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이가 없다. 이 정도면 우리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만하다. 도대체 문화재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소중한 문화재를 쓰레기통 취급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한 마디로 참담한 심정이다. 831,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에 있는 사적 제382호인 고달사지를 찾았다.

 

혜목산 기슭에 자리한 고달사지는, 그동안 몇 번의 발굴과 정비작업으로 인해 주변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아직도 발굴 중인 이 고달사지에는 국보를 비롯한 보물들이 소재해 있는 옛 절터이다. 고달사지에 있는 보물 제6호인 원종대사 귀부와 이수가 그동안 몸돌을 복원해 놓았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것이다.

 

 

신라 때 창건한 혜목산 고달사지 석조

 

혜목산 고달사는 처음에는 봉황암이라는 이름으로, 신라 경덕왕 23년인 764년에 창건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처음에 절이 창건된 지 벌써 1250년이 지난 옛 절터이다. 이 절은 고려시대에는 왕실의 비호를 받는 절로, 광종 1년인 950년에는 원감국사가 중건을 했다.

 

고종 20년인 1233년에는 혜진대사가 주지로 취임을 했고, 원종 1년인 1260년에는 절을 크게 확장을 했다. 실제로 고달사지의 발굴조사에서도 남아있는 절터자리를 보면, 3차에 걸쳐 절을 중창한 흔적이 남아있다. 저만큼 새로 몸돌을 치장한 원종대사 탑비가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그쪽으로 가려는데, 중간에 보이는 경기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247호로 지정이 된 석조 안에 무엇인가가 널려있다.

 

 

이 석조는 각 면의 모서리부분을 부드럽게 다듬어, 세심한 부분까지 관심을 가지고 치석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석조의 내부는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밑 부분에서 호형으로 치석하여 장식적인 기교를 보이고 있으며, 바닥 중앙부에는 지름 7.5cm의 원형 배수공이 관통 되어 뚫려 있다.

 

이 외에 주목되는 부분은 모서리의 치석과 장식 수법이다. 특히 모서리는 바깥 면 중간에 1단의 굴곡을 두었으며, 상면 모서리에는 안쪽으로 연꽃잎이 말려 들어가는 듯한 양감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였다. 이처럼 석조의 모서리부분을 화형으로 치석한 경우는 보기 드문 예에 속한다. 이 석조는 고려 때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형문화재를 쓰레기통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

 

그런데 이 석조 안에 무엇인가를 담은 봉지와 종이박스, 음식을 조리하는 휴대용 열기구 등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니 누구인가 이곳에서 컵라면 등을 끓여먹고 그 쓰레기들을 비닐봉지에 담아 놓은 것이다. 라면박스 안에는 라면도 몇 개 들어있고, 휴대용 조리기구와 그 케이스도 있다.

 

담배꽁초도 보인다. 이런 모습으로 볼 때 이곳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라면 등을 끓여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 처리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먹고 난 것들을 하필이면 유형문화재인 석조 안에다 놓은 것일까? 마침 일요일을 맞이하여 고달사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구경을 하고 있던 한 사람은 어이가 없다면서 혀를 찬다.

참 대책 없는 사람들이네요. 어떻게 문화재 현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먹고 난 것들을 이렇게 문화재 안에다가 버젓이 쌓아놓을 수가 있는 것인지. 이 현장에도 문화재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이게 무슨 짓거리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창피하네요. 고작 이정도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문화재 현장을 지키고 있다니.”

 

문화재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소중한 문화재 안에다 모아놓은 쓰레기들과 조리기구. 그리고 그것을 방치하고 있는 관리자들. 이 사람들이 정신이 있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우리문화재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참담하기 짝이 없다.

  1. 오렌지수박 2014.09.01 07:15 신고

    세상에 어떻게 문화재 앞에서 저럴 수가 있는지.. 이렇게 문화재를 남겨 준 선조들에게 너무나 죄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2.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09.01 08:56

    참 그러고보면 개념상실한 사람들도 꽤 많은 듯 합니다..
    말로는 선진국하면서, 아직 갈 길이 멀어보이네요..
    월요일 아침부터 씁쓸해집니다...

  3. 참교육 2014.09.01 09:43 신고

    아는것만큼ㅁ 보인다고 했는데... 문화재에 대한 의식이 없는 사람들... 교육이라도 좀 시키고 난 후 일하시지... 답답한 현실입니다.

  4. 에스델 ♥ 2014.09.01 19:27 신고

    정말 보는 순간 참담합니다.
    문화재 안에 쓰레기와 조리기구라니요.....ㅠㅠ

  5. 워크뷰 2014.09.02 04:43 신고

    자주 목격하는 장면입니다
    문화재 관리 및 조경업체의 직원들은 문화재를 모르더군요!

  6. 영랑 2014.09.02 08:12

    문화재이을 알리는 팻말이 있었더라면 저정도는 않됬을텐데..

  7. 라랄라라 2014.09.02 08:44

    라면과 종이컵도 새것이고 포장상태가 좋은데
    왠지 설정분위기가 팍팍 느껴집니다

    • 에피우비 2014.09.03 19:08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저도 이 댓글에 동조하는 바입니다.^^
      이걸 발굴하는 노가다 하는 인부들이 이 글을 봤다면
      "아 씨.... 다 먹고나서 한꺼번에 치울라고 그랬는데 어떤놈이 그새 이걸 찍어서 인터넷이 퍼트렸네 젠장" 이라는 식의 이야기전개가 될수가 있는건데 말이죠^^
      뜯지 않은 새 라면들도 있었으면 언제와도 다시올텐데.....
      이 포스팅은 조금더 경과를 지켜보다가 몇주뒤에도 이 상태라면 그때 사진을 찍고 포스팅을 하셨으면....
      "아이고 저 나쁜 사람들" 이라고 할텐데... 까스버너도 새것처럼 보이는데 굳이 저걸 저기다 버리고 갔다는 느낌은 안드네요^^

  8. 음.... 2014.09.02 11:20

    어디가나 이런 인간들이 참 많아 문제지요. 국립공원 화장실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써있어도 거기다가 과일이랑 라면 박스채 버리고 가는 인간들이 많으니... 그런 인간들은 엄벌에 처해도 자기가 무슨 잘못한지를 모르는게 현실입니다.

  9. Anna 2014.09.02 11:50

    한국인들은 중국 욕할 게 못됨 그나저나
    쓰레기보단 새것 같은데 정말 쓰레기 맞는지?...그리고 당신은 그냥 지나치셨나요?이렇게 글로 쓸 정도라면 저라면 그자리에서 즉시 빼내던지 했을 텐데요..

  10. 노가다 2014.09.02 12:02

    일 하던중간에 잠시 보관(?) 해놓은거 아닌지요?... 일끝나고 가지고 가려고...

  11. ㅇㅇ 2014.09.02 14:11

    한국 평균적인 국민 수준인 거 같은데.

  12. 돈보다 사람 2014.09.02 17:04

    국민의 수준을 운운하기 전에 관리가 안됨을 먼저 봐야겠죠.
    푯말이 잘 되어 있으면 저럴리 없고.
    설령 누군가가 버렸다고 하더라고 저곳을 관리 하는 인력이 있다면 당장 치우고, 소중하게 다룰 것을 알리는 조치를 했겠지요.

    자율적 국민성의 부재도 있지만 반드시 장치가 필요한 곳에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이 바로 개발도상국의 형태이기도 합니다.

  13.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09.02 17:14

    참 화가 나네요......

  14. 정준규 2014.09.02 20:02

    컵라면과 종이컵이 새거로 보이는데 이거에 대한 얘기는 없군요

  15.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09.03 18:33

    예전에 석굴암갔을때가 생각나네요
    그래도 문화제인데 낙서천지에다가 쓰레기에..

  16. 에피우비 2014.09.03 19:11 신고

    에이 뭐 광화문도 불태우는 마당에 쓰레기 이렇게 버린게 뭐 그리 대수인가요 ㅎㅎㅎㅎ
    우리나라는 문화재에 대해서 무지한 나라인걸 어떻하겠어요 문화재들이 불쌍하죠....
    기왕이면 님께서 쓰레기통으로 갖다 버리는 그림을 gif파일로 만들어서 첨부했다면 좀더 멋드러진 그림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네요 하하하

  17. 빠숑♡ 2014.09.04 11:27 신고

    앞에 안내판도 있는 것 같은데...
    물건을 저렇게 넣어둘수 있다는게 신기할뿐이네요.......

  18.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09.11 16:08

    어떻게 저럴수가 있는지 보고 있으니 부글부글 하네요

  19.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09.11 16:08

    어떻게 저럴수가 있는지 보고 있으니 부글부글 하네요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50에 소재한 보원시지. 보물 제12호인 서산 보원사지 석조 (瑞山 普願寺址 石槽)’는 서산 보원사 터에 위치한 석조이다. 보원사는 고란사라고도 하며 사찰에 대한 역사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1959년 국보 제84호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 발견되면서 큰 관심을 끌었던 곳이기도 하다.

 

석조는 승려들이 물을 담아 쓰던 돌그릇으로, 원형과 팔각형, 장방형 등이 있다. 이 석조는 화강석의 통돌 일석을 파서 만든 직사각형 모양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석조의 형식을 보인다.

 

 

크기가 거대한 보원사지 석조

 

보원시지 석조는 규모가 거대하며 표면에 아무 장식이 없어 장중해 보인다. 내부 각 면에도 조각한 흔적이 없으며, 밑바닥 면은 평평하고 한쪽에 약 8정도의 원형 배수구가 있을 뿐이다. 이 석조는 안쪽과 위쪽에만 정교하게 다듬고, 바깥쪽에는 거칠게 다듬은 자국이 그냥 남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이 석조는 땅에 묻어두고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적 제316호인 보원사지는 상왕산 보원마을에 있는 절터이다. 보원사는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 사이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백제의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되어, 백제 때의 절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석조는 고려 경종 3년인 978년에 창건된 보원사의 석조이다.

 

 

다양한 용도로 사용한 석조

 

석조란 승려들이 물을 담아 쓰던 용기를 말하는데, 그 용도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금당 앞에 자리를 한 석조는 승려들이 예불을 들이기 위해 금당에 오를 때 손을 정갈하게 씻기 위한 것으로 사용했으며, 그 외에도 목욕을 하거나 마실 물을 담아두기도 했다. 또는 음식을 조리하기 전에 씻을 때 사용하기도 했다.

 

보원사지 석조는 장방형의 것으로, 길이 3.48m, 너비 1.75m, 높이 0.65m의 크기이다. 이 석조는 당시 보원사라는 사찰의 규모를 알려주는 좋은 유물이다. 석조의 벽 두 곳에 커다란 갈라짐 현상이 일어 깨어져 있는 보원사지 석조. 오랜 세월 속에서 자연스런 훼손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다. 좀 더 일찍 우리 문화재에 대해 신경을 썼더라면 더 완벽한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에서이다.

 

 

각종 보물들이 즐비한 보원사지

 

보원사지에는 몇 기의 보물이 남아있다. 그 중 법인국사 보승탑비의 기록에 보면 승려 1,000여명이 머물렀다고 했다. 그런 기록을 유추해 볼 때 보원사 당시에는 매우 큰 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보원사지에는 보물 제102호인 석조를 비롯하여, 보물 제103호 당간지주, 보물 제104호 오층석탑과 보물 제105호 법인국사보승탑 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보원사지 가까이에는 국보인 서산 마애삼존불을 비롯해 불교유적이 집중 분포하고 있어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손꼽힌다. 석조 하나가 주는 고찰의 의미. 문화재란 그것으로 인해 그 문화재가 갖는 역사적인 면들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소중하다. 그런 문화재를 작 보존하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책임이란 생각이다.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05.24 12:30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관리를 잘해야 할텐데..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문화재를 함부로 다루는 일들이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보원사지터와 석조도 잘 보존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행복한요리사 2013.05.24 15:51

    소중한 우리의 보물들인데
    아쉬움이 크셨겠어요.
    문화재를 잘 보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3. 대한모황효순 2013.05.24 17:26

    이런이런 진짜
    안타깝네요.ㅠ

  4. 벙커쟁이 2013.05.24 20:00 신고

    그래도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된 것인데 저리 관리가 안되고 있다니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잘 보고 갑니다.

  5. 행복끼니 2013.05.24 21:16

    정말 아쉽네요~~
    행복한 저녁되세요~^^

  6.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05.25 03:10

    우리것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건데.
    아쉽네요.
    잘 보고 갑니다.

참 어떤 때는 내가 생각해도 ‘미쳤다’라고 생각이 든다. 문화재 답사는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다. 만일 누가 이 40도를 육박하는 더위에 답사를 하라고 시켰다면, 길길이 뛰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답사를 하는 것을 보면, 아마 전생에 내가 우리 문화재에 큰 잘못을 했던 것만 같다. 이런 나를 두고 누군가 한 마디 한다.

 

“아마도 과거에 우리 문화재를 일본 놈들에게 팔아먹던 사람이었을 것” 이란다. 전생에 그런 죄를 지은 업보로, 이렇게 20년이 넘는 시간을 문화재를 찾아디닌다는 것. 그러지 않고서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이 더우나 추우나 그렇게 돌아다닐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야 알 수 없으니, 그만해도 참 다행이란 생각이다. 만일 정말로 그랬다면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있을 것인가?

 

 

하기야 지금도 그런 인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화재에 낙서를 하는 사람들. 문화재를 보호해야 할 위치에 있으면서도, 문화재를 방치하는 사람들. 그리고 소중한 문화재를 도굴하여 몰래 치부를 하는 사람들. 이 모두가 다 이 땅에서 사라져야만 할 사람들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참 고맙고 또 고맙다.

 

문화재의 보고 여주 고달사지

 

사적 고달사지,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일대에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던 사찰이었다. 고달사지에는 국보를 비롯한 보물, 그리고 경기도지정 유형문화재와 비지정 문화재 등 많은 석조유물들이 남아있다.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인 764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다만 사지에서 출토되는 많은 유물들로 보아, 신라말기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요즈음 고달사지를 가면 또 다른 발굴작업을 하고 있어, 고달사지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문화재가 출토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전 고달사는 한강을 끼고 있던 흥법사와 법천사, 거돈사, 신륵사 등과 함께, 한강의 수로를 이용한 교통 요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현재 고달사지에는 두 점의 석조가 남아있다. 삼국시대부터 제작되어 사용된 수조는 일정한 공간에 물을 담아 저장 하거나, 곡물을 씻거나 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수조는 일반적으로 돌이나 나무로 만들어져 석조 또는 목조가 많이 제작되었으며, 사찰이나 궁궐 등 규모가 크고 사람들이 많이 기거하는 건축 공간에 조성하였다.

 

새롭게 보인 고달사지 석조

 

고달사지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가-4 건물지에서 발견 된 석조는, 물을 담아 두기 위한 시설이기 때문에 한 돌로 치석, 조성하였다. 이 석조는 일부 파손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으로, 그 규모는 장변 321cm, 단변 149cm, 높이 98cm 이다. 석조는 한 돌로 치석되었으며, 평면이 긴사각형으로 표면을 고르게 다듬어 전체적으로 정연하면서도 정교한 인상을 주고 있다.

 

 

 

33도를 웃돈다는 8월 4일. 고달사지를 한 바퀴 돌면서 만난 석조 앞에는, 예전 답사 때 볼 수 없었던 문화재 안내판 하나가 서 있다. 석조를 설명하는 이 안내판에는 석조가 경기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247호로 지정이 되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이 석조를 살펴보니 각 면의 모서리부분을 부드럽게 다듬어, 세심한 부분까지 관심을 가지고 치석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이 석조를 보았지만, 이렇게 안내판을 보고 다시 돌아보니 모르고 있던 부분까지 알게 된다. 문화재를 자주 찾아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부분이다. 이 석조의 내부는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밑 부분에서 호형으로 치석하여 장식적인 기교를 보이고 있으며, 바닥 중앙부에는 지름 7.5cm의 원형 배수공이 관통 되어 뚫려 있다.

 

이 외에 주목되는 부분은 모서리의 치석과 장식 수법이다. 특히 모서리는 바깥 면 중간에 1단의 굴곡을 두었으며, 상면 모서리에는 안쪽으로 연꽃잎이 말려 들어가는 듯한 양감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였다. 이처럼 석조의 모서리부분을 화형으로 치석한 경우는 보기 드문 예에 속한다.

 

 

 

쌀을 씻기 위한 석조인 듯

 

이 석조는 전체적인 치석 수법과 고달사지의 연혁 등을 고려할 때 고려 전기 에서도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도 고달사지에는 또 하나의 석조가 있다. 한편이 심하게 훼손이 된 또 하나의 석조는, 지금은 중앙국립박물관으로 옮겨 간 쌍사자 석등지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어, 이는 예불을 드리기 전 손을 씻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유형문화재로 지정이 된 석조는 건물터 안에 있는 것으로 보아, 쌀을 씻기 위한 것이나, 식수를 담아두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 석조가 쌀을 씻기 위한 것이었다면, 당시 고달사에 얼마나 많은 사부대중이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경기도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조성 시기가 빠른 편에 속하는 고달사지 석조, 문화재는 보면 볼수록 눈이 맑아진다고 한다. 그만큼 많이 알아가기 때문이다. 고달사지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이 석조로 인해, 과거 고달사의 또 다른 일면을 유추해 낼 수 있다는 즐거움이 찜통더위마저 잊게 만든다.

  1. 온누리49 2012.08.06 21:24 신고

    예약 한 글입니다
    아침 일찍 길 나섭니다
    오며가며 들리렵니다. 오늘도 날이 무덥다고 하네요. 건강들 하시고요^^

  2. *저녁노을* 2012.08.07 06:12 신고

    ㅎㅎ그럴수도...
    전생의 업보..없애기 위해서...ㅋㅋㅋ

    정말 무덥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세요.

  3. 아이엠피터 2012.08.07 07:00 신고

    너무 무서운 이야기인데요 ㅎㅎ
    형님은 아마 예전에 문화재를 만들던 사람이 아닐까요?
    그래서 자신의 소중한 작품들이 훼손되는 것이 억울해서
    그토록 고생하며 찾아 다니는 것 같습니다.

  4. 김천령 2012.08.07 07:03 신고

    그럴 수도 있겠군요. ㅎㅎ
    아무튼 죄를 씻는다 생각하시고 열심히 다니십시오.
    무리는 하지 마시고요.
    그동안 다니신 것만 해도 거의 용서가 된 듯하오니...

  5. 참교육 2012.08.07 07:36 신고

    선생님의 고행을 보면 늘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이런 일은 문광부차원에서 해야할 과제가 아닐까요? 개인의 발품을 팔아 초인적인 노력을 하는 차원이 아니라 정부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6.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08.07 07:40

    한국은 폭염이라고 하던데 건강 조심해야겠습니다.
    전생의 업보는 누구에게나 있는거지요.ㅎㅎ
    문화재를 봐도 그냥 지나치는 습관 이제는 저도
    좀 고쳐야겠어요.

  7.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08.07 08:09

    안녕하세요..잘 지내시죠? 너무 오랜만에 오네요.. 그간 찾아 뵙지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조만간에 한번 찾아 뵙겠습니다. 너무 더운 여름 항상 건강 챙기시길 바라겠습니다.

  8. 광제 2012.08.07 08:33 신고

    오늘은 날씨가 완전 우중충이네요..
    먹구름이 잔뜩....금방 소나기가 쏟아질 기세입니다..
    요즘 날씬 장난아닌데...건강 유의하세요~~!

  9. 티런 2012.08.07 08:39 신고

    오늘은 더위가 좀 꺽일려나...
    기대하는 맘으로 시작해봅니다.
    항상 건강유의하세요~

  10. 아빠소 2012.08.07 08:47 신고

    욕조 아니었을까요? 저기서 귀족들이 거품목욕도 즐기고 이랬을거 같아요... ^^;;

  1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08.07 09:00

    이 무더위에 정말 대단하시네요 ㅎ
    잘보고갑니다

  12. ★입질의추억★ 2012.08.07 09:08 신고

    40도에 가까운 날씨에 정말 대단하십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요. 하루빨리 폭염이 꺾였으면 좋겠어요

  13. 카메라대감 2012.12.02 22:52 신고

    고달사지에서 석조는 못보고 온것 같은데 다음에 다시 가볼때 찾아봐야겠네요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22 운주사 경내에 소재한, 보물 제797호 운주사석조불감(雲住寺石造佛龕)을 보는 순간 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금동으로 목조각으로 만든 작은 불감을 수도 없이 보았지만, 이렇게 거대한 석조불감이 있다니.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이나 방을 뜻하는 것이다.

 

하기에 일반적인 건축물보다는 그 규모가 작다. 다탑봉 골짜기에 자리한 운주사 석조불감은 건물 밖에 만들어진 감실의 대표적 예이다. 다탑봉이라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운주사 일주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산의 정상에 이르는 동안 여러 기의 석탑과 불상을 볼 수 있다.

 

 

팔작지붕으로 꾸민 거대 석조불감 

 

건물을 본뜬 불감감실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양쪽 벽을 판돌로 막아두고 앞뒤를 통하게 하였다. 그 위는 목조 건축의 모양을 본떠 옆에서 보아 여덟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처럼 다듬은 돌을 얹어놓았다. 감실 안에는 2구의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등이 서로 맞붙은 모습으로 흔히 볼 수 없는 예이다.

 

불상을 새긴 수법은 그리 정교하지 않지만, 고려시대에 들어 나타난 지방적인 특징이 잘 묻어나온다. 이처럼 거대한 석조불감을 만든 유례를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등을 서로 맞댄 감실 안의 두 불상 역시 특이한 형식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고려시대의 거대석불의 특징을 그대로

 

불감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안에 계신 부처님의 상을 보니, 눈을 지그시 감고계시다. 누군가가 입을 훼손한 듯도 하다. 꺼멓게 보이는 부분이 아마 무엇인가를 갖고 훼손을 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부처님 스스로 말 많은 세상, 입을 다물어 버리셨는가도 모르겠다. 좀 더 멀리 떨어져 바라다본다. 그래도 석조불감 안에 좌정하신 부처님은 미동도 없다.

 

그저 세상사 다 접어두고, 관여하지 않으신다는 표정이다. 그래도 누군가 열심히 마음을 다하면 언젠가는 저 눈도 뜨시지는 않을까? 뒤로 돌아가 본다. 또 한분의 부처님이 앉아계시다. 등을 서로 맞대고 계신 두 분의 부처님들이 어떤 말을 우리에게 하는 것일까? 두 손을 모아 가슴으로 올린 부처님 역시 한일자로 굳게 입을 다물고 계시다.

 

 

 

그러나 찬찬히 올려다보면 그 알듯 모를 듯한 미소가 느껴진다.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저 두 분은 등을 마주하고 계시는 것일까? 한분은 인간세계를 바라다보면서 할 말을 잊으신 것이고, 또 한분은 피안(彼岸)인 운주사 안을 바라보면서 참 세상을 알려주시는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네 속 좁은 인간들이 그 뜻을 어찌 알리요. 하지만 운주사 불감 안에 계신 부처님들은 오늘도 인간들에게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계시다. 혹 그것이 세상을 바로 살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마디 일침은 아니었을까? 남을 먼저 생각하라는 그런 주문은 아니었을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에 스쳐 지나간다.

 

 

운주사 불감 안에 좌정하신 부처님을 바라보다가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만다. ‘맞습니다. 세상에 가장 더러운 것은 바로 저랍니다. 오늘 그 모든 것을 참회합니다.’ 눈을 들어보니 주변에 가득한 탑들 위로 초여름의 무더운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아마도 불감 안에 두 분이 매우 더우셨는지.

  1. 신기한별 2012.06.13 09:53 신고

    정말 부처님 답답하시겠어요.

우리나라에 99칸 고래등 같은 집들이 있다. 전북 정읍에 있는 김동수 가옥이 99칸이었으며, 경주 최부자집도 99칸이라고 했다. 그런데 충남 홍성군 갈산면 상촌리 갈산중학교 인근에 자리한 충남 민속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된 전용일 가옥은, 그보다 반 칸을 더 합한 99칸 반이라는 것이다.

현재 전용일 가옥에서 대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문은, 예전에는 사랑채를 지나 안채를 들어갈 수 있는 중문이었다고 한다. 99칸 반의 대저택. 전용일 가옥의 주인은 왜 이렇게 어마어마한 집을 지은 것일까?


99칸 반의 저택, 지방 토호의 상징인가?

99칸 반의 집이라니, 그 규모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아마 이 지역의 부농의 집이었을 목조기와집은 지금은 안채 28칸 정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1800년대 중반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전용일 가옥의 안채는 바람벽을 둔 중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대청과 온돌방을 두고, 좌우의 날개채를 달아 남향을 향한 집이다.

안채는 전체적으로 보면 ㄷ 자형을 띤 집의 구조지만, 사랑채가 떨어져 있어 튼 ㅁ 자형이다, 중문을 달린 중문채와 안채의 날개채 사이에는 쪽문을 낸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가옥구조로 축조가 되어있다.




예전에는 100칸이라는 집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한 칸을 뺀 99칸의 집을 짓는 것이 지방의 토호들이나 세도가들이 집을 짓는 방법이었다. 일설에는 100칸의 집은 궁에서나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대부가나 토호들이 100칸을 지으면 바로 모반이 된다고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 99칸에서 전용일 가옥은 그보다 반 칸을 더 달아낸 99칸 반의 집이었다고 한다. 집 뒤편으로 돌아가 후원을 보아도 이 집의 세를 알만하다. 현재는 안채를 중심으로 네모난 대지위에 높은 담장을 쌓고, 그 안에 안채만이 남아있지만 모든 것 하나하나가 전용일 가옥의 가세를 알기에 충분하다.



부재 등이 돋보이는 전용일 가옥

전용일 가옥의 사랑채 앞에는 연못이 있고, 연못 주변 건물에는 팔각 돌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이러한 석조 부재 등이 아직도 인근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당시에 돌을 깎아 기둥을 세운 건축물을 지었다고 하니, 아마도 지방의 사대부가들도 이런 집을 짓기가 어려웠을 것만 같다.

집안 곳곳을 살펴보면 이 집이 부재 사용법 하나서부터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쪽문의 문턱 하나에도 세심한 배려를 한 전용일 가옥. 조선 후기 건축 기술과 세련된 솜씨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전용일 가옥은 19세기 중반에 세워진 대표적인 양반집이다.



홍성의 대부호 양반집으로 알려진 전용일 가옥. 영원한 세도는 없다는 옛 말이 실감이 난다. 한 때는 99칸 반의 대부호답게, 그리고 지방의 세력가답게 인근 근동에서 이 집의 덕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고 했다는 한다. 현재 남아있는 안채의 규모나 그 사용한 부재들을 보면, 이 집이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알 수가 있다. 99칸 반의 영화로움은 사라졌어도, 그 자취는 집안 곳곳에 남아있다.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11.20 08:33

    99칸방이 왜 필요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것같아요 ㅎ
    저런집에서 살고싶네요 ㅎ

  2. 광제 2011.11.20 08:37 신고

    반칸의 의미가....ㅎㅎ
    어떻게 해서 반칸인지 몰라도..달리 보면 백칸이라고도 볼수 있겠는데요..
    여하튼 대단한 세력가의 집안입니다..
    편한 일요일 보내세요..날씨가 급추워졌습니다...

  3.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11.20 09:04

    예전 우리나라 대지주들 대단한 세력가들이었죠.
    저렇게 큰 한옥은 아니더라도 한옥에 살고 싶은
    생각 굴뚝같습니다.ㅎ
    좋은 일요일 되시길 바랍니다.

  4. 유키No 2011.11.20 09:07 신고

    헐 100칸의의미도 있군요 잘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

  5. 참교육 2011.11.20 09:44 신고

    윤보선 전 대통령도 99칸이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얼마나 많은 노예를 거느리느냐의 여부에 따라 가문의 위세를 차별화했으니 ... 고약한 문화 유산입니다.

  6. 펀제주 2011.11.20 09:58 신고

    저도 궁금합니다. 반이라는 기준은 어떻게 생겨나는건지. ㅎㅎㅎ
    노비들 숫자도 있지만 예전에는 식객들이 얼마나 묵느냐도 그 집안의 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들은것 같습니다.^^

  7. 신기한별 2011.11.20 10:28 신고

    100칸의 의미도 있군요. 잘 보고 가며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8. 비바리 2011.11.20 11:11 신고

    실지 이런 집이 있긴 있군요
    제주도에서는 상상이 안가는 집구조입니다.

  9. 돈재미 2011.11.20 11:12 신고

    99칸의 위세가 대단 했을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대로 이렇게 큰 집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조선의 부호나 사대부들이 식객들을 들일 양으로
    거대한 집을 선호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집에 얼마나 많은 유림들이 들락거리느냐?
    에서 위세를 가늠했을 것 같습니다.

  10. 대한모 황효순 2011.11.20 11:40

    청소 할람 완전 힘들었겠다.
    노비들~ㅠ
    그나저나 뭔 방을 그리도 많이
    만들었을까요.^^;

  11. *저녁노을* 2011.11.20 12:29 신고

    ㅎㅎ99칸...반...
    대단하네요. 그래도...

    분위기 너무 좋아요

  12.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11.20 12:51

    ㅎㅎ 안동에도 99칸집이 있지요...ㅎㅎ 임청각...ㅋㅋㅋ 안동댐가다가 보면 볼 수 있어요..ㅎㅎ 하지만.. 안동에는 워낙에 종갓집이 많은 탓에 99칸이.. 99칸으로 안보여요..ㅎㅎ 그래도... 임청각에 가면... 다른 한옥들과 달리..풍기는 기운이 다르다능..ㅎㅎ 아마도.. 임청각의 주인인 "석주 이상룡"이 1910년대에 온가족 80여명을 이끌고... 망명을 떠나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안동에 여행을 가시게 되면 가보세요..ㅎㅎ 지금은 이상룡의 손자분께서 살고 계시다고 하네요..ㅎㅎ 고택체험형식으로 숙박도 가능해요..ㅎ

  13. Zoom-in 2011.11.20 12:52 신고

    99칸의 위세를 떨치된 갑부들도 부귀영화도 세월에는 어쩔 수 없군요.
    얼마나 많은 식객을 거느렸으면 그리 많은 방이 필요한건지 대단합니다.

  14.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11.20 13:18

    규모가 대단합니다. 지금은 손이 많이 가지 않은 상태라 구석구석 허름한 곳도 있어보이지만 당시에는 더 위용이 대단했을 듯합니다.
    온누리님의 집문제도 잘 해결하시길 바랍니다.

  15. 클라우드 2011.11.20 15:11

    빈칸이 합해지면~~^^
    요즘은 저런 집에서 살고 싶어지네요~
    차가운 바람에 감기조심 하시길 바랍니다.^^

  16. 올매거진 2011.11.20 15:29 신고

    방이 많으면 여러 가족이 살기에 좋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세 식구가 한방에서 잡니다 방은 3개 ㅋㅋㅋㅋㅋㅋ

  17. 주테카 2011.11.20 16:17 신고

    조선왕조실록에 나오지요.

    아무나 다 단청을 칠하고, 금은 장식을 하고 있으니 이것들을 다 금지하고..
    집의 칸수, 높이를 제한하는 법을 마련했어요.

    조선이 만든 법 가운데 최악의 뻘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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