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픈 말이다. 그리고 큰 아픔이었다. 난 죄인이라도 된 듯 말을 할 수 없었다. 구미시 산동면 임천리. 지난번에는 그저 마을회관을 들어가면서 겉모습만 촬영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구미시해평청소년수련원’에 묵고 있는 70여명의 주민들, 그들의 아픔을 하나하나 들춰보기로 했다.

 

하늘도 무심하더라

 

남원 선원사 주지인 운천스님이 12일에 불산 누출 사고마을에 또 들어가신다고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제대로 한 번 돌아보려고 일찍 출발을 했다. 스님이 해평청소년수련원에서 ‘스님짜장’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불산누출 사고마을인 임천리로 향했다. 처음 이곳을 들렸을 때는 솔직히 이 정도인줄은 몰랐었다.

 

봉지를 씌운 체 남아있는 배

 

붉은 천에 쓰인 ‘불산누출사고 피해지역 절대식용불가’라는 글씨. 그 앞에서 하염없이 잘 자란 배추를 바라보고 있던 할머니.

 

“올해는 아이들 김장도 못해 주었네. 저 아까운 것을 어쩌지”

 

할머니는 매년 김장을 해서 자녀들에게 보냈다고 하신다. 그러나 실하게 자란 배추가 하루아침에 만져보지도 못할 죽음의 배추가 되어버린 것이다. 임천리 들판에는 베지 않은 벼가 누렇게 타서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고 배나무에는 봉지를 씌운 배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사과나무에는 잘 익은 사과가 주렁주렁 달렸다. 그것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흐른다.

 

추수를 하지 못하고 방치된 벼와(위) 붉은 고추가 달린 고추밭(아래)

 

그야말로 아픔이었다. 누군가 ‘하늘이 무심해도 너무 무심했다’라고 말을 한다. 순간의 잘못으로 인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벌써 몇 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청소년수련원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임천리 주민들. 불편한 이곳에서 생활을 하면서, 하루에 몇 차례 수련원과 마을을 운행하는 버스로 집을 돌아보고는 한다.

 

“기자가 죽을까봐 어떻게 여길 왔지”

 

한참 마을을 돌아보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마을의 어르신이 누구냐고 물으신다. 취재를 하러 들어왔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이

 

“기자분이 죽을까봐 어떻게 여길 오셨소. 기자 분들은 오지 않고도 글만 잘 쓰드만.”

 

붉게 익은 사과가 달린 사과나무들(위) 주렁주렁 열린 포도

 

임천리 옆 해평마을에 사신다는 어르신은 기자들에 대해 화가 많이 나신듯하다. 어르신께 왜 그렇게 기자들을 미워하시는가를 물었다.

 

“기자들이 제대로 알고 기사를 써야죠. 여긴 들어 온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소. 말로만 듣고 기사를 써대니, 마치 구미 전체가 마치 불산에 오염된 것처럼 사람들이 알고 있잖소. 구미라는 인쇄가 들어가 있는 농작물은 아무도 사지를 않아요. 구미 농사꾼들은 올 한 해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정말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말이요”

 

어르신이 화를 내는 것도 이해가 간다. 불산 누출로 인해 기형아를 낳는다거나, 뼈가 녹는다는 말들이 흉흉하게 떠돌았다는 것이다. 불산에 노출된 것을 먹으면 똑 같이 그런 일이 일어나는데, 불산이 공기로 퍼져나갔다고 했다는 것이다.

 

스님짜장을 준비하는 운천스님과 짜장을 드시는 임천리 주민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구미 전체의 일은 아닌데, 하도 떠벌려대니 사람들이 구미라는 글자만 있어도 그 식품들은 안산데요. 돈 들여 인쇄해 놓은 포장박스를 다 버려야 할 판이니, 기자가 글만 쓰면 되는 것이 아닐 텐데 너무 무책임 한 것 같아요. 마치 구미시 전체가 오염되어 버린 것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까요”

 

졸지에 죽일 놈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벌써 불산누출 사고마을을 다녀 온지 3일이 지났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 아픔을 느끼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배추밭에서 눈물을 흘리던 할머니가 자꾸만 눈에 아른거린다. 어머니의 마음을 본 것이다. 그래도 먼저 자녀들 김장 걱정을 하시는 어머니. 한 사람이 부주의가 불러온 것치고는 너무나 큰 아픔이었다. 이 분들 언제나 정든 집으로 돌아가실 수가 있을까?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