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답사를 하다가 보면 기이한 것들을 만나게 된다. 가끔은 해학적이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가슴이 따듯해지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통해 과거 우리네 선인들의 숨결을 기억해 낼 수가 있다. 어디를 가거나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 있는가해서이기도 하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우리네의 사대부가와 민초들의 삶이, 그렇게 각박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나름대로 없는 사람들을 위해 베풀 줄 아는 지난날의 사대부가의 심성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이런 것들을 보고 배울 수는 없는 것인지.



마을 사람들의 애환을 듣는 ‘소리통’

전남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에 자리하고 있는 중요민속문화재 제159호인 이용욱 가옥은 강골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은 집이다. 비교적 넓은 평야에 인접하여 있고, 해안과도 가까운 지역이어서 풍수지리상 터가 좋은 곳이다. 안채, 사랑채, 곳간채,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는 집이다.

이 집의 대문을 들어서 사랑채로 향하는 우측 담장에 보면 담장에 작은 구멍 하나가 보인다. 그 밖으로는 마을의 공동우물이 있다. 집의 구조를 둘러보면 이 우물을 일부러 이렇게 밖으로 빼내 담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이 작은 구멍을 ‘소리통’이라고 한다. 우물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마을의 온갖 이야기가 다 흘러나온다.

소리통을 통해 그러한 마을의 애경사를 듣고, 적당히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소리통은 마을 주민들과 사대부가의 보이지 않는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한 것이다. 부단하게 떠벌리지 않고도, 마을 사람들의 아픈 곳을 만져줄 수 있는 소리통. 그래서 이 소리통이 이 시대에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


배고픈 이들을 먼저 생각한 ‘타인능해’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소재한 중요민속문화재 제8호인 운조루. 운조루는 조선 중기에 지은 집으로 영조 52년인 1776년에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가 지었다고 한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곳은 산과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어 <금환락지>라 하는 명당자리라고 한다. 55칸의 목조와가인 운조루는 사랑채, 안채, 행랑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운조루의 대문을 들어서면 길게 자리를 한 행랑채의 좌측 끝에 ‘가빈터’ 혹은 ‘초빈터’라는 곳이 있다. 이것은 운조루에서 상이 나면 3일장을 지낸 후 이 곳에서 3개월 동안 시신을 안치했다가 출상을 하는 곳이다.

이렇게 조상에 대한 예를 극진히 모신 운조루에는 ‘타인능해’라는 나무로 만든 통과, 역시 나무로 만든 쌀통이 있다. 타인능해는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언제라도 찾아와 통 안에 든 쌀을 가져가라는 것이다. 가진 자들이 더 취하기 위해 기를 쓰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 타인능해에 담긴 마음을 알려주고 싶다.

이 외에도 고택을 답사하면서 만나는 많은 것들. 그 특이한 것들을 돌아보면 더 없이 즐거움을 느낄 수가 있다.


양평 창대리 고가의 '기와박공'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창대리에 있는 경기도 민속자료 제7호인 창대리 고가는 지은 지가 200년이 되었다. 이 집에는 맞배집의 양편 지붕에서 내린 박공에 기와로 와편을 넣어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어떻게 기와를 잘라 박공을 와편박공으로 만들 수가 있는 것인지. 보기만 해도 옛 선조들의 미적감각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익산 조혜영 가옥의 '꽃담'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1호인 익산 조혜영 가옥은 함라읍에 소재한다. 이 마을은 담장이 등록문화재로 지정이 되어있는 곳이다. 조혜영 가옥은 1920년을 전후해 건축이 되었다고 한다. 여러 채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나, 현재는 안채와 별채, 그리고 모습이 바뀐 문간채만 남아있다. 이 조혜영 가옥에는 꽃담이 있다. 십장생 굴뚝의 문양을 본따 조형을 한 것으로 보이는 이 꽃담으로 인해 더욱 돋보이는 집이다.


남원 덕치리 초가의 '동학날리'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에는 전북민속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된 덕치리 초가가 있다. 이 집은 짚으로 지붕을 한 것이 아니고 억새인 띠풀로 지붕을 이른 집이다. 이 집에서는 보기드문 여러 가지를 만날 수 있어 즐거운 곳이다. 대문에 붙은 광 안에는 동학란 때 선조가 사용을 한 목창이 보관되어 있다. 창에는 흰 글씨로 ‘동학날리’라고 써 놓았다.

이 외에도 고택에서 만나보는 여러 가지 즐거움은 무수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집은 그냥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 그 안에는 사람들의 심성과, 우리의 온갖 역사가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 옛집이 더욱 소중한 것이다. 언젠가는 집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 집안에 있는 이런 이야기를 엮은 책 한권을 내고 깊다. 우리 후손들이 우리 문화에 대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가끔은 뒤를 돌아다 봅니다. 그저 내가 지난 날을 어떻게 살아왔나? 그리고 남은 시간은 어떻게 마무리를 할까를 깊이 생각해 보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15일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번의 행사를 치루고나니, 거의 추주검 상태로 변했다는 것이죠.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이란 생각입니다. 이제 점점 기운이 떨어져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죠.

사람은 가끔은 지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나는 어떻게 찾아볼 수 있을까가 궁금해졌다는 것이죠.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서 나를 찾아보았습니다. 지금 다음뷰나 오마이뉴스에 보이는 나란 인간 말고, 또 어떤 나를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궁금하기도 했고요.


나이 20대에 작곡을 시작하다

가장 오래된 자료는 1970년에 <동아음악콩클 작곡부분>에 입상을 하면서 동아일보에 보도가 된 자료입니다. 벌써 40년이 지난 나를 인터넷에서 발견을 한 것이죠. 그리고 이어서 여러 해 작곡에 몰입하면서 여기저기 이름이 보이고 있습니다. 1979년 국립무용단 정기공연, 제1회 대한민국 무용제, 1982년 인천시립무용단 창단공연 등의 자료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만나볼 수가 있습니다.




제일 위 신문은 1970년 동아일보입니다. 나눔 단 아래 첫 번째 신문은 동아일보 1979년 5월 신문으로 국립무용단 정기공연 작곡을 맡아했을 때, 두번 째는 1981년 제3회 대한민국 무용제 때 기사입니다. 그리고 밑은 1982년 인천시립무용단 창단공연인 '굴레야'를 작곡했을 때 신문기사입니다.
 
그동안 관현악, 중주곡, 무용음악 등 한 30여곡은 작곡을 한 듯합니다. 그 때의 악보는 하나도 갖고있지 못해 아쉽지만, 국립국악원 자료실과 문예진흥원 자료실에 자료가 남아있다고 하네요. 그렇게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작곡가 사전이라는 책이 1999년에 발간이 되었는데, 그 책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1985년부터 책을 쓰기 시작해, 그 동안 저서 20여권

아마 책을 쓰면서 가장 많이 쓴 것은 일년에 4권인가를 썼습니다. 일년 동안 답사를 마치고 나면, 책상앞에 앉아 글만 쓴 것이죠. 1985년인가 이천에서 처음으로 '거북놀이'라는 책을 쓰고나서, 안성남사당풍물놀이도보, 용인의 내고장 민속, 대전의 한밭의 옛노래 등 지역의 전통문화와 민속, 무속 등에 대한 책을 열심을 내어 썼죠


그동안 쓴 책들이 20여권이 되는데, 일부만 몇 권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 책들은 거의 품절이 되어서 도서관에서나 만나볼 수가 있다고 하네요.

책을 쓴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더욱 지역의 책을 한 권 쓰기 위헤서는 제가 다루는 부분의 특성상, 지역 전체를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현장에서 채록을 해야하기 때문에 그만큼 노력을 필요로 하죠. 

마을마다 다니면서 어르신들께 일일이 부탁을 드리고 가사를 녹취하고, 악보까지 곁들이기도 합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보아야 한 두곳이 고작이죠. 그렇게 만들어낸 발로 쓴 책들입니다.
 

네이버에서 책 한권을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품절이 되어서 이제는 구할 수조차 없는 책이 되어버렸네요.

 

위는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책의 목록입니다. 그리고 아래는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있는 책입니다.

살다가 보면 내가 무슨 일을 해왔는가가 정말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하루 종일 지쳐 자리에 들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지난 시간의 흔적을 보고 싶어 찾아낸 내용들입니다. 참으로 숨 가쁘게 살아온 세월이었네요. 별로 편안하게 쉬어 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바쁜 걸음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이제 문화재에 대한 열망으로 당연히 또 그런 세월을 살아야 할테죠.

'그것이 사람사는 것 아닌가요?'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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