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몸이 아플 때 혼자인 것이 세상에서 가장 서럽다고 한다. 솔직히 남들보다 긴 세상을 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꽤 오랜 세월을 살면서 아직 자리보전을 하고 누워본 기억은 없는 듯하다. 성격 자체가 몸이 좀 불편하다고 해서 누워 있지를 못한다. 그저 나가서 돌아다니면서 몸을 다스리고는 했다.

 

3일 째, 장염으로 인해 하루에도 수십 번을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남들이 장염이라고 하면 그저 장에 탈이 좀 생긴 것이겠지 하고 넘겨버렸다. 아직 장염이라는 병을 한 번도 앓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장염이라는 병이 생겼다. 이렇게 힘든 것인 줄을 몰랐기에 그저 약방에 가서 약이나 사다 먹으면 나으려니 한게 병을 키웠나 보다.

 

하루 저녁에 화장지 한 롤을 다 사용해

 

그런데 저녁부터 탈이 나기 시작했다.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더니 급기야 탈이 난 것이다. 화장실을 가면 그저 좍좍 쏟아내는 것이 염 심상치가 않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시간이 점점 더 바빠진다. 나중에는 화장실 문을 닫기가 바쁘게 다시 화장실을 열어야 할 정도이다. 오죽하면 하루 저녁에 두루마리 화장지 한 롤을 다 사용했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 다음날 부터였다. 물 한모금만 마셔도 바로 배가 아프면서 화장실로 직행을 해야만 했다. 토요일엔 여기저기 취재약속을 해 놓은 곳이 있었지만 탈수증상까지 겹쳤다. 힘이 하나도 없고 자꾸만 잠만 쏟아진다. 막말로 이러다가 제 명에 못 죽겠구나 하는 불안한 생각까지 든다.

 

그래도 혼자는 아니었다는 것이 천만다행

 

사람은 몸이 불편할 때 곁에 사람이 없으면 서럽다고 했던가? 그 말이 정말 맞는 듯하다. 하루 반나절을 혼자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 한 없이 서글픈 생각이 든다. 거기다가 대문 밖 출입도 힘들 정도로 기운이 떨어졌다. 지인 한 사람이 전화를 걸었다. 연락도 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소식을 들었다고 죽이라도 사갖고 가겠다는 것이다.

 

그 말로만이라도 위안이 된다. 사람들은 누가 진정한 이웃인가를 아플 때 보면 알 수 있다고 어르신들이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이 난다. 정말 이웃이란 내가 힘들 때 조건 없이 다가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위안이 된다. 근처에 사는 아우가 약을 들고 왔다.

 

자신도 바쁘게 살아가는 아우지만 그래도 형이라고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 곁에 있는 아우가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약을 먹고 시간이 지나자 배가 아픈 것과 설사를 하는 것이 조금은 가신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못 먹고 꼬박 2일을 보낸 셈이다. 사람이 탈진이 되기 시작한다.

 

 

이런 이웃이 있기에 행복하다

 

아침 일찍 아우가 전화를 했다. 밤새 좀 어땠느냐고 묻는다. 설사는 좀 나아졌다고 하니, 약을 지어갖고 올 테니 기다리란다. 2일이나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더니 사람이 기진맥진이다. 물이라도 마셨으면 좀 나으련만 물만 먹어도 화장실을 가야하니 정말 죽을 맛이다. 꼬박 3일을 굶었더니 사람이 탈진이 되었는가 보다. 누가 문을 여는 소리에 놀라 일어났더니 아우가 들어왔다.

 

문자를 하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를 않아 집까지 몇 번을 찾아왔지만 들어오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죽을 사 갖고 오겠다고 나간 아우가 오래지 않아 죽과 약을 갖고 왔다. 토요일인데도 약속이 있어 나가야 한다면서 죽 먹을 시간과 약 먹을 시간을 꼼꼼하게 일러주고 간다. 죽을 먹고 약을 먹은 후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러는 사이 설사도 멎은 듯하고, 그렇게 살살 아프던 아랫배의 통증도 조금 가신 듯하다. 3일간의 장염이라는 병은 나에게 참 많은 것을 알려준 것 같다. 우선은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진정한 이웃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병으로 고통을 받는다고 하면, 먼 거리에서 달려올 사람들이야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구차하게 누구에게 내가 아프다는 소리조차 못하는 인사인지라 애써 참았다. 그리고 내 몸은 내 스스로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갑오년 1월에 얻은 교훈이란 생각이다. 또한 아우와 같이 걱정해주는 사람 한 두 명이 곁에 있다는 것이 그저 고맙고 행복하단 생각을 한다.

 

아침에 전화를 한통 받았다.

 

기자님 저 ○○인데요.”

,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궁금한 것이 있어서요. 이른 시간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참 선뜻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질문의 요지는 이렇다. 본인도 정부 모 부처의 블로그 기자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블로그에도 글을 올리고 해당 부서 게시판에도 글을 올리는가 보다. 그런데 갑자기 그 부처에서 기자들에게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제대로 취재를 하지 않은 기사는 올리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실 요즈음 블로그들은 기본적으로 고가의 카메라를 소지하고 있다. 그것은 블로그라는 일인미디어들이 자신의 블로그를 방분하는 사람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사진 실력들도 프로급을 능가하는 블로그들이 상당수가 있다.

 

 

취재를 할 때는 꼼꼼히 현장에서

 

사실 취재를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사전에 충분한 공부를 한 후 임해야 한다는 것도 번거롭지만, 취재를 마치고나서도 많은 자료를 찾아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사란 활자로 남기 때문이다. 자칫 오류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 기사를 쓰는 일이고보면, 많은 공부를 하지 않고 써 내려가는 기사는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문화재나 역사적인 기록을 하는 기사를 쓴다면, 더욱 꼼꼼하게 모든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칫 엉뚱한 기사를 써서 남의 비웃음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로 나의 경우는 문화재 하나를 취재할 때, 문화재 한 점의 사진을 30장 이상을 찍는다. 행여 빠트릴 부분이 있을까봐, 부분 부분을 세밀하게 촬영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요즈음은 휴대폰의 성능이 뛰어나다. 휴대폰의 화소도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사실 카메라를 지참하지 못한 경우에는, 휴대폰이라는 이기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리고 SNS가 활성화되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사진을 촬영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에 글을 내보낼 때는 휴대폰보다 실용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식으로 기사를 쓸 때는 사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기사에 인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만일 그 기사를 인쇄물로 제작을 하려고 하면, 화질이 좋은 것 같은 사진도 뭉그러지거나 깨어지기 때문이다. 취재기자들이 그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좋은 사진 한 장을 찍겠다고 이리저리 뛰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취재를 할 때 마음가짐부터 달라야

 

기자는 취재에 임할 때 먼저 취재를 하겠다고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카메라와 수첩, 그리고 필기도구는 기본이다. 언제 어디서 기삿거리를 만날 줄 모른다. 하기에 작은 소형카메라라도 몸에 지니는 것은 취재기자의 근본이다. 요즈음은 가격대가 착한 카메라도 성능이 뛰어나다.

 

기자가 취재를 하고, 그것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하는 신분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불필요한 사진을 찍어서 자신의 얼굴을 알리려고 하지말자. 독자는 기사를 보고 싶은 것이지, 기자의 얼굴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사진이 나오는 기사, 초점도 제대로 맞지 않는 기사를 보면서 좋은 기사라고 이야기할 독자는 아무도 없다.

 

독자들의 수준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기자들도 그 독자들의 수준을 웃돌아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날로 변화하는 미디어 시대에 뒤처지는 불량신문과 미숙한 기자 밖에는 되지 않는다. 정성을 다해 써내려가는 기사 한 줄. 그것이 많은 독자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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