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집이 한창 전성기인 90년대엔 지동 순대타운 안에 떡집이 열 한곳이나 있었죠. 그때는 마을마다 떡 방앗간 하나씩은 다 있었습니다. 지금도 수원 전체에는 350개 정도의 떡집이 있어요. 떡은 잔치 집에서는 가장 선호하는 음식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잔칫집에서 떡을 하면 보통 100명분이 다섯 말은 했어요.”

 

팔달구 지동 순대타운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는 수인떡집. 이 집은 지동시장에서 가장 눈에 잘 띠는 떡집이다. 수인떡집 이태영 대표는 현재 우만 주민자치위원장이면서 지동상인회 상무이사를 맡고 있다. 이곳에서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벌써 27년 째라고 한다. 그동안 지동을 떠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건어물 등을 팔아

 

이태영 대표가 고향인 군산을 떠나 지동에 자리를 잡은 것이 1979년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지금의 지동 시장에서 건어물과 식품 등을 납품하는 점포를 지동 순대타운 안에 두었다는 것이다.

 

저희 가게 양편에 서울떡집과 신라떡집이 있었는데 그렇게 장사가 잘 되는 거예요. 1985년에 지동시장을 새로 지었는데 순대타운 안에 입주를 했더니 점포 양 옆에 있는 떡집들이 그렇게 장사가 잘되는 거예요.”

 

식품을 납품하는 점포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때만 해도 바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대형마트들이 역저기 들어오면서 매출이 줄어버렸다. 마침 서울떡집이 장사가 어려워지자 문을 닫기 전에 서울 떡집을 인수를 했단다. 그렇게 해서 떡과의 인연을 맺은 지가 벌써 27. 떡을 팔아 딸과 아들을 모두 대학을 가르쳤단다.

 

 

맛으로 승부하지 않으면 손님 끊겨

 

잠시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도 연신 전화가 걸려온다. 이태영 대표가 운영하는 수인떡집은 나름 단골들이 꽤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날마다 바쁘다고. 아마도 자신이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하면 이렇게 많은 단골들을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단골을 지키는 일은 좋은 배료를 엄선해 사용하고, 맛이 있어야 한다고.

 

저희는 재료를 가장 상품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맛이 있어야죠. 또한 지역 사람들과 교분을 쌓아야 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교분이 두텁다고 해서 다 단골이 되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떡이 맛이 있어야죠. 안면이 있다고 안심한다면 한 번은 사가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딴 곳으로 단골들을 빼앗기게 됩니다.”

 

 

이태영 대표는 또 한 가지 빠트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고 한다. 바로 지역을 위한 봉사가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많은 봉사를 하면서 사람들과 교분을 쌓아야 비로소 단골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장사들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봉사를 하면서 사람들과의 교분을 쌓았다고 하면 그 다음은 맛으로 승부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뷔페의 주음식이 지금은 장식용으로 변해

 

한창 결혼축하연 자리의 주음식이 떡일 때인 90년대에는 지금 저희 집 뒤편에 순대타운 안에 모두 11곳의 떡집이 몰려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떡집은 길가로 나오면 안 되는 줄로만 알았죠. 저는 이곳 지동시장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지동시장을 새로 짓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 떡집을 차린 후에 이 자리에서만 27년을 보냈으니까요

 

 

그렇게 한 바리에서 오래도록 떡집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지역봉사와 함께 맛으로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단골들이 수인떡집을 찾아온다고. 이태영 대표는 상인들이 의식구조가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한다. 봉사와 신의는 장사를 하면서 곡 필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저희 집은 이바지 떡으로 유명한데, 주로 단골들이 찾아오시죠. 그 덕분에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밖으로 과감하게 나온 것이 주효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고 순대타운 안에 있었으면 이렇게 장사가 잘 되지는 않았겠죠.”

 

지동시장 수인떡집. 상인회 상무이사를 맡아 일을 하면서도 열심히 떡을 팔고 있다. 떡은 좋은 재료와 맛,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원만한 인과관계라고 하다. 앞으로도 더 많은 유리 떡을 개발하겠다는 이태영 대표. 주문을 받아 준비를 하는 손길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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