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성을 구분할 때는 산성과 평산성, 그리고 읍성 등으로 구분을 한다. 산성이란 산의 정상부를 에워싸고 있는 형태의 성을 말하며 대개의 경우 이런 형태의 성곽이 많다. 평산성이란 평지와 산을 연결하는 성으로 수원 화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읍성은 평지에 쌓은 성을 말하며 흔히 평성이라고 한다.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충남 보령시 남포면 읍내리 378-1에 소재한 충청남도 기념물 제10호인 남포읍성은 예전 남포읍에 설치된 성으로 길이 900m에 넓이는 105,283정도이다. 남포읍성은 차령산맥 서쪽 끝자락의 구릉에 돌로 쌓은 성으로, 남포는 백제 때 사포현이라고도 불리었다. 이 읍성은 원래 고려 우왕 때 서해안을 침범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쌓았던 성이었는데, 공양왕 2년인 1390년 군대가 머물 수 있는 진영을 추가하여 완성하였다.

 

 

군데군데 복원을 한 남포읍성

 

남포읍성은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바깥쪽 벽은 돌을 이용하여 직각으로 쌓고 성벽의 안쪽은 흙으로 쌓아올렸다. ··남 세 곳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4m의 높이로 성 바깥에 설치하는 또 하나의 성벽인 옹성을 둘렀는데, 1m이상의 큰 돌로 축성하였다. 성을 한 바퀴 따라 돌아보면 남포읍성이 꽤 단단히 지어진 성임을 알 수가 있다.

 

성벽이 꺾이는 부분에는 적의 접근을 빨리 관측할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튀어나오게 쌓았으며, 그 양쪽 성벽에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시설을 해놓았다. 현재 성 안에는 3채의 관아건물인 진남루와 옥산아문, 현청 등이 보존되어 있으며, 동서에 80높이로 배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우물이 세 군데 있었다고 한다.

 

 

이 읍성은 서해안의 요충지로 왜구를 경계하는 한편, 해상 교통을 보호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던 곳으로 여겨진다. 남포는 전라도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을 지나 현 보령시내를 통과해서 한양으로 올라가야 하는 곳이다. 또한 서해가 가깝다 보니 늘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곳이기도 하다.

 

눈 쌓인 남포읍성을 돌아보다.

 

남포읍성을 몇 번이고 돌아본 곳이다. 보령시에는 생각 밖으로 문화재가 많은 곳이다. 하루에 그 많은 문화재를 다 돌아본다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몇 번에 나누어 답사를 했는데, 그때마다 남포읍성을 들렸던 것 같다. 성은 후에 별도로 한 권의 책으로 묶고 싶어, 성이 있는 곳은 그냥 지나치지를 않기 때문이다.

 

 

먼저 관아를 둘러보고 난 후 성으로 향했다. 초등학교 한 편에는 성 밖으로 축성의 흔적이 보인다. 이 곳이 바로 남포읍성에 있었던 3곳의 문 중 한 곳이며, 농로를 낸 밖으로 쌓인 돌은 문을 보호하던 옹성의 흔적이다. 옹성은 큰 돌로 쌓아 견고하게 축성을 했음을 알 수가 있다. 성밖으로 성을 한 바퀴 돌아본다.

 

무너져 읍성, 복원 서둘러야

 

고려 우왕 때 석성으로 축성을 하고, 공양왕 2년인 1390년에 축성을 완성하고 군영을 둔 남포읍성. 조선 태조 6년인 1398년에는 병마첨절제사를 두어 현사를 겸하게 하였다. 성벽 위에는 미석과 여장을 두었으며, 곳곳에 치를 조성해 적을 물리칠 수 있도록 하였다. 옹성은 큰 돌로 쌓아 외부에서 성문을 찾기가 어렵도록 조성을 하였다.

 

 

쌓인 눈이 녹기 시작하자 곳곳에 잡풀이 드러난다. 성벽 인근에도 수많은 잡풀더미에 성벽이 가려져 있다. 군데군데 무너져 내린 성돌이 구르고 있다. 어느 집은 성벽에 붙여 집을 지어, 읍성의 성벽이 집 뒤 축대처럼도 보인다. 곳곳에 복원을 한 곳도 있지만, 900m 전체를 복원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성은 복원이 될 때 그 진가를 알 수가 있다. 우리나라의 성은 대개 지형을 이용해 축성을 하기 때문에, 일부 복원만 갖고는 그 성의 진가를 가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포읍성의 경우 현재 보존이 된 성벽만 갖고도 그 진가를 능히 가늠할 수가 있다. 하지만 완전한 복원이 되면 얼마나 중요한 시설이었는가를 한 눈에 느낄 수가 있을 것을.

  1. 이전 댓글 더보기
  2. Boramirang 2014.02.03 07:47 신고

    문화와 역사가 빈약한 나라들은 역사바꾸기 왜곡하기에 열중인데
    우리는 잘 쌓아둔 역사까지 외면할 수 밖에 없는 것인 지...
    안타까운 현장이군요.

    갑오년 새해 힘차게 시작하십시오~^^

  3. 예또보 2014.02.03 07:55 신고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군요
    감사히 잘보고갑니다

  4. 굄돌* 2014.02.03 08:03 신고

    복원이 어려울 것 같지도 않은데
    저렇게 방치해두는 이유가 뭘까요?

  5. landbank 2014.02.03 08:03 신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 잘 보전해야 겠습니다
    잘보고갑니다

  6. pennpenn 2014.02.03 08:10 신고

    이곳도 방문하고 싶은 곳이네요~
    월요일을 멋지게 열어가세요~

  7. 포장지기 2014.02.03 08:39 신고

    방치되어있는 문화재를 보노라면 안타까운 마음이 간절 합니다..
    온누리님 덕분에 문화재의 중요성을 많이 배우고 느껴서
    더 그렇네요^^ 잘보고 갑니다^^

  8. 2014.02.03 08:45

    비밀댓글입니다

  9. Hansik's Drink 2014.02.03 09:32 신고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
    의미있는 한 주를 보내셔요~

  10. 쿨럭~ 2014.02.03 09:38 신고

    멋진 사진과 글 잘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11. 자칼타 2014.02.03 09:43 신고

    읍성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네요...ㅜㅜ
    빨른 복원이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2. 제갈광명 2014.02.03 09:52 신고

    덕분에 읍성이라는걸 알게 되었네요 남포읍성이 빨리 복원됐으면 좋겠네요^^

  13. +요롱이+ 2014.02.03 09:55 신고

    멋진 사진과 글 너무너무 잘 보고 갑니다.

  14. 자판쟁이 2014.02.03 10:02 신고

    빨리 복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
    잘보고 갑니다.

  15. 에스델 ♥ 2014.02.03 10:09 신고

    무너져 내려 잡풀이 무성한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복원이 이루어져서 진정한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듭니다.
    그리고 덕분에 성을 세가지로 구분하는것도
    알게되었습니다.^^
    행복한 월요일 보내세요!

  16. 노피디 2014.02.03 10:11 신고

    산성과 평산성, 읍성의 차이가 그런 것이었군요!

  17. ★입질의추억★ 2014.02.03 10:50 신고

    얼핏 보면 읍성이 있었는지도 모를 풍경이네요.
    복원이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18. 대한모 황효순 2014.02.03 10:57 신고

    우리의 것은 진짜
    볼때 마다 아름다운듯~^^
    감사히 보고 갑니다.

  19. 소인배닷컴 2014.02.03 11:04 신고

    우리나라 문화재가 정말 많으면서도 모두 하나같이 멋진 듯 합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20. 다소미아 2014.02.03 11:45 신고

    무너진 읍성을 하루빨리 복원해야한다는 말씀에 적극 공감합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21. 놀다가쿵해쪄 2014.02.03 17:41 신고

    성에도 종류가 많군요...
    소중한 문화재의 소중함을 너무 잊고 사는 듯 싶습니다.
    빠른 조치로 더 이상 소실되는게 없었으면 합니다..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 688에 소재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91신경섭 가옥(申慶燮 家屋)’ 조선 후기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이 집은 사랑채 중간에 마루를 두어서 대청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무의 결과 단청의 색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는 집이다. 대문채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며, 신석붕의 효자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신경섭 가옥을 들려온 것은 꽤 나 시간이 지났다. 은행의 열매가 떨어져 냄새가 코를 진동할 때였으니. 문화재 답사를 마치면 바로 글을 써야 감을 잊지 않지만, 한꺼번에 많은 문화재를 답사하고 나면, 그렇게 바로 글을 적는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러다 보면 가끔 이렇게 철지난 글을 적어야할 때가 있다.

 

 

자 형의 사랑채가 돋보이는 집

 

신경섭 가옥을 찾았을 때 후원 담장 한편이 트여있다. 앞으로 돌아가니 대문인 듯 효자정려가 걸려있는 문은 잠겨 있다. 담 밖을 돌면서 집을 돌아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지나가시다가 저 편으로 돌면 문이 열려 있으니, 그쪽으로 돌아가 보라고 하신다. 그럴 때면 정말 안내를 해 준 분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신경섭 가옥은 조선후기에 지어진 집으로 자 형의 사랑채와 안채가 -자 형으로 자리를 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자 형으로 구성이 된 충청도의 양반가옥이다. 이 가옥은 안채에 안방, 건넌방, 대청, 고방, 부엌을 들였고, 사랑채의 상량문에는 승정기원후사계묘라고 적고 있어, 1842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사랑채의 한편 끝에는 높임 누마루 방을 두어 정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자 곁으로 돌아가니 후원 앞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이 누마루 정자 방에서 바라보는 후원을 바라보는 정취가 일품이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사랑채와 안채 중간에는 돌우물이 자리하고 있어, 자칫 무료한 안마당의 멋을 더해주고 있다.

 

양반가옥의 기품을 지키는 집

 

효자정려가 걸려있는 대문은 사랑채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동선을 마련한 듯하다. 열려있는 또 한편의 문은 들어가면서 좌측에 4칸의 광채를 달아냈고, 우측으로는 5칸의 안채가 있다. 안채는 부엌과 안방, 대청, 건넌방의 순으로 조성을 했는데, 건넌방의 앞에는 높임마루를 두었다.

 

 

안채 부엌의 앞에로는 돌우물을 마련해, 부엌을 사용하는 주부들의 이용에 편리할 수 있도록 동선에 신경을 쓴 듯하다. 안채 뒤편에는 장독대를 두었으며, 마당 가운데에는 작은 화원을 마련하였다. 집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양반가옥의 기품을 그대로 보여주는 집이다. 신경섭 가옥을 찾았던 날이 106일 보령시 답사 때였으니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다.

 

, 쪽문으로 출입을 했을까?

 

집안을 한 바퀴 돌면서 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와 굴뚝을 찍고 있는데, 곁에 작은 쪽문 하나가 보인다. 마침 문이 열려있기에 안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 또 하나의 쪽문이 있다. 문에는 모정문(母情門)’이라고 쓴 작은 나무패가 걸려있다. 어머니의 정을 그리는 문일까? 그 문으로 들어가면 사랑채가 되는데, 왜 이렇게 문의 명칭을 정한 것일까?

 

 

이렇게 작은 문 하나에는 많은 사연이 있을 듯도 한데, 물을 사람이 없으니 그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 아마도 그 모정문 밖에 효자정려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문으로 사랑채로 드나들면서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고택을 찾아다니면서 아직도 궁금한 것이 많기만 하다. 그래서 더 많은 곳을 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1. +요롱이+ 2013.12.16 11:45 신고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 하늘마법사 2013.12.16 12:01 신고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3. 朱雀 2013.12.16 12:22 신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만난 듯한 느낌이네요. 온누리님의 포스팅을 볼때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택과 문화재의 사연을 접할 때마다 답답하면서도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됩니다. ^^

  4. 김천령 2013.12.16 13:37 신고

    좌우대칭의 사랑채가 독특하군요. 잘 보고 갑니다.

  5. 대한모황효순 2013.12.16 14:00

    완전 아름답다.
    겨울에는 춥겠죠.
    무지~^^

  6. 진율 2013.12.16 14:20 신고

    멋진 곳이네요~!!

  7. 제갈광명 2013.12.16 22:45 신고

    부족한 제 블로그에 찾아와 댓글도 달아주시고 감사합니다 한때 온누리님과 블로이웃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는데, 이제 제 존재감만 알리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온누리님을 보면서 장인정신을 엿보게 됩니다 신년에는 계절별로라도 블로거 답사여행을 가는것은 어떤지요? 문화블로거가 적음을 안타까워할게 아니라 조금은 그마음을 글이아닌 옆에서 알려주는것도 좋을것같아요 물론 사람이 꼬이면 시끄러 역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못들을 수 있겠지만요

  8. 별이~ 2013.12.17 00:02 신고

    신경섭 가옥 너무 잘보고갑니다^^
    하루 마무리 잘하시고, 좋은저녁 되세요^^

  9. 카르페디엠^^* 2013.12.17 01:06 신고

    와우 너무나 멋지게 느껴집니다^^

  10. 알숑규 2013.12.17 01:07 신고

    오늘도 잘 봤습니다. 우리는 옛 건물, 더 나아가 옛 문화제에 대해 그리 많이 알고 있지 못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특히 서양 건물은 대충 알면서 한옥 쪽은 실상 무지하다시피하니 이런 생각이 더 강해지네요.

  11. 포장지기 2013.12.17 03:28 신고

    고택이 주는분위기가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네요^^

 

1130()화성연구회(이사장 이낙천) 회원 30여 명과 함께 떠난 답사. 보령 성주사지와 남포읍성, 서산 부석사를 돌아오는 당일 코스로 길을 떠났다. 제일 먼저 들린 곳이 바로 백제 때의 절 오합사가 나중에 낭혜화상이 중창을 하면서 이름을 바꾸었다는 성주사지. 국보 1점과 보물 3, 그리고 지방문화재 3점이 있는 곳이다.

 

금당이란 절의 중심부요, 부처님을 모신 곳이다. 절에서는 가장 중요한 곳임은 부언할 필요가 없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성주사는 백제시대 사찰로, 백제멸망 직전에 붉은 말이 이 절에 나타나 밤낮으로 여섯 번이나 절을 돌면서 백제의 멸망을 미리 예시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성주사는 백제 법왕이 왕자일 때인 599,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을 위해 건립한 사찰이라고 전한다.

 

 

숭암사 성주사 사적에 보면 옛 성주사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알 수가 있다. 불전 80, 행랑 800여 칸, 수고 7, 고사 50칸으로 거의 천여 칸의 거대한 규모를 가진 사찰이었다. 현재 발굴 후 잘 정비가 된 성주사지는, 9천여 평의 대지를 낮은 석축 담으로 둘러싸고 있다. 전날 눈이 내려 아직 눈이 남아있는 성주사지. 많은 문화재가 있지만, 그 중 가장 눈길을 붙드는 것은 바로 금당터였다.

 

금당터의 석불좌 설명이 이상해

 

성주사 금당은 백제가 멸망한 후인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되었다. 백제에서 가장 웅장한 가람이었던 성주사에 신라는 왜 금당을 새롭게 조성한 것일까? 통일신라시대에 금당을 조성했다면, 금당터를 오르는 돌계단도 이 시기에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금당터에는 사면으로 계단을 조성하였는데, 그 중 중앙오층석탑 뒤로 오르는 계단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40호인 성주사지석계단(聖住寺址石階段)’이다.

 

계단은 잘 다듬은 널찍한 돌을 이용하여 5단으로 쌓아 올렸다. 중앙오층석탑에서 금당으로 오르는 계단은 남다르다. 정면이기 때문에 양쪽 소맷돌에 사장상을 조각해 앉혀놓았다. 이 사자상은 1986년에 도난을 당한 것을, 옛 사진을 토대로 다시 복원하였다고 한다. 사자상의 설명을 듣고 나서 계단을 올라 석불좌 앞에 모여섰다. 그런데 이곳에서 해설사의 안내가 영 미덥지가 않았다.

 

 

금당터는 사방이 트였던 것으로 보여

 

금당의 한 가운데는 석불좌가 남아있다. 넓게 석재를 이용해 2단으로 조성한 석불좌는 조형미기 뛰어나다. 큼지막하게 사각형으로 조성한 석불좌. 일반 석불좌처럼 높지가 않은 것은, 아마도 이 부분이 하층기단부이고, 위에는 상층기단부가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불좌는 장대석으로 네모나게 두르고 난 뒤, 그 위에 연꽃잎을 크게 조각한 앙련을 새긴 4장의 석재를 이용해 위 기단을 올렸다. 네 장의 석재를 가변부분을 둥그렇게 조형하였으며, 그 중심을 도드라지게 하였다. 아마도 이 부분에 상층기단인 좌대를 올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남은 석불좌만 보아도 훌륭한 석조각임을 알 수가 있다.

 

 

이 금당터 중앙에 있는 석불좌를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즉 석불좌 사방에 주초가 놓여있고, 북쪽으로 또 하나의 주초가 있다. 이렇게 석불좌와 주초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금당터 가까이만 전각을 지었다는 것이다. 높게 조성을 한 금당터의 사방에 계단이 있고, 중앙에만 주초가 있었다는 것은, 사방에서 이 금당터를 올라 예를 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즉 금당터 사방이 트여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설사의 해설이 못 미더워

 

그런데 정말 웃지 못 할 일이 생겼다. 금당터 중앙에 있는 석불좌를 설명하는데, 영 미덥지가 않다. 해설사의 말로는

 

이 석불좌 위에 신라시대에 조성한 철불이 있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철불을 조각내어 가져가버렸다. 그리고 이 석불좌는 깨진 것이다. 이 위에 철불이 있었는데, 그 흔적이 여기 이렇게 녹슨 흔적이 남아 있다는 설명이다.

 

 

석불좌가 깨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개 석불좌는 거대한 돌을 구할 수 없을 때, 몇 조각으로 나누어 조성을 한다. 대개는 두 조각이나 네 조각으로 조성을 하는데, 깨진 석조각이 4조각으로 칼로 그은 듯 깨질 수가 있을까? 그리고 현재 남아있는 석불좌는 하단부이다. 그 위에 커다란 네모난 돌을 앉고 앙련을 하단부에 새겨진 조각의 반대형으로 조각을 한다.

 

철불이 있었다는 것은 그렇다 치고라도 석불좌가 깨졌다거나, 그 위에 바로 철불을 올려 그 흔적이 남았다는 것은 영 미덥지가 않다. 거기다가 국보인 낭혜화상 탑비를 70이 넘은 마을 어르신이 업고 다녔다는 설명에서는, 그저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비 몸돌의 높이가 263cm, 너비 155cm, 두께 43cm나 되기 때문이다. 장정 몇 사람이 들어도 힘든 비를 노인네가 업고 다녔다는 설명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문화재 해설이란 정확한 역사를 알려주어야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이라는 단어를 써 가면서 하는 문화재 해설. 참 웃지도 못하겠다. 문화재 답사를 많이 하는 나로서는 가끔 이렇게 해설사들이 입증이 안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하기에 내가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해설사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화재 해설,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정확한 근거가 없이 하는 가정의 해설, 또는 본인의 생각만으로 추정하는 문화재 해설은 삼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 문화재 해설이란 가장 정확한 내용, 가급적이면 역사적으로 입증이 된 내용을 관람을 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1. 가을사나이 2013.12.02 06:36 신고

    해설사가 공부를 좀더 많이 해야겠군요

  2. 참교육 2013.12.02 07:15 신고

    해설사 모아놓고 선생님이 교육을 좀 시켜야겠습니다.
    건증되지 않은 해설로 문화를 해설하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게지요. 따끔하게 혼내주시지 않고요.

  3. 제갈광명 2013.12.02 07:30 신고

    잘 읽었습니다. 해설사에 대한 교육과 지원이 있어야겠네요

  4. 행복끼니 2013.12.02 07:39

    문화해설사가 공부를 많이 하셔야할텐데요~

  5. 귀여운걸 2013.12.02 08:03 신고

    이런이런 문제가 심각하네요..
    해설사만 믿고 구경해서는 안되는건가요?
    온누리님께 배운 해설사에게 문화재 안내를 들어야 안심이 되겠어요^^

  6. 포장지기 2013.12.02 08:06 신고

    오늘도 발로 뛰며 쓰는글 잘보고 갑니다^^
    모든 해설사분들이 온누리님의 발끝만큼의 지식과 열정을 가지고 잇었으면 하네요^^

  7. 오렌지수박 2013.12.02 08:12 신고

    사실 유적지를 찾는 일반인의 입장에선 해설사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 밖에 없는데..조금 더 개선이 필요할 것 같네요.

  8. pennpenn 2013.12.02 08:12 신고

    문화초보는 이런 사실을 모르지요~
    금주도 알차게 보내세요~!

  9. 예또보 2013.12.02 08:13 신고

    정말 공부를 많이 해야할 직업인 것 같습니다
    잘보고갑니다

  10. 뉴엘 2013.12.02 08:17 신고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11. landbank 2013.12.02 08:21 신고

    공부많이 해야할 직업이 문화재 해설사 인것 같습니다

  12. 행복한요리사 2013.12.02 08:23

    해설사의 안내가
    정확했으면 좋을것 같아요.
    포스팅 고맙습니다. ^^

  13. 굄돌* 2013.12.02 08:24 신고

    해설사가 공부를 덜했던 걸까요?
    전 그저 해설사들 말을 들으며
    감탄만 했었는데 이렇게 의문을 가져보기도 해야 하는군요.

  14. *저녁노을* 2013.12.02 08:26 신고

    허걱...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하는 사람이...쩝~~

  15. 朱雀 2013.12.02 08:40 신고

    참...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네요. --;;;

  16. 솔향기 2013.12.02 08:42

    문화재 해설사들은 더 많은 공부를 해야 겠네요
    저는 언제나 그 해설사말을 잘 새겨 듣게 되는데...
    행복한 한주 되세요~~

  17. +요롱이+ 2013.12.02 09:21 신고

    정말 공부를 많이 해야 할 직업인 듯 합니다.

  18. 해바라기 2013.12.02 09:42

    좀더 문화재에 대한 연구를 해서 해설사로 나와야 됨을 알겠네요.
    좋은 한주 되세요.^^

  19. 할말은 한다 2013.12.02 11:53 신고

    이런일이 있어서는 아니될일이지요.
    사전에 공부를 좀더 하셔야겠습니다.

  20. 주리니 2013.12.02 16:02

    저요... 해설사 공부 해 볼까 했는데
    이거 아는 사람한테 해설한답시고 얘기 꺼냈다가 면박 받을까봐서 못하겠네요. ㅋㅋ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 성주사지에 소재한 보물 제19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五層石塔)’. 성주사지 중문지를 지나 석등과 오층석탑, 금당지가 일렬로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성주사는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 법왕 때 창건한 오합사(烏合寺)가 이 절이었다고 한다.

 

성주사는 통일신라 문성왕대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이 절의 주지가 되어 번창시키니, 왕이 성주사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는 성주사를 지난 106일에 찾아보았다. 바람이 불고 간간히 빗방울도 뿌리는 날 찾아간 성주사는, 인적도 없이 고요함뿐이었다.

 

 

전형적인 신라 석탑

 

성주사지 오층석탑은 이 절의 금당 터로 보이는 곳의 앞에 서 있다. 금당 터 뒤로는 3층 석탑 3기가 나란히 서 있는데, 서로 층수만 다를 뿐 만든 솜씨는 비슷하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에 양 우주를 새겼으며, 가운데는 탱주를 새겨넣었다.

 

기단의 위로는 탑신을 괴기 위한 평평한 돌을 따로 끼워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각 면의 귀퉁이에도 기둥 모양인 양 우주를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지붕돌의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끝에 가서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갔다.

 

 

우아한 모습의 오층석탑

 

성주사지 오층석탑의 전체 높이는 634cm이다. 기단부와 목개석, 몸돌 등이 완만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위로 올라가면서 점점 좁아져, 우아하고 경쾌한 모습으로 균형미가 돋보인다. 전체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 탑의 전형적인 모습이나, 1층 몸돌 아래에 괴임돌을 따로 끼워 두었으며, 1층 몸돌에 사리공이 있다.

 

대개 신라의 석탑은 기단부 위에 삼층의 몸돌을 올리는 것이 기본이지만, 이곳이 옛 백제의 지역이므로 신라와 백제의 석탑의 양식이 혼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는 이 시기가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시기이므로, 새로운 양식의 고려석탑으로 이어지는 형태로도 보인다. 현재는 상륜부가 사라진 오층석탑은 천년 세월을 그 자리에 꿋꿋하게 서 있다.

 

문화재 보호는 개인이 할 수 없어

 

전국에 산재한 많은 문화재들은 어느 누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아니다. 문화재 보호란 해당관청은 물론이려니와, 언론, 종교단체, 사회단체, 개인 등 모든 분야가 공동의 책임을 져야만 한다. 하지만 언론이나 그런 문화재를 보호해야 할 것을 종용해야 할, 도의적 책임이 있는 포털 사이트 등은 아예 외면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문화재보호, 참으로 소중하고 우리가 함께 책임을 져야할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나 몰라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늘 문화재보호 운운하는 그런 속보이는 짓거리들은 이제 그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정한 문화재보호를 해야 하는 것은, 그 안에 우리의 정신세계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1. ★입질의추억★ 2013.10.29 12:02 신고

    유수한 세월을 견디어 온 자태가 늠름하기까지 하네요. ㅎㅎ

  2. S매니저 2013.10.29 12:22 신고

    왠지 늠름해보이는 듯한.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3. 건방진고양이 2013.10.29 13:20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오늘하루 편안한 시간되세요~~
    (__);

  4. 대한모황효순 2013.10.29 13:59

    이리 자세히
    들여다 보니까
    무지 아름다워 보여요.^^

  5. 티통 2013.10.29 14:08

    잘보고 가요~~
    좋은날씨네요 좋은하루되세요.

  6. The 노라 2013.10.29 14:24 신고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 느낌도 좀 나네요.
    백제는 사라지고 통일신라 시대가 되었지만 역시 백제느낌이 남아 있습니다. ^^

  7. 비바리 2013.10.29 15:39 신고

    앗....경북성주가 아니로군요
    참외로 유명한 성주인줄 알았습니다.
    처마가 살짝살짝 그래서 은근..친근감이 있기도 하군요

  8. 클라우드 2013.10.29 16:07

    문화재 보호에 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십니다.
    공동 책임에 공감하면서..오후도 평안하세요.

  9. Hansik's Drink 2013.10.29 18:03 신고

    덕분에 잘 보고 간답니다 ^^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세요 ㅎㅎ

  10. 별이~ 2013.10.30 00:23 신고

    성주사지 오층석탑 잘보고갑니다^^
    하루 마무리 잘하시고, 좋은꿈 꾸세요^^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에 소재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3호인 성주사지석등 (聖住寺址石燈)’. 성주사지 내에 소재한 보물 제19호인 성주사지 오층석탑 앞에 놓여있는 8각 석등이다. 이 석등은 석탑 앞에 각 부분이 흩어져 있던 것을, 1971년 석탑을 수리하면서 현재의 자리에 세워 둔 것이다.

 

불교중앙박물관 관장이자 문화재위원인 흥선 스님은 절 안에 놓는 석등에는 불타, 진리, 지혜의 상징, 공양물 등 어둠을 밝힌다는 의미와 기능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고 했다. 사찰마다 만나볼 수 있는 석등은 대개 대웅전이나 탑 앞에 자리하고 있다. 성주사지의 석등은 중문 터를 들어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통일신라시대의 석등

 

석등의 형태는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을 이루는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성주사지의 석등 역시 머릿돌 아래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두고, 그 밑에 화사석을 받치고 있는 간주석과 받침돌로 이루어졌다.

 

성주사지의 석등은 하나의 돌로 다듬어 놓은 바닥돌과, 받침의 아랫부분은 그 윗면에 연꽃무늬를 둘렀다. 아무런 조각이 없는 가운데기둥인 간주석은 가늘고 긴 편이다. 위 받침돌은 맨 아래의 받침을 거꾸로 놓은 듯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팔각의 화사석은 불빛이 퍼지도록 4면에 창을 내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1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하다.

 

 

단아한 자태를 지녀

 

높이 220cm 정도인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화사석에 마련된 창의 주변에 창문을 걸기 위한 구멍의 흔적이 없는 점이나, 가운데기둥이 가늘고 길어 전체적인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 하지만 군더더기가 없는 단아한 자태로 조성이 되어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부담이 없게 조성되었다.

 

106일에 찾아간 보령시. 그 첫 번째로 만난 성주사지의 석등은 마음 편하게 답사를 할 수 있는 문화재였다. 여러모로 따져보기 위해 고민을 할 필요도,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도 없는 문화재였다는 생각이다. 한 가지 이 석등의 시기가 불분명하다는 것은 아쉽다. 보령시의 석등 안내판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비해, 문화재청 안내판에는 뒤편의 오층석탑 보다 조성시기가 늦은 조선조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문화재청 안내자료까지 오류를 범해

 

그런데 문화재청의 자료에 오류가 보인다. 시기는 통일신라시대라고 기술하고, 설명에는 조선조의 것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문화재청은 우리나라 문화재를 보호, 관리해야 하는 최고의 기관이다. 당연히 모든 문화재에 대해 꼼꼼히 따져보고, 그것을 관리, 감독할 의무를 지닌 곳이다.

 

그런 문화재청의 자료에서부터 오류가 발생한다면, 도대체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는 누가 지켜가야 하는 것일까? 많은 자료를 정리하다가 보면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지정 문화재 안내 하나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한다면, 굳이 문화재청이라는 존재가 필요는 한 것일까? 철 지난 자료사진, 설명의 오류, 준비 중에 있다는 메시지. 우리 문화재청의 현주소이다.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문화재청의 홈페이지 성주사지 석증에 관한 문화재 설명이다. 분류에는 시대가 통일신라로 표기되어 있는데 설명은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성주사지 안내판에는 통일신라로 되어있다.  

  1. 해바라기 2013.10.23 07:01

    좋은 지적입니다. 문화제 표기에 오류가 있다면
    서둘러 고쳐야겠지요.
    좋은 수욜 되세요.^^

  2. 주리니 2013.10.23 07:09

    잘 몰라서 이런 자료를 참고하는데...
    그렇네요. 헷갈리게 해 놓으면 쓰기가 애매해집니다. 얼른 고치겠죠?

  3. 참교육 2013.10.23 07:24 신고

    나라 망신입니다.
    선생님이 문화재청으로 가셔야겠습니다.

  4. 온누리 온누리49 2013.10.23 07:52 신고

    산행나왔습니다
    내일이나 돌아갈 듯하네요
    날이 찹니다. 감기들 조심하세요^^

  5. Boramirang 2013.10.23 08:00 신고

    흠...통일신라라 쓰고 조선시대라 읽는군요.
    사삼 말고 산삼 몇 뿌리만 케 갖고 오소.
    무탈하시고요. ^^

  6. 가을사나이 2013.10.23 08:12 신고

    이런 오류를 범하다니요.

  7. pennpenn 2013.10.23 08:17 신고

    그러게요~
    감수도 제대로 하지 않는가보네요
    청명한 가을날을 잘 보내세요~

  8. 행복끼니 2013.10.23 08:19

    에구 세상에~
    빨리 수정되어야~~

  9. 펨께 2013.10.23 08:50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담하네요.

  10. 로앤티프16 2013.10.23 08:53 신고

    잘 모르는 사람들이 관리를 하니 이런 경우가 생기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에고......

  11. 귀여운걸 2013.10.23 08:59 신고

    어머.. 세상에.. 이런일이..
    얼른 수정되어야겠어요~

  12. 솔향기 2013.10.23 09:10

    큰 오류을 범했네요~~
    몰라서 한번씩 읽어보게 되는 글인데...
    행복한 날 되세요~~

  13. landbank 2013.10.23 09:17 신고

    이런 오류가 눈에 보이네요 ㅎ
    잘보고갑니다

  14. 朱雀 2013.10.23 09:21 신고

    정말 답답하기 이를 데 없네요. 통일 신라시대의 것을 조선시대라고 표기하다니...
    우리 문화재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네요...--;;;

  15. 예또보 2013.10.23 09:28 신고

    이런 문화재에 대한 오류가 참 안타깝습니다
    잘보고갑니다

  16. 클라우드 2013.10.23 10:05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ㅜ
    바로 고치는 일 또한 중요함이지 싶습니다.

  17. The 노라 2013.10.23 10:14 신고

    이 자료 올리신 문화재청 담당자분이 자료 올릴 때 피곤하셨나???
    문화재청에서 지방각지 잘못된 정보를 시정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ㅠㅠ

  18. 카라의 꽃말 2013.10.23 10:19 신고

    정말 모르시는 분들은 어리둥절하겠는데요...
    조금만더 꼼꼼하게 봐줬으면...
    오늘도 힘내서 아자아자~ 파이팅~

  19. 에스델 2013.10.23 12:01

    정말 단아한 자태를 보여주는 석등입니다.
    문화재청까지 설명에 오류를 보이는 모습이
    참 안타깝습니다.ㅠㅠ
    빠른 시간내에 해당 내용이 수정되길 바라며...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