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이의동에 있던 원천유원지.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이 원천유원지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비록 광교신도시의 가장 중요한 거점 중 한 곳으로 자리를 잡고 있지만, 광교신도시 조성 전의 원천유원지는 젊은이들의 낭만과 애틋함이 그대로 배어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이 원천유원지는 수원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 중 한곳이었다. 주말이 되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북적였다. 주변에는 많은 식당들이 자리를 하고 있고, 카페며 찻집들이 즐비했다. 밤늦도록 술이라도 한잔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근처 숙박업소를 찾고는 했으니, 수원에 대한 기억보다는 원천유원지에 대한 기억이 더 많은 듯하다.

 

 

일제의 수탈을 하기 위한 대상으로 조성

 

사실 원천유원지를 처음 조성한 목적은 그리 반길만한 것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인 192831일에 아랫방죽인 원천저수지와 윗방죽인 신대저수지를 같은 날 공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신대저수지는 같은 해 1231일에 공사를 마쳤으며, 원천저수지는 192991일에 준공을 했다.

 

광교산에서 동편으로 흐르는 물을 모아 저수지를 만든 것은 이곳에 저수지를 만들어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홍수를 예방하고 이 물을 이용해 농업의 생산력을 높인 후 그것을 수탈하기 위한 일제의 검은 속셈으로 조성이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조국의 광복 후 위방죽과 아래방죽은 수원의 농업을 증진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곳은 유원지로 탈바꿈을 하여, 수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는 꽤나 유명한 관광지가 된 것이다. 저수지에서 탈것들을 즐길 수도 있고, 많은 위락시설이 들어섰다. 주차장에는 주말이 되면 차를 댈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 원천유원지로 모여들었다.

 

명품도시의 명품장소가 된 광교호수공원

 

과거 우리네 선조들은 집을 한 채를 지으면서도 명품저택을 지었다. 명품저택을 짓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하게 따진 것이 바로 경관이다. 물과 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만날 수 있는 전국의 고택들을 보면 대개가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집을 짓는 덕목으로 삼았다. 즉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물이 흘러야 한다는 것이다.

 

 

명품 도시가 되기 위해서도 이러한 조건은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좋은 도시를 따질 때 반드시 물과 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 늘 접할 수 있는 물과 산이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한 입지조건을 갖춘 곳이 바로 광교신도시이다. 광교신도시를 명품광교라 부르는 까닭이기도 하다.

 

25일과 26일 야간에 찾아간 광교호수공원. 광교신도시의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다. 광교신도시는 2005년부터 조성을 시작했다. 사업시행자는 경기도지사, 수원시장, 용인시장, 경기도시공사사장이며, 모든 조성공사가 끝나면 수용인구 77,000여명에 31,000여 세대가 입주를 한다. 수원시 이의동, 원천동, 하동 일원과, 용인시 상현동, 영덕동 일원을 포함하는 11,304,494.0의 광범위한 면적에 조성이 된다.

 

이 광교저수지에 조성한 광교호수공원은 수원시 영통구 하동 일원에 소재한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호수공원이다. 그동안 낮에는 이곳을 몇 번이나 찾아갔지만 야경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늦은 시간인데도 주변 아파트의 불빛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저수지 주변의 길은 아름다운 빛으로 치장을 해놓았다.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 주는 광교호수공원

 

물은 네 가지 덕목을 갖고 있다. ‘만물을 뚫고 흐르므로 인()이요, 흐르는 중에 탁함을 없애고 더러움을 휩쓸어가니 의(), 부드럽지만 함부로 대하기 어렵고 때로는 두렵고 무서움이 있으니 용()이요, 물길을 따라 순리대로 겸허하게 흐르므로 지()라고 했다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사람 시자(尸子)가 예찬한 물의 사덕(四德)이다.

 

옛 추억은 저 멀리 잡히지 않는 곳으로 밀쳐났지만, 광교호수공원의 야경은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밤이 늦은 시간인데도 잘 조성된 호수 위에 걸린 길을 삼삼오오 걷기도 하도,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물길을 미끄러지듯 지쳐나간다. 호수 주변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조성이 되어있어, 누구나 이곳에 찾아와 담소를 할 수가 있다.

 

 

낮과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다. 왜 이곳을 명품도시라고 하는 지 알 것 같다. 젊은 연인 두 사람이 지나는 이들의 이목도 아랑곳 하지 않고 부둥켜안고 떨어질 줄을 모른다. 이곳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과거의 연인들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명품이 된 이곳은 세월을 뛰어넘은 연인들의 공간이 되었다.

수원 영통구 제8회 영통청명단오제를 가다

 

“내년(2013)이 우리 영통구청이 개청을 한지 꼭 10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알차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행사를 알차게 꾸밀 생각입니다. 지난 해는 3,000명 정도가 행사장에 참석을 했는데, 올해는 한 3,500명 정도가 다녀갈 듯합니다. 벌써 8회째를 맞이한 영통 청명단오제는 지역주민들이 참석하는 단오제의 보존위원회를 조직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2년 6월 23일(토) 오전 9시 30분부터 수원시 영통구 건영4차 아파트 앞에 마련된 영통 단오어린이 공원의 행사장. 수령 530년이 지난 느티나무 아래서 만난 김영규 수원시 영통구청장은 매년 다르게 변해가는 청명단오제를 내년에는 수원시에 건의를 하여, 지역적으로 특색이 있는 축제를 만들겠다고 한다.

 

 

 

오래 전통 속에 녹아있는 청명 단오제

 

영통구의 청명단오제는 원래 예전에는 마을에 있는 당나무 아래에서, 지역에 거주하는 최모만신이 주관을 하여 ‘단오굿’을 펼치던 곳이다. 그러나 40여 년 전 굿을 주관하던 최모만신이 세상을 떠나자 중단이 되었던 것을, 지역의 주민들이 청명단오제로 재현을 하였다. 청명단오제는 예전에 농촌이었던 영통구 일원에 살던 주민들이 모심기를 마치고, 단오장을 연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단오장은 농촌에서는 상당히 의미가 있는 날이다. 일 년 중 가장 기운이 왕성한 날이라고 해서, 이날은 집안에서 일을 하는 머슴들을 하루 쉬게 하고 장에 나가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단오장에서는 항상 씨름판이 열리게 되며, 마을에서는 풍물패를 초청해 한바탕 난장을 벌리기도 했다.

 

 

 

이 날의 행사는 9시 30분에 느티나무인 당산목 아래서 제례의식인 당산제로 시작이 되었다. 식전행사로는 부채춤과 영통구의 실버합창단 등이 출연해 축하를 해주었으며, 식후에는 난타와 춤, 섹소폰 연주 등이 열기를 더했다. 주민들이 참여하는 각종 민속경기로는 그네뛰기, 팔씨름, 씨름, 줄넘기, 굴렁쇠굴리기, 새끼꼬기 등 잊혀 가는 우리 민속을 재현하는 놀이를 펼쳐 주민들의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했다.

 

지역주민들의 공동체를 창출하는 아름다운 축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동안 살아오던 영통구는, 1994년부터 영통, 영덕지구 신사가지가 형성이 되면서 수원에서는 가장 번화한 도심으로 변화하였다. 이런 영통구에는 외지인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농촌지역에서 흔히 놀이로 인해 창출이 되는 공동체의 구심점이 사라진 것이다.

 

 

 당산제에 아헌관으로 참가를 한 경기도의회 안혜영의원(위) 식전행사로 펼쳐진 부채춤


이런 공동체를 되살리기 위해 마련한 것이 바로 청면단오제이다. 행사장에는 나이가 드신 분들보다 30~40대의 젊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활기찬 젊은 영통임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영통구는 수원시 중에서도 가장 젊은 층이 생활을 하는 곳이다. 거기다가 광교신도시에 모든 사람들이 입주를 하고나면, 그야말로 수원의 가장 번화하고 젊은 명품도시로 거듭날 수가 있다. 당산제에 아헌관으로 참가를 한 경기도의회 안혜영 의원은

 

“우리 영통은 사람이 살기 좋은 명품도시입니다. 이제는 가장 번화한 지역으로 변화를 하면서 자칫 잊기 쉬운 우리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 이곳에 뿌리를 내린 모든 구민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영통을 만들기 위한 축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축제는 앞으로 영통이라는 명품도시를 전국적으로 가장 가볼만한 축제로 키워나갈 것입니다”라고 했다.

 

 

 소 등위에 타고가는 젊은 엄마(위)와 식후행사로 펼쳐진 난타공연


행사장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소달구지에 올라탄 아이들이 소리를 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극성스런 어머니들은 직접 소 등에 올라타고 행사장을 돌기도 해,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축제를 만나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축제에도 ‘옥에 티’는 있는 법. 행사장에 간이화장실조차 준비가 되지 않아, 아파트 관리동이나 상가의 화장실까지 멀리 다녀야 하는 불편을 겪기도 했다. 또한 당산제를 지내고 있는데 음악을 크게 틀어놓아 진행에 미숙한 점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었다. 이런 점은 축제를 진행함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은, 앞으로 축제의 진행을 함에 있어 신경을 써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