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부터 몸이 으슬거리는 것이 영 좋지가 않더니, 아침에는 기침이 나고 목도 아프다. 마침 오늘은 쉬는 날이라 하루 종일 방콕이나 해야겠다고 작정을 하고 있는데, 산사에서 전화가 온다. 오늘은 사찰에서는 지장재일이라 제가 있는 날이다. 몸은 안 좋지만 오히려 산사에 오르느라 땀을 흘리면 나을 것도 같아 집을 나섰다. 추석연휴가 징검다리 연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다.

모악산은 그리 높지가 않다. 주차장에 차를 놓고 천천히 걸어가도 30분이면 중턱에 있는 산사에 도착할 수가 있다. 산길로 들어서 천천히 걷고 있는데, 앞으로 꼬마 한 녀석이 앞장 서 걷고 있다. 그리 가파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산길이다. 열심히 걷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모악산을 혼자 오르고 있는 6살짜리 선우. 뒤를 따라가다가 하도 기가 차 휴대폰으로 촬영을 해서 화질이 좋지가 않다. 아이폰이라도 구해야지.

아버지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나?

엄마, 아빠와 같이 산행을 하고 있는 꼬마.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열심히 산길을 오른다.

"잘 올라가네. 우리 선우(아버지가 부르는 이름인데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대단하네 정말"

그 말 때문인지 꼬마는 더 빨리 올라간다. 한 10여분 그렇게 오르면 수박재다리를 건너게 된다. 그런데 이곳서 부터는 갑자기 길이 가파라진다. 아무래도 꼬마가 오르기에는 무리일 듯하다. 그런데도 손을 짚어가면서 혼자 오른다. 엄마가 옆에서 손을 잡아주려고 한니, 손을 뿌리치고 혼자 올라간다. 아버지는 연신 용기를 불어넣는다.   

혼자 그렇게 산을 오르는 꼬마 이마에 땀이 맺혔다. 엄마가 땀을 닦아 준다고 해도 싫단다. 그리고는 계속 혼자 올라간다. 가파른 경사가 있는 곳은 어른들도 한 숨 돌리는 곳이다. 그런데도 열심히 오르기를 멈추지 않는 꼬마. 산을 올라가는 사람들마다 한번 씩 쳐다보고 웃는다.
 

엄마 아빠와 함께 산을 오르는 6살짜리 꼬마 선우. 산을 어른들보다 더 잘 오른다. 기가 차다.

6살짜리 꼬마아이 혼자 정상에 올랐을까?

저렇게 부모님의 도움도 마다하고 혼자 산을 오른 꼬마. 물론 아버지의 말이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산에는 가족들과 함께 많은 아이들이 올라온다. 그런데 저렇게 어른들을 따돌리며 시종일관 혼자 올라오는 아이들은 보기가 힘들다. 저 꼬마가 저렇게 혼자 산을 오를 수 있는 것은 역시 어머니의 따듯한 손길보다는, 아버지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몇살인가요?"
"이제 여섯살입니다"
"그런데 정말 산을 잘 타네요"

아버지의 뿌듯한 마음이 이해가 간다. 어느새 산사까지 도달한 꼬마는 , 부모님들과 정상을 향하고 있다. 물론 여기까지보다 더 힘들고 험난한 산행이다. 하지만 6살짜리 선우는 오늘 틀림없이 정상을 올랐을 것이다. 산행에서 만난 기가 찬 꼬마녀석 때문에 으슬거리던 몸도 나아진 듯하다.

일요일이 되면 가끔 산으로 올라간다. 등산을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남들처럼 건강을 위해 등산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내가 산을 오르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잘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하면 남들은 무엇이라고 할까?

“잘 먹기 위해서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예 살다보면 사람들은 무엇인가 좀 좋은 것이 먹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요?”

질문에 늘 되묻는 말이다. 그럼 내가 산을 오르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더구나 복중에 산 정상에 오르는 것도 아니고, 산을 온통 헤집고 다니는 이유 말이다.

처음 캔 것을 손에들고 휴대폰으로 인증샷을...

'우리들이 무슨 특수부대도 아니고'

산으로 오르는 이유는 바로 산에서 자라는 자연산 더덕이나 도라지 등을 채취하기 위해서다. 올 봄부터 우연히 산을 올랐다가 더덕을 캐게 되었다. 그 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향도 그렇지만 5월 초순까지는 줄기까지 씹어 먹어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가끔은 캔 더덕을 나누어주기도 한다. 많이 캐서가 아니라 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덕을 캐러 산에 오르면 그 복장이 장난이 아니다. 우선 긴팔 윗옷을 입어야 한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보면 가시에 찢기는 등 상처가 아물 날이 없기 때문이다. 장갑은 필수요, 다리에는 보호대인 각반을 착용한다. 어디 그것뿐인가? 물과 비상식량(이건 머 아이들 같지만 간식거리를 말한다. 온 산을 누비고 다니면 배가 고파지기 때문에) 거기다가 등에는 배낭을 하나 둘러매고, 손에는 곡괭이를 하나 들고 간다. 가끔 운이 좋으면 어린 산삼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다섯시간 동안 산을 돌아다니면서 캔 자연산 더덕. 향이 그만이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이미 옷은 땀으로 젖어버린다. 목에 두른 수건은 짜면 물이 주르륵 흐른다. 땀이 이 정도로 비오 듯 쏟아지니 몸이라고 온전할 리가 없다. 쉰내가 난다. 산모기와 작은 파리는 연신 달라붙는다. 참으로 귀찮은 녀석들이다.

이놈의 등산화야 어쩌자는 것이냐?

정확히 말하면 어제(8월 8일) 오후인가 보다. 지인들과 함께 더덕을 캔답시고 산행에 나섰다. 산을 가로질러 몇 고개를 넘는다. 겨우 더덕 몇 뿌리를 캤다. 일단 인증샷을 휴대폰으로 찍어 놓고 한 시간 이상을 돌아다녔지만,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자리를 옮겨야 할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바로 등산화 앞이 떨어져버린 것이다. 산에 무수한 줄기들이 등산화를 물고 놓지를 않는다. 몇 번인가 넘어지고 부터는 실실 화가 난다. 거기다가 나무 가지에 걸려 모자까지 나무가 가져가버렸다. 높지는 않은 나무지만 이미 많이 지쳐있는 터라, 모자를 찾아야겠다는 엄두가 나질 않는다.



장소를 옮겼다. 계곡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더덕이 보인다. 곡괭이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으니 맨손으로 캘 수밖에.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낭패인가. 흙을 파다가보면 더덕의 줄기가 끊어져버린다. 화는 나는데 벌어진 등산화의 주둥이는 연신 흙을 집어삼키고 있다. 발바닥이 까칠 거린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줄기를 물어 걸리고, 넘어지고 미끄러지기를 수십 번은 했다. 어쩌란 말이냐 이 더위에.

다섯 시간 정도 산을 탔다. 손에는 십여 뿌리의 자연산 더덕이 들려있다. 그런데 이 주둥이 빠진 등산화는 어찌할까? 등산화가 입을 벌리고 나에게 항의를 하는 듯하다.

“그러니까. 산을 좀 작작 다녀 이 인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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