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말할 때

그이의 머리칼은 날리고 치맛자락은 펄럭인다

바람이 말하지 않을 때

그이의 마을 깃발은 펄럭이지 않는다

 

하늘이 말할 때

그이의 옷은 다 젖는다

그이의 지분이 다 젖고

낙숫물이 분주히 떨어진다

 

꽃이 말할 때

그이의 얼굴이 환히 웃는다

바다 건너 동쪽 땅 어디

온 세상은 파도가 된다. 파도소리가 된다.

 

 

지난 해 수원에 둥지를 튼 고은 시인의 시 세상의 말이라는 시이다. 이 시를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버스정류장이다. 인문학을 지향하는 도시 수원. 인문학은 인간학이라 할 만큼 시민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다. 시민이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감동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바로 인문학 지향의 도시이다.

 

정조대왕의 실증적 도시 수원

 

수원은 정조대왕의 계획도시이다. 정조대왕은 실학정신, 위민정신, 개혁정신을 바탕으로 화성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건설했다. 이 정조대왕의 계획아래 세워진 화성은 인문학의 실증적 도시이며 신도시이다. 이러한 인문학의 도시를 지향하고 있는 수원시에는 늘 시민들이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보인다.

 

 

수원시청 라비에 전시가 되어있는 글들. 인문학을 지향하는 수원에 거주하는 등단시인 30명이 재능기부로 시민들과 함께 공감하고자 작품을 주었으며, 이 글들을 120개 버스정류장에 게첨하였다. 작가들의 재능기부로 마련된 이 버스정류장의 글들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시켜, 인간미와 정이 넘치는 거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역시 수원이다.

 

조락(凋落)의 햇살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광교산자락 오래된 절벽

상수리나무 밑에 앉아있는데

바람 속에서

산이 무자화두를 던졌다

나무가 잘 물든 나뭇잎 몇 개를

떨어트렸다

자기들끼리 소리내어 흐르던 물이

나뭇잎을 데리고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갔다.

 

수원시인협회 김우영 회장의 산음(山吟)’이라는 시이다. 인문학을 지향하는 도시 수원. 역시 수원은 달랐다. 이렇게 120곳의 버스정류장에 게첨된 시를 재능기부한 작가들은 이미 문단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 시인이요, 수필가들이다.

 

수원시는 앞으로도 이렇게 등단 작가들의 좋은 글을 재능기부를 받아, 거리인문학 공간을 더욱 확충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다양한 시책을 적극 전개해 나갈 계획을 세운 수원시가 늘 자랑스러운 이유이다.

‘마애불’이란 커다란 바위 암벽의 면에, 부조나 선각 등으로 불상을 새긴 것을 말한다. 마애불이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마애종이 있다는 것은 그리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 않은 듯하다. 마애종이란 암벽에 새긴 종을 말하는 것이다.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 산32에는 바로 이 마애종이 있다.

석수동 산 32번지라고 해서 산을 연상할 필요는 없다. 석수동 마애종은 주차장이 있는 평지에 남서쪽을 향한 암벽에, 장방형의 목조 가구와 그 안의 종을 새긴 것이다. 현재 누각을 지어 이 마애종을 보호하고 있으며,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마다 안내판을 유심히 들여다보고는 한다. 아마도 이들에게도 마애종이라는 것이 낯설기 때문인가 보다.


종의 모양을 세밀하게 표현 해

누각 안 바위 암벽 면에 새겨진 마애종의 모양은 오랜 세월 풍화로 그리 선명하지는 않다. 상단의 보 중앙에는 쇠사슬을 달아 종을 걸어 둔 모양을 새겨 표현하였다. 그런데 그 모양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동종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굵은 쇠사슬로 매단 종의 상단은 용뉴와 음통이 확연하게 표현을 하였다.

종의 상단에는 장방형 유곽을 2개소에 배치하였는데, 그 안에 각각 9개의 원형 유두가 양각되어 있다. 이 또한 일반적인 종에서 볼 수 있는 모습 그대로이다. 종신의 중단에는 연화문이 새겨진 당좌를 표현하고, 하단에는 음각선으로 하대를 표시하였다. 아마도 이 마애종을 새긴 장인이 종에 대한 많은 지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종을 치고 있는 승려, 생동감 있게 표현 해

종의 오른쪽에는 종을 치고 있는 승려상을 조각하였다. 이 승려상의 모습은 지금의 승려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이 마애종을 조각하였을 당시의 모습도 지금과 같았던 것일까? 다만 그 법의의 형태가 현재의 승려복이기 보다는 흔히 부처상에서 보이는 그런 법의와 흡사하게 표현을 하였다. 긴 막대를 사용하여 종을 치는 모습은 당장이라도 종소리가 울려 퍼질 듯하다. 목조 가구의 위쪽에는 3개소에 화반을 표시하였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안양시 석수동의 마애종은 현존하는 마애종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종의 세부 표현에 있어 청동제와 다를 바 없어, 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주변의 중초사지 유적과 연관성을 생각해 볼 때, 고려시대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이 곳은 이 마애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근에는 고려시대의 절터인 중초사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 중초사지는 그동안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문헌자료에만 남아 있던, 안양사 7층 전탑 터가 2010년에 확인되기도 했다. 그 이전 2009년에는 이 일대의 발굴조사 과정에서 안양사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기도 헸다. 이곳 일대에 고려시대에 안양사가 위치한 곳이라는 것이다.

저 마애종이 울리면 새 세상이 올까?

한참 마애종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돌아보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이야기를 하는 말소리가 들린다.

“저 마애종이 울리면 세상이 바뀌려나? 제발 좀 그랬으면 좋겠네. 사람들이 좀 편하게 사는 세상이 왔으면”



뒤를 돌아다보니 등산객인 듯한 사람들이 안내판을 보면서 하는 소리이다. 속으로 그 말에 백배 공감을 한다. ‘제발 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아마도 이 마애종을 바위에 새긴 장인도 그런 마음으로 새긴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니 저 종을 치고 있는 스님의 모습이, 지금이라도 종을 칠 듯한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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