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쓸쓸하다고 한다. 곧 바람 불고 추운 겨울이 오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가을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가을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뭉개지고 나서야

비로소 길이 된다

낮게낮게 겹쳐져

절룩이며 이은 길

바람의

느낌표 밟은

경북 영덕 그 어디쯤

 

언뜻 언뜻 내비치는

바다를 만지다가

스스로 어둠 택해

작은 빛이 되는 길

덧칠한

묵은 상처도

길 위에서 길이 된다.

 

우은숙 시인의 ‘7번국도라는 시이다. 7번국도, 이 가을에 달려가고 싶은 곳이다. 동해의 푸른 물살이 밀려드는 곳. 참 어지간히 그 길을 따라 걸었다. 특히 가을에 걷는 7번국도는 남다르다. 무엇인가 표현을 할 수 없는 그리움 같은 것이 그 길에 있었다. 천학정, 청간정, 영랑정, 의상대, 하조대, 경포대, 약천정, 만경대, 임해정, 죽서루, 해운정, 월송정. 그 많은 정자를 찾아 이 가을에 다시 7번국도를 걷고 싶다.

 

 

난 이곳을 떠날 수 없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아련하게 밀려오는 곳. 7번국도의 정자들은 그렇게 나를 오라 손짓한다. 하지만 벌써 몇 해째 그 길을 걷지 못했다. 가을은 모든 사람들을 시인으로 만든다고 했던가? 그런 아름다운 길을 난 내 옆에서 찾는다. 하지만 이 길은 7번국도를 대신하는 길이 아니다. 이 가을 스스로 아름다워지는 길이다.

 

왜 이 길을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표현을 하는 것일까? 화성의 화서문에서 서장대를 향해 밖으로 오르는 길. 그곳에 억새밭이 있었다. 그저 바라다만 보아도 좋다. 은색의 억새들이 가을을 노래한다. 사람들은 왜 이곳을 그냥 지나치는 것일까? 그 억새밭 사이로 몇 개의 길이 나있다. 사진께나 찍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 안으로 걸었기 때문이다.

 

 

울컥 울화가 치민다. 자신의 작품을 하나 만들기 위해, 아름다운 억새밭에 길을 만들어 놓다니, 이 억새밭은 작가들을 위한 밭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곳인데 말이다. 아이들이 그 억새를 배경을 사진을 찍는다. 차라리 그 아이들이 아름답다. 어려서부터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아이들. 후에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몰지각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 가을, 그대로 보내야 하나?

 

아름답다. 차라리 시 몇 줄 이라도 쓸 줄 안다면 이 가을을 그냥 보내지는 안았을 것을. 이 가을을 그냥 보낸다는 것이 왠지 가슴이 시리다.

그러니까, 시 공부를 좀 하셨어야죠. 괜히 미음만 아파하면 저 억새들이 함께 아플 거예요. 내년에는 이곳을 찾아와 시 한편 짓고 가세요.”

 

 

파워블러거 모임에 참석한 한 지인이 하는 말이다. 나 때문에 억새가 마음아파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난 이 아름다운 가을을 글 한 줄 표현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억새들이 마음 아픈 것일까? 그저 사진 한 장 담아내는 것으로 이 가을을 보내야만 하는 것일까? 차라리 손을 들어 브이(V)자를 만드는 저 아린아이들이 부럽다. 저 아이들이야말로 이 가을을 제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만추(晩秋)는 사람들을 시인으로 만든다고 했던가? 화성의 포루와 치성, 그 성벽과 아우러진 가을이 내 발길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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