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전망대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다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난 민족주의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태어난 고향이 이북도 아니다. 부모님들의 고양 역시 그곳이 아니다. 철책 너머 북녘 땅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다. 그곳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곳에 와서 북녘 땅만 바라다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눈물이 흘러 주체할 수가 없는 것일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2일과 3, 12일로 강원도 최북단인 고성과 속초를 다녀왔다. 모임이 있어 그곳에서 합동으로 다녀 온 답사 길이다. 그 첫 번째 돌아본 곳이 바로 통일전망대였다.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망대를 들어가기 위해 출입신고를 하고, 군인들이 차량을 일일이 조사하는 민통선을 넘었다.

 

 

통일전망대, 왜 가슴이 아픈 것일까?

 

통일전망대 앞에 섰다. 계단 밑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아마 안보교육이라도 받는 것인가 보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전망대를 피해 바닷가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북녘 땅을 바라다보고 있는 대불(大佛)과 성모상이 있기 때문이다. 늘 이곳을 올 때마다 이상하게 이곳에 서서 북녘 땅을 바라보고는 했다.

 

바닷물이 참으로 깨끗하다. 쪽빛바다라고 하던가? 그 깨끗한 물은 남북을 마음대로 오간다. 남쪽에서 날아온 새 한 무리가 북녘 땅으로 들어갔다. 철책을 넘어서. 저 새들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남북을 오간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자유로운 새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갈 수 없는 삼일포, 꿈이라도 꾸었다면

 

관동팔경, 통천의 총석정, 간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고성의 삼일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 평해의 월송정을 말한다. 이 중 북한 땅이 된 고성에는 삼일포가 있었다. 삼일포는 신라 효소왕 때 국선인 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 네 명의 국선이 절경에 반해, 3일 동안 머물렀기 때문에 삼일포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금강산 관광이 이루어지던 때에는 금강산 관광을 통해 삼일포역으로 갈 수가 있었다. 하지만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으로 인해, 오고가는 길이 막혀버렸다.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500m 거리에 있다는 군사보호지역인 비무장지대, DMZ(demilitarized zone) 저편에 보이는 북한군의 초소가 지척이다.

 

고성을 저만큼 두고 삼일포를 찾아가니

그 남쪽 봉우리 벼랑에 ;영랑도 남석행이라 쓴

붉은 글씨가 뚜렷이 남아있구나.

이글을 쓴 사선은 어딜 갔는가?

여기서 사흘을 머무른 뒤에

또 어디 가서 머물렀던고?

선유담, 영랑호 거기나 가 있는가?

청간정, 만경대를 비롯하여 몇 군데서 앉아 놀았던고?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중 삼일포를 노래한 시이다. 그 경치가 얼마나 좋았기에 3일이나 그곳에서 묵었을까? 그런 절경을 지척에 두고도 갈 수 없는 분단의 아픔을 느끼는 이곳. 통일전망대 성모상 앞. 북녘 땅에서 넘어오는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차마 망원경을 못 보겠소.

 

그렇게 하염없이 지척에 있는 북녘 땅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양 볼에 눈물이 흐른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먼일 있소? 왜 눈물을 흘리고 그래요?”

 

함께 한 일행이 묻는다.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냥 주먹으로 눈물을 훔쳐낸다. 날이 좋은 날이면 일출봉, 신선봉, 옥녀봉 등을 육안으로도 바라다 볼 수 있다고 하는 이곳 통일전망대. 성모상 앞에서 그렇게 이리저리 마음대로 오가며 모래톱을 긁어대는 물길을 바라다보며,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쉰다. 성모상을 뒤로하고 돌아 나오는 길에 뒤에서 장사를 하시는 분의 한마디 말이 오장을 긁는다.

 

얼른 통일이 되던지, 금강산이 열리던지. 정말 장사 안 돼 못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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