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만나는 사람들마다 가슴이 먹먹하다고 한다. 그리고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절로 욕이 튀어나온단다. 이 나라 어디 한 곳 성한 곳이 없다는 느낌이다. 어째 나라가 이토록 비리로 얼룩져 잇는 것인지. 이젠 뉴스조차 보기가 싫다. 뉴스마저 신뢰가 쌓이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아파해야 이 아픔이 끝날 것인가?

 

세상이 다 아프다고 하는데, 이 통에도 자신과 사고가 맞지 않는다고 물어뜯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미친개들도 아니고, 사람들이 다 아파하는데 그 아픔에 상처를 더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인지도 의심스럽다. 아침 일찍 산으로 향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신을 좀 차려야 하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들, 불빛으로 치유가 되었으면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피곤한 몸을 잠시 쉬어본다. 하지만 잠깐 틀어놓은 TV화면에서 또 세월호의 아픔이 보인다. 괜히 책상머리에 앉아 이것저것 뒤적여본다. 그러다가 문득 석등이 눈에 들어온다. 사찰의 대웅전 앞에 석등과 나란히 서 있는 석등. 그러고 보니 며칠 후면 부처님 오신 날이다.

 

석등의 용도는 절 안의 어두움을 밝히는 것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온 누리에 비추어 중생을 깨우쳐 선한 길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등불은 수미산과 같고, 등을 밝히는 기름은 넓은 바다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는 등에서 나간 불빛이 고루 퍼져나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공양구 중에서도 으뜸인 등불

 

석등은 언제나 석탑과 함께 대웅전의 앞에 자리한다. 대웅전이란 절의 중심 전각이다. 그 앞에 석등을 세우는 것은,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물 중에서도 등불 공양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갖가지 형태의 많은 석등이 현재까지도 자리하고 있으며, 폐사지 등에도 석등이 남아있는 숫자가 많은 것을 보면, 석등을 그만큼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석등은 부처나 보살의 지혜를 밝혀 중생을 제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탑 앞에 조성한 석등의 불을 밝히면, 33천에 다시 태어나 허물이나 번뇌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석등은 흔히 광명등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여 붙여진 별칭이다.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간주석과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전국에 산재한 많은 사찰에서 보이는 석등은 이러한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석등을 그렇게 대웅전 앞에 배치를 한 것도, 알고 보면 수많은 중생을 어둠에서 깨우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동안 답사를 한 수많은 석등의 자료를 뒤적이면서 마음속으로 간구를 해본다.

 

정말 미안합니다. 석등의 불빛 따라 편히 가시길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한다. 그것은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나라의 일꾼들을 뽑는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악에서 지켜야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안한 것이다. 제몫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 잃고 외양간 수도 없이 고쳤다그러면 무얼 하겠는가? 소만 들여놓으면 또 잃어버리는 것을. 처음부터 튼튼한 외양간을 만들지 않았다. 그저 겉만 번지르르하면 손 툭툭 털고 일어나버렸다. 그런 사람들의 관습이 이렇게 커다란 비극을 몰고 온 것이다. 초파일에는 가까운 곳을 찾아가 석등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겠다. 그리고 수많은 영혼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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