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의 뙤약볕 아래서 취재를 하다가 보면, 솔직히 이런 분수대에 뛰어 들고도 싶었다 


 

누가 시킨다고 할 일인가? 아니면 더 많은 돈을 지불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그곳에 떡이라도 숨겨 놓았을까? 모두 다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책임이라는 것이, 스스로 그 땡볕으로 나가게 한 것이다. 벌써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렇게 돌아다녔는지 모른다. 매일 30도를 훨씬 웃도는 땡볕에 나가 돌아다니다가 쏟은 땀만 해도 엄청날 듯하다.

 

사람의 체력은 한계가 있다. 누구나 강철 같은 체력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운동으로 단련이 된 사람이라도 올 여름 같은 때는 대책이 없다. 거기다가 시원한 그늘에서 다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다니는 곳마다 지열이 후끈거리고 올라온다. 얼음물을 준비하지만, 그도 얼마 버티지 못한다.

 

 

생태교통 수원2013’을 말하다.

 

시민기자. 그저 편안하게 글을 써도 된다. 아주 편안하게 취재를 하고, 그것을 글로 쓰면 되는 전문적이지 않은 기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민기자의 개념이다. 사실 모든 시민기자들이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기사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나무랄 사람도 없다. 그리고 기사를 꼭 써야한다는 의무도 없다.

 

그런 시민기자의 편안함을 버린 지 오래이다. 생태교통 수원2013의 시작에서부터 지금까지 난 늘 그 현장에 있었다. 누가 등을 떠밀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런데 왜 그렇게 그 땡볕 아래서 골목을 누비면서, 생태교통 시범지역을 마치 안방처럼 돌아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생태교통이 밥 먹여주남?‘이라고. 생태교통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생태교통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는 해준다. 알고 보면 이 무더위도 그동안 화석연료와, 무분별하게 사용한 화학물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던가? 그것을 누가 사용을 했을까?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 자손들에게 무엇을 알려주어야 할까?

 

그것이 바로 내가 생태교통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내가 생태교통의 책임자도 아니다. 나 하나 없다고 생태교통이 잘못 되어지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그 뙤약볕 아래서 돌아다니며 자질구레한 기사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나에게 무엇이라고 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생태교통이라는 것을 접하면서, 난 솔직히 우리의 후손들에게 미안함 때문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지구는 후손들에게 빌려온 것이다. 이런 철학적 용어는 나에게는 맞지 않는 문구이다. 그런 복잡한 문구로 생태교통이나 이 지구의 온난화 현상, 그리고 자꾸만 불편해져만 가는 우리 주변의 이상기후들. 그런 것을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약속을 한 것이다. 생태교통에 관한 어떠한 작은 기사라도, 현장을 다니면서 충실히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겠다고. 그것이 곧 한 사람이라도 이 현장으로 물러 들일 수만 있다면, 난 내 일을 다 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난 그래도 행궁동으로 간다.

 

더위를 먹는다.’라는 것이 이런 것이야. 낮에 점심을 먹고 다시 생태교통 지역으로 가려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영 속이 불편하다. 매슥거리면서 금방이라고 토할 것만 같다. 점심을 잘 못 먹은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갑자기 속이 부글거린다. 급한 김에 근처에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탈이 났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래도 대행인 것은 근처에 약국들이 많다는 것이다. 땀을 어지간히 흘리며 증상을 이야기를 하는 나를 보더니, “더위 드셨네요.“란다. 더위는 먹었는데 왜 이렇게 매슥거리며 토사가 나느냐고 하니, 너무 햇볕 아래 오래 있어 체력이 고갈된 듯하다는 것이다.

 

그 숱하게 산을 오르며 땀을 흘렸어도 괜찮았는데. 하기야 생각을 해보니 40여일 가깝게 쏟아진 비에 이어, 연일 33도를 웃도는 뙤약볕 아래 있었다. 탈이 날 만도 하다. 약을 먹고 조금 시원하게 있다가 보니 정신이 돌아온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일거든 다니라는 시민기자의 말이 생각난다. 서늘해 질 시간이 되었나? 난 행궁동으로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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