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9월 16일) 오후에 구례 화엄사를 찾아갔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참 낯 뜨거운 일을 당하고 말았다. 구례구역은 구례에서 벗어난 순천에 자리를 한다. 이 역은 구례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어 ‘구례구역’이라 이름을 붙였지만, 전남 순천시 황전면 선변리에 소재한다. 구례읍내에서는 6km나 떨어져 있는 곳이다.

차를 타려고 가보니 내가 타야하는 열차가 기관차 고장으로 인해 30분이나 연착을 한단다. 그렇다고 딴 방법이 없으니 역사 앞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역 앞을 보니 구례군 관광안내도가 보인다. 어디를 가나 역 앞에는 이런 지도가 붙어있다. 그 지역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를 하기 위해서다.

구례구역 앞에 서 있는 구례군 관광안내도

“정신 빠진 사람들, 얼마나 오래 방치한거야.”

그런데 이 지도를 보다가 이상한 점이 있다. 아마 딴 사람들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부분이다. 문화재를 답사하는 나로서는 문화재를 먼저 찾아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같은 문화재가 두 곳에 있다고 나와 있다. 같은 논곡리 삼층석탑이 두 곳에 있다는 것이다. 지도를 보니 그나마 한 곳은 석탑이 분명한데, 한 곳은 신도비인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삼층석탑도 ‘삼층’인지 ‘상층’인지 구별이 안 갈만한 글씨이다.

지도의 아래에 있는 삼층석탑은 구례읍 논곡리에 소재한 보물 제509호 삼층석탑이 분명하다. 그런데 지도 위편에 있는 논곡리 삼층석탑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산동면 이평리에 소재한 보물 제584호인 윤문효공 신도비이다. 그림도 신도비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논곡리 삼층석탑이라고 쓰여 있다. 이건 도대체 어찌 설명을 해야만 할까?



관광안내판에는 논곡리 삼층석탑이 두 곳에 있다고 그려져 있다.

구례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특히 가을이 되면 열차를 이용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그들은 관광지도를 보고 갈 곳을 정하기도 한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은 승용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역 앞에 있는 지도를 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간판을 언제 세운 것인지는 몰라도 아직 담당자가 한 번도 이 관광 안내판을 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제발 문화재 푸대접 그만하세요. 부탁합니다.’

어느 누구 한 사람 그동안 이런 것에 대해서 지적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지나는 사람들이야 관광을 목적으로 왔으니,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적어도 구례군의 관광이나 문화 담당자들은 이 지도를 한 번 쯤은 살펴보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이렇게 엄청난 과오를 저지르고 있다면,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까?


지도의 아래편에 있는 삼층석탑은 구례읍 논곡리에 소재한 보물 제509호 삼층석탑이다.(사진 위) 그리고 위에 있는 논곡리 삼층석탑은 산동면 이평리에 소재한 보물 제584호인 윤문효공 신도비이다(아래). / 사진출처 :구례군


우리 땅에 있는 수많은 문화재들이 푸대접을 받고 있다. 지역에 있는 보물들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이 정도인데, 그렇지 않은 문화재는 또 얼마나 방치되고 있을까? 전국을 돌면서 수많은 문화재들을 찾아다니지만, 이런 경우에는 그저 할 말이 없다. 행여 아이들이라도 볼까봐 주변부터 살피는 내가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 안내판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구례군은 수많은 문화재가 있다. 너무 많은 문화재가 있어서 문화재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인지. 적어도 이 안내판이 설치된 이후에 한번이라도 담당자가 나와 보았더라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만 같다.


다음 스카이뷰에서 찾아보았다. 위는 논곡리 삼층석탑이 서 있는 곳이다, 그리고 아래 붉은 원은 삼층석탑, 위 하늘색 원은 보물 제584호인 윤문효공 신도비가 서 있는 곳이다.


제발 부탁합니다. 우리 문화재에 대해 신경을 조금만 더 써주세요. 우리 후손들에게 그대로 물려주어야 할, 후손들의 것입니다. 이 안내판을 보면서 우리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하고 싶다. ‘정말로 부끄럽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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