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주군 두서면 구량리 860에 소재한 천연기념물 제64호인 울주 구량리 은행나무는 아픔의 나무다. 이 은행나무는 수령이 550년 정도가 되었으며, 조선 초기에 이지대 선생이 심은 나무라고 전해진다. 이지대 선생은 고려 말기의 정치인인 익재 이제현 선생의 4세손이다. 선생은 이 나무를 한양에서 갖고 와 연못가에 심었다고 한다.

현재 나무 앞에는 한성부 판윤인 죽은 이공의 유허비가 서 있다. 현재는 연못은 사라지고, 주변이 논밭으로 변해버렸다. 이 나무는 마을의 정자목으로 밑 부분의 한쪽이 썩어있다. 구량리 은행나무의 둘레는 8.4m 정도이며, 높이는 22.5m이다. 이 나무는 2003년 태풍 매미 때 부러져 나무의 한쪽이 사라져 버렸다.


한성판윤을 지낸 이지대 선생

이지대 선생은 조선 태조 3년인 1394년에 경상도 수군만호로 있을 때, 왜구가 탄 배를 붙잡았다. 그 공으로 인해 한성판윤까지 벼슬이 올랐다. 그러나 1452년 수양대군이 김종서 황보인 등을 죽이고 안평대군까지 강화로 유배를 보내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구량리 은행나무가 있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7번 국도에서 나무가 서 있는 구량리까지 찾아가는 길은 버거웠다. 그러나 하나의 천연기념물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걸음을 재촉한다. 마을 옆 논 한가운데 서 있는 은행나무는 한편을 지지대로 받쳐 놓았다. 아마 그 쪽이 매미 때 훼손이 된 곳인가 보다.



은행나무의 위용에 눌리다.

은행나무 한 그루가 주는 감동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나무를 보는 순간 나에게 밀려 온 것은 바로 위엄이었다. 나무의 크기도 그렇거니와 한쪽 편이 잘려나갔음에도 그 위용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감히 이 자연 앞에서 누가 함부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나무 앞에 선 한성판윤 이지대 선생의 유허비도 색다르다.

구량리 은행나무를 보면서 자연은 스스로 치유를 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태풍 매미에 상처를 입고서도 푸른 잎이 무성히 달려있다. 그런 아름다움이 더욱 가슴을 뛰게 한다. 스스로 치유를 하고 550년 세월을 버텨 온 구량리 은행나무.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참으로 인간이 하찮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나무에 대한 또 다른 전설은 없었을까? 마을 주민들에게 은행나무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태풍 매미에게 한편을 훼손당한 구량리 은행나무

한성판윤 이공 유허비와 제단석

아들을 점지하는 은행나무

“어르신 저 은행나무를 마을에서 위하지는 않나요?”
“왜요. 마을에서는 저 나무를 신성시 하죠”“저 나무에 전설은 없나요?”
“저 은행나무를 훼손하면 그 사람은 해를 입어요. 그래서 저 은행나무 주변에는 사람들이 잘 들어가지 않아요”
“또 다른 전설은 없나요?”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저 은행나무에 가서 아들을 낳는다고 하죠”

아들을 점지하는 구량리 은행나무. 태풍에 가지가 찢어지는 아픔을 스스로 치유를 한 나무에는, 많은 사연이 전하고 있다. 천연기념물이 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 곳에는 항상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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