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 지리산 기슭에 있는 춘향묘. 그 앞을 흐르는 냇가에는 정자가 하나 서 있다. 육모정이라 부르는 이 정자는 최근에 새로 지었지만, 원래는 400년 전에 처음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현재의 육모정 뒤로는 용소라 불리는 소가 있다. 이 소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노닐던 곳이라 하였으며, 이곳에 넓은 바위가 있어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이 넓은 바위 위에 6각형의 정자를 지어 육모정이라 이름을 붙이고 선비들이 모여 시를 읊었다. 1960년 큰 비로 인해 정자가 유실 된 것을 현재의 자리로 옮겨 복원을 한 것이다. 육모정 뒤편으로 흐르는 물은 맑기만 하다. 그 물이 맑은 것에 반해서일까? 한 사람의 명창이 이곳에서 목을 트였다고 한다.



명창 권삼득의 설렁제가 만들어진 곳

명창 권삼득. 명창들이 득음을 할 때는 동굴독공이나 폭포독공을 한다. 동굴독공은 동굴 안에 들어가 소리를 얻을 때까지 혼자 외로운 소리공부를 하는 것이고, 폭포독공이란 폭포가 있는 곳으로 가서 소리를 얻는 것이다. 그 폭포 독공이라는 것은 목에서 피를 몇 말을 쏟아야 얻을 수 있다고 하니, 그 득음이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이곳에 구룡폭포가 있어 권삼득이 소리를 얻었다고 한다. 지금은 물이 줄어 예전의 모습이 상상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용소로 떨어지는 물이 상당한 소리를 냈을 것이다. 권삼득 명창은 전라북도 완주에서 태어났으며 원래 양반가의 사람이다. 예전에는 양반이 소리를 하지 않았으니, 권삼득 명창의 소리공부는 당연히 집안에서 쫓겨 날만한 일이다.


육모정 앞에 있는 춘향묘와(위) 물가에 서있는 권삼득 명창의 득음장소를 알리는 비
 
권삼득 명창은 판소리의 효시로 알려진 하한담에게서 소리를 배웠다고 했으니 판소리 초기의 명창이다. 조선조 영조 47년인 1771년에 완주의 양반가에서 태어나, 소리에 재질을 보였다. 혼자 이곳 용소 앞 넓은 바위를 찾은 권삼득 명창은, 이곳에서 소리를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날을 보냈을까? 지금은 작은 비 하나가 그때의 상황을 이야기하지만, 칠이 벗겨져 알아 볼 수도 없다.

설렁제를 만들어 낸 권삼득 명창

더늠이란 소리의 명창들이 오랫동안 소리공부를 하다가 자신만의 독특한 창법을 만들어 내는데, 그 소리를 말한다. 권삼득 명창의 설렁제는 흥보가의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과 춘향가의 ‘군노사령 나가는 대목’ 등이 바로 이 설렁제이다. 지금도 이 대목은 권삼득 명창의 설렁제로 부른다는 것을 말하고 설렁제로 소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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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정자가 서 있었다는 바위와 물길

설렁제는 높은 소리를 길게 질러 씩씩하고 경쾌하다. 듣기에도 시원한 창법이라 신재효는 광대가에서, 그의 호탕하고 씩씩한 가조를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에 비유했다. 그렇기에 권삼득을 '가중호걸'이라 불렀다. 육모정 뒤편 물이 흐르는 곳에 있는 용소, 바위틈으로 물이 얼마나 오랜 시간 흐른 것일까? 암반이 파여 있다. 그 아래 소가 푸른색을 띠고 맑은 물을 받아들인다.

선비들이 지었다는 육모정. 그리고 그 곳에서 소리를 하여 득음을 한 권삼득 명창. 양반가의 자손이니 이곳 정자에 와 그 경치에 반해 소리공부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용소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왠지 소리 한 대목으로 들리는 것도, 이곳에서 소리를 한 한 명창의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은 아닌지. 그렇게 무심한 세월만 흘러버렸다.

아홉마리의 용이 놀았다는 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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