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법당, 그리고 산의 정상부에 늘어선 자연암석에 조각한 수많은 불상과 군상들.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소재한 벽송사를 오르다가, 맨 위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가면 서암정사가 나온다. 이 서암정사는 지리산의 한 줄기 정상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삼대명산이라는 지리산. 삼신산의 한 산인 지리산은 산세가 험해, 6.25 한국전쟁 때 이곳에서 산화한 장병들의 원혼이 떠도는 곳으로 많은 아픔을 지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원응스님이 이곳을 지나다가 수많은 원혼의 울부짖음을 듣고 난 뒤, 이곳에 극락정토를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자연석벽에 지장보살과 아미타불 등, 무수한 불보살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벽송사를 들려 나오는 길에 찾아간 서암정사. 말 그대로 서쪽에 있는 암벽에 조성한 절이라는 뜻인가 보다.



자연암벽에 새겨진 사천왕상과 서암정사로 들어가는 석문

자연암벽에 새긴 사천왕상에 압도당하다.

서암정사를 찾아가는 길은 가파르다. 다행히 벽송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들려,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하지는 않았다. 차가 서암정사의 입구까지 들어갈 수가 있지만, 답사는 역시 조금은 걸어야 제 맛이 난다. 천천히 길을 잡아 서암정사 쪽으로 걷다가 보니, 불사를 하는 중인지 주변에 많은 목재가 쌓여있다.

조금 안쪽으로 걸어가니 양편에 커다란 석주가 서 있다. 그 안으로 정사를 들어가는 석굴 입구가 보인다. 그런데 벽에 무엇인가 새겨진 모습이 보인다. 세상에, 자연 암벽을 이용해 그대로 사천왕상을 새겨 놓았다. 그 조각 솜씨가 일품이다. 도대체 몇 년이나 걸려 이 많은 작품들을 완성한 것일까?



바위마다 새겨진 불상과 서암정사로 들어가는 대방광문, 그리고 문의 안편

암벽의 크기 때문인가, 사천왕상은 조금씩 높낮이를 다르게 조상하였다. 힘찬 동작이 금방이라도 바위를 박차고 호령을 하며 뛰쳐나올 듯하다. 석굴로 들어가니 안으로 넓은 공지가 나온다. 종각이며 극락전 등, 전각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한편에서는 석굴법당 공사를 하느라 부산하다.

모든 것이 자연암석을 이용해서 조성하다

경내에는 모든 조각들이 모두 자연암석을 이용해 조성을 하였다. 관계자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리를 옮긴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있는 자리에 그대로 적당한 조형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작은 암반에 용을 조각하였는데, 머리는 거북이다. 그 입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나온다. 어떻게 저 속을 파내었을까? 모든 것이 궁금하기만 하다.


경내에 마련한 연못과 용을 새긴 수각

종각도 마찬가지이다. 암석 위에 그대로 기둥을 세웠다. 이런 형태는 전국의 정자를 답사하면서 많이 보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산꼭대기에 이렇게 많은 석조물을 조성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한 것일까? 서암정사 여기저기를 돌아보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억울하게 쓰러져 간 영혼들을 위해 이렇게 많은 조형물을 만들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는 그대로를 이용한 것이라는 데는 할 말을 잃었다. 극락전 앞으로 다가가 머리를 숙이고 나도 이런 불사에 작은 마음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저쪽 한편 바위벼랑 끝에 작은 집 한 채가 보인다. 아마 수행이라도 하는 분의 숙소인 듯. 길을 따라 눈길을 돌려보니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바위를 파서 법당을 만든극락전과 벼랑 위에 걸친 토굴

언제 이 거대한 불사가 다 마무리가 되려는지. 아마 또 오랜 시간 또 이렇게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직 조형물이 들어차지 않은 바위를 보며, 내 마음속으로 추측을 해본다. 저곳에는 무엇을 조각할 것인가를.


벽송사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259번지에 소재한 고찰이다. 벽송사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절이다. 벽송사가 ‘한국 선불교 최고의 종가’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 달려갔는지도 모르겠다. 산 정상 부근에 자리한 벽송사를 오르는 길은 그리 평탄치가 않다. 마침 이 해들어 가장 춥다는 날에 길을 잡았으니.

전날 저녁 남원으로 내려가 12월 11일(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요즈음은 일찍 길을 나서지 않으면, 하루 종일 돌아다닌다고 해도 몇군데 못 들리기 때문이다. 한때는 빨찌산의 야전병원으로도 이용이 되었다는, 벽송사를 들어가는 입구는 계곡이 아름답다. 내년 여름에는 꼭 한번 들려보고 싶은 곳이다. 가파른 길을 헉헉대고 올라 벽송사에 당도했다.


지금은 옛 영화는 볼 수 없어

벽송사는 조선조 중종 때인 1520년, 벽송 지엄 선사에 의해 창건이 되었다고 전한다. 벽송사는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공부를 한 절로도 유명하다. 선불교 최고의 종가를 이루었다는 벽송사에서는, 109분의 대 종장을 배출했다고 한다. 벽송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전하고 있는데, 신라 때의 양식을 계승한 보물 제474호인 3층 석탑과, 경남 유형문화재인 벽송선사진영. 경암집 책판. 묘법연화경 책판과, 경남 민속자료 제2호인 목장승 등이 있다.

벽송사가 어느 정도로 많은 선사들이 이곳에서 도를 이루었는지, ‘벽송사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는 것이다. 벽송사는 조선조 숙종 30년인 1704년에는 환성 지안대사가 벽송사에 주석하며 도량을 크게 중수하였는데, 이 때에 불당, 법당, 선당, 강당, 요사 등 30여동의 전각이 즐비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상주하는 스님이 300여명에 이르렀고, 부속 암자는 10여개가 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지금의 벽송사는 참으로 한적하다. 그러나 오랜 동안 전해진 전통은 그리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 벽송사 경내를 들어가면서 느낀 것은 알 수 없는 기운이 전해진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옛날 법이 높은 선승들의 기운인가 보다.

삼층석탑과 두 그루의 소나무

벽송사라는 절의 명칭은 벽송스님에 의헤 창건이 되었기 때무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벽송사를 답사하고 난 뒤 느낀 점은, 이곳의 소나무를 보고난 뒤 지엄스님이 호를 벽송이라고 지은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그만큼 벽송사 주변에는 노송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현 벽송사의 맨 위에 자리하고 있는 삼층석탑. 보물 제474호인 이 삼층석탑은 신라 때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 조성시기는 벽송사가 창건한, 조선조 초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으로 보면 이 삼층석탑은 당시에 조성된 석탑으로서는 단연 백미라고 볼 수 있다.

2단으로 구성된 기단은 아래층 가운데돌의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얕게 조각하였다. 몸돌에는 층마다 우주와 탱주를 새겼으며, 지붕돌은 날렵하게 위로 솟아, 금방이라도 청왕봉의 정상을 행해 줄달음을 칠 듯하다. 지리산의 천왕봉이 지척에 보이는 곳에 벽송사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탑의 맨 위에는 머리장식으로 조성한 노반(머리장식받침)과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남아있다. 석탑의 일부분이 조금 훼손되기는 하였지만, 그런대로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탑이다.

미인송과 도인송

탑을 돌아보다가 보면, 근처에 년륜이 들어보이는 소나무들이 있다. 그 중 미인송과 도인송이 있다는 것이다. 미인송은 나무가 굽어 받침대로 받쳐놓았고, 도인송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 뻗어 있다. 그냥 보아도 범상치가 않다. 그 중 도인송은 밑 둘레가 2m가 넘을 듯하며, 줄기의 길이가 20m는 족히 될만하다. 줄기에는 가지 하나없이 곧바로 위로 올라간 나무 끝에, 마치 버섯처럼 잎이 달려있다.



도인송의 기운을 받으면 건강을 이루고, 한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미인송에 기원을 하면 그 사람은 미인이 된다’고 한다. 과연 그 말이 맞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벽송사 경내를 한 바퀴 돈 후에는 그 말도 믿고싶다. 그만큼 벽송사는 무엇인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담고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에는 고담사라는 절이 있다. 이 절 뒤편에는 화강암 바위를 그대로 깎아 불상을 새긴 마애불이 자리하고 있다. 한 눈에 보아도 거대마애불이다. 이런 거대 마애불은 고려시대의 작품에 많이 나타나는데, 이 마애불 역시 고려 초기인 10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전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왜 이렇게 거대한 마애불을 조성했을까? 아마 그것은 국운의 융성함과 더불어, 고려라는 나라의 국권을 상징한 것인지도 모른다. 보물 제375호로 지정된 함양 덕전리 마애여래입상은 바위 면을 다듬어 조각한, 전체 높이 6.4m에 불상 높이가 5.8m나 되는 거대한 마애여래불이다.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 고담사 뒤편 암벽에 새겨진 보물 제375호 마애여래입상

염주와 화염의 문양으로 돌린 두광

고담사 뒤편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은, 훼손이 되지 않은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오랜 풍광에도 아름답게 보존이 되고 있는 모습에서 고마움을 느낀다. 이 마애불의 특징은 바로 광배와 대좌까지 온전히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 모양의 광배는 두광과 신광까지 모두 볼록하게 조각을 하였다. 연주와 화염의 문양을 돌려 조각을 한 마애불은 보기에도 화려하다.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는 연꽃 봉우리처럼 조각을 한 상좌가 있고, 그 밑에는 탑의 기단부와 같은 모습으로 하대로 구분이 되어있다. 특히 하대에는 석탑에서 보이는 우주와 탱화가 표현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탑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안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렇게 하나하나 세세하게 표현을 하였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받침에는 상좌와 하대가 표현이 되어있다. 하대에는 석탑의 기단부와 같이 우주와 탱주, 안상 등이 나타난다. 두광와 신광은 연주와 화염의 문양을 조각해 화려하다.

조금은 균형이 안맞는 덜 세련된 조각수법

길고 큰 전신에 비해 나발과 육계는 작은 편이다. 하지만 가늘게 감은 듯한 눈과 두툼한 꼭 다문 입등은 강력한 인상을 풍긴다. 적당히 표현된 코와, 어깨까지 늘어진 귀 등은 위엄스러움을 담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며 넓은 어깨에는 대의를 걸쳤는데, 가슴에서 한 번 꼬여 양편으로 늘어진 것이 망토와 같은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인도에서 시작이 되어 중국을 거쳐, 통일신라시대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체적인 형태의 조각기법에서 덕전리 마애여래입상이 통일신라의 마애불 조각기법을 따른, 고려 초기의 작품이라고 보는 이유다. 발은 크고 두툼한데 비해 손은 작은 편이다. 그런데 손을 조각한 수법이 색다르다. 몸에 비해 도드라지게 조각이 되어 있다. 아마 손이 작게 조각이 된 것도 저렇게 위로 도드라지게 조각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금은 비례가 맞지 않는 손과 발

덕전리 마애불 앞에서 세상을 위해 참배를 하다.

전국 이곳저곳을 답사하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문화재들. 이렇게 온전히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덕전리 마애여래입상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인다. 세상을 구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문화유산들. 그리고 훼손되고 도난당한 문화재들. 이런 아픔을 위한 반성의 참배다. 누구 하나 돌아보지 않은 이 산 중 깊은 곳에서 천년 세월을 꿋꿋하게 지켜졌다면, 무엇인가 신비스런 힘이 있지나 않을까하는 생각에서다.


그 굳게 다문 눈이며 입이, 그리고 왼손을 들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자 하는 모습이 덕전리 마애여래입상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뒤돌아 산을 내려오면서도 몇 번이고 돌아보게 되는 마애불. 아픔을 당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이들을 위해 기원을 해본다. 이제는 제발 몇 사람들을 위한 세상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경남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에는 보물 제375호인 고려 초기에 조성된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11월 27일(토) 비가 내리는데 찾아간 마애불. 이 마애불의 앞에는 한창 절의 건물을 새로 짓고 있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마애불을 찾아 올라가는 길에 보니 이상한 탑이 하나 서 있다. 사람의 얼굴모양을 돌에 조각한 탑이다.

탑의 꼭대기에는 한편에는 ‘바람처럼. 또 한편에는 ’물처럼‘이라고 썼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108개의 갖은 표정들을 돌에 새겨 붙여놓았다. 「세상사는 일 번뇌 맘 상이 많아 그 모습들 백팔장승으로 표현하였다」라는 글이 적혀있다.




백팔장승 탑 정성이 깃들어 있어

이렇게 다양한 표정들을 조각하는데 얼마나 오래시간이 걸렸을까? 아마 모르기는 해도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이 백팔장승 탑 하나가 완성되었을 것이다. 그 백팔개의 얼굴 중에 혹 나는 없는 것일까? 그 표정을 하나하나 훑어보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표정들은 다 제각각이다. 어떤 표정은 웃고 있고, 어떤 것은 잔뜩 찌푸리고 있다. 또 노한 표정도 있고, 일그러진 얼굴도 있다. 세상사 모든 얼굴이 그 안에 있는 듯하다. 저 가운데 내 얼굴은 몇 개나 있을까? 이 백팔장승 탑이 언젠가는 이곳을 명물로 만들어 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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