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

 

살다가 보면 좋은 날도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일확천금이 생긴 것도 아니고, 갑자기 횡제를 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보다 더 큰 횡재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해 6월 중국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아리랑’을 중국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그리고 이어 세계 유네스코 무형문화재에 ‘아리랑’을 중국의 유산으로 등재, 추진 중에 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전역에서 불리던 아리랑이, 터무니없이 중국의 아리랑으로 등재될 위기를 맞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9년 8월 ‘정선 아리랑’을 가곡과 대목장, 매사냥 등과 함께 인류무형유산 등재 신청 목록에 올렸으나, 연간 국가별 할당 건수 제한 방침에 따라 정선 아리랑은 심사 대상에서 제외가 된 바 있다. 이후 남북 공동으로 한반도 전 지역 아리랑의 등재를 추진하려고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자, 2011년 1월 아리랑을 심사 우선순위로 정하고 6월 우리 정부 단독으로 등재 신청서를 냈다.

 

수원 원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아리랑 축제(사진 / e 수원뉴스 김기승 시민기자)

 

중국의 이러한 아리랑을 중국의 민요로 탈바꿈을 시키려는 의도를 알아 챈 한국에서는, 다각도로 그들의 문화적 만행을 막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 대규모 인원이 모여 아리랑이 우리 것임을 알리는 축제마당을 열었다. 수원시와 경기도가 2012년 6월 2일, ‘아리랑 아라리요 페스티벌’이라는 대규모 ‘아리랑 축제’를 벌였기 때문이다. 

 

이 날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제에는 1200명의 풍물단과 1000명의 연합합창단, 200명의 군악대, 150명의 도립국악단과 무용단, 4만5천여 명의 관객들이 함께 어우러져 우리소리 아리랑을 부르며 즐거워했다. 이날 공연은 20초짜리 광고로 제작돼 지난 8월 한 달간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서 무려 1,500회 이사잉 상영돼 ‘아리랑’이 한국의 고유 문화유산임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도 마련했다.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7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우리 정부가 신청한 ‘아리랑’이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Representative List)의 등재가 최종 확정됐다. 이로써 한국의 인류무형유산은 아리랑을 비롯해 종묘제례·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 단오제 등 총 15건으로 늘어났다.

 

앞서 무형유산위원회는 아리랑이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의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렸으며, ‘아리랑이 다양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창조되며 공동체의 정체성의 징표이자, 사회적 단결을 제고하는 역할을 한다. 아리랑이라는 하나의 유산에서 대단한 다양성이 내포되어 있으며, 아리랑의 등재로 무형유산 전반의 가시성이 향상되고 대화 증진, 문화 다양성 및 인간 창의성에 대한 존중 제고 등이 이뤄질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아리랑이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의 등재가 최종 확정되자, 문화재청 관계자는 “아리랑이 심사보조기구 개별심사에서 만장일치로 등재권고를 받음으로써, 무형유산으로서 아리랑의 중요성에 대한 국제적 인정 및 등재신청서 작성에 대한 한국의 전문성 발휘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로서 최초로 일부 전승자가 아니라 전 국민이 행하는 무형유산이 등재돼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가시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무형 유산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줬다”고 말했다.

 

수원 원드컵 경기장을 메은 아리랑의 함성(사진 / 윤갑섭 e수원뉴스 시민기자) 

 

아리랑은 우리 모두의 소리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아리랑은 지역마다 독특한 음색을 갖고 발달이 되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불리는 아리랑은 대개 3개 권역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태백산맥권의 소리로 강원도 특유의 메나리조로 불려지는 ‘정선아리랑’이다. 두 번째는 영남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불려지는 ‘밀양아리랑’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충남 일부와 경남서부, 전라도 일대에서 불려지는 육자배기조의 ‘진도아리랑’이 있다.

 

이 아리랑들은 그 지역의 명칭을 붙이기는 했지만, 사실 그 지역만의 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다만 1930년대에 아리랑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면서 지역의 특성상 명칭을 정했다고 볼 수 있다.

 

아리랑이 언제부터 우리나라 전역에서 불리게 되었는가에 대한 정확한 설이 없다. 다만 여러 가지 아리랑의 창출근원에 논해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아리랑의 어원에 대해 가까운 것은 ‘님을 떠나 보낸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아리랑(我離郞)이란 생각이다,

 

아마도 전국에 많은 지명 중에 ‘아리랑고개’라고 지명이 붙은 곳에 전하는 전설 한 토막을 보면, 거의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하면서 부르는 이들과 듣는 이들의 마음을 공감으로 엮어주는 우리의 소리 ‘아리랑’, 이제야 제 자리를 찾은 것 같기만 하다. 5천만의 대한민국이 15억 중국의 동북공정을 막아 낸 오늘, 새롭게 태어난 아리랑을 부르는 모든 소리꾼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