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송 몇 그루가 만들어 내는 멋진 풍광. 그리고 주변으로 흐르는 물과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빼어난 주변경관과 무슨 이야기 하나 있을 듯한 분위기. 바람과 물, 송림이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태를 만들어 내는 곳. 이런 곳이 바로 누정를 짓는데 꼭 필요한 요건이다.


경북 영주 소수서원 입구를 들어서 송림 사이를 지나는 길, 하늘 높게 자란 노송들이 즐비하다. 열을 맞추어선 노송 사이를 지나면서 깊은 호흡을 한다. 솔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이런 좋은 송림에서 사람들은 노송의 자태를 닮아 푸른 마음을 가졌던 것일까? 물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 건너다보니, 내를 건너 노송 몇 그루와 함께 어우러진 정자가 보인다.

 

 

500년 세월 고고한 자태를 지니다


취한대, 조선조 명종 5년인 1550년, 당시 풍기군수이던 이황선생이 처음으로 지은 정자다. 이 아름다운 곳에 정자를 짓고, 소수서원의 원생들이 시를 지으면서, 청운의 꿈을 키우도록 한 것이다. 누구인들 이 아름다운 풍광에 젖지 않았을까? 아마도 이런 곳에 지은 이 취한대로 인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풍운의 끔을 안고 큰 발걸음을 옮길 수가 있지 않았을까?


취한대를 오르기 위해 내를 건너간다. 물살이 흐르는 곳에 시멘으로 넓적하니 징검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내를 건너 천천히 취한대를 향한다. 그저 바쁜 일이 없다. 이 절경에 나를 맡겨본다. 그것이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길이다. 바쁜 걸음을 걷다가도 이런 곳을 만나면, 그저 시간을 붙들어 놓은 듯 여유를 부릴 수가 있다.

 


바쁠 길 없는 여정, 서낭에 돌을 놓다


가는 길에 보니 서낭이 있다. 예전 이 내 곁으로 난 길을 따라 걷던 사람들이, 여정의 평안함을 위해 돌 몇 개를 올려놓고 안전을 빌었을 것이다. 서낭 주변에는 금줄이 처져있는 것을 보니. 주변 마을에서 이곳에 제라도 지내는 모양이다. 아마도 오랜 시간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했을 것이다. 


주변에 구르는 돌 하나를 집어 서낭에 던진다. 돌과 돌이 부딪치며 내는 "딱" 소리가 경쾌하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답사를 하는 나로서는 이렇게 서낭을 만날 때마다 돌 하나라도 더하고 간다. 그 숱한 여정의 무탈을 위하는 마음에서이다.

 

 


정자는 보수를 하였는지 말끔하다. 단청을 하지 않은 맨살을 드러낸 나무들이 소수서원과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주변의 소나무들이 오히려 이 맨살의 나무들을 더 아름답게 치장을 해주는 듯하다.


호연지기를 키우는 정자, 취한대


‘취한’이란 맑은 물 푸른 솔과 함께 호연지기를 키우라는 뜻이다. 이렇게 맑은 물이 흐르고 노송이 푸르른 자태를 자랑하는 곳이라면, 그 누군들 호연지기를 키우지 않으리오. 아마 젊은이들이 이 취한대를 자주 찾아드는 것도 그런 꿈이 있기 때문인가 보다.


취한대를 보고 있는데 젊은 남녀들이 앞을 질러간다. 취한대 마루에 앉아 담소를 하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세월은 지나고 사고는 달라져도, 아름다움을 느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나보다. 젊은이들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옛 소수서원의 원생들도 이들과 같은 모습이었을까? 시를 짓고 세상을 논하고 자신을 알아가고, 아마 그런 꿈을 만들었을 것이다.

 


취한대의 모습에 녹아본다. 저 대들보 위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젊음의 이야기가 쌓여있을까? 그 이야기를 훌훌 털어내어 한 아름 엮어내고 싶다. 그 이야기들을 오늘 꿈을 잃어버리고 대학이라는 문을 향해 달려가고만 있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전국을 다니면서 보면 우리 전통가옥들이 아직도 잘 보존이 되어 있다. 대개는 중요민속문화재나 지방문화재 자료 등으로 지정이 되어 있는 집들이다. 요즈음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생활에 불편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옛 모습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보존을 해야 할 중요한 문화자산이다.

 

이 집들은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지만, 일반적인 모습 외에 그 나름대로의 멋을 지니고 있다. 그 멋은 무엇일까? 집의 소개는 안내판을 읽어본다면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이미 잘 나와 있다. 그래서 지나쳐 버리기 쉬운,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쉽게 넘겨서는 안 될, 그 숨겨진 멋을 찾아본다는 겻은 고택답사의 또 다른 재미이다.

 

 

회재 이언적 선생의 온기가 서린 집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1491 ~ 1553)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지은 사랑채다. 조선조 중종 27년인 1532년에 세운 집이니 벌써 50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집이다. 독락당은 중요민속문화재가 아닌 보물 제413호로 지정이 되어 있어, 남다른 집인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독락당은 사랑채인 독락당 건물과, 선조 33년인 1601년 이언적의 손자인 순과 준 두 형제가 화의문을 작성하고 지은 경청재 등으로 조성이 되어 있다. 경청재는 1900년대 이후에는 머슴들이 기거하기도 했다. 경청재를 지을 때, 순과 준 두 후손은 이언적에게 후손들이 누를 끼칠 것을 우려해 화의문을 작성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계정과 독락당은 우리 선조고(先祖考) 문원공(文元公) 회재선생의 별서이고 이외 유택에는 우리 부모(휘 전인, 호 잠계)의 혈성이 가득하다. 당우와 담장을 수호하기 위해 우리 형제가 약간의 토지를 출현하였다. 후손들 가운데 혹 궁벽하여 토지에 대해 다투는 일이 있으면 불효로써 논단할 것이다.

 

흙 담이 자연과 순응하고

 

독락당을 돌면서 가장 편하게 보이는 것은 흙담과 흙길이다. 기와와 돌을 이용해 문양을 넣고 쌓아올린 흙담은 투박하다. 그러나 그 흙담이 주는 편안함이 있어, 독락당이 더 편한 집이란 생각이다. 거기다가 담과 담 사이에 난 흙길 또한 백미다. 독락당은 전체적인 집의 구조물을 감싼 담장 안에 또 다른 담장들이 건물을 가르고 있다. 어찌 보면 한 채 한 채가 다 별개의 집으로 조형이 된 듯하다. 집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가장 편안하게 배려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독락당을 지은 이언적은 건축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것을 알게 된다. 한 마디로 자연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것을 적절히 이용해 집을 지었다. 독락당을 돌아보면 집의 우측에 계곡이 있다. 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쪽으로 난 담장에, 흙 담이 아닌 나무로 만든 창이 있다.

 

말은 창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창살도 나무로 만든 이 담 벽에 붙은 창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시원한 계곡의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자연을 그대로 이용한 독락당의 건축미학이 이런 곳에 있다. 계곡의 바람도 들어오고, 이 담 벽의 창으로 계곡의 경치까지 볼 수 있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길이 아닐는지.

 

 

담 벽에 붙여 지은 건물의 용도는?

 

계곡을 돌다가 보면 또 하나 볼거리가 있다. 담의 한쪽에 대를 만들고, 그 위에 반은 밖으로 반은 안으로 들어가 있는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의 용도는 무엇일까? 곁으로 지나가다가 보니 이 건물의 용도가 궁금하다. 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뒷간의 용도가 아닌가 한다. 담의 밖으로 돌출을 시켜 안의 공간을 확보하도록 한 이런 여유가 독락당의 또 하나의 묘미다.

 

 

 

넌 도대체 무슨 연유로 그곳에 있느냐?

 

흙으로 올린 담장 사이로 난 길을 걸어 계곡 쪽으로 가다가 보면, 담장 끝에 난 조그마한 문 하나가 있다. 이 작은 문을 왜 이곳에 두었을까?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지만, 그 중에 하나가 이 문의 용도는 계곡으로 드나드는 문이란 생각이다. 즉 이 작은 문을 나서면 바로 계곡이다. 여름철 더위를 씻어내고 싶을 때, 이 담벼락에 붙은 쪽문을 나서 계곡에서 목욕이라도 했던 것일까?

 

 

이 문이 아니면 담장을 돌아 나와야 한다. 이 작은 문 하나가 계곡을 가기 위한 것이라면, 이 집주인의 작은 배려 하나가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가를 느낄 수 있다. 독락당은 자연이다. 어느 것 하나 자연을 거슬리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 자연이 되어버렸다. 독락당의 매력은 바로 그런 점이다. 남들이 돌아보지 않는 곳, 그 안에 또 다른 독락당이 있었다.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갈까? 나는 늘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질문을 해왔다. 그러다가 한낮의 더위를 피해 찾아간 작은 정자에서, 흐르는 땀을 씻어주는 바람을 만났다. 그래서 난 정자를 '바람이 머무는 곳'이라고 표현을 한다. 바람은 정자 곁을 흐르는 물을 따라 불어온다.

 

그 물길을 따라오면서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 주고, 그 바람은 정자를 치받쳐 오른다. 그래서 정자가 더 시원한 것은 아니었을까? 전국을 답사하면서 만난 아름다운 정자들. 그 정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암벽 위에 걸터앉은 정자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350에 소재한 초간정. 내를 끼고 선 암벽 위에 지어진 초간정은 멀리서도 사람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지녔다. 행여 누가 뒷덜미라도 낚아챌 것 같아 한달음에 달려간다. 정자는 아름다운 경관을 필요로 한다. 어디를 가서 보거나 정자들은 주변 경관이 빼어난 곳을 택해 자리를 잡고 있다.

 

정자는 민초들과는 거리가 멀다. 대개 반가의 사람들에 의해서 지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정자를 바라다보는 내 시각은 다르다. 그것을 지은 사람들이 누군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빼어난 경관을 택했느냐는 물음을 항상 하고는 한다. 그래서 이렇게 덥거나 춥거나 쉴 수 없는 여정에 만나는 정자가, 더 반가운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작은 정자의 출입문, 주인의 심성을 닮아

 

정자로 출입하는 문이 작고 좁다. 이 정자를 지은 권문해(1534 ~ 1591) 선생의 마음을 읽어낸다. 작은 문으로 겸손하게 들어오라는 뜻일 것이다. 도포자락을 휘두르며 거만을 떨지 말고, 두 손 공손히 모으고 다소곳하게 문을 통과하라는 뜻일 것이다.

 

 

 

양반가의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거들먹거린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에 금력이 있으면, 겸손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초간 권문해 선생은 그런 것을 싫어했는지. 작은 문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 심신을 수양하기 위해 초간정을 지었다. 1582년인 조선 선조 15년에 처음 지어진 이 초간정은 그런 마음을 담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화려하지 않은 정자다. 정자의 뒷편과 우측은 절벽이다. 그 밑으로 맑은 물이 감돌아 흐른다. 마루 벽 한편에 문을 내어 난간으로 나갈 수 있게 하였다. 난간 밑에는 맑은 물이 고여 작은 소를 이루고 있다. 맑고 찬 물애 발을 담구면, 오장육부가 다 맑아질 것만 같다.

 

 

 

빈 낚싯대 늘이고 바람을 낚아

 

위를 보니 석조헌(夕釣軒)이란 현판에 걸려있다. 저녁에 낙시를 하는 마루란다. 이 현판을 보고 무릎을 친다. 정자 주인의 마음이 거기있기 때문이다. 아마 초간 권문해 선생은 실은 물고기를 잡을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낚시를 드리우고, 눈을 감고 세상 시름을 끊는 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해가 설핏한 저녁에 낚시를 한 것이 아닐까?

 

 

정자를 둘러보고 주인인 초간 권문해 선생의 마음을 느낀다. 참 소탈하다. 참 그 마음에 자연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정자문을 나서 새로 놓은 철다리를 건너려는데, 초간정을 감돌아 흐르는 내에서, 천렵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참으로 한가한 정경이다. 사람이 사는 멋이 바로 저런 것은 아니었을까?

 

바람이 감돌아 쉬어가는 정자. 그 정자에는 사연도 많겠지만, 그 보다는 그 주인의 심성을 엿볼 수 있어 더욱 좋다. 그래서 바람 길을 따라나서는가 보다.

 

가끔 거리를 걷다가 보면 재미난 모습들을 볼 수가 있다. 예전 같으면 그거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겠지만, 요즈음은 나이가 먹어서인지 모든 것이 다 반갑고 새롭기만 하다. 이런 나를 두고 아우 녀석은 “형님도 많이 늙었나보네요. 이제 얼마 보지 못할 것 같으니 그런 것이 다 새록새록 재미가 있는 것인가 봅니다.”란다.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3월 17일(토) 오전에 취재를 나갔다가 행궁길로 접어들었다. 행궁길에는 지난해부터 조성한 화분이 길에 놓여있다. 오늘 보니 그 화분에 심겨져 있던 나무들이 다 사라져버렸다. 아마도 계절이 봄이다 보니, 딴 꽃으로 갈아 심으려는 것인가 보다. 그런데 그 화분 두 개에 참 낯선 것들이 놓여있다.



이런 풍산개 두 마리가 천연덕스럽게 화분 안에 들어가 있다. 배를 깔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 두 녀석. 풍산개인 행궁이(암, 3개월)와 풍산이(수, 3개월)이다. 이 녀석들 안에 넣어두었더니 스트레스를 받아서 저희들끼리 치고 받는다고. 그래서 화분 위에 올려놓았다는데, 이 녀석들 아무래도 저희가 개 꽃인줄로 알거나, 아니면 전생에 꽃이었거나.



이 두 녀석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녀도, 화분 안에서 나오려고 하질 않는다. 토요일 졸지에 행궁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인가가 좋아진 행궁이와 풍산이. 이 녀석들은 인가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며칠 간 속초를 다녀왔습니다. 피로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그저 아무 생각없이 소나무 숲길도 걷고, 바닷바람도 쏘여가면서. 그제(11월 14일) 오후 4시가 넘어 바닷길로 나갔습니다.

바람이 부는 날이라 파도가 넘실거리는 것을 보기 위해. 속초 외옹치와 영금정 일대를 돌아보면, 파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도가 치면 영금정엔 폭포가 생긴다.

속초 영금정을 가 보신분들은 한 번 정도는 보았을 장면입니다. 바로 영금정 앞에 놓인 바위를 타고넘는 파도들이 마치 폭포처럼 바위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모습을. 난 늘 그것을 '영금정 폭포'라고 말을 합니다. 각양각색으로 폭포를 만들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 내는 파도. 이런 다른 아름다움을 즐긴다는 것 역시 동해안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들입니다.






아무 때나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기에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면 달려가는 곳 영금정. 14일엔 파도가 그리 높지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