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가에 자리를 잡은 정자 하나. 그저 바라다만 보아도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지붕을 보니 돌을 편을 떠 만든 너와지붕이다. 정자를 수도 없이 보아왔지만, 너와지붕은 좀처럼 보기가 힘들다.

 

그것도 나무가 아닌 점판암 판돌을 이용한 너와지붕 정자는 아마 처음인 것 같다. 그 돌의 무게를 버티기 위해서 작은 정자 안에 기둥이 더 촘촘히 서 있어, 오히려 그런 점이 이 정자의 멋을 더한다. 앞으로 흐르는 개울물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영모정은 그렇게 한가한 모습이었다.

 

 

효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 개울가에 자리를 잡고 있는 영모정은 전면 4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효자 신의연의 효행을 기리고 본받기 위해서 고종6년인 1869년에 세워졌다. 그 뒤 몇 차례 중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나, 자세한 내역은 알 수 없다.

 

현재는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이 되어있다.정자 안으로 들어가니 누정의 남쪽내부 중앙에는 永慕亭과는 달리 '永碧樓'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있어, 이 정자의 아름다움에 많은 사람들이 취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상량문은 가선대부 이조참판을 지낸 윤성진이 지었으며, 『진안군지』에 영모정기가 게재되어 있다.

 

 

귀부를 주추로 산은 영모정

 

영모정 아래로 내려가다가 보니 정자의 아랫부분 네 기둥에는, 거북머리 모양의 원형주춧돌을 사용하고 있다. 아마 물가에 있기 때문에도 그리했겠지만,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음이 아니겠는가? 개울가로 향한 정자 정면에 있는 4개의 평주는,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건립된 까닭에 다른 것 보다 1m정도 더 내려와 있다.

 

개울을 건너 영모정을 바라다본다. 개울 물속에 또 하나의 영모정이 드리워져 있다. 건너편에서 바라본 영모정은 주변 경관과 어울러져 더욱 아름답다. 이런 절경 속에서 정자에 올라 그 아름다움에 취해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다. 그래서 신의현의 효행을 본받을 수 있지는 않았을까? 녹음이 짙게 드리워지면 이곳을 다시 한 번 찾아보아야겠다. 아마 지금보다 더 멋진 영모정이 기다리고 있지 않겠는가?

 

차가운 바람에 개울물에 빠지다

 

답사를 하다가 보면 아주 가끔은 황당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곤욕을 치루기도 한다. 영모정을 찾았을 때도 참으로 민망한 꼴을 당한 셈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웃어버릴 수 있는 일이었지만, 당시는 보는 이들도 없는데도 낯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마도 한 겨울이었다고 한다면, 다시는 답사를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을 것이다.

 

영모정을 촬영하다가 보니, 괜한 욕심이 난다. 바로 내를 건너가서 물과 함께 사진을 찍겠다는 욕심을 낸 것이다. 가을이라면 개울물에 아름답게 단풍이 함께 느리고 있어서 그렇다고 하겠지만, 삭막한 가지에 잎도 없는 모습을 찍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인지. 주변을 둘러보아도 마땅히 건널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물이 조금 흐르고 있는 방둑처럼 생긴 위로 조심스럽게 건너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이런 곳엔 상당히 미끄럽다. 조심을 한다는 것이 오히려 긴장이 되었나보다. 그만 발이 미끄러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것도 물속으로. 그 중에도 카메라가 젖었을까봐 걱정을 하고 있었다니. 참 답사는 가끔 사람을 이렇게 이상하게 만드는가 보다.

 

영모정을 아마 앞으로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만 같다. 물속에 비친 그림자며, 귀부처럼 생긴 주춧돌이며, 또 돌로 뜬 너와지붕까지.

찜통더위’라는 말이 올 한 해 유행어로 떠올랐다. 10여일이 넘게 40도를 육박하는 무더위는 가히 ‘살인적’이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이다. 이런 날은 길이 막혀 더 짜증스러울 수도 있는 바닷가를 찾아가기 보다는 가까운 계곡으로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시원한 숲과 맑은 물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아침에 잠깐 시원한 바람이 불기에, 이제 이 더위도 수그러지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낮이 되자 오히려 기온은 전날을 웃돌고, 길을 걸을 때도 숨이 턱턱 막힌다. 이런 날 취재를 나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미쳤다고 할 판이다. 군포시 대야동 반월호수 인근, 수리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반월천을 형성한 곳이다.

 

수리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을 이용한 군포시 대야동 반월천 아영장. 뒤편으로 수리산이 보인다.


반월천변에 마련한 야영장, 인기 만점

 

반월호수에서 둔대교를 지나 상류로는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야영장으로 조성을 한 반월천은 천변 한 편 숲이 있는 곳을 차량을 통제하고 야영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8월 8일(수) 오후 찾아간 반월천. 사람들은 저마다 가족들과 함께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며 담소를 한다.

 

“시원하세요?”

“그럼요, 왜 고생하고 막히는 먼 길 가서 바가지 쓰고 고생들을 하나 몰라요. 여긴 수리산에서 내려오는 물이라 깨끗하지만, 그리 차지도 않아서 아이들이 놀기도 좋아요.”

“자주 나오세요?”

“예전에는 그저 사람들이 여기 와서 텐트를 치고 놀고 가고는 했는데, 올 해 부터는 시에서 관리를 잘 해주어 많이 좋아졌어요.”

 

반월천 야영장은 반월천 위편 숲 속에 마련되어 있어, 숲과 내를 함께 즐길 수 있다

 

군포시 계룡삼환 아파트에 산다는 이아무개(여, 45세)는 아이들과 함께 자주 찾는다고 한다. 멀리가지 않고도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굳이 많은 경비를 들여가면서 고생할 필요가 있겠냐는 것. 수심이 낮다보니 아이들이 들어가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 물놀이를 해도 안심이 된다는 것이다.

 

군포시에서 시범운영 중

 

이곳 반월천은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여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쉬고는 했다. 그런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정리를 해 놓은 개울가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함부로 쓰레기들을 버리고 가 주변을 오염시켰다는 것이다. 마을에서도 여름철이 되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어지르고 가는 것에 대해 골머리를 앓았다는 것.

 

 

 

군포시에서는 올 해 들어 이곳에 야영장을 시범운영하기로 하고, 대야동주민자치위원회와 관리운영 용역계약을 맺었다. 7~8월 45일간 시범운영을 하기로 한 것이다. 8월 26일까지 야영장을 운영해보고 난 뒤, 그 자료를 평가분석을 하겠다는 것.

 

군포시 청소년교육체육과 청소년정책팀 임현주 팀장은

 

“그동안 반월천은 매년 많은 분들이 찾아와 피서를 즐기고는 했습니다. 그러나 개울가에 너무 많은 음식쓰레기들이 쌓여있어, 그런 것들 때문에 주민들이 많이 불편을 겪기도 했고요. 올 해 시에서 야영장을 정리하고 대야동주민자치위원회에 운영 용역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올 한 해 45일간 운영을 해보고, 그것을 평가 분석하여 앞으로의 운영에 반영하려고 합니다.” 라고 하다.

 

 

음식의 조리는 개울가에서는 못하지만, 텐트를 칠 수 있는 야영장에서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불편함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교각 밑에는 텐트를 칠 수 없는 곳이지만 햇볕을 피해 그곳으로 몰려들고 있어, 수시로 지도계몽을 한다는 것.

 

군포시민은 물론, 인근 타 시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와 부담 없이 즐기고 갈 수 있는 곳. 수리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에서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어,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분들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반월천의 여름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만들어 주는 곳이다.

정자란 나에게는 참 묘한 곳이다. 남들은 그저 정자를 보면 ‘참 아름답다’거나 ‘주변 경관이 훌륭하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왜 난 정자들을 볼 때마다 하나하나 곰꼼이 따져보아야만 하는지. 그저 나도 남들처럼 정자려니 하고 지나치면 가슴 아픈 일도 없을 것을. 일일이 따져보다가 괜한 상처를 입기도 한다.

 

전북 장수군 번암면 죽산리, 죽산 입구 북쪽 냇가 산기슭에 정자가 서 있다. 작은 내를 건너 찾아간 곳은 내를 끼고 들어가는 곳이다. 정자 앞에는 상추를 심은 밭이 있는, 무주를 거쳐 남원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만난 만취정이다.

 

 아름다운 돌담과 좁디좁은 일각문, 그리고 뒤로 보이는 정자의 활주가 발길을 붙잡는다


길도 막혀버린 정자 만취정

 

만취정을 오르려는데 마땅한 길을 찾지 못해, 비탈진 곳을 찾아 기어오르듯 정자로 향했다. 담장을 두른 정자 정면에 작은 문을 두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정자가 그대로 방치되어 퇴락해져 가고 있다. 목조 누각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만취정은 6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글의 내용으로 보아 이 정자는 1929년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정자에 걸린 게판에는 남평 문석린의 만취정 상량문을 비롯해, 숭록대부 예조판서 원임, 규장각 제한 안동 김종한 등이 쓴 만취정기가 보인다.

 

 

 

그리고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만취정 팔경이다. 성산귀운(聖山歸雲), 기령숙무(箕岺宿霧), 죽림청풍(竹林淸風), 국포추월(菊圃秋月), 반계어가(磻溪漁歌), 사평목적(社坪牧笛), 취봉낙조(鷲峰落照), 용림모우(龍林暮雨) 등을 들었다. 이 만취정 팔경만 보아도 이 정자가 얼마나 운치가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렇게 퇴락해져 가고 있는 것일까?

 

퇴락해가는 정자, 주인은 어델가고

 

정자 안으로 들어가니 꽤나 단아하다. 이 정자의 주인은 멋을 아는 사람이다. 한 눈에 보아도 정자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죽림청풍이라 했던가? 정자의 뒤로는 대나무가 서 있다. 바람이 부니 와사삭하는 대잎 부딪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소리를 만취정 팔경 중에 넣어 멋을 일궈냈다.

 

 

 

정자 옆 암벽에도 만취정이라 음각을 한 글이 보인다. 그것이 만취정의 멋을 더한다. 창호 하나에도 정성을 쏟았다. 이런 정자가 주인을 잃어 사그라진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 만취정 앞으로 내가 흐른다. 맑디맑은 물이 흐른다. 그리도 만취정 좌측 조금 떨어진 곳에 빨래터가 있다. 바로 이런 멋을 알기 때문에 만취정의 주인은 이곳에 정자를 지었을 것이다.

 

앞을 흐르는 냇물과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 그 빨래터에서 도란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정자에서 대바람 소리를 들으며, 술 한 잔과 시 한 수가 있었다면 이보다 더한 풍취가 어디 있을까? 만취정은 그런 자리에 몸을 낮추고 앉아있다.

 

왜 퇴락한 정자만 보면 눈물이 나는지

 

이 아름다운 만취정이 부서지고 있다는 것이 아프다.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왜일까? 이런 아름다운 정자가, 어쩌다가 이리 손을 보지 못해 망가지고 있을까? 정자 뒤로 돌아가니 아궁이가 보인다. 뒤를 제외한 삼면에 마루를 내고, 그 가운데 방을 드렸다. 이곳에서 사시사철 주변을 돌아보며 세월을 낚았을 것이다.

 

 

 

그것도 부족하면 앞을 흐르는 내에서 작은 물고기라도 잡는 천렵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저 정자에 올라만 있어도 흐뭇하다. 모든 것을 상상만 해도 즐거운 정자. 그것이 바로 만취정이다.

 

만취정을 돌아보고 떠나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행여 저 만취정은 어느 날 다 사그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다. 몇 번이고 눈 안에 담아두고 떠나는 길에, 갈 까마귀 한 마리 저리도 서럽게 운다.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갈까? 나는 늘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질문을 해왔다. 그러다가 한낮의 더위를 피해 찾아간 작은 정자에서, 흐르는 땀을 씻어주는 바람을 만났다. 그래서 난 정자를 '바람이 머무는 곳'이라고 표현을 한다. 바람은 정자 곁을 흐르는 물을 따라 불어온다.

 

그 물길을 따라오면서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 주고, 그 바람은 정자를 치받쳐 오른다. 그래서 정자가 더 시원한 것은 아니었을까? 전국을 답사하면서 만난 아름다운 정자들. 그 정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암벽 위에 걸터앉은 정자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350에 소재한 초간정. 내를 끼고 선 암벽 위에 지어진 초간정은 멀리서도 사람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지녔다. 행여 누가 뒷덜미라도 낚아챌 것 같아 한달음에 달려간다. 정자는 아름다운 경관을 필요로 한다. 어디를 가서 보거나 정자들은 주변 경관이 빼어난 곳을 택해 자리를 잡고 있다.

 

정자는 민초들과는 거리가 멀다. 대개 반가의 사람들에 의해서 지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정자를 바라다보는 내 시각은 다르다. 그것을 지은 사람들이 누군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빼어난 경관을 택했느냐는 물음을 항상 하고는 한다. 그래서 이렇게 덥거나 춥거나 쉴 수 없는 여정에 만나는 정자가, 더 반가운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작은 정자의 출입문, 주인의 심성을 닮아

 

정자로 출입하는 문이 작고 좁다. 이 정자를 지은 권문해(1534 ~ 1591) 선생의 마음을 읽어낸다. 작은 문으로 겸손하게 들어오라는 뜻일 것이다. 도포자락을 휘두르며 거만을 떨지 말고, 두 손 공손히 모으고 다소곳하게 문을 통과하라는 뜻일 것이다.

 

 

 

양반가의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거들먹거린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에 금력이 있으면, 겸손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초간 권문해 선생은 그런 것을 싫어했는지. 작은 문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 심신을 수양하기 위해 초간정을 지었다. 1582년인 조선 선조 15년에 처음 지어진 이 초간정은 그런 마음을 담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화려하지 않은 정자다. 정자의 뒷편과 우측은 절벽이다. 그 밑으로 맑은 물이 감돌아 흐른다. 마루 벽 한편에 문을 내어 난간으로 나갈 수 있게 하였다. 난간 밑에는 맑은 물이 고여 작은 소를 이루고 있다. 맑고 찬 물애 발을 담구면, 오장육부가 다 맑아질 것만 같다.

 

 

 

빈 낚싯대 늘이고 바람을 낚아

 

위를 보니 석조헌(夕釣軒)이란 현판에 걸려있다. 저녁에 낙시를 하는 마루란다. 이 현판을 보고 무릎을 친다. 정자 주인의 마음이 거기있기 때문이다. 아마 초간 권문해 선생은 실은 물고기를 잡을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낚시를 드리우고, 눈을 감고 세상 시름을 끊는 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해가 설핏한 저녁에 낚시를 한 것이 아닐까?

 

 

정자를 둘러보고 주인인 초간 권문해 선생의 마음을 느낀다. 참 소탈하다. 참 그 마음에 자연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정자문을 나서 새로 놓은 철다리를 건너려는데, 초간정을 감돌아 흐르는 내에서, 천렵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참으로 한가한 정경이다. 사람이 사는 멋이 바로 저런 것은 아니었을까?

 

바람이 감돌아 쉬어가는 정자. 그 정자에는 사연도 많겠지만, 그 보다는 그 주인의 심성을 엿볼 수 있어 더욱 좋다. 그래서 바람 길을 따라나서는가 보다.

 

500년이면 강산이 50번이나 변하는 시간이다. 이 긴 시간 동안 한 자리에 뿌리를 박고 사는 나무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 그 나무가 꼭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지 않았다고 해도, 소중한 천연자원임에는 강조할 필요가 없다.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용곡리 407-1에 소재한 수령 520년의 느티나무. 보기에는 그리 오래된 나무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나무를 한 바퀴 돌아보면, 괴이한 모습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이 나무는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있으며, 고유번호는 강원 원주 10호이다. 1984년 6월 13일에 보호수로 지정이 되었다. 나무의 높이는 20m에 이르고, 둘레는 6,2m나 되는 거목이다. 나무 밑동에서 윗부분의 줄기에는 여기저기 외과수술을 한 흔적이 보인다. 나무는 일반적인 느티나무들이 가지를 위로 뻗는데 비해, 마치 춤을 추듯 둥긇게 뻗기도 해 기괴한 느낌마져 준다.



호저면 용운사지 곁에 서식해

호저면은 칠봉과 용운사지가 있어 유명하다. 여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흐르는 물가를 찾아 모여든다. 칠봉은 섬강상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곱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물가에 서 있어 절경이다. 이 칠봉을 지나 들어가면 용곡리가 나오며, 이곳은 예전에 용운사지가 있던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탑과 석불이 나란히 있는데, 이 느티나무는 그 옆에 서식하고 있다.

느티나무의 옆으로는 맑은 하천이 흐르고 있어, 늘 풍부한 수분이 나무를 자라게 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그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줄기에 가득한 이끼들을 보아도 깊은 세월을 느낄 수가 있다. 나무를 올려다보면서 나도 몰래 침을 삼킨다. 그것은 이 나무가 살아온 세월이 인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이기 때문이다. 이 나무가 처음으로 싹을 티었을 당시는 조선조 성종 때였으니, 그 세월이 짐작조차 가질 않는다.




500년 성상을 살아온 나무답게 나무는 기이한 모습으로 서 있다.

나무를 보며 기운을 얻다

나무를 보면 무엇인가 기운을 얻는다고 한다. 무슨 기운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그 오랜 세월을 한 자리에 서서 굳건히 자리를 지킨 용곡리 느티나무. 전국을 다니면서 보면 수 많은 보호수들이 있다. 이 나무도 그 중 한 나무일뿐이다. 그러나 용곡리 느티나무는 조금은 특이해보인다. 밑동서부터 여기저기 혹같은 것이 돌촐이 되어있다. 아마 오랜 역사의 흔적인 것만 같다.

줄기에는 푸른 이끼가 덮고있어, 이 나무가 얼만 오래되었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그 뿐이 아니다. 혹은 또 다른 혹을 만들어내며, 두껍잔등 같은 표피를 보호하는 듯하다. 자연적으로 스스로를 치유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보면 볼 수록 그 경이로움에 감탄을 한다. 수많은 천연기념물을 보아왔지만, 조금도 부족하지가 않다. 그래서 이 느티나무에게서 받는 기운이 남다르다.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느티나무.  그러나 그 나무마다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호저면 용곡리의 느티나무는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보이면서, 50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을 그렇게 서 있다. 이러한 나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연의 위대함을 배운다.

자연은 스스로를 정화하고, 치유하는 힘을 갖고 있다. 하기에 오랜 세월을 한 자리에 서서 나름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이 느티나무는 그 오랜 성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앞으로도 또 얼마나 오랜시간을 우리와 함께할 지 모른다. 그것이 바로 나무에게서 우리가 받아야 할 기운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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