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교통이 개막을 한 지난 1일부터 8일(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 정조로 ‘차 없는 거리’. 사람들은 저마다 이색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리면서 즐거원 한다. 가족까리 혹은 연인끼리, 또는 친구들과 함께 저마나 생전 처음 타본다는 이색자전거의 재미에 푹 빠져있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언제 이렇게 차도에서 마음껏 자전거를 타고 즐길 수가 있겠어요. 이번 생태교통에서 가장 재미있는 곳은 역시 도로에서 탈 수 있는 자전거 체험인 듯합니다.”

 

서울 영등포에서 생태교통이라는 것을 체험하기 위해 버스를 이용해 가족들과 함께 왔다는 김동만(남, 41세)씨는 연신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도 신이 나 있다.

 

 

“내일부터 이곳이 없어진다고요?”

 

“말도 안됩니다. 이 정조로 차 없는 거리는 한 달 동안 계속되어야죠. 차도를 막아 불편은 하겠지만, 그래도 이 차 없는 거리는 계속해야 합니다. 만일 이 차 없는 거리를 골목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고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조금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이 차 없는 거리로 인해 정조로와 행궁동이 얼마나 많은 홍보가 될까요? 그런데 이 차 없는 도로의 운영이 오늘까지라고 하면, 생태교통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죠.”

 

이천에서 올라왔다는 이모(남, 44세)씨는 자신이 초등학교 고사라고 하면서, 휴일이라 아이들을 인솔해 생태교통 체험을 하기 위해 왔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피곤하기는 하지만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선생님, 다음 주에는 친구들을 더 많이 데리고 왔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을 졸라대는 아이들. 다음 주에는 급우둘을 더 많이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고 한다. 하지만 차 없는 거리가 사라진다는 말에 실망의 표정이 역력하다.

 

 

아침부터 늘어선 줄, 줄어들지 않아

 

생태교통 수원총회장으로 사용이 되었던 파빌리온은 환경영화제 기간이다. 그 뒤편에 자리한 이색자전거 체험장에는 아침부터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바로 이색 자전거를 타고 정조로를 달려보기 위해서이다. 줄을 서서 기다린 지가 30분 가까이 되었다고 하는 한 시민은

 

“오늘이 지나면 이곳이 원래대로 차도로 변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조금 더 기다리는 한이 있어도 오늘 꼭 정조로에서 자전거를 타 보려구요.” 라고 한다. 줄어들지 않는 줄서기이지만 그래도 정조로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차 없는 거리를 마음껏 즐겨보고 싶다는 것이다.

 

 

정조로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한 봉사자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생태교통을 찾아와 정조로에서 자전거 타기를 하면서 수시로 인증샷을 찍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이용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sns를 통해 이렇게 홍보가 되면 정조로나 행궁동이 얼마나 많이 알려지겠어요? 행사가 끝나고 나도 이렇게 많은 홍보가 되면, 또 다른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겠죠. 하기에 정조로의 차 없는 거리는 연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정조로 ‘차 없는 거리’.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연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장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것이 나중에 큰 홍보효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이다.

 

생태교통 수원2013’은 올 9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한 달간 수원의 장안문(북문) 일대인 행궁동 일원에서 펼쳐지는, ‘차 없는 거리’를 시험운영해 보는 프로젝트이다. 이 생태교통은 화석연료가 점차 고갈되어 가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심각해진 지구 온난화 현상 등을 막아내기 위한 시범운영을 하는 것이다.

 

9월 한 달간 수원 화성 안 동네인 행궁동 일원에서 열리는 생태교통 수원2013에는, 이클레이와 유엔, 수원시 등이 합작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기록한다. 이렇게 기록을 한 것은 자료는, 전 세계적으로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 현재 전체공정 95%를 넘겼다는 생태교통 시범지역인 행궁동 일원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생태교통 e-서포터즈 발대식도 가져

 

7월 21일(일) 수원시 팔달구 화성 행궁 앞쪽애 있는 수원문화재단 영상실에는, 유니폼을 입은 생태교통 e-서포들이 모였다. 오후 2시에 서포터즈 발대식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 36명과, e수원뉴스 시민기자, 수원시 서포터즈 등 50명의 생태교통 서포터즈 들은 9월 30일까지 생태교통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홍보하게 된다.

 

서포터즈들은 ‘생태교통 수원2013’의 홍보 컨텐츠 및 전파, 생태교통 기간 중 각종 행사 및 문화 체험, 생태교통 행사참여 후기 작성, 공동 프로젝트 서퍼터즈,(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운영 등을 담당하게 된다. 한 마디로 이들 50명의 생태교통 수원2013의 홍보를 전담하는 모임이다.

 

 

발대식에 참석한 염태영 수원시장은

“지역의 모든 축제 성향을 띠고 있는 잔치는 하나를 더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생태교통 수원2013의 잔치는 하나를 제하는 것이다. 바로 행궁동 일원 생태교통 시범지역d에서 자동차라는 것을 빼는 것이다. 사람들이 상용화 되어있는 차를 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런 불편을 무릅쓰고, 9월 한 달 동안 이 거리 안으로 차를 갖고 들어올 수가 없다. 다행히 주민들이 변화하는 거리를 보고 많은 지지를 해 주는 바람에 우리도 자신을 갖고 이 행사를 추진할 수가 있다.”고 했으며 이어서,

 

“지금은 SNS의 시대이다. 그런 만큼 서포터즈 여러분들이 정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홍보야말로 화석연료가 고갈되는 시기에 우리는 어떠한 대체연료를 찾게 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무동력 교통수단이 대세이다. 전 세계적으로 차가 없는 거리를 만든 나라는 다 성공을 했다. 하지만 우리 수원은 한 개 거리가 아니라, 마을 전체에서 차를 빼 버리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불편도 가중되겠지만 우리의 후손들이 잘 살 수 있는 고장을 만들이 위해서는 누군가는 먼저 행동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것을 우리 수원이 하겠다는 것이다”라고.

 

염태영 수원시장은 발대식을 마친 후, 서퍼터즈들에게 일일이 아이디카드를 목에 걸어주면서 많은 홍보를 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빼앗겼던 도로에서 뛰놀다.

 

21일 오후 4시부터는 수원의 북문인 장안문부터 행궁 앞까지와 화서문로 일대에서, 차 없는 거리‘인 카프리데이가 펼쳐졌다. 4개 차선 중에서 2개 차선을 시민들에게 돌려줄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자동차에게 내어주었던 도로에서 마음껏 뛰놀기도. 생태교통에서 선보일 무동력 차와 전기차 등을 타보기도 하고, 화서문로에는 먹거리 등을 팔기도.

 

휴일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안산에서 찾아왔다는 방아무개(남, 47세)는 아이들이 너무 신나 한다고 하면서,

“당분간은 행궁동 주민들이 많이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도로에서 마음껏 탈거리들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즐길 수 있는 생태교통 시범이야말로 꼭 해야 할 프로젝트입니다. 자원이 고갈 된 다음 우리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를 알려주는, 이번 시범이야말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한다.

 

 

‘즐거운 도시산책 생태교통 수원2013’. 차도로 나온 부모들과 아이들은 탈것들을 기다리느라 줄을 서기도. 여기저기서 작은 무대로 마련한 공연장 앞에도 사람들이 모여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는 모습도 보였다. 자동차에 빼앗겼던 도로를 되찾은 아이들이 마음껏 도로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서, ‘생태교통 수원2013’의 사업이 성공리에 마치기를 기원한다.

12월 2일 오후 밖을 내다본다. 금요일 오후라 그런지 사무실 앞 도로에 많은 차들이 밀린다. 산업도로인 이곳은 가끔 이렇게 줄지어 선 차량 행렬을 보게되는 곳이다. 그런데 그 많은 차 중에 이상한 차 한대를 발견했다. 바로 음식물을 나르는 차량이다.

'잔반'이라는 용어를 써야하는지, 아니면 '음식물쓰레기 운반차량'이라고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가득 음식물을 담은 드럼통들이 짐칸에 실려있다. 그런데 그 통에 하나같이 뚜껑이 없다. 그것을 보다가 괜한 상상을 한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만일 저 차가 접촉사고라도 난다고 하면, 도댗체 그 일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은 다행히 날이 추워 냄새가 그리 심하지는 않겠지만, 날 더운 여름철에 저렇게 뚜껑도 없이 시내를 질주한다면, 그 심한 악취는 어떻게 할 것인지? 이런 것 하나 제대로 단속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남은 음식물을 처리하기 위한 운반이라고 하지만, 이런 것은 보기가 그리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다.      

6월 24일 거창군을 답사하는 날은 비가 참 많이도 뿌려댔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로 인해 답사를 그만둘까도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이왕 나선 길이니 비를 맞고도 강행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인가 비가 내리는 날 답사치고는, 상당한 양을 일궈낼 수 있었다. 이 날의 답사 중에서 가장 기뻤던 것은 금원산에서 만난 마애여래삼존입상이다.

경남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 산 6 - 2에 소재한 보물 제530호 ‘거창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입상’. 금원산 북쪽 골짜기 큰 바위굴 안에 새겨져 있는 마애불이다. 이 마애불은 바위면 전체를 배 모양으로 판 후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를 만들고, 그 안에 삼존불 입상을 부조로 얇게 새기고 있다.

보물 제530호 거창군 위천면 금원산 바위 암벽 굴에 새겨진 마애여래삼존입상


마애불까지 오르는 길, 평탄치가 않다.

금원산은 차량의 출입이 제한되는 곳이다. 입구를 들어서면 장사치들이 각종 음식을 판다치고 시끄럽게 만들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 안에까지 차들이 들어와 있다. 마애불이 있다는 산으로 오르는 길은 비교적 평탄하다. 그런데 이런 낭패가 있나? 비로 인해 늘어난 물이 도로 위로 흐르고 있다. 그 양이 많아 물을 건너기가 만만치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오르는 길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신발을 벗고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린 후 건너간다. 그런데 이렇게 도로 위로 흐르는 물을 건너야 하는 곳이 세 곳이나 된다. 그렇게 오른 금원산. 마애불의 있는 바위벽 입구라는 곳에는 ‘문바위’라는 바위가 우뚝 서 있다. 우리나라의 바위 중 한 개의 바위로는 가장 큰 바위라고 한다.(이 문바위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한다)


마애불을 찾아 오르는 금원산 산길에는 계곡물이 길 위로 흐르게 되어있다. 몇 군데나 이런 곳이 있어 바짓가랑이를 걷어부쳐야 했다.(위) 단일 바위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문바위이다


훼손되지 않은 마애부처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문바위 뒤편으로 돌아가니 산 위로 오르는 돌계단이 있다. 계단 입구에는 50m만 올라가면 마애불이 있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천천히 계단을 오르면서 위를 본다. 역시 커다란 바위가 서 있고, 그 바위 사이로 좁은 계단이 나 있다. 아마도 예전에는 저 계단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저 비좁은 사이로 들어갈 수가 있었을까?

계단을 오르면 안에 의외로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그리고 남향을 한 바위에 마애여래삼존입상이 새겨져 있다. 삼존불은 위로 삼각형으로 획을 그은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보주형으로 다듬어 중앙에는 아미타여래, 오른쪽은 관음보살, 왼쪽은 지장보살을 새긴 듯하다. 중앙에 있는 본존불이 좌우에 협시보살을 거느린 형태이다.



마애불로 오르는 게단 입구부터 마애불로 오르는 계단이다. 맨 위에는 좁은 바위틈으로 계단이 이어진다


삼존불은 굴 안에 자리를 해서인가 훼손이 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는 상태가 좋지만, 조각을 한 형태를 보면 그리 뛰어난 것은 아니다. 중앙의 본존불은 얼굴이 비교적 넓적하게 표현을 하였다. 얼굴에 비하여 눈과 코, 입은 작고 밋밋하다. 긴 귀 등을 보면 약간은 둔탁한 것이 토속적인 맛을 풍긴다. 어깨는 굴곡이 없이 각이 지게 표현이 되었으며, 법의는 양 어깨에 걸쳐 가슴부분에서 타원형으로 표현을 하였다. 이 지역의 불상들이 잦은 주름을 보이는데 비해, 주름 역시 도식화된 느낌이다.

흡사 막대 같은 다리와 좌우로 벌린 발은 고려시대의 형식화된 면이 보인다. 좌우에 있는 협시보살은 본존불과 거의 같은 형식으로 조각되었지만, 어깨의 표현이 본존불보다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를 하고 있다.

마애불은 바위가 겹쳐진 안에 조성이 되어있다. 커다란 바위가 비바람을 막아냈다


끝이 날카로워진 연꽃무늬 대좌와 새의 날개깃처럼 옆으로 삐죽이 뻗어 나온 옷자락 등은, 그동안 보아 온 삼존불이나 마애불 등에서 본 것과는 차이가 난다. 이러한 형태는 삼국시대의 양식과 비슷하지만, 모습이 형식화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삼존불의 곁에는 네모나게 조성을 하고 글을 새겼는데, 이 마애여래삼존입상의 조성 시기가 고려 16대 예종 6년인 1111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풀리지 않는 의문

결국 이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불은 삼국시대 불상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적 요소가 반영된 마애불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애불을 보고 난 후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첫째는 이곳을 어떻게 올랐을까 하는 점이다. 지금이야 계단을 놓았지만 당시는 비좁은 바위틈일 뿐이다. 그러데 높디높은 이 바위틈을 어떻게 오를 수가 있었을까? 이해가 가질 않는다.


두 번 째는 마애불을 조성한 방법이다. 굴속은 한낮인데도 밝지가 않다. 그런데 바위 아랫부분도 아니고, 바위의 중앙부분에 새겨져 있는 마애불. 그 당시 지금처럼 암벽에 그림을 새겨 넣기가 쉽지가 않았을 터인데,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공을 들여 저렇게 새길 수가 있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어두운 이곳에서 작업을 했던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보니, 이 금원산 커다란 바위 굴속에 있는 세분의 부처님이 남달라 보인다. 머리 위에 광배며 옷자락이 흡사 외계인을 닮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스스로가 멋쩍어 피식 헛웃음을 날린다. 산을 오르느라 더위를 먹은 것인가? 금원산 굴속에 꽁꽁 숨겨져 있던 세 분의 부처님을, 그렇게 해후를 했다. 더위를 먹은 채로.


온 나라가 난리가 난 듯하다. 구제역은 올 설 연휴가 고비라고 한다. 사람들은 구제역으로 인해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교통이 번잡한 곳은 한 개 차선만 열어놓고 방역을 하기 때문에, 차가 있는 대로 늘어선다. 그래도 고통 받는 농촌을 생각하면, 그런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가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터져 나오는 것은 불평일 수 밖에 없다. 제대로 초기대응을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다.

지금은 이제 그런 불평조차도 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피해를 입은 것이다. 290만 마리라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수많은 소와 돼지가 살처분이라는 방법으로 산채로 땅 속에 묻혔다. 죽은 것이라도 묻었다면, 그렇게 처참한 생각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이번 설에 무슨 사단이라도 날 것처럼 전전긍긍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민족의 대이동이 이루어지는 설 연휴에, 얼마나 많은 구제역이 여기저기로 확산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마다 흙과 나무 등을 이용해 바리케이드를 쌓아 놓았다

난 문화재 답사를 하러 왔을 뿐인데요.”

경상북도 영주로 향했다. 이천에서 차를 타고 문경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예천을 거처 영주에 도착을 했다.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877번지에는 중요민속자료인 괴헌고택이 있다. 괴헌고택을 둘러본 후, 인근에 있는 문화재를 답사하기 위해 이동을 하고 있었다. 앞에 방역을 하고 있는 초소가 나타난다. 소독약을 잔뜩 뒤집어 쓴 후 안으로 들어가려니, 길을 모래를 쌓아 막아 놓았다.

안으로 못 들어가나요?”

저길 지나야 하는데 어떻게 하죠
?”
영주로 나가서 다시 돌아가세요
.”
그곳은 갈 수 있을까요
?”
그건 모르죠. 돌아가 보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
, 문화재 답사를 하려고요

참 답답한 양반이네. 지금 구제역으로 인해 모두 죽기 살기로 난리인데, 무슨 문화재 답사를 한다고
...”

듣고 보니 딴은 그렇다. 남들은 구제역을 막는다고 도로에 바리케이드까지 설치를 하고 있는 판국에, 문화재를 찾아다니고 있는 내가 얼마나 한심하다고 생각을 했을까? 괜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뒤돌아 나올 밖에. 지금 설 연휴를 맞이하여 마을에 변고가 생길까봐, 이렇게 주야를 가리지 않고 난리들을 치고 있다.



뚫리면 그만이다. 방법이 있다면 막는 일 뿐

마을에서 돌아 나오다가 보니 내림삼거리에 이산서원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이왕 답사를 나온 길이니 서원이라도 들려보려고 도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곳에는 타이어와 흙더미, 차량 등으로 길을 막고 있다. 앞에는 돌아가라는 표지판이 있다. 다시 돌아 나와 옆길로 접어들었다. 이곳도 폐쇄가 되어있다. 어디를 가도 길을 지날 수가 없다. 마을로 들어가는 모든 진입로들은 흙더미를 쌓아놓고 지키고 있다.

여기저기 몇 군데 길을 돌아보았지만 마찬가지이다. 모두 흙으로 길을 막고 사람들이 지키고 있다.

고생들 하시네요. 날도 추운데

설에는 어떻게 하세요
?”
지금 설이 문젠가요. 설날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도 마을 진입을 막아야하는데 걱정입니다

정말 큰일이네요

, 방법이 없어요. 무조건 출입을 막는 수밖에. 뚫리면 그만인데요
.”


마치 전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듯하다. 길이라는 길은 모두 폐쇄가 되었고, 안으로 들어가는 차량들은 여기저기 빠짐없이 소독을 한다. 그런 연후에도 안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다. 이번 설 연휴는 징검다리 연휴라고 한다. 그만큼 연휴 기간이 길다. 그래서 구제역을 막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고통도 늘어난다. “설 연휴만 넘기면 수그러들 것 같아요스스로 위로를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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