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 강골마을은 참 아름다운 곳이다. 이 마을에는 정자이면서도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이 될 만큼 아름다운 열화당이 있다. 또 중요민속문화재 제157호인 이금재 가옥과 제159호인 이용욱 가옥도 찾아볼 수 있다. 고택 답사를 하면서 가장 아름답고, 오랜 기억에 남을 만한 집을 친다면 당연히 이용욱 가옥일 것이다.

 

집이 균형 있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도 그러하지만, 이용욱 가옥에는 담장에 '소리통'이라는 희한한 구멍이 나 있기 때문이다. 이 소리통이 주는 무한한 상상의 즐거움은, 그 어떤 것도 견줄 바가 아니다. 이용욱 가옥은 강골마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 헌종 1년인 1835년 이진만이 지었다고 한다. 이용욱 가옥은 5칸의 솟을대문인 대문채(행랑채), 사랑채, 중간문채, 곳간채, 안채, 사당과 연못 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  

 

사랑채 앞마당 담장에 난 소리통은 무엇?

 

이용욱 가옥을 돌아보면 '집이 참 이렇게 꾸며질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만큼 집의 전체적인 모양새가 반듯하다. 그러나 굳이 이 집의 여기저기를 돌아보는 것 보다는, 사랑채와 대문채의 사이에 있는 넓은 앞마당 담장에 있는 구멍 하나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도대체 담장에 저 구멍은 무엇일까?

 


이 작은 구멍을 '소리통'이라고 한다. 이곳에 대고 무슨 소리라도 지른다는 것이 아니다. 이 소리통의 크기는 10cm × 20cm 정도이다. 사랑채에서 대문을 바라보면서 좌측담장 중간쯤의 사람 눈 높이에 이 구멍이 나 있다. 이 소리통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밖으로 나가 담장 밖을 살펴보았다.

 

대문을 나서 좌측으로 돌면 옆집과의 담장사이에 길이 하나 나온다. 그저 좁은 골목길쯤으로 생각을 하면 될 만한 그런 길이다. 그런데 그 안으로 들어가니 이용욱 가옥의 담장이 조금 안으로 들어가고, 그 곳에 우물이 있다. 우리가 흔히 공동우물이라고 하는 곳이다. 이 소리통은 그 우물과 안마당을 막은 담장 가운데에 나 있는 것이다.

 

이용욱 가옥의 담장 밖에는 마을에서 가장 물 좋기로 소문난 공동우물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의 정보를 알 수 있는 소리통

 

이쯤 되면 이 소리통이 무슨 용도로 쓰였을 것이라고 답이 나오지 않을까? 우물이라는 곳은 마을의 아낙네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우물에 모인 아낙네들의 수다야, 이야기 하지 않아도 알만하다. 어느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누구는 어떤 짓을 했는지. 누가 살기가 어려운지, 우물가에 모인 아낙네들의 수다는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그 수다 가운데는 양반을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더러는 누구누구는 어떤 염문을 뿌렸는지도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런 우물가의 이야기가 소리통을 통해 안으로 그대로 전달이 되는 것이다. 그저 벽에 귀를 갖다 대지 않고 근처만 가도 밖에서 하는 이야기가 다 들린다. 함께 답사에 동행한 일행에게 밖으로 나가 이야기를 좀 해보라고 했다. 신경을 쓰고 들을 필요도 없다. 바로 귀에 대고 말을 하듯 그대로 다 들린다. 결국 담장 너머 우물가에서 수다를 떨면서 나온 마을의 모든 정보가, 이 소리통을 통해 하인들에게로 전해지고, 한발에 달려갈 수 있는 사랑채의 주인 어르신께 전달이 되었을 것이다.

 

대문채와 마주한 사랑채. 넓은 앞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이용욱 가옥의 대문은 처음에는 3칸이었다. 그러던 것을 이방희의 손자인 이진래가 5칸으로 개축을 했다

 

이용욱 가옥은 지방 사대부가를 대표하고 있는 집이다. 이 집에 사는 양반네들은 마을에서는 추앙을 받고 살았다고 한다. 그렇게 마을사람들에게서 대접을 받고 살기 위해서는, 마을사람들의 아픈 곳을 알아서 어루만져 주는 지혜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랫사람들이 양반집에 찾아가 '나 어디가 아프오'라는 말을 하지는 못한다. 이 소리통은 그런 창구 역할을 한 것이다. 마을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을의 모든 일을 결정할 수 있는 교류의 창구 역할을 한 것이다. 물론 그 안에는 양반들을 욕하는 자들도 더러는 있었을 테지만.

 

이 소리통이 하인들에게는 어떤 용도였을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소리통으로 바깥 우물 쪽을 내다보았다. 세상에, 우물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밖으로 나가 우물에서 소리통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앞마당 밖에는 보이지를 않는다. 참 묘한 소리통이다. 사랑채와 대문채의 사이 담장에 자리를 잡은 소리통. 대문채는 하인들이 생활공간이다.

 

이용욱 가옥의 대문은 처음에는 3칸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을 이방희의 손자인 이진래가 5칸으로 개축을 했다는 것이다. 앞마당에서 보면 좌측에는 두 칸의 방이 있고, 우측에는 한 칸의 방이 있다. 왜 대문채를 넓히고 방을 더 드렸을까?

 

담장의 중간쯤에 소리통을 뚫어놓았다
 

 

 

아마 모르기는 해도 이 대문을 넓힌 이진래의 아랫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을 하겠지만,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 혼자 키들거린다. 여름철 하루 종일 밖에서 일을 하고 들어오면, 땀도 많이 나고 온몸이 꿉꿉하다. 그럴 때 시원한 찬물이라도 끼얹으면 날아갈 듯하다. 마을 사람들은 해가지고나면 하루 종일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이 우물에 와서 씻고는 했을 것이다. 이 우물은 물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으면, 더위도 가시지만 미용에도 좋다는 마을 분들의 이야기다.

 

젊은 하인들이 물소리를 들으면 잠이 올까? 아마 이 소리통을 통해서 담 너머에 있는 우물을 힐끗거렸을지도 모른다. 달이 으슥하면 남의 이목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을 테니, 이보다 좋은 기회가 또 있을까? 결국 이 소리통은 집의 어르신은 정보를 수집하는 창구로, 대문채에 머문 머슴들은 야릇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은밀한 창으로 이용을 했을 것만 같다.

 


소리통 하나만 갖고도 무한한 상상을 할 수 있는 보성의 이용욱 가옥. 그래서 고택을 답사하는 길이 늘 힘든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이런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진 한 장만 갖고도 그 정자의 아름다움을 알아 볼 수가 있다. 그저 주변 경치로만도 이 정자는 예사 정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정자를 만난다는 것은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런 즐거움을 안겨 준 정자의 기억은 잊히지가 않는다.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은 수많은 정자들. 정자를 답사하다가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정자들이 많다. 어느 정자인들 산천경계를 중요시하지 않았을까? 그만큼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는 정자들은, 바로 스스로 자연이 된다. 그 중에서도 잊히지 않는 정자가 있다. 중요민속문화재 제162호 열화정(悅話亭)은 전남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 강골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정자 하나로도 집의 역할을 감당해 내

 

열화정은 조선 현종 11년인 1845년에 이재 이진만 선생이 후진 양성을 위해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이곳에서 이재의 손자인 원암 이방회가 당대의 석학 영재 이건창 등과 학문을 논하는 등 많은 선비들이 수학하였다고 한다. 열화정은 이 지방 선비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했는데, 구한말 때 일제에 항거해 싸웠던 이관회, 이양래, 이웅래 등 기개 높은 의인 열사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열화정은 소박한 구조의 건물은 주변의 정원시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해가 설핏 넘어가기 전에 바쁜 걸음으로 찾아간 열화정. 돌계단을 올라 열화정을 바라보는 순간, 숨이 탁 막힌다. 전국을 다니면서 수많은 정자를 보아왔지만, 이렇게 운치 있는 정자는 처음이다. 아마도 이런 정자 하나를 만나기 위해, 그 긴 시간을 거리에 있었나 보다.

 

단골 영화촬영지인 열화정

 

크지도 않고, 마을의 뒤편에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는 열화정. 누각으로 한편을 지어 그곳에는 연정(蓮亭)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봄이 되면 정자 앞에 작은 연못에 연꽃이라도 피어나는가? 연정인 누각의 앞쪽에는 작은 연못이 있어, 이곳에 연꽃이 많이 피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연못의 한편에는 물이 차면 빠져나가 정자 앞의 작은 계곡으로 물이 흐르도록 만들었다.

 

정자를 한 바퀴 돌아본다. 보면 볼수록 참으로 단아하다. 한편은 벽을 안으로 넣어, 방에 군불을 지피는 사람이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사소한 것 하나에서도 지은이의 아랫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정자의 마당에는 여기저기 오래 묵은 꽃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뒤편으로는 울창한 산림과 대밭이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상상을 해보아도 열화정이 지니고 있는 멋스러움을 알 것 같다. 사계절 그 모습이 다 달라질 것 같은 모습에서 더욱 더 찬사를 아낄 수가 없다. 영화 <서편제>와 <태백산맥>, 김대승 감독의 <혈의 누> 등에 이곳 열화정이 보인다. 열화정은 그만큼 자연 그대로를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지켜가고 있다. 봄철 연꽃이 작은 연못을 아름답게 수놓는 날, 이곳을 다시 한 번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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