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유적의 제작연대를 가늠하는데는 그 생김이나 재질, 모습의 특징 등을 보아서 제작연대를 추정한다. 그래서 불교유적의 제작시기를 대개는 몇 세기경이나 삼국시대, 혹은 통일신라, 또는 고려 초기 등으로 기록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물 제159호 함안 방어산 마애불은 유일하게 그 제작연도를 새겨놓아, 통일신라 불상조각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함안 방어산 마애불을 찾아갔을 때는 꽤 더운 날이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자료 정리를 하다가 함안 방어산 마애불을 보는 순간, 아스름한 옛 기억이 되살아 난다. 아마도 마애불을 만나기 위해 흘린 땀이 족히 수건 몇 장을 적실만한 양이었기 때문인가 보다. 한낮의 더위는 그리 녹록지가 않은 날 산을 오른다는 것은 정말로 고통이다.

 

 

시작부터 문제였던 문화재 답사 길

 

 

거기다가 방어산을 오르는 날은  넥타이에 구두까지 신었으니, 현장답사를 하기에는 적합한 차림새도 아니다. 마애불을 오르는 길에 있는 마애사를 찾았다가, 보물이 있다는 소리에 찾아보리라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지도 않게 문화재를 답사하는 날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고생을 한다. 

 

그러나 출발을 한지 채 20분도 안되어서 후회를 시작했다. 길은 계단으로 잘 만들어져 오르는데 문제는 없었지만, 이정표가 500m라고 적힌 것을 보고 우습게 안 것이 불찰이다. 입구에서 잡화를 파는 분에게 마애불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조금만 가면 된단다' 그래서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500m가 그리 멀 줄이야. 도대체 문화재 측정거리를 실 거리로 표시하지 않고, 직선거리로 표시를 해 놓다니. 답사를 하는 나로서는 이런 경우 정말로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고된 문화재 답사를 기억해내다

처음에는 그저 오르면서 이것저것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한참을 올랐는데도 마애불이 보이지를 않는다. 작은 물병은 이미 바닥이 나고, 손수건은 그냥 손에 힘만 주어도 닦은 땀이 주루룩 흐른다. 오르는 길에 쉼터가 보인다. 앉아서 쉬고 있으려니 사람들이 내려온다.

 

"마애불이 어디쯤 있어요?"  

"예, 꼭 반 왔네요"

"반이요?  500m라고 되어 있는데요"

 

가까운 거리인줄 알고 오르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멀다니 앉아서 고민을 한다. 올라가야하나, 아님 포기를 하고 내려가야 하나. 그러나 절반을 왔는데 그냥 내려갈 수는 없다. 아무리 땀이 흐르고 힘이 들어도 보물이 있다는데 하면서 다시 산을 오른다.

 

그저 땅만 내려다보면서 묵묵히 오른다. 위를 보고 오르면 더 빨리 지칠 것 같아서다. 오르다가 보니 앞에 산 날망이 보인다. 그런데 마애불은 보이지를 않는다. 결국 능선 위를 다 가서야 마애불을 볼 수 있었다. 500m를 오르는데 무더운 날씨 덕에 엄청난 땀을흘리며 한 시간은 걸린듯 하다. 문화재 하나를 만나기 위한 고통은 때로는 상상을 초월하기도 한다. 미끄러운 길을 걷다가 발을 겹질린 것만 해도 아마 수십 번은 넘을 것이다. 깨지고 찢어지고, 흉터가 생기는 험난한 여정이 바로 문화재 답사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국엔 그 많은 땀을 흘리고 마애불 앞에 섰다. 산 정상 바로 아래서 만난 방어산 마애불. 널직한 바위에 선으로 음각을 한 마애불은. 그저 바라다만 보아도 절로 탄성이 나온다. 이 산중에 도대체 왜 오랜시간 공을 들여 마애불을 조성했을까? 아마 그 선 하나 하나를 파면서 스스로 피안의 세계를 그리던 것은 아니었을까?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니까짓 것들이 문화재의 소중함을 알기나 하는겨?

 

방어산 마애불의 조성년대는 신라시대인 801년이다. 중앙에 본존은 약사여래이며, 좌 우의 협시보살은 각각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새겨넣었다. 왼편은 일광보살로 남성적이며 오른편은 월광보살로 눈썹사이에 달무늬가 그려진 여성상이다.

 

문화재를 찾아다니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가 않다. 평지에 있는 경우도 있지만, 몇시간을 산을 올라야 탑 하나를 찍을 수도 있다. 날씨가 매번 좋은 것도 아니다. 때로는 비가 쏟아져 바로 코 앞이 보이지 않을 떄도 있고, 눈이 쌓여 미끄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문화재는 우리의 정신이란 생각이다. 그래서 하루라도 더 많이, 또 한 점이라도 더 많이 찾아보고 싶은 욕심이다.

 

언젠가는 이 답사도 끝이 날 것이다. 그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올들어 급작히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걸을 수 있고 체력이 받쳐만 준다면, 모든 것을 보고 싶은 것이 마음이다.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럴 때마다 속으로 하는 말이 있다. 나 스스로에게 힘을 얻기 위한 자구책이다.

 

"니까짓 것들이 문화재의 소중함을 알기는 하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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