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굴뚝에 대한 글을 쓰면서, 제일 먼저 궁궐의 화려한 굴뚝에 대한 글을 썼다. 그리고 사대부가의 기와집의 굴뚝에 대한 글을 적었다. 이제 남은 것은 사대부가도 있지만, 주로 민초들이 살던 초가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궁궐의 굴뚝과 사대부가인 기와집의 굴뚝도 특징이 있지만, 초가의 굴뚝은 또 나름대로 특징이 있다.

초가는 지붕을 얹은 짚이 불에 잘 붙는다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비교적 굴뚝을 높게 올리거나, 멀리 떨어져 세운다. 대개의 경우는 높이 올리는 편인데, 이는 낮은 굴뚝을 통해 불똥이 날아오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중요민속문화재 제148호 정원태 가옥의 사랑채 굴둑. 전형적인 초가의 굴뚝이다. 제천시 금성면 소재. 이 집은 사람이 살고 있다. 


초가의 굴뚝은 높거나 멀거나

문화재 답사를 다니면서 한 가지 답답한 일을 겪는다. 그것은 바로 복원이라는 허울아래 망가지고 있는 우리의 문화재들이다. 전문적인 보수 기술자들이 복원을 한다고 믿고 있는데, 정작 돌아보면 그렇지가 않다는 점이다. 괜히 겉멋을 부리려고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 마음이 아프다.

초가의 굴뚝인 그 구조상 굴뚝이 지붕보다 높아야 한다. 아니면 연도를 길게 빼어 집과 멀리 떨어트려 놓는다. 이러한 이유는 불을 붙기 쉬운 지붕 때문이다. 사대부가에서는 장작을 주로 때지만, 민초들은 삭정이나 검불 등을 주로 땐다. 그러다가 보니 불똥이 굴뚝을 통해 날아오를 수가 있는 것이다. 짚으로 이은 초가는 불똥만 튀어도 불이 붙을 수가 있다.

(사진은 용인 한국민속촌에 있는 초가집 굴뚝이다. 하나는 지붕보다 높게 올라가고, 돌로 쌓은 굴뚝은 집에서 떨어져 있다)

그런 화재를 염려해서 굴뚝을 높게 올리는 것이다. 굴뚝이 높으면 그만큼 불똥이 튈 확률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높게 할 수가 없을 때는 굴뚝을 연도를 길게 빼서 멀리 놓는다. 이 또한 불똥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어이없는 요즘 초가의 굴뚝, 아예 굴뚝이 없기도

초가의 굴뚝이 더 높은 이유는 민초들의 아픔이기도 하다. 잘 마른 장작하나 제대로 땔 수가 없는 지난 시절, 그나마 나무 삭정이나 검불이라도 많이 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땔감들은 굴뚝을 통해 곧잘 시뻘겋게 불똥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서 화재가 발생하기 때문에, 굴뚝을 높이거나 멀리 설치를 해야만 한다.


위는 사적 제230호인 천안의 유관순 생가지의 굴뚝이다. 전형적인 민초들의 굴뚝 모습이다. 아래는 충북 문화재자료 제38호인 청원 낭성 관정리민가의 굴뚝이다. 연도에서 솟은 연소통이 짧다. 이 집이 있던 곳은 바람이 많지 않았다고 하지만, 초가의 연소통치고는 너무 짧은 감이 있다.


이런 초가 굴뚝의 특성은 복원이라는 허울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변질이 되어버렸다. 굴뚝의 연도를 뺀 후 길게 연소통을 올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굴뚝 연도 끝에 작은 통 하나를 박아놓는 것으로 그쳤다. 만일 그런 곳에 검불이나 삭정이들을 아궁이에 집어넣고 불을 지핀다고 하면, 그야말로 불조심과는 거리가 먼 일이다.

그런데 여기저기 옛 집들을 돌다가보니, 더 가관인 집도 있다. 아궁이는 있는데 아예 굴뚝이 없다. 세상에 굴뚝이 없는 집도 있을까? 그렇다면 연소는 어떻게 할까? 그저 대충 집만 비슷하게 만들어 놓고, 그 다음엔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굴뚝은 집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구조물이다. 그런 굴뚝이 없이 집을 지어놓고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일까?



위는 강원도 고성 왕곡마을의 초가집 굴뚝이다. 바람이 강한 곳이기 때문에 담장에 연도를 집어 넣었다. 가운데는 중요민속문화재 제39호인 고창 신재효 생가의 굴뚝이다. 낮지만 연도를 길게 빼어 집에서 떨어트려 놓았다. 그리고 아래는 삼척시 도계의 신리 너와집 굴뚝이다.


사는 집과 살지 않는 집의 차이

이런 오류는 사람이 살고있는 집과, 사람이 살고있지 않은 집이 극명하게 대비가 된다. 사람이 살고 있으면 제대로 된 굴뚝이 보인다. 문제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집들이다. 거의 제 몫을 못하는 보여주기 위한 굴뚝을 만들어 놓고 있다.

초가집에도 아름다운 굴뚝이 있다. 강원도 고성 왕곡마을에 가면 굴뚝이 담장에 올라앉아 있다. 그것도 항아리로 마련하였다. 바람이 센 지역에서는 이런 굴뚝이 보이기도 한다. 담장 안에 연도를 집어넣고, 그 위에 항아리를 올려놓은 것이다. 바람에 무너지거나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위는 수원 파장동에 있는 중요민속문화재 제123호인 광주이씨 월곡댁의 굴뚝을 세우는 연도이다. 연도만 마련하고 연소통은 마련하지 않았다. 아마도 아궁이는 사용하지 않는 듯하다. 가운에와 아래는 남원 운봉에 있는 가왕 송흥록의 생가지에 세워진 집이다. 측면을 보고, 뒷면을 보아도 굴뚝이 아예 보이지를 않는다.


굴뚝 하나에도 철학이 있는 우리네의 집들. 그 굴뚝을 돌아보면, 나름대로의 멋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선조들의 미학이다.

참 사람들이 사는 방법도 가지가지이다. 그 중에는 한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몇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사람도 있다. 물론 혼자 몸이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여러 명의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야 무엇이라고 할 것이 못된다. 그것도 그 사람의 팔자려니 하고 이해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이다. 어엿하게 배우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딴 사람과 놀아나는 사람들 말이다. 과연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될까? 아마 모르기는 해도 상당한 숫자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남편이 버젓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사람들과 사귀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한 남자면 정말 사랑하는 것이겠지 하고 넘길 수가 있지만,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한 사람만 사귀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이런 사람도 두 종류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명의 사람을 동시다발적으로 사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긴 내가 알고 있는, 많지 않은 사람들 중에 두 명이나 된다는 것은,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는 상당히 많을 것이란 생각이다. 이 두 사람을 보면 이성을 사귀면서 정 반대로 살아간다.

한 사람은 상대에게 물량공세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어디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몇 사람을 사귀고 있는데, 그 사람들 대부분이 이 여성에게 많은 물질적 혜택을 입었다고 한다. 왜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남자를 사귀는 것일까? 도대체 납득이 되지 않는다. 

또 한 사람은 적당히 남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어딜 가는데 돈이 필요하다. 또는 무엇을 해야하는 데 얼마의 돈이 필요하다 등등의 이유를 붙여 남자들에게서 돈을 타낸다. 그렇다고 이 집이 살기에 그리 힘든 것도 아니다. 그저 적당히 즐기면서 남자들에게 물질적 도움까지 받는다는 것이다.


그 남편들은 모르고 있을까? 

아마도 두 사람의 남편들도 자기의 아내가 그러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남편만 모른다고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그런 여자를 데리고 사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무슨 이유일까? 이런 것은 충분히 이혼의 사유가 되고도 남는다. 그런데도 그저 모르는 체 하고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방종한 사람과 같이 살고 있을까? 모르긴 해도 한 사람은 부부가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그저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면 부인이 없는 곳에서 본인도 그런 짓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러나 또 한 사람은 저녁마다 남편을 한 집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사는데, 그런 짓을 버젓이 하고 다니면서 어떻게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정말로 아무런 죄의식을 못 느끼고 사는 것일까?


드라마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참 묘하다. 하긴 요즘 막장 드라마들이 이런 생활을 오히려 온통 칠을 한 후 그럴듯 하게 포장을 해, 사람들이 알게모르게 그런 짓을 따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베우자가 다니면서 그런 짓을 하고 있는데도, 모르는 체 넘어가는 사람들. 비단 여자뿐이랴 아마도 남자들을 예로 들면 더 많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여자인지 알면서도 만나는 남자들이다. 아마도 그저 사랑이라는 것이 아닌, 단지 인간의 생리적인 욕구를 풀기 위해 만나는 것은 아닌지. 세상 참 이제 갈때까지 간 듯하다. 이성 간의 사랑은 나눌 수가 없다고 하는데, 이렇게 동시에 여러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 과연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는 할까? 사랑은 그렇게 허접한 것이 아닐진 데 말이다.

사람들을 만나면 참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때로는 세상을 조금 살았다고 하는 나도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 이야기들도 듣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의 속은 다 다른 법이라, 그것을 갖고 ‘맞다, 틀리다’라는 평가를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본인 스스로가 결정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우연히 들은 이야기지만 도저히 나로서는 납득이 가질 않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참으로 황당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내가 당사자가 아닌 다음에야, 이러쿵저러쿵 할 처지가 아니라, 생각만으로 접어버렸다. 하지만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한 마디로 ‘어떻게 그런 여자를 다시 데리고 살까?’ 하는 생각이다.

김계용님의 솟대 '사랑이야기'이다. 남녀사이, 특히 부부사이란 신뢰가 쌓여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딴 남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간 여자

어느 아이까지 달린 주부가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갔단다. 그것도 대충 바람을 피운 것이 아니라, 아예 나가서 살림까지 차렸다는 것이다. 그러기 이전에도 2~3일씩 집을 나가기 일쑤였다고 한다. 남편 되는 사람은 아이들이 있어서, 그런 것을 알고도 묵인하고 있었다는 것.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집을 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어린 아이들을 두고. 6개월이나 집을 나가 딴 남자와 살림을 차린 이 여자. 그런데 6개월이 지나자 살림을 차렸던 남자가 홀연히 떠나버렸다는 것.

문제는 이 여자가 다시 제 발로 집으로 들어왔는데, 남편은 그 여자를 다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라고 하면서.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그래서 그 남편은 그 여자를 다시 데리고 산다고?”
‘예전보다 더 잘 해준데요.“
“그 남자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냐. 그런 여자를 어떻게 데리고 산다고.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아예 남편과 아이들을 버리고 딴 남자와 살림까지 차렸던 여자를”
“그래도 그 남자 이혼도 하지 않고 기다렸데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 부분이다. 모르겠다. 그 남자의 속을 도대체가.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납득이 가질 않으니 말이다.

“그럼 선생님은 어떻게 할 것 같아요?”
“나?”
“예”
“나 같으면 받아들이지 않겠지. 어떻게 그런 여자를 받아들이겠어.”
“그런데 그 남자 분은 예전보다 더 잘해주고 있어요.”

이해가 가는 이야기인가? 그 남자란 분 얼굴이 보고 싶다. 도대체 공자도 하지 못할 그럴 일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러나 정작 내가 더 걱정을 하는 것은, 한 번 그랬던 여자가 앞으로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그 이전에도 며칠씩 집을 비웠던 여자. 그리고 딴 남자와 소문까지 내면서 살림을 차렸던 여자. 과연 그런 여자가 이제 온전히 남편과 아이들을 지키면서, 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있을까? 도대체 그 남편이라는 사람의 속을 모르겠다. 아마도 그 속은 이미 숯덩이가 된 것은 아닐까?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 참 사람 속은 정말 모를 일이다.

사실 걱정이 되는 것은 이렇게 버릇처럼 집을 나갔던 여자가, 다음에 다시 나가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남자 분의 속은 어떨까를 생각하게 된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지만.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에는 수령 450년이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회관 앞에 자리하고 이 느티나무는 마을에서 심기는 신목(神木)이다. 이 나무를 보러 갔던 것은 아니다. 바로 그 느티나무를 내려다보고 있는 정자인, ‘침수정’을 만나기 위해 비가 오는 널인데도 길을 나선 것이다.

마을에 도착하니 어르신들이 어디 야유회라도 가시는 것인지, 버스에 탑승을 하고 계시다. 할머니 몇 분이 나무아래 계시기에 왜 안 가시느냐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저 웃기만 하신다. 느티나무를 지나 야산으로 조금 오르다가 보면 침수정이 자리한다. 침수정은 윤선도의 문인이던 홍경고가 17세기에 지었다고 전한다.


수수함이 더 아름다운 침수정

침수정을 다녀온 지는 날이 꽤 지났다. 지난 8월 20일에 화순군을 답사하면서 다녀 온 곳이다. 마침 그 전날 온 비로 인해, 침수정을 오르는 길이 많이 파였다. 물길을 피해 침수정으로 오르니, 정자는 전라도 지역의 전형적인 정자의 형태로 지어졌다. 중앙 가운에 한 칸 방을 드린 조촐한 정자이다.

정자 안벽에는 송사, 기우만 등 문인들의 글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글만 해도 37개나 된다. 아마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홍경고의 사람 사귐이 대단했나보다.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 팔작집으로 지어진 침수정은, 화려하지가 않다. 그저 마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러한 소탈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정면으로 바라보면 가운데에 방을 한 칸 드렸다. 그러나 실제로 방은 두 칸 방이 된다. 옆에서 보면 중앙서부터 뒤편까지 방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누마루를 깐 주변에도 무엇 하나 시설물들이 없다. 아마도 정자의 주인이 앞서는 것을 싫어하는 성미인 듯, 그저 수수한 촌 아낙 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앞으로 펼쳐지는 벌판을 바라보며 시심을 일깨웠을까?

침수정을 한 바퀴 돌아본다. 잎으로 펼쳐지는 벌판에서 시원한 비바람이 불어온다. 답사를 하면서 흘린 땀을 바람이 식혀준다. 그도 고맙기만 하다. 마루에 걸터앉는다. 앞에 배롱나무에는 꽃을 붉게 피웠다. 저 나무는 얼마나 오래 전부터 이곳에 서 있었을까? 아니면 누군가 허전한 정자를 벗 삼으라고 심어놓은 것일까?

별안간 벌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 정자 안 기둥에 꽤 큰 말집이 하나 달렸다. 그리고는 벌들의 요란스레 나는 소리가 들린다. 낯선 나그네의 등장이 별로 달갑지 않다는 것인지. 자연석으로 그냥 철버덕 갖다가 놓은 덤벙주초가 눈길을 끈다. 저렇게 자연이 그 자리에 있어 좋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흐르는 지석강이 저만치 보인다. 그 강물이 굽이굽이 돌아 정자 앞으로 다가왔으면 좋으련만. 빗줄기가 세차진다. 갈 길은 멀고 돌아보아야 할 곳은 많다. 오늘 해 안에 몇 곳을 더 들리려면, 빗속에서라도 길을 나서야 할 판. 정자 주인의 고매한 성격 한 자락 들고 침수정을 뒤로한다.


속초 영랑호 주변에 있는 보광사 경내에서 열리고 있는 2011 속초영랑호 화전문화제가 한창 진행 중에 있습니다. 영랑호 화전문화제는 올 해로 4번 째이며, 아침 일찍 부터 행사장으로 찾아 온 학생들은 그림그리기와 글짓기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입니다.

화전문화제에서는 절기 음식인 쫄깃한 화전을 부쳐먹으면서, 즐거운 모습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짓기를 하고 있습니다. 동행한 어머니들은 '주부백일장'에 글을 내느라, 햔편으로 아이들을 독려하면서 한편으로는 글을 쓰기 위해 분주한 모습들입니다.  


이번 화전문화제에는 강우너도지사상, 강원교육감상, 속초시장상, 속초양양교육지원청교육장상, 속초문화원장상, 속초예총회장상 등 많은 상품이 걸려 있으며, 오후 2시에는 경품 추첨도 있을 예정입니다. 바람이 좀 불기는 하지만, 아이들은 각자 기량을 펼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속초영랑호 화전문화제의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도록 올려드립니다.

화전문화제에는 역시 화전이 빠질 수 없습니다.
 

화전이 예쁘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화전은 인가가 좋죠^^

축제장을 찾은 외국인 아가씨도 화전만들기에 도전을 합니다.

화전문화제 대회장님의 휘호도 멋지네요. 어린아이가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정성을 다해 그림을 그리네요.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요?

글짓기를 합니다. 올 주제는 봄바람, 꽃 등이랍니다

꼬마 화가의 등장입니다. 연필을 잡은 손이 그럴 듯 합니다.

대상은 꼭 내가 탈꺼야. 정성을 들여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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