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역시 산이 좋다. 높지 않은 산을 가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정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으로 몰려든다. 단풍이 제철을 맞으면, 산을 오르는 발길들은 더욱 잦아든다. 그래서 가을 산은 풍성한 이야기꺼리를 만들어 주는가 보다. 그 이야기 중에는 참 좋은 내용도 있지만, 참 씁쓰레한 내용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씁쓰레한 내용이, 산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산 인근이나 아니면 시내 한 복판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는 일이다. 다만 씁쓰레한 일을 목격한 것이 산일뿐이다. 참 산에게 미안하다. 괜히 정신적 오염을 시킨 듯해서 말이다.


산길 걷는 남녀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출장길에 수원에 있는 광교에 올랐다. 광교 저수지 안쪽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그 안에 볼일이 있어 오르는 길. 갑자기 무릎이 심하게 저리다. 잠시 쉬고 있는 동안에 사람들이 내려온다. 남녀가 내려오는데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이 든다. 손을 꼭 잡고 내려오는 사람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음소리가 숲길을 메아리친다.

저만큼서 오는 모습을 보면서 ‘참 아름다운 연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요즈음에는 친구 녀석들도 건강을 위해 부부가 같이 등산을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실실 심통이 나기도 한다. 그건 머 어쩔수 없이 못된 성격 탓으로 돌리고는 있지만. 가까이 오는 두 사람의 대화소리가 들린다.

“그런 자기야 이번에는 어디로 가지. 1박으로 갈까?”
“그래도 되겠어?”
“괜찮아 일 다해놓고 가면되지”


부부사이인 듯도 한데, 대화가 조금 야릇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참 세상을 왜 이렇게 남을 의심하며 살지?‘ 하면서 스스로를 탓한다. 그런데 휴대폰이 울린다.

이런 남편이 또 있다니

여자가 잡았던 손을 놓고 전화를 받는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뒷골이 찡하다.

“여보, 나 오늘 친구하고 산에 왔어. 아침에 등산 간다고 그랬잖아. 저녁에 일찍 들어갈 게”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부부인줄 알았더니 전화를 받고 ‘여보’란다. 그러면 저 여자는 남편이 한 두엇 되나?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시간이 이제 점심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둘러댄다. 도대체 어디 살기에 저녁까지 무엇을 하려고. 참 혼란스럽다.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순간적으로 두 사람 다 눈길을 피하고 걸음을 빨리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리나케 산을 내려가는 두 사람. 참 못 들을 것을 들었단 생각이다. 하기야 자신들이 좋아서 서로 사랑을 하겠다는데, 내가 참견을 할 필요는 없다.

요즈음 드라마고 무엇이고 맨 이따위 짓을 하는 것들만 보여주고 있으니 사람들이 무엇을 배우랴. 그런 방송을 보면서 사람들은 잠재적인 기억 속에 그런 것이 각인이 되어 나쁜 것이란 사고를 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참 가을 날 기분 좋게 산을 오르다가, 머 밟은 기분이 되어버렸다. 그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땀을 흘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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