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시린 화성의 야경이야기. 그 두 번째는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으로 부터이다. 성 안에서 밖으로 본 창룡문은 참으로 아름답다. 조명으로 인해 은은한 빛을 발하는 성돌이 마치 살아있는 따스함을 느끼게 만든다. 지난 가을 이곳에서 장용외영의 무사들이 펼치는 마상무예를 수원문화재단 소속의 무예24기 시범단이 보여주었다. 그 장면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모른다. 

 

그저 말과 혼연일체가 되어 달리면서 보여준 활쏘기, 창검술, 그리고 쌍칼을 휘두르면서 지쳐나가면서 순식간에 베어버린 짚단들. 허공을 가르며 날리는 짚단들이 장용외영의 무사들이 얼마나 정예화 된 군 조직이었는가는 알게 해준다. 그런 무사들이 지키고 있던 창룡문을 바라보면서 늦은 밤에 홀로 사색에 잠긴다.

 

창룡문을 나서 남수문 방향으로 걸어간다.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바로 동일포루이다. 화성에는 포를 쏘는 포루와 적을 감시하고 지휘를 맡아하는 포루가 있다. 포를 쏘는 포루는 외장을 벽돌로 쎃아올렸기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가 있다. 동일포루는 중간의 지휘소 역할을 하면서 병사들이 쉴 수도 있는 공간이다.

 

저만큼 동일치가 보인다. 치란 꿩을 뜻한다. 꿩은 숲으로 잘 숨어든다. 치는 성벽에서 밖으로 돌출이 되어있다. 이 치성은 성벽으로 기어로르려는 적들을 향해 뒤체서 공격을 할 수가 있는 시설이다. 치와 포루 등이 적당한 간격으로 설치가 되어있는 화성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이다.     

 

동포루, 포루란 포를 쏘는 곳이다. 강력한 화기인 포는 개인이 소지할 수 있는 블랑기포부터 다양하였다. 포루는 안으로 들어가면 3층으로 되어있다. 맨 위에는 포장이 버티고 있는 1층과 1층은 병사들이 들어가 있다. 포루는 주변의 중요한 구조물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강력한 화력을 갖고 적을 공격하는데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동이치. 동포루와 봉돈 사이에는 동이치가 자리한다. 화성의 시설을 보면 참 과학적이란 생각이 든다. 화성의 동남쪽은 너른 평지와 깊은 현재의 창룡문로, 그리고 그 조금 위에는 흡사 외성과 같은 용마룻길이 나 있다. 이곳에 조형물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성벽이 노출되어 있기도 하지만, 중요한 시설물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이치를 지나면 성벽으로 돌출된 봉돈이 있다. 마치 어느 서양의 고성같은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는 본돈. 봉돈은 본화를 피워 신허를 하는 곳이다. 평상이에는 봉화 하나를 올리지만, 적과 접전이 벌어지면 다섯개의 화구가 일제히 연기를 올린다. 봉화는 산 정상부근에 있지만, 화성의 봉돈은 평지에 있는 거소 남다르다. 

 

동삼치. 중요 시설물과 치가 하나씩 건너있는 곳이 바로 이곳의 지형이 딴 곳에 비해 취약하기 때문은 어니었을까? 창룡문으로 부터 남수문까지를 걷다가 보면 유난히 구조물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치와 포루, 봉돈 등을 보호하기 위해 중간마다 치를 놓았다는 점도 특이하다.

 

동삼치를 지나면 성벽 안으로 들어간 동남각루의 처마가 보인다. 대개의 구조물들이 치성위에 놓았는데, 동남각루는 치성을 벗어나 안으로 들어가 있다. 이 동남각루는 남수문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로 보인다. 이층 루로 지어진 크지 않은 전각은 아름답다. 그리고 아래에는 반칸짜리 온돌방이 있다. 장용외영의 군사들을 사랑하는 정조의 따듯한 마음이 느껴지는 곳이다. 

 

남수문은 두 번이나 유실이 되었던 곳이다. 다시 복원을 한 남수문은 구간수문으로 밤에 조명이 아름답다. 광교산에서 발원한 수원천이 북수문인 화홍문에서 화성으로 유입이 되어, 남수문에서 다시 밖으로 흐른다. 수문 위에는 벽돌로 여장을 쌓았다.

 

지금은 일부 유실이 된 남공심돈과 남암문도 이 남수문과 팔달문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었을 것이다. 성안에 물은 상당히 중요한 것이기에, 그만큼 남수문의 용도도 중요하다. 늦은 시간이지만 남수문을 들라거리며 수원천을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화성의 야경이야기 두 번째를 남수문에서 접는다. 

봉돈에서 남수문까지의 거리는 440m에 불과하다. 화성 겉돌기의 아홉 번째 구간으로 정한 이 곳에는 동이포루와 동삼치, 그리고 성벽 안으로 떨어져 지은 동남각루와 급격한 경사면 밑에 자리하고 있는 수원천의 남수문이 자리하고 있다. 남수문은 올해 6월 9일 90년 만에 복원이 되었다.

 

화성 축성 당시 축조를 하였던 남수문은 1842년과 1922년의 대홍수로 인해, 두 차례나 유실이 되었다. 일제 때에는 그나마 남은 것을 철거시켜 터만 남아있던 것인데,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면서,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를 거쳐, 어떠한 비에도 무너지지 않는 최신공법을 이용해 복원을 하였다.

 

 

 

밖으로 돌아보는 축성의 극치

 

이 화성 겉돌기의 아홉 번째 구간인 봉돈에서 남수문까지의 길은, 사실 화성의 외벽을 돌아보면서 만나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란 생각이다. 이곳까지 화성의 겉모습이 다양하게 변하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벌써 이 구간을 답사한 날짜가 꽤 오래되었다. 그동안 화성이 변한 것이야 아니겠지만, 이렇게 뒤늦은 답사기를 쓴다는 것은 사실 답사의 감이 떨어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비록 답사를 한 날은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 뒤로도 이 구간을 몇 번인가 지났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답사를 한 것은 화성문화제 기간인 10월 7일이었으니, 그 때의 시각으로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에는 화성 외벽으로 답사하다가 보면, 꽤 많은 관광객들이 함께 성 밖 길을 걷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구간을 특히 많은 관광객들이 돌아보게 되는 것은, 남수문과 팔달문 인근에 재래시장이 몰려있어, 시장구경을 마치거나, 지동시장 순대타운에 들렸던 사람들이 성을 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곳은 지형의 격차가 크고, 더구나 화성에 두 개의 수문 중 한 곳인 남수문이 있어 사람들이 외부로 관람을 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동이포루와 동삼치를 지나다

 

포루는 초소나 군사대기소와 같은 시설로 군사들이 휴식을 취할 수도 있는 구조물이다. 동이포루는 봉돈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었으며, 치 위에 세웠다. 정조 20년인 1796년 7월 3일에 완성을 한 동이포루는 이층 누각으로 지어졌으며, 판문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밖에서 보는 동이포루 위에는 사람들이 쉬고 있는 듯, 왁자하니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밑에서 올려다본 동이포루의 날렵한 지붕이, 지금이라도 당장 날아오를 듯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모습이다. 성벽 위에 지은 전각 하나하나가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주는 곳, 그것이 바로 화성 외곽을 돌아보는 즐거움이다.

 

 

 

그동안 오랜 세월을 지난 듯, 돌보다 색이 다르게 변한 동삼치로 향하다가 보면, 그 성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회가 깊다. 이 돌들은 200여 년 전 화성 축성당시, 팔달산, 여기산, 숙지산, 궐동 등에서 날라 온 것들일 것이다. 200년 세월을 그렇게 기다리고 있다가 만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감회가 남다르다.

 

동남각루와 남수문의 조화

 

동삼치를 지나 조금 더 걷다가 보면 갑자기 성벽이 변한다. 그 위를 보면 지붕 끝만 삐죽이 얼굴을 내민 동남각루가 있다. 이곳은 평지를 이루고 있던 성벽이 갑자기 이래로 곤두박질을 한다. 성벽을 둥글게 감아 들이고 아래로 층층이 여장을 놓은 곳, 그 아래 남수문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남각루는 중간 지휘소 역할을 하는 곳이다. 동남각루는 높은 곳에 남공심돈과 마주하고 있으면서 남수문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물 중 한 곳이다. 각루는 비교적 높은 곳에 설치를 하였으며 주변을 잘 감시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병사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한데, 예전 이 동남각루에 쉬고 있던 장용영의 병사들은, 그 밑으로 펼쳐지는 장시의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했을 것이다.

 

 

밑으로 고꾸라지듯 떨어져 내리는 성벽. 그리고 그 밑으로 서 있는 남수문. 아마도 지금은 사라진 남공심돈 등을 함께 조망을 할 수 있었다면, 그 어느 곳에 뒤지지 않는 화성의 아름다운 곳 중 한곳이 아니었을지.

 

아홉 번째 그간을 걸으면서 또 다시 느끼는 것은, 역시 화성은 겉돌기를 할 만한 성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치(雉)’란 꿩을 말하는 것이다. 화성에는 치라고 부르는 시설물이 있다. 성벽을 쌓다가 일정 간격을 두고 밖으로 튀어나온 시설물들이다. 이 치는 꿩이 자신의 몸을 숨기고 주변을 돌아보 듯, 그렇게 자신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구조물이다. 밖으로 돌출된 이 치는 여장을 두르고 총안을 내어, 성벽으로 기어오르는 적을 막을 수 있도록 했다.

원래 화성에는 11개의 치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화성에서 볼 수 있는 치는 열 개다. 화성 동문에서 시작해 좌측으로 성을 한 바퀴 돌면, 동일치서부터 만나기 시작한다. 동일치, 동이치, 동삼치, 남치가 있고, 산 위로 오르는 용도라고 불리는 길에 용도동치와 용도서치가 있다. 그리고 서장대를 지나 동문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서삼치, 서이치, 서일치와 북동치가 있다.


다양한 기능을 갖는 화성의 치.

성 밖으로 돌출된 구조물을 단순히 치만을 생각하면 안된다. 치성을 쌓은 후에 그 위에 포루와 적대 등을 설치했기 때문에, 기실 화성의 치와 같은 기능을 갖고 있는 구조물은 그 배나 많기 때문이다. 이 치는 일정한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형지물을 이용해 축조한 화성이기에, 그 지형에 맞는 곳에 치가 있다.

치의 총안을 통해서 성벽을 보면, 성벽 전체가 보인다. 치와 치, 혹은 치와 포루 사이에서 성벽을 오르기란 불가능하다. 성벽을 타고 오르려고 한다면, 앞뒤에서 날아오는 화살 등을 막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공성무기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성,그것이 바로 화성이다.





위로부터 동일치, 동이치, 동삼치와 맨 아래 남치

치롤 돌아보면 화성을 알게 된다.

열곳의 치성은 그 크기가 같은 것이 아니다. 지형에 따라 크기가 다르고, 총안의 각도가 다르다. 한 마디로 이 치성 안에 숨어 성벽을 오르는 적을 공격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시설물이다. 치성 안에 들어가 총안으로 밖을 본다. 건너편 포루가 보인다. 저 포루와 이곳 치성 사이에는 성벽이 한 곳도 그늘진 곳이 없다. 그만큼 완벽하게 쌓은 성이다.

화성을 돌아보면서 늘 하는 생각이다. 만일 이 성에서 정말로 전쟁을 했다고 한다면, 아마도 그 누구도 이곳을 함락시키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다. 총안을 통해 적의 뒤를 공격하고, 치성으로 오르려고 하면, 치의 바닥에 나 있는 구멍에 끓는 기름을 붓거나 끓는 물을 부어 적을 덤비지 못하게 만든다.



위로부터 용도 동치, 용도 서치와 용도 좌우에 난 치

누구도 성벽을 탈 수 없다.

이렇게 완벽한 성은 없다. 이런 치의 용도로 인해 화성이 더욱 더 난공불락의 성이 되는 것이다. 그저 성벽을 쌓다가 돌출을 한 것이 아니고, 성의 방어하고 적을 섬멸하게 위해 만들어진 구조물이다. 이 치성을 한 곳 한 곳 돌아보면 화성의 동선이 그대로 들어난다. 꼭 있어야 할 곳에 치가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위로부터 서심치, 서이치, 서일치, 북동치

전쟁은 죽음을 각오하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치가 있어 적어도 화성에서 전투를 한다고 하면, 성안의 군사들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고, 적을 공격할 수가 있다. 그래서 꿩이라고 하는 ‘치성(雉城)’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인가 보다. 적에게 나를 들어 내놓지 않고, 적을 살피는 꿩과 같이.

열 곳의 치와 포루와 적대. 그 모든 것은 꼭 있어야 할 곳에 자리한다. 일정한 거리가 아닌, 있어야 할 곳에 자리한다. 화성이 제일의 성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작은 구조물인 치성이 있기 때문이다.



성벽에서 돌출된 치의 모습과, 치 안에서 총안을 통해 본 성벽(가운데) 성벽을 타고 오르는 적의 등뒤를 공격할 수 있다. 성벽이나 치에 나 있는 아래로 비스듬히 나 있는 구멍. 이곳으로 끓는 기름이나 끓는 물등을 내려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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