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1563~1589)은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이다. 본명은 ‘초희’이며, 호는 ‘난설헌(蘭雪軒)’, 자는 ‘경번(景樊)’이다. 선조 22년인 1589년 2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난설헌은 명종 18년인 1563년에 강릉 초당 생가에서, 당대의 석학인 초당 허엽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허난설헌은 그 재주가 비범하여 오빠가 글을 가르쳤다고 한다. 얼마나 재능이 뛰어났는지 선조 3년인 1570년에는, 불과 나이가 8세 밖에 안 되었지만 '광한전백옥루 상량문'을 지었다고 한다. 15세 때 안동 김씨인 김성립에게로 출가를 한 허난설헌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짧은 생을 마치게 된다. 19세에는 딸을 잃고, 20세에는 아들 희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다. 이런데다가 아버지는 상주에서, 난설헌을 가장 아끼던 둘째 오빠 허봉은 금강산에서 객사를 한다.


목포시립무용단 정기공연 창작무용인 '허난설헌'에서 안무자 정란이 허난설헌의 삶을 춤으로 표현하고 있다.

비운의 여인, 그러나 풍류 속에서 살다간 여인

그런 주변의 아픔 때문일까? 허난설헌은 1589년인 선조 22년,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다. 허난설헌은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 지월리 경수산에 묻혀있다. 이러한 허난설헌이 죽음을 담보로 자유를 갈망한 조선의 여인으로 다시 조명이 되어 환생을 하였다. 당시의 기구한 삶과 오늘날의 슈퍼우먼을 요구하는 사회적인 풍조가, ‘워킹맘’이라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여인들의 기우뚱거림으로 이어진다.

지난 11월 11일(목)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 소공연장에서는 오후 7시 30분부터 목포시립무용단의 제28회 공연이 있었다. 1, 2부로 나누어진 이 공연은 창작과 전통이 만나는 그런 무대였다. 1부는 ‘풍류녀 허난설헌’이라는 제목으로 예술 감독인 안무자 정란의 안무로 무대에 올려졌다.



목포시립무용단의 창작무용 '허난설헌'
 
허난설헌의 슬픔이 가득한 일생이 몸으로 다시 환생을 하는 그런 무대였다. 모두 5장으로 나누어진 40분간의 무대는, 연신 바뀌어가는 허난설헌의 삶이 다시 그려지고 있었다. 숱한 군상들 속의 난설헌, 그리고 홀로 그 많은 고통을 이겨내야만 하는 길고 어두운 시간. 몸부림을 칠수록 더 깊은 고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삶. 멈추고 싶지도 않고, 멈추어지지도 않는 토해버리고 싶은 가슴속의 응어리.

그러한 허난설헌의 모든 것을 40분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농축하여 보여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안무자 정란은 몇 년 전인가 이번 무대보다 짧은 ‘새하곡’이라는 춤을 갖고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그때도 보았지만, 무대에 오를 때는 이미 ‘정란’이 아닌 ‘허난설헌’ 이 되어 있었다.

정란은 이번 무대에서 ‘전폐, 희문’이라는 종묘제례악을 사용을 했다. 기존의 음악을 탈피해 허난설헌 일가의 삶과 죽음, 그리고 자식들의 죽음과 부모와 형제들의 죽음을 조금 더 승화시켰다. 그런 속에서 무대에 오른 정란은 허난설헌의 고통스런 일생을 풀어내 듯, 한풀이와 같은 춤을 춘다. 마치 살풀이를 현대화시킨 듯한 느낌이다.



목포시립무용단 '풍류녀 허난설헌'

춤은 몸을 필요로 한다. 몸은 마음의 춤이 있어야 함께 움직일 수가 있다.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어 무대에 서면, 관객들도 그 몸짓에 동화를 할 수가 있다. 이번 무대에서 정란은 스스로 허난설헌이 되어 관객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몸을 빌려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더 보완을 해 허난설헌의 일대기를 무용극화 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 무대가 기대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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