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장안구 이목동 188-2에 소재한 물레방아 집. 입구에 커다란 물레방아가 있어 이름이 물레방아집이란다. 이 집은 화장실문화공원인 해우재의 뒤편에 있다. 53일 해우재에 들렸다가, 마침 점심시간인지라 가까운 이 물레방아 집을 찾았다. 시간이 좀 지나서인가 사람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이 물레방아 집은 한 두어 번 정도 들렸던 식당이다. 주로 해우재에 행사가 있을 때 찾아온 집이기 때문에 점심시간이었다. 그 때는 물레방아 정식을 먹고는 했는데, 혼자 정식을 시키기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메뉴판을 보고 색다른 음식이 먹고 싶어 묵 비빔밥 한 그릇을 시켰다.

 

 

도자기에 담아 낸 반찬도 깔끔해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먼저 반찬과 큰 도자기 그릇에 담긴 묵과 나물을 담아 낸 그릇들을 상에 늘어놓는다. 그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밥 을 시간이 지난 탓도 있지만, 도자기에 깔끔하게 담아 놓은 반찬들이 맛깔스럽다. 큰 그릇에는 묵과 각종 나물들을 담아놓았다. 그리고 윤기가 흐르는 밥 한 공기와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국까지.

 

 

이 집은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음식 하나에도 정성이 그득하다. 밥을 큰 그릇에 넣어 비벼본다. 딴 음식은 모르지만 묵 비빔밥에는 참기름을 많이 넣지 않는다. 묵과 나물의 향이 사라지기 때문이란다. 잘 비벼놓은 밥을 한 입 먹어본다. 묵의 맛과 나물의 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모처럼 맛깔스런 점심 한 그릇에 배가 불러온다. 이런 음식을 멋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사람은 맛있는 음식에는 약한 것인지.

 

우리는 흔히 물레방아라고 하면, 무엇인가 애틋한 사랑이야기 한 대목쯤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물레방아는 우리의 재래농기구 중 탈곡이나 정미 또는 제분 등에 이용되었던 도구이다. 물레방아는 돌확이나 맷돌, 절구, 디딜방아, 연자방아· 등과 함께 사용이 되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늦게 생겼다고 본다. 또한 물레방아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물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마을을 흐르는 하천 등의 옆에 자리하게 된다.

 

물레방아는 바퀴를 가로지르는 방아굴대 양쪽에 있는 눌림대가, 바퀴가 물의 힘으로 돌아갈 때 살개목을 눌러 방아공이를 들어 올렸다가 내리 찧는 것이다. 대개 물레방아의 양편에 방아공이를 연결하기 때문에, 두 개의 방아공이가 번갈아가면서 방아를 찧게 된다.

 

 

너와로 꾸민 신리 물레방아

 

삼척시 도계읍 신리에는 중요민속문화재 제33호인 신리 너와집이 있다. 이 집을 찾아 들어가다가 오른쪽에 길 밑으로 보면, 냇가에 너와지붕을 올린 물레방아가 보인다. 일반적으로 물레방아는 방아의 기능을 갖고 있지만, 신리 물레방아는 사람이 기거할 수 있는 작은 공간과 외양간, 그리고 물레방아와 곡식을 쌓아두는 곳간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하천 쪽으로 내려가면 방앗간을 들어가는 문이 있고, 우측으로는 외양간이 마련되어 있다. 문의 좌측으로는 반 칸 정도의 작은 방이 하나 딸려있으며, 이곳의 앞부분만 흙벽으로 바르고, 나머지는 모두 판자로 벽을 처리하였다. 두 개의 방아공이가 방앗간 안에 놓여 있는 신리물레방아. 뒤편으로 돌아가면 수차가 있고, 위에는 말라버린 물길이 나 있다. 물레방아 뒤편에 내를 건너는 쇠다리가 놓여있으며, 물은 한참 위편에서 끌어들인 듯 하다.

 

 

 

사람이 살았던 물레방아

 

신리 물레방아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어서, 주변을 살피는데 마을 주민 한 분이 밭을 갈고 계시다. 물레방아에 대해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잠시 곡괭이질을 멈춘 마을 분은 물레방아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신다.

 

“여기 물레방아가 멈춘 지는 얼마나 되었어요?”

“한 15년 전만 해도 물레방아를 사용을 했죠.”

“그런데 요즈음은 사용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어르신 한 분이 사셨는데, 연세가 들고 힘이 벅차니까 그만 두신 것 같아요. 그 어르신도 10여 년 전에 돌아 가셨구요.”

“그 이후에는 사용을 하지 않았나요?”

“아무래도 그 어르신이 생활을 하시는 것이 힘이 드셨으니까요. 원래는 어르신이 생활을 하기 위해 지은 집이었는데, 물레방아를 만든 것이니까 마을 사람들도 사용을 했죠.”

“물이 다 말라버렸네요”

“물길을 막아놓아서 그래요. 물길만 터놓으면 지금도 물리 흘러들어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물레방아를 본 적은 많지만, 이렇게 사람이 기거하는 물레방아는 보지 못한 것 같다. 이곳에서 혼자 사셨다는 어르신의 생활이 그리 편치 않았다는 것은 한눈에 보아도 알만하다. 좁은 방은 어른 한 사람이 발을 펴고 눕기도 버거울 듯하다.

 

물레방아를 여기저기 살펴보면서 생각을 한다. 보수를 한다고 해도 이대로 놓아두면 물레방아의 기능도 사라질 판이란 생각이다. 물길을 다시 열어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정겨운 소리를 들을 수는 없을까? 그저 형태만 보여주는 많은 민속자료들. 그러나 신리 물레방아는, 어느 물레방아도 따를 수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 물레방아도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물길을 방아로 보내는 수로를 통나무를 파서 만든 것도 특이하다.

 

 

평생을 물레방아 간에서 혼자 외롭게 보내신 어른의 체취가 묻어있는 신리 물레방아. 너와집으로 꾸몄다는 것도 특이하지만, 그보다는 물레방앗간 안에 생활공간이 있었다는 점이 더욱 특이하다. 신리 물레방아를 그냥 마른 채 보존할 것이 아니라, 물을 다시 흘려 정겨운 방앗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나라에 전하는 물레방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세종실록』에 보인다. 당시 세검정에 구릉성 산지에서 떨어지는 낙차를 이용한 물레방아가 있었음을 적고 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물레방아하면, 20세기가 시작될 때 서울에서 태어나 25살 이라는 피지도 못한 나이에, 급성 폐렴으로 요절한 불우한 작가 나도향이 먼저 떠오른다.

 

나도향의 물레방아는 방원의 아내가 신치규와 물레방아 깐에서 정분을 통하고, 결국은 남편인 방원에게 물레방아 깐에서 살해를 당한다는 줄거리이지만, 당시의 물레방아는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물레방아 마을이 있어

 

이러한 물레방아는 가물어 물이 모자라게 되면 방아를 찧을 수 없게 되자, 1920년대부터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대신 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아가 보급이 되면서, 자연 추억속의 모습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물의 힘을 이용한 물레방아가 있다고 하여 찾아 나섰다. 일반적으로 물레방아 하면 물의 힘을 이용한 디딜방아 형태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와는 달리 거대한 동력구조의 방아가 오로지 물만 갖고 돌렸다는 것이다.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에 있는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36호 백운면 물레방아는 1850년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이 되는 물레방아다.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지어진 이 물레방아는 물을 막은 보가 61m에, 보에서 물레방아에 이르는 수로가 252m이다.

 

 

수로의 넓이가 2m나 되는 이 물레방아는 소나무로 제작이 되었으며, 지름이 310cm에 폭이 130cm나 되는 큰 물레방아다. 기존의 물레방아가 ‘ㅡ’자 형을 갖고 있는데 비해, 도정력을 높이기 위해 ‘ㄱ' 자 형으로 특수 제작된 47개의 날개를 갖고 있다. 더욱 이 운교리 물레방아 인근에는 11개 정도의 물레방아가 있었다고 하니, 아마 물레방아 집단지였던 것 같다.

 

민속문화재로 지정

 

큰길가에 안내판 하나가 없어, 몇 번이나 길을 물어 찾아간 백운면 물레방아, 최근까지도 사용을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주변에 말라버린 잡초만 무성하다. 물레방아의 문이 열려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방아의 형태가 지금껏 보아오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 크기도 그렇거니와 물레방아 깐의 구조가 상당하다. 세 칸으로 나뉘어져 있는 물레방아는 풍구와 도정기, 그리고 기계를 돌리기 위한 바퀴들이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고, 낡은 피댓줄들이 이 물레방아를 사람들이 많이 사용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한편 풍구 옆 기둥에는 1995년 3월 27일 진안군수가 발행한 양곡가공업 등록증이 붙어있고, 그 밑에는 정미소 주인이 적어 붙인 도정효율표가 있다. 효율표에는 백미 80kg 한 가마에 4kg을 현물로 받으며, 운반료는 별도로 받는다고 적어 놓았다. 이 물레방아는 얼마 전까지도 사용을 했다고 한다.

 

 

물레방아 한편에는 곡식을 쌓아두었던 곳인 듯 너른 공간이 있다. 그곳을 보면서 갑자기 나도향의 물레방아가 떠 오른다. 저런 곳에서 신치규와 방원의 처가 밀담을 나눈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물레방아의 밑은 물이 빠져 나가는 물길인데, 아직도 물의 고여 있다. 한때는 부의 상징이었던 물레방아. 이제는 먼지만 쌓여가고, 물이 마른 물길은 옛 영화가 그리운 듯 마른 잡초만 가득하다.

한 낮의 더위가 30도를 웃돈다. 올해는 무더위가 상당히 기승을 부릴 것만 같다. 이럴 때는 그저 시원한 계곡이나 숲속으로 들어가, 폭염을 피할 수가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도 없을 듯하다. 이런 더위에는 그저 시골 숲이나 계곡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이, 한 없이 부럽기만 하다.

 

올 여름에는 더위가 유난히 맹위를 떨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기온이 점점 아열대성으로 변해간다고 하니, 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나로서는 정말로 눈앞이 캄캄할 지경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린다. 지칠 대로 지쳐있는데, 누군가 ‘갤러리아’로 가자고 한다. 그 곳에 숲과 내가 있다고.

 

 

도심 한 복판 옥상에 웬 숲?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1125-1번지에 소재한 갤러리아백화점 수원점. 그 주변까지 가서 아무리 돌아보아도, 숲 같은 것은 보이지를 않는다. 하긴 이 빌딩이 들어찬 인구 120만의 수원의 중심부에, 답답한 빌딩 숲 말고 무슨 숲과 내가 있을까? 갑자기 더 더워지는 듯하다. 동행을 한 일행이 눈치를 챘는지, ‘옥상으로 올라가세요.’ 라고 한다.

 

옥상에 무슨 숲이 있을라고? 하긴 요즘 옥상에 텃밭을 만들고, 나무를 키우는 것은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커다란 백화점 옥상에 무슨 숲이 있고, 전원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인지.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볼 때까지는 믿지를 않았다.

 

 

 

나무와 돌로 조성한 길. 그리고 한 옆을 흐르는 냇물, 시골마을 논 한 가운데서 볼 수 있는 초가로 된 모정, 그리고 물레방아. 흐르는 냇물 옆에는 이곳에 서식하고 있는 ‘수상생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렁이, 비단잉어, 금붕어, 토종붕어, 토종잉어, 메기 등 다양한 수상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단다.

 

‘하늘공원’, 이름만큼이나 신선하다

 

이곳을 ‘하늘공원’이라고 한단다. 이름만큼이나 신선한 곳이다. 도심의 건물 옥상에 정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여기저기 곳곳에 사람들이 앉아 쉴만한 곳을 마련하였다. 7월 2일 한낮의 온도는 이미 30도를 넘고 있었지만, 이곳은 별천지였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소리, 작은 연못과 같은 곳에서 인조암벽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만 들어도 시원하다.

 

 

 

 

“이런 곳이 있었으면 진작 이야기를 했어야지”

“저도 말만 들었어요. 이제 자주 오려고요”

“혼자 다니지 말고”

“언제든지 오세요. 늘 이 자리는 비워놓을 테니까요.”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곳

 

시원한 냉수 한 잔이 정말 고마운 날씨에, 이렇게 숲 내가 나는 곳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은 각별하다. 젊은 연인인 듯한 두 남녀가 손을 잡고 걸어온다. 한편에 무엇인가를 달고, 환하게 웃는다. 무엇인가 궁금하여 가보니, ‘사랑의 잠을 통’이다. 아마도 이렇게 하늘 가까운 곳에 와서 두 사람의 마음을 잠가놓았으니,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그저 돈을 들여 어디론가 가길 좋아한다. 그것이 피서라고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곳을 놓아두고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요즘같이 경제사정도 좋지 않을 때, 이런 하늘공원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다. 주변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아름다운 정원이 있습니다. 인공적으로 만든 정원이긴 해도, 연못에는 물고기가 유영을 하고, 바위 위에는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꽃도 피어있고. 물레방아도 돌아갑니다. 그리고 좁은 물길로 물이 흘러 연못으로 들어갑니다. 얼핏 보아도 상당히 공을 들인 작은 정원입니다.

그 작은 정원을 이리저리 둘러봅니다. 상당히 많은 애를 쓴 흔적이 보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이런 것에도 그렇게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면서도,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세상살이가 팍팍해져서 일까요? 작은 정원에 심은 소나무들도 분재라고 하나요?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작은 소나무 가지마다 철사로 동여매어져 있습니다.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이렇게 전기선 등으로 묶었는가 봅니다. 아마도 강제로 멋지게 키우기 위해서 일테죠. 그런데 사람을 멋지게 키우기 위해 저렇게 팔 다리는 칭칭 동여매 놓는다면, 그 사람이 받는 고통이 어떨까요?

말 못하는 나무지만 보기가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풀어주어도 될 둣한데, 아직 더 묶어놓아야 하는 것인지. 나무가 이야기를 합니다.



“제발 저 좀 풀어주세요. 전깃줄이 파고들어 너무 아파요”

우리 인간들의 강퍅함은 어디까지인지. 두렵습니다. 그저 단지 나무이기 때문에 이래도 되는 것인지. 맛있게 먹은 밥이 다 곤두서는 듯합니다. 날이 뜨거워 더위를 먹었는가 봅니다. 그냥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도 되는데 말입니다. 왜 이런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픈 것인지.





아픈만큼 성숙해 지는 것은 사람에나 통하는 것인줄로만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나무들도 아픈 만큼 아름다워지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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