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청군로 3290번길 19, 옛 구읍리에는 사적 제403호인 반월성이 있다. 반월산성은 총 길이 1,080m 이다. 현재 성의 옛 자취를 엿볼 수 있는 시설물로는 남쪽과 북쪽의 문터, 성벽 바깥쪽에 사각형 모양으로 덧붙여 만든 치성 4개소, 건물터 6곳, 배수시설이었던 수구터, 장수의 지휘대였던 장대터,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세웠던 망대터 등이 있다.

이 반월산성은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쌓았다고 전해지나, 조사결과 고구려 때 쌓은 성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여러 책에 고성(古城), 산성, 반월산성 등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대동지지』를 통하여 광해군 10년(1618)에 고쳐 쌓고, 인조 1년(1623)부터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연려실기술>, <포천군읍지>, <견성지> 에도 돌로 쌓았다는 기록과 함께, 여러 가지 당시 성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눈길을 밟으며 반월성에 오르다

2월 5일 아직 산에는 눈이 그대로 남아있다. 고모리산성을 돌아보고 난 뒤, 이어서 찾아간 반원성. 하루에 두 곳의 산성을 돌아본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더구나 눈길에 오른 산행이라 다리도 아프지만, 그레도 인근에 있으니 돌아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여름에는 차가 성지까지 올라간다고 하는데, 눈길에 위험할까봐 그런지 입구를 막아 놓았다. 할 수없이 걸어 오르는 수밖에. 길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 미끄럽다. 언덕길을 올라 반원성의 남쪽 성곽 쪽으로 다가갔다. 수령 400년이 지난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서 있는 곳서부터 천천히 성을 한 바퀴 돌아본다.



일부는 아직 복원이 되지 않아 그대로 방치가 되어있다. 반월성은 성벽을 높게 쌓고, 일부구간은 안과 밖을 함께 성벽을 쌓아두기도 했다. 서쪽에는 문지인 듯한 곳 옆에 치성을 쌓았다. 이곳의 치성은 그 크기가 상당하다. 성 위에서 바라보니 건너편에 왕방산이 보이고, 그 밑으로는 포천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북에서 내려오는 길목, 고구려의 전진기지

성 위에서 보면 성 밑으로 난 길이 훤히 보인다. 철원으로 가는 길에는 차들이 줄을 잇는다. 이런 지리적 위치로 보아, 반월성은 고구려가 남쪽으로 내려가기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쪽에서 성벽 위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보니, 좁은 문루가 있었던 곳이 보인다. 암문이 있었던 곳일까?



조금 더 가니 건물터가 보이고 동편으로 난 문지가 있다. 반월성은 문을 그냥 바닥에 놓은 것이 아니라, 돌을 쌓고 그 위에 문을 내었다. 1m 가 넘는 축대 위에 문을 낸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문지 안으로는 건물터가 있고, 조금 더 가니 삐죽 내민 치성이 보인다. 반월성은 상당히 견고한 성곽이었을 것이다.



해발 283.5m의 청성산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축성한 테뫼식 석축산성인 반월산성. 고구려는 이곳을 남진을 하기 위한 기지로, 신라는 북진을 하기 위한 기지로 삼았다고 한다. 이 성은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포천지역의 주성(主城0으로 역할을 했다. 이곳을 발굴 당시 <마흘수해공구단>이란 명문이 적힌 기와가 발견이 되어,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구려의 ‘마흘군’이 바로 포천지역임을 입증하고 있다.

반월성이란 마치 성이 반월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 성 중에서는 상당히 큰 규모의 성이었다는 반월성. 고구려가 쌓은 이성은 통일신라 시기까지 사용을 하다가, 고려 때는 폐성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조 광해군 10년인 1618년에 후금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다시 쌓았다고 한다.



아직은 일부분이 복원이 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반월성. 한 바퀴 돌아본 반월성은 상당히 요충지에 자리를 하고 있으면서, 매우 견고하게 쌓은 성임을 알 수 있다. 눈길에 돌아본 반월성. 아마도 완전히 복원을 마친다면, 이 지역의 또 다른 명소가 될 것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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