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벌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벌교의 유명한 참꼬막의 맛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벌교에 도착한 시간은 해가 지기 전이다. 해가 길어서 조금 늦게 가도 언제나 대낮이다. 요즈음 답사는 절로 신이 난다. 하루 해가 길다가 보니, 겨울철 보다 두 배는 더 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벌교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홍교로 달려갔다.

 

홍교보다 ‘횡갯다리’가 더 좋아

 

홍교라는 말보다는 ‘횡갯다리’라는 말이 더 정겹다. 우리 문화재의 명칭이나 부분을 설명할 때 거의가 어려운 한문으로 되어있다. 아이들이나 한문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읽어보기에는 난해하다. 각 지역에서 부르는 우리말을 사용하면 더 친근감이 들고, 오히려 귀중한 것임을 알리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명인 벌교(筏橋)라는 말은 '뗏목다리'라는 뜻이다. 벌교읍 벌교리 벌교천에 놓인 다리를 말한다. 예전에는 이 벌교천 위에 뗏목다리를 놓아 통행을 했기 때문에 벌교라는 지명도 그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뗏목을 연결해 만든 다리를 말하는 '벌교'라는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로 바뀐 유일한 곳이 바로 벌교라는 것이다.

 

월천공덕으로 지어진 다리

 

홍교는 무지개다리를 말한다. 무지개다리란 아치형으로 만든 다리를 말하는데, 벌교 홍교는 세 칸으로 축조된 다리이다. 다리의 길이는 총 27m 정도이며 높이는 3m, 폭은 4.5m 정도이다. 이 다리는 조선 영조 5년인 1729년에 순천 선암사의 초안과 습성 두 선사가 만들었다고 전한다.

 

 

 

'월천공덕'이란 불교에서 말하는 깊은 내에 다리를 놓아 사람들에게 편의를 주는 것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공덕 중 하나이기도 한 월천공덕. 선암사의 두 선사는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불어 사람들이 건너지 못하는 벌교천에, 횡갯다리를 놓아 언제나 사람들이 건널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회심곡의 사설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선심하마 발원하고 진세 간에 나가더니 무슨 선심 하였느냐 바른대로 아뢰어라

늙은이를 공경하며 형우제공 우애하고 부화부순 화목하며

붕우유신 인도하여 선심공덕 하마더니 무슨 공덕 하였느냐

배고픈 이 밥을 주어 기사구제 하였느냐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선심 하였느냐

좋은 터에 원을 지어 행인구제 하였느냐 깊은 물에 다리 놓아 월천공덕 하였느냐

목마른 이 물을 주어 급수공덕 하였느냐 병든 사람 약을 주어 활인공덕 하였느냐

높은 뫼에 불당 지어 중생공덕 하였느냐 좋은 터에 원두 놓아 만인 해갈하였느냐

 

 

다리 옆에 중수비군이 서있어

 

벌교 홍교는 현재 보물 제304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다리는 영조 13년인 1737년과 헌종 10년인 1844년에 중수를 하였다. 홍교 곁에는 다리를 중수할 때마다 세워놓은 중수비가 있다. 홍교는 '단교(斷橋)'라고도 했다. 이는 비가 많이 오면 다리가 끊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홍교 옆에 있는 5기의 중수비에도 단교라고 적혀있다.

 

이 중수비는 마모가 심해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중수비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1737년, 1844년, 1899년에 보수를 한 것이 파악이 되었다. 현재의 홍교는 1981 ~ 1984년에 걸쳐 보수하여 원형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홍교 곁에 붙여 건축한 또 다른 다리다. 그 다리로 인해 자칫 보물인 홍교의 가치를 잃을 것만 같다. 괜한 우려인지는 몰라도. 차라리 홍교는 그 상태로 놓아두고 조금 떨어진 곳에 다리를 가설했다면 더 좋았을 것을. 아니면 홍교 곁에 뗏목다리를 놓아, 홍교의 옛 모습을 재현했다면 하는 바람이다.

 

 

 

벌교의 명물인 보물 횡갯다리. 다리 밑으로 들어가면 천정에 붙은 용머리가 보인다. 얼핏 말머리 같기도 한 이 용머리는 물을 내려다보고 있다. 물이 많이 불어나지나 않을까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월천공덕으로 놓아졌다는 이 다리에서 초안, 습성 두 선사의 마음을 읽는다. 잠시나마 부처가 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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