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가 춤을 춘다고 하면 남들은 조금 정신이 빠진 사람이 아닌가하고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러나 권선구 호매실동 629-2에 가면 춤추는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보호수호 지정되어 있는 이 소나무는 수령이 230년 정도가 된 우리 소나무인 육송이다. 19821015일 경기-수원-20으로 보호수 지정을 받았다.

 

소나무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종으로 높이는 20~35m에 이른다. 겨울에도 항상 푸른빛을 유지하는 상록수로 그림, , 노래 등에 소재로 우리에게 친숙한 식물이다. 껍질은 거북등처럼 세로로 넓게 갈라지며 줄기 밑은 회갈색이고 윗부분이 적갈색을 띤다. 바늘잎은 8~9cm 길이로 두 개가 한 묶음이 되어 가지에 촘촘히 붙는다.

 

나무줄기가 붉다고 하여서 적송(赤松)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주로 내륙 지방에서 자란다고 육송(陸松)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외에도 잎이 다른 나무에 비해 연하다고 하여서 여송이라고 하거나 여인의 지태를 닮았다고 해서 여송(女松)이라 부르기도 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소나무들

 

우리나라에는 많은 소나무들이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그만큼 전국적으로 소나무들은 다양하게 분포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품종에는 나무줄기가 곧추 자라는 금강소나무, 가지가 밑으로 처지는 처진소나무, 줄기 밑에서 많은 가지가 갈라지는 반송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 중에 그동안 답사를 하면서 만난 소나무는 보은 속리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03),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제180), 속초 설악동 소나무(천연기념물 제351), 고창 선운사 도솔암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54), 이천 도립리 반룡송(천연기념물 제381), 장수 장수리 의암송(천연기념물 제397),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제409) 등을 만나보았다.

 

 

한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소나무

 

17일 칠보산을 오르기 전에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오는 소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수원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가 없기 때문에 그 나무의 생김새로 보아 보호수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먼저 가보았다. 높이 15m 정도에 밑동둘레가 2.5m 정도이다.

 

껍질은 붉은색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색을 보이는 나무는 그리 흔하지가 않다. 거기다가 생육상태도 양호하다. 수령이 짧아 천연기념물이 지정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멋들어지게 잘 자란 소나무이다. 앞으로 다가가 보기만 해도 절로 감탄이 쏟아진다. 이런 정도의 소나무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20년 넘게 전국을 다니면서 문화재 답사를 하는 동안 많은 천연기념물과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나무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 2년 전인가 경북 문경 동로면에서 충북 단양군 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가 동로면 적성리 965번지 도로변에, 수령 300년이 지난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소나무가 서 있는 곳을 무송대(舞松臺)’라고 부른다. 춤을 추는 소나무가 서 있다는 곳이다. 그 나무와 비교해도 오히려 더 아름답게 가지들이 춤을 추고 있는 듯하다. 그저 앞에 서서 감탄만 할뿐 딱히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옥에 티, 소나무 보호책 안에 무성한 잡풀더미

 

한참이나 소나무를 바라보고 감탄을 하고 있는데 눈에 띠는 것이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소나무 주변을 둘러서 보호책을 설치했는데 그 안에 잡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옆에는 몇 기의 묘가 보이는데 주변을 말끔히 정리했기에, 보호수 철책 안에 잡풀들이 눈에 더 거슬려 보인다. 여름철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곳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멋들어지게 춤을 추고 있는 보호수 한 그루. 나무줄기에 외과수술을 한 자국만 보아도 마음이 짠한데, 거기다가 잡풀까지 무성하게 자라나있는 것을 보니 더 마음이 아프다. 저렇게 잡풀들이 자라나 있어 혹 소나무의 생육에 지장이 있지는 않을까? 그저 한 시간 정도면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을 텐데. 앞으로는 답사를 다닐 때 낫이라고 한 자루 들고 다녀야 할까보다.

 

보호수란 보존 및 증식(增殖)의 가치가 있어 보호하는 나무.’를 말한다. 보호수는 어떠한 경우에도 훼손이 되거나, 훼손이 될 수 있는 나쁜 환경 속에 놓아두면 안 된다. 500년 역사의 이야기를 간직한 지동의 할아버지나무와 할머니나무. 이 두 나무는 과거 득남을 기원하고, 가내의 안과태평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던 나무였다.

 

팔달구 지동 465 도에 소재한 수령 550년의 느티나무와, 지동 230에 소재한 수령 500년의 나무. 10m 거리에 마주하고 있는 두 그루 느티나무는,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나무와 할머니나무로 부른다. 이 나무들은 화성 축성 이전인 조선 초부터 이곳에서 숱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살아 온 노거수들이다.

 

할아버지나무는 높이가 12m에 나무의 둘레는 4.7m에 이른다. 할머니나무 역시 높이 13m에 이르는 노거수이다. 이 나무들은 화성 축성의 역사를 보았고, 한국전쟁 때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 때 마을에서 위하기도 했던 이 나무들이, 현재는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민들의 건의로 이루어진 쌈지공원 조성

 

지난 해 6월 팔달구 지동 제일교회 1층 세미나실에서는 지동 주민들과 이재준 수원시 제2부시장과의 간담회가 열렸었다. 이 자리에서 지동 마을계획단의 유지현 14통장은

 

우리 지동에는 530년 정도가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그런데 이 느티나무가 지금 고사할 위기에 처해있다. 이 나무들은 수원에서도 가장 오래 된 느티나무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느티나무 주변을 쌈지공원으로 조성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관광자원으로 이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한 바 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이재준 제2부시장은

좋은 지적이다. 그런 오래된 나무들을 이용해 공원을 조성하고,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은 마을르네상스 사업이 된다. 먼저 주민들이 선도적으로 무엇인가 시작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마을만들기 추진단에 수시공모로 신청을 해서 무엇인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오래 된 보호수가 있다면 당연히 살려내야만 한다.”라면서 주민들이 먼저 시작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 바 있다.

 

 

쉼터로 조성한 할아버지 느티나무

 

수령 550년이 되었다는 할아버지나무는 외과수술을 한 흔적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위로 뻗은 큰 줄기 하나는 고사해서 잎도 달지 못한 체 그렇게 서 있다. 이 할아버지 나무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버린 담배꽁초와 빈 담배갑 등이 지저분하게 나뒹굴고 있었고, 한편에는 쓰레기들이 쌓여있었다.

 

그런 이 할아버지 나무 주변을 이번에 말끔하게 단장을 했다. 수원 녹지사업소에서 보호수 외과술 및 생육관리공사를 마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나무 곁에 주차를 시키거나 쓰레기 적치장이 그대로 남아있어, 이것도 시급히 정리를 해야 보호수인 할아버지 나무가 제대로 생육을 할 수 있다.

 

지동주민센터 김인배 총괄팀장은

앞에 있는 못골 어린이 놀이터와 이 느티나무를 연결해 이곳을 공원으로 한 단계 발전시킬 것이다. 지동은 이런 소공원이 딴 곳에 비해 많지가 않아, 이젠 주변 정리도 함께 해 공원으로 주민들이 사용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할머니 나무쪽으로 가보았다. 다행히 실하게 잎을 달고 있는 할머니나무는, 할아버지나무보다는 상태가 나은 편이다. 하지만 이 할머니나무 역시 곤욕을 치루기는 마찬가지. 가지 사이로 숱한 전선들이 지나고 있다. 도대체 이 전깃줄을 가지사이로 보낸 사람들은, 보호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할아버지 나무 주변이 말끔히 정리가 되었듯, 할머니나무 역시 나무 사이로 지나가는 전깃줄을 걷어내고 뿌리 주변에 덮어 놓은 시멘트를 걷어내야 할 것이다. 오랜 세월 이 자리를 지켜가면서 숱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두 그루 나무에 대한 애정만이 나무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 1332번지 신흥사에 가면 기형목(奇形木)이란 기이한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삼척시 제51호 보호수로 지정이 된 나무인데, 수령이 200년 정도라고 한다. 단지 수령 200년 정도 된 나무가 무엇이 그리 기이하기에 호들갑을 떠느냐고 핀잔을 주시는 분들도 있겠으나 내막을 알고 보면 누구나 수긍이 갈 것이라고 본다.

 

태백산 신흥사는 신라 때의 고찰이다. 신라 제51대 진성여왕 3년에 범일국사께서 창건을 하였다고 하니, 벌써 2천년이나 된 고찰이다. 그 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영담선사께서 중건한 후 몇 차례 중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흥사를 찾는 길은 삼척시에서 동해고속화도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보면 근덕 해수욕장을 지나 동막(東幕)이라는 마을에 다다른다. 여기서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꺾어 계곡을 따라 4가량 올라가면 양평중학교가 있고, 여기에 신흥사 입구가 나온다. 우측 개울에 걸린 좁은 다리를 건너 200m 정도를 가면 신흥사가 되는데 일주문을 보면 너무나 작아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안개산 자락에 자리한 신흥사

 

태백산의 대표적 사찰 가운데 하나로 조선시대에도 사격이 이어져 규모 있는 사찰로 유지되었는데, 요사인 심검당과 설선당은 중요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다. 신흥사가 자리한 곳은 태백산의 줄기가 뻗어 내린 곳으로, 안개산(707m)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 지명은 국립지리원에서 발간한 지도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근덕면과 노곡면의 경계에 걸쳐 있는 신흥사는, 안개산이 거의 끝나는 곳에 자리하여 사역이 비교적 평탄하고 넓은 편이다. 그러면서도 산사의 정취가 듬뿍 배어있는 절집으로 아름드리나무가 주변에 가득하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그칠 줄을 모른다. 몇 번인가 망설임 끝에 길을 나서기로 작정을 했으니 장비를 챙겨들고 차에 올랐다. 미리 주지 스님께 연락이 되었기에 서둘러 신흥사를 찾았다. 지역에서 봉사를 많이 하시는 스님은 출타를 하셔야 한다는 기별을 받았기 때문이다. 설선당에 있는 스님의 방으로 가서 차를 대접받으며 담소를 나눈 후 여정이 바쁘신 듯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님은 이것저것 하나라도 챙겨주신다. 책이며 달력이며 하나하나 주시다가 그것도 부족했는지 스님이 드실 고구마까지 주신다. 산사 살림살이를 아는 나로서는 그러한 스님의 마음씀씀이에 오히려 죄스럽기만 하다. 절집 여기저기를 카메라에 담고 있으려니, 스님은 보호수가 참 대단한 나무라고 알려주신다.

 

배롱나무가 소나무를 품었다

 

200198일자로 삼척시 보호수로 지정이 된 배롱나무를 보는 순간 입이 벌어진다. 세상에 어찌 이런 나무가 있을 수가 있을까? 안내판에는 수령이 200년에 높이 5m, 둘레 1m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수종에는 배롱나무(소나무)라고 기록을 했다. 배롱나무라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소나무라는 소리일까? 아래 설명을 보면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08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신흥사 경내에 위치하고 있는 배롱나무에 소나무가 자연적으로 생육공생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나무를 찬찬히 살펴본다. 아무리 보아도 그 해답이 나오지를 않는다. 배롱나무에서 소나무가 자란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소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린 것도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나무가 생육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해보아도 이해가 안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나무의 형태를 보면 배롱나무 위에 소나무가 얹혀있는 형태다. 아래는 배롱나무인데 그 중간에서 소나무 줄기가 솟아나 자라고 있다.

   

나무를 찬찬히 살펴보다가 이것이 이 절집의 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고개가 숙여진다. 더불어 사는 삶, 어떠한 어려운 난관이 닥친다 하더라도, 아무리 고통스런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서로가 더불어 삶을 살수만 있다면 이렇게 기이한 모습으로도 살아갈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아마 세상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나무인 것 같다. 빗속에 길을 나서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몇 번인가 배롱나무 주위를 돌면서 마음으로 다짐을 한다.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가자고.

 

충북 충주시 단월동 455에 소재한 단호사. 단호사의 창건연대를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때 중건하여 약사(藥寺)라 하였고, 1954년에 단호사로 이름을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단호사 경내 대웅전 앞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인 충주 단호사 삼층석탑이 서 있다. 이 석탑은 현재의 자리가 원래의 터로 보이며, 1층 기단 위에 탑신부가 놓여 있다.

 

단호사 삼층석탑은 늙은 노송 아래 자리를 하고 있다. 이 소나무는 수령 540년 정도가 되었으며 나무의 높이는 8.5m에 나무둘레는 210cm 정도이다. 현재 충청북도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 있다. 이 소나무는 가지가 옆으로 뻗어 많은 지줏대를 설치해 놓았으며, 한 겨울에 만난 노송은 가지에 눈이 쌓여 그 멋을 더하고 있다.

 

득남을 하게 한 단호사 소나무

 

단호사의 소나무는 전설이 있다. 이 소나무는 조선 초기에 심어진 것이다. 수령이 540년 정도 되었으니 당연히 조선 초기에 심어졌을 것이다. 강원도 지방에 문약국을 경영하던 사람이 재산은 많은데 슬하에 물려줄 자손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손이 없어 걱정을 하고 있는데 한 노인이 충주 단호사에 가서 불공을 드리면 득남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자손을 바라던 이 사람은 단호사에 와서 불당을 짓고 불공을 드리고 살다가 적적하여 뜰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고 아침저녁으로 불공을 드리면서 소나무를 지극정성을 돌보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고향 집 마당에다 소나무를 심고 안방에 부처님을 모셔놓은 꿈을 꾸었다는 것.

 

더욱 기이한 것은 고향에 있는 부인도 꿈을 꾸었는데 단호사 법당이 자기집 안방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부인이 생각하기를 이렇게 같은 꿈을 꾼 것은 서로 모여 살라는 부처님의 뜻으로 생각이 들어 강원도의 재산을 정리해 단호사로 법당 옆에 살림을 차렸다. 그 후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런 소문이 나자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불공을 드리고 소원성취를 하였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오층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

 

소나무의 가지가 덮고 있는 삼층석탑은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에는 양우주가 가운데에는 탱주의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다. 이 탑은 일부가 약가 부서져 있다. 탑신부의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인 양우주를 새겼다. 1층 몸돌은 제법 높직하며, 4층 몸돌의 일부로 보이는 석재가 놓여 있어 이 탑은 처음에는 오층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각 지붕돌은 두껍고 투박한 모습으로 경사면이 급하게 처리되었고, 밑면에는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충주 지방의 탑들이 대개 산 위에 놓여 있는 것에 비해, 이 탑은 평지에 서 있어 눈길을 끈다. 규모는 작으나 격식을 충실히 갖춘 안정감이 있는 석탑으로, 1층 기단과 지붕돌의 모습 등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 답사 힘든 여정의 연속

 

단호사는 큰 절은 아니다. 하지만 대웅전에는 보물 제512호인 단호사 철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어, 단호사는 처음 고려시대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한다. 전하는 소나무 전설에 보아도 이미 이곳에 조선 초기에 절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이 내린 날 찾아간 충주 단호사. 비록 화려하거나 많은 전각이 있지는 않았지만 지방색이 강한 철불 등으로 보아, 철불과 석탑이 모두 옛 자리에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문화재를 찾아 떠나는 길은 늘 험난하다. 어느 곳 하나 편안하게 문화재를 만나지 못한다. 더울 때는 몸에서 쉰내가 나게 걸어야 하고, 땀을 비오 듯 흘려야한다. 겨울에는 카메라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아 애를 먹기도 한다. 장마철이 되면 카메라라도 젖을까 걱정을 해야 한다. 그야말로 사시사철 고된 여정이다.

 

하지만 그런 고된 여정을 스스로가 택한 것이니 누구 탓을 할 것인가?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문화재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몇 사람만 더 문화재를 아끼는 마음을 갖는다고 해도, 우리 소중한 문화재들이 지금보다는 더 보전이 잘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1일 수원시 팔달구 지동 제일교회 1층 세미나실에서는 지동 주민들과 이재준 수원시 제1부시장과의 간담회가 열렸었다. 이 자리에서 지동 마을계획단의 유지현 14통장은

“우리 지동에는 530년 정도가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그런데 이 느티나무가 지금 고사할 위기에 처해있다. 이 나무들은 수원에서도 가장 오래 된 느티나무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느티나무 주변을 쌈지공원으로 조성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관광자원으로 이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이재준 제2부시장은

“좋은 지적이다. 그런 오래된 나무들을 이용해 공원을 조성하고,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은 마을르네상스 사업이 된다. 먼저 주민들이 선도적으로 무엇인가 시작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마을만들기 추진단에 수시공모로 신청을 해서 무엇인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오래 된 보호수가 있다면 당연히 살려내야만 한다.”라면서 주민들이 먼저 시작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 바 있다.

 

 

마을계획단 느티나무 살리기 위해 노력

 

팔달구 지동 465 도에 소재한 수령 530년의 할아버지 나무와, 지동 230에 소재한 수령 480년의 두 그루 느티나무는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나무와 할머니나무로 부른다. 이 나무들은 화성 축성 이전인 조선 초부터 이곳에서 숱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살아 온 노거수들이다.

 

할아버지나무는 높이가 12m에 나무의 둘레는 4.7m에 이른다. 할머니나무 역시 높이 13m에 이르는 노거수이다. 이 나무들은 화성 축성의 역사를 보았고, 한국전쟁 때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 때 마을에서 위하기도 했던 이 나무들이, 현재는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동마을계획단에서는 모임을 통해 이 나무들을 살려낼 방안을 모색 중에 있다. 수원시에서는 가장 오래 된 느티나무로 알려진 지동의 할아버지나무와 할머니나무를 자칫 고사라도 시킨다면, 수원의 관광자원 하나가 사라진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쓰레기적치장, 전선줄로 몸살을 앓아

 

장맛비가 아침부터 내린다. 중부지방에는 호후경보가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세찬 빗줄기가 아니기에 못골 느티나무를 보기 위해 13일(토) 10시 경에 찾아가 보았다. 그동안 몇 번이고 이 나무들을 지켜보았지만, 이 나무가 과연 보호수가 맞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수령 530년이 되었다는 할아버지나무는 외과수술을 한 흔적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위로 뻗은 큰 줄기 하나는 고사해서 잎도 달지 못한 체 그렇게 서 있다. 주변에는 담배꽁초와 빈 담배갑 등이 지저분하게 나뒹굴고 있고, 한편에는 쓰레기들이 쌓여있다. 전국 어디를 가보아도 보호수 옆에 쓰레기를 쌓아두는 곳은 이곳밖에는 없는 듯하다. 어떻게 보호수 곁에 쓰레기 적치장을 마련했을까? 몇 번이고 찾아가 보았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다. 곁에는 차들까지 주차를 해놓아 이 할아버지나무의 환경이 최악임을 알려준다. 수령이 오래 된 노거수의 경우 매연에 약하기 때문이다.

 

할머니나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실하게 잎을 달고 있는 할머니나무는, 할아버지나무보다는 상태가 나은 편이다. 하지만 이 할머니나무 역시 곤욕을 치루기는 마찬가지. 가지 사이로 숱한 전선들이 지나고 있다. 도대체 이 전깃줄을 가지사이로 보낸 사람들은, 보호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이대로는 두 그루 다 성장 제대로 못해

 

주변의 환경이 가장 열악하다.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를 이렇게 방치를 해도 좋은 것인지. 관계당국에서는 보호수 지정 이후 이곳을 들려는 보았는지, 그리고 관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이 두 그루의 보호수인 느티나무들은 제대로 생육하기가 힘들다. 오죽하면 마을계획단의 회의에서 이 나무들을 살려야한다고 하소연일까?

 

 

보호수란 ‘보존 및 증식(增殖)의 가치가 있어 보호하는 나무.’를 말한다. 보호수는 어떠한 경우에도 훼손이 되거나, 훼손이 될 수 있는 나쁜 환경 속에 놓아두면 안 된다. 하지만 지동의 두 그루 느티나무는 이러한 보호수로써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보호수를 관리해야 하는 담당부서에서는, 이 두 그루 보호수의 현장을 조속히 답사한 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줄 것은 당부한다.

 

500년 역사의 이야기를 간직한 지동의 할아버지나무와 할머니나무. 이 두 나무는 과거 득남을 기원하고, 가내의 안과태평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던 나무였다. 하기에 보호를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보호수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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