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지동이라는 마을 같은 곳은 없을 듯하다. 이 마을은 정이 많고, 이웃과 늘 함께 하는 마을이다. 아마 사람간의 정이라는 것이 가장 많은 마을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수원 화성을 끼고 있는 지동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가끔 골목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곳이 바로 지동이기 때문이다. 지동은 벽이 없는 마을이다.

 

26일 오후 지동 벽화골목에 시인의 벽이 마련되었다. 수원시인협회(회장 김우영)가 주관한 이 행사에는 고은 시인을 비롯해, 지동에 거주하는 아동문학가 윤수천 선생, 수많은 시인 제자들을 배출한 원로시인인 유선 선생 등 많은 시인들이 함께 자리를 했다. 시인의 벽은 지동어린이집 건너편 벽에 마련이 되었다.

 

 

주민들 막걸리 등 준비

 

시인들이 찾아와 벽에 시를 직접 쓰는 일도 큰일이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시인들이 마을을 방문한다고 하자, 지동 새마을지도자회에서 직접 막걸리 등을 준비해 시인들이 목을 축이면서 글을 쓸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또 마을에 사는 상인들은 순대 등 먹거리를 준비해 찾아오기도 했다.

 

이런 동네가 다 있네요. 참 정이 넘치는 곳입니다. 이렇게 정이 많은 마을에 와서 벽에 글을 쓰고, 또 자원봉사자들은 기다렸다가 일일이 코팅제를 바르고. 참 보기와는 전혀 다른 동네네요. 지동은 열려있는 마을이라고 하더니, 정말입니다.”

열려있는 마을. 지동은 담이 있어도 언제나 이웃과 소통을 하면서 살아간다. 벽화 길을 조성하면서부터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시를 쓰러 온 한 시인은 연신 지동 칭찬에 여념이 없다.

 

 

30명을 초대한 고성주 회장

 

오후 2시부터 시작한 시를 쓰는 작업이, 330분쯤 마무리가 되었다. 30여명의 시인들이 찾아간 곳은 지동 271-124호인 경기안택굿보존회. 마당에는 삼겹살과 상추 등이 준비되어있다. 불판과 술도 마련하였다. 몇 사람이 연신 술과 고기 등을 날라낸다. 적은 인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많은 사람들을 대접한 것이다.

 

경기안택굿 보존회 고성주(, 60)회장은 이 집에서 40여 년을 살아왔다. 어려서부터 자란 곳이기 때문에 마을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하지만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매년 자비를 들여 경로잔치를 연다. 그리고 초복 날이 되면 삼계탕을 끓여 어르신들을 대접한다.

 

 

올 초복에도 삼계탕 180그릇을 어르신들께 대접을 했다. 초복 날이 되면 지동에 사시는 어르신들이 이 집으로 모인다. 마당이고 방이고 빈틈이 없다. 거기다가 음료수며 과일까지 대접을 한다. 그래서 어르신들을 제대로 공경할 줄 아는 사람으로 통한다. 지금 같은 세상에 누가 이렇게 자비를 들여 많은 인원을 대접할 수 있을까?

 

정말 이분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맞아 먹을 것을 준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죠. 이런 분들이 지동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지동은 정말 행복한 마을인 것 같습니다.”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던 한 시인의 말이다. 열려있는 마을 지동. 그리고 이웃과 함께 소통을 하며 살아가는 지동사람들. 지동이 사람살기 좋은 마을이라는 것은, 이렇게 이웃을 위할 줄 아는 사람들이 살기 때문이다.

휴가 3일 째다. 산에 오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아침부터 비가 쏟아진다. 잠시 후에는 뇌성벽력까지 치면서 쏟아지는 비로 산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비가 이렇게 오는 날 산을 오르다가 보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길이 아닌 곳을 찾아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미끄러운 바위가 위험하기 떄문이다.

무료하게 하루를 보낸다는 것도 힘든 일이다. 아우녀석은 휴가인데 그저 푹 좀 쉬라고 하지만, 쉬는 것조차 편하지가 않으니, 성질머리 하고는 참 희안하다. 그렇게 하루 종일 있다가 오후 3시가 지나 먹기 시작한 막걸리 파티다. 여주는 쌀이 좋아서인가 막걸리 맛이 일품이다. 몇 순배가 돌았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사람들을 모아본다. 마침 여주에 작업을 하려고 내려온 지인이 있길래 무조건 초청을 했다.

여주에 있는 동생들과 지인들이 모여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나 중 아니거든요"

지인과 함께 찾아온 여주에 사는 또 다른 아우녀석. 늘 머리를 깎고 다닌다. 시원하기도 하겠지만, 개성이 있어 좋다. 가끔은 내가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 모델이 되기도 하는 아우다. 삼겹살을 사갖고 찾아온 아우는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만든다. (사)민예총 경기지회장 일을 맡아하기 때문에 늘 바쁘다. 그런데 옷에 보니 이상한 글이 가슴에 쓰여 있다.

'나 중이 아님'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물어보고 포복절도를 할 뻔 했다. 평소 개량한복을 자주 입고 다니는 아우녀석이 머리까지 빡빡 밀었으니, 잘 못 보면 영락없는 스님이다. 지나는 사람들이 가끔 합장을 하고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한 번은 어느 여자분이 나더러 어느 절에 계시느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무엇이라고 했는데?"
"마덕사 주지라고 했죠"
"마덕사는 또 무엇이여"
"아 ~ 마누라 덕에 사는 사람들 말이죠"
   

그래서 생각을 하다가 가슴에 영어로 '나중이아님'이라고 적었는데 잘 몰라보더라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이제는 한글로 적고 다닌다고 한다.


 늘 웃음을 주는 아우녀석. 벌써 20년 지기이다.

'난 마덕사 주지예요'

사람들은 늘 마음에 여유를 갖고 싶어한다. 아우녀석만큼 여우를 갖고 사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매사에 긍정적이다. 그런 이유도 마덕사 주지이기 때문이란다. '마누라 덕에 사는 사람들'을 줄여서 마덕사 주지라고 하는데, 언젠가는 인천인가를 놀러갔다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스님은 어느 절에 계세요?"
"마덕사에 있습니다"
"마덕사가 어디 있는데요. 한 번 찾아뵐께요"
"여주에 있습니다"

재미있자고 하는 말이다. 아우는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굽는 예술가다. 3대째 도공의 집안으로 맥을 잇고 있다. 그러면서도 활발하게 활동을 한다. 어디를 가나 1시간 안에 주변 사람들을 다 지인으로 만드는 재주도 갖고 있다. 아마 이런 기가막힌 발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한다.

휴가 마지막 밤에 정말 즐거운 추억거리 하나를 만들었다. 시골이 아니었다면 이런 푸근한 마음들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 내가 휴가 때 시골을 찾는 이유는 바로 이런 여유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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