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참으로 오랜만에 들려본 곳이다. 고향이 서울이고 더구나 본적은 창덕궁 뒤편에 있는 재동이다. 학교를 운니동에서 다녔으니 인사동과는 길 하나 차이이다. 그런데도 서울을 떠난 뒤로는 인사동이라는 곳을 몇 번 밖에는 가 본 기억이 없다. 아마 그곳에 문화재가 많이 있었다고 하면 자주도 찾아갔을 텐데 말이다.

모처럼 출장길에 들리게 된 인사동은 예전에 내가 알고 있던 곳이 아니었다. 한국적 냄새가 물씬 풍기던 곳, 그리고 어디를 가나 고집 센 문화예술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 난 인사동을 그런 곳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10여년 만에 찾아간 인사동은 왠지 감칠맛이 없어 보인다. 무엇인가 달라지긴 했는데 딱히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예전보다 인사동다운 맛이 떨어졌다고나 할까.


오랜만에 막걸리 집을 찾아들다.

알다시피 인사동은 한옥촌이다. 뒷길로 들어가면 즐비한 한옥들이 붙어있다. 아마 인사동만의 그런 모습 때문에 늘 기억을 하는 것이고, 그 한옥의 정겨움에 익숙해져 있는 터라 스스럼없이 발길을 향했을 것이다. 출장길에 나섰으나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바람에 어차피 출장길을 재촉한다는 것도 무리일 것만 같아, 자연스럽게 도예인들과 동행을 하게 되었다.

한 곳을 찾아 들어가니 ‘푸른별 주막’이란다. 이름부터가 마음에 든다. 고택기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 한옥만 보면 우선 그 구조부터 살피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문간채가 있는데, 이곳은 광으로 사용을 한다. 인사동의 한옥들은 넓지 않은 터에 집을 지어서인가 공간을 최대로 활용을 한다. 집은 ㄱ 자 구조로 사랑방과 대청, 안방이 나란히 있고, 꺾인 부분에 부엌과 건넌방이 있다.

좁은 집을 이용하려다 보니 입구부터 복잡하다

처마에 부연을 단 것으로 보아 꽤 잘 지어진 한옥이다

좁은 공간을 이용하기 위해 화장실 위에 장독대를 올렸다. 그 앞에는 장승도 서 있다. 

앞에는 타일로 바른 목욕탕 겸 화장실을 두고 그 위에 장독대를 올렸다. 처마에 부연을 댄 것으로 보아서는 좁기는 하지만 나름 충실한 집이다. 집을 지은 부재도 단단해 보인다. 지금은 건넌방 하나만을 신을 벗고 들어가기 만들고, 나머지는 모두 신을 신고 들어가는 방으로 만들었다.

개성 있는 막걸리집서 사진으로 만난 스승

자리를 잡고 벽을 둘러보니 낯익은 것들이 보인다. 어릴 적 나도 그랬을 캐캐묵은 사진들이 걸려있다. 강에서 발가벗고 수영을 하는 아이들. 운동회 날 달리기 준비를 하는 아이들. 한 쪽 벽에 기대고 머리를 처박고 하는 말타기. 또 한 장은 아마 즐거운 소풍날일게다. 그 옆으로 이 집의 메뉴가 주욱 나열이 되어있다. 딴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단 한 가지가 마음에 든다. ‘푸른별에서는 화학조미료와 수입 식자재를 쓰지 않습니다’ 라는.

옛날을 그립게 만드는 사진들

벽에 가득한 이 집의 메뉴판이다.

망자의 넋을 올린다는 지전으로 된 넋전

마당에는 종이배와 넋전들이 허공에 매달려 음산하기도 하다.

작은 마당에는 장독대 앞에 장승이며 넋전, 그리고 종이배들이 공중에 떠 있다. 한 많은 사람들이 저 배를 타고 극락으로 떠났을까? 그 배에 저 넋전에 붙은 혼백이라도 띄워 보낸 것일까? 밝지 않은 종이등 불빛에 흐늘거리는 넋전이 묘한 분위기를 낸다. 그래서 인사동일게다. 무엇이라도 수용을 할 수 있는 곳이니.

집을 돌아보다가 그만 얼음이 되고 말았다. 한편 벽에는 어느 작가의 작품인 듯 ‘그 때 그 사람들’이라는 제목이 달렸는데 김수환 추기경, 정당인 김근태 등이 보인다. 그런데 그 끝에 아주 낯익은 여자 분이 눈에 띤다. 바로 채희아 선생님이다. 반가운 얼굴이다. 개인적으로 채희아 선생님은 내가 중학생일 때 나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사진작가의 작품인 듯. 그 안에 채희아 선생의 모습이 보인다.(아래 좌측)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남다른 스승이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셔서 황해도 내림굿을 받고 만신의 길을 걷기도 했다. 당시 채희아 선생님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가 되었다. 서울대 출신에 미모의 여인이 내림굿을 받는다고 했으니 말이다. 사진 속이나마 바라보자니 눈물이 난다. 겉으로는 웃고 마시지만, 아주 어릴 적 스승의 대한 기억이 많아서인가 보다.

인사동. 그래서 인사동은 추억의 거리라고 한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은 추억을 찾고 싶어 한다. 까맣게 잊고 살던 옛날을 기억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제 인사동이 그 기억을 지워버리고 있는 듯해 마음이 아프다. 그것이 비록 아름답지가 않고, 아픈 기억이긴 하지만 오래도록 남았으면 하는 기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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