좋기는 하다. 그만큼 글을 쓸 소재가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볼 것은 아니란 생각이, 하나만 갖고도 소개를 하자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작 한 가지 소재로 글을 쓰는 이유는, 현장을 다녀야 하는 나로서는 묶어서 글을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답사를 나가 1박 2일이나 2박 3일을 돌아다니면서 들고 온 자료가, 며칠 만에 밑천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그 다음을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다.


보호수로 지정딘 탱자나무. 밑동을 보니 이 나무의 수령이 보인다.

550년 한결같은 탱자나무

수령이 550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 온 나무는, 천안시 유량동 190에 소재한 충남 기념물 제110호인 천안향교 입구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일반적인 탱자나무들은 그 높이가 3m 정도인데 비해, 이 나무는 높이가 7.5m에 둘레가 1.3m나 되는 거목이다. 현재 충남 도지정 제110호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있다.

향교를 찾아갔다가 문이 닫혀있어, 담 밖을 맴돌다가 우연히 만난 탱자나무다. 이럴 때 ‘수지맞았다’라고 하는 것인지. 나무의 밑동을 보니 나무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저기 쇠기둥을 받쳐 놓은 것은 그만큼 가지가 넓게 퍼졌기 때문이다. 550년이란 세월을 살았으면서도 열매를 많이 달고 있다. 간수를 잘했는지 잎과 열매가 튼실해 보인다.



굵은 가지에는 세월의 흔적이 보이고, 잔가지들은 춤을 추는 듯하다. 세월의 춤을...

제멋대로 퍼져나간 줄기는 오랜 연륜을 말하는 듯, 여기저기 굵은 홈이 파여져 있다. 구불거리면서 자란 줄기가 마치 춤을 추는 것만 같다. 그 오랜 세월을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으니, 나무 스스로가 주변 환경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법을 익히지나 않았을까? 그 앞에 서보니 한낱 인간이라고 떠들어 댄 것이 부끄럽기만 하다.

탱자나무에게서 배우는 세상을 사는 지혜는 무엇일까? 아마 변함없이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수도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사는 인간들을 비웃는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구불거리는 가지들이 마구 웃는 것만 같다. ‘자연을 섬기지 못하는 인간들이 가소롭다’는 그런 웃음을. 오늘 이 탱자나무 한 그루가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거친 풍파를 다 이겨내는 것만이 온전한 삶이라는 사실을.



오랜 세월을 지냈으면서도 아직도 많은 열매를 달고 있다. 자연은 그렇게 스스로를 지켜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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