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늘 혼자 있는 것이 무료하다고 하였더니, 누군가 새를 키우면 정서에도 좋고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다고 하면서 새집을 하나 선물한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새집을 받고나니 난감하기가 이를 데 없디. 그냥 새집이 아니고 작품으로 만든 새집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이 새집 이름이 ‘자경당의 새소리’ 라고 한다.

 

혜경궁은 정조대왕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말한다. 젊은 나이에 비명에 횡사한 남편을 떠나보내고, 아들인 이산을 보면서 한 많은 세월을 보냈다. 아마 정조대왕이 모친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이곳 화성 행궁에서 베푼 것도, 어찌 보면 한양 성 내에 있는 궁궐에서 한다는 것이 부친으로 인한 아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혜경궁홍씨를 기리는 자경당의 새소리

 

‘자경당’이란 이름은 정조대왕이 즉위하면서 그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에 커다랗게 집을 짓고 ‘자경당’이라 이름을 붙인 데서 비롯되었다. 자경이란 자친, 곧 왕이 어머니나 할머니 등 왕실의 웃어른이 되는 여성에게 경사가 있기를 바란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고종 4년에 자경전이란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비로소 경복궁에 자경전이 자리를 잡았다. 고종 때 자경전이 완공될 무렵에는, 이곳에서 고종이 정무를 보는 편전으로 사용되었다. 고종 10년 12월에 큰 불이 나서, 그 일대 건물들과 함께 불타 없어졌다. 화재 직후 곧 다시 지었으나, 1년 반쯤 뒤인 고종 13년 11월에 또 불이 나서 타버렸다. 이렇게 자경전이 잦은 화재로 소실이 되자, 고종이 창덕궁으로 옮겨간 뒤에 자경전을 다시 지었다.

 

자경전은 44칸 규모로 서북쪽에는 필요할 때만 불을 때서 난방을 할 수 있는 침방인 복안당이 있다. 그리고 낮 시간에 거처하는 중앙의 자경전과, 여름에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동남쪽의 다락집인 청연루로 구성되어 있다. 둘레에는 행각 수십 칸과 일각문들이 있다. 자경전 후원에는 십장생 무늬를 새긴 굴뚝이 있는 담과, 서쪽의 꽃담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담이다.

 

 

보물 제810호 십장생 굴뚝을 담아 내

 

자경전에 있는 보물 제81호인 십장생 굴뚝은 담의 한 면을 한 단 앞으로 나오게 하여 전돌로 조성하였다. 굴뚝 벽면 중앙에는 십장생 무늬를 조형전으로 만들어 배치하고,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면을 구성했다. 무늬의 주제는 해, 산, 물, 구름, 바위, 소나무, 거북, 사슴, 학, 불로초, 포도, 대나무, 국화, 새, 연꽃 등이다.

 

둘레에는 학, 나티 불가사리, 박쥐 당초무늬 등의 무늬를 조성하였다. 해, 바위, 거북 등 십장생은 장수, 포도는 자손의 번성, 박쥐는 부귀, 나티 불가사리 등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이다. 굴뚝 윗부분 역시 모양을 낸 벽돌로 목조 건물의 형태를 모방하였고 꼭대기에는 점토를 빚어서 만든 집 모양의 장식인 연가를 10개 올려놓아 연기가 잘 빠지도록 하였다.

 

 

수를 놓아 만든 새집인 ‘자경당의 새소리’

 

사실 이 새집은 새를 키우도록 만든 것이 아니고,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영동시장 2층에 자리한 아트포라 입주작가인 김춘홍 작가가 직접 천에 10장생 수를 놓고, 그것을 새집에 배접을 한 후 칠을 했다. 새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화려해, 이곳에 새를 키우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이런 새집을 선물로 받아놓고도 고민이다. 이 새집에 새를 사다가 키워야 하나? 무료하다고 해서 새를 키운다면 그 또한 번잡할 것만 같다. 요즈음은 혼자 조용히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답사를 떠나고, 그런 것들이 더 마음이 가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행궁동 일대를 돌면서 땀을 흘리고, 저녁이 되면 사진정리에 기사를 쓰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그런 것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기도 하다.

 

작가의 마음이 담긴 새집 ‘자경전의 새소리’. 이젠 저 아름다운 새집에다가 마음의 새를 한 마리 키워보아야겠다.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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